聖靈論

6.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구요한 목사

영국신사77 2007. 8. 17. 22:11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  



 우리가 하나님 나라 일을 하고, 예수를 증거하고, 내 속에서 그리스도가 살아나고, 예수의 향기를 나타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눅 11:13,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서 받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이다. 마태복음의 ‘좋은 것’은 곧 누가복음이 말하는 ‘성령’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을 받아야 한다. 이미 받은 사람은 또 받고, 받지 못하신 분은 꼭 받아야 한다.

 “성령을 받는다,” “성령 충만을 받는다,”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같은 말이다. 같은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성령을 받는다,”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내가 완전히 성령에 사로 잡힌다는 말이다. 성령의 새술에 취한다는 말입니다. 술 취한 사람은 술이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한다. 성령의 새술에 취한 사람은 성령이 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 통제한다.

 그 결과 자연히 세상 나라 일에서 멀어지고 하나님 나라 일, 예수를 증거하는 일에 열심과 보람과 기쁨을 누린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 강림은 ‘한 번’에 그쳤는가?

 어떤 사람들은, 성령 강림은 오순절의 성령 강림을 통하여 단 한 번에 그친 사건이므로 오늘날의 우리들은 성령을 다시 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단 한 번에 이루신 것같이, 성령 강림도 오순절의 ‘한 번’ 강림으로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그때 강림한 성령이 이제는 교회라는 저수지에 보관되어 있으며, 오늘날의 우리는 예수를 주로 시인만 하면 이미 오신 성령이 우리 속에 내주하시므로―구원성령세례―성령을 달라고 다시 구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한다.

 

                                                         이 주장의 잘못이 무엇인가? 

 ① 첫째,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일회적인 것과 같이, 성령 강림도 일회적이라는 연결 자체가 억지이다. 한 사람 예수가 전 인류를 대표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과, 120 문도가 성령을 받은 사건을 동등한 유비로 연결시키는 자체가 억지란 말이다.

 

  과연 120 문도가 전 인류를 대표해서 성령을 받았는가? 비록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성령이 강림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120문도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사람이 성령을 받아야 한다. 



 ② 둘째,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저수지 이론’을 추가한다. 오순절에 한 번 강림한 성령이 어딘가에 고여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이 필요하면 저수지에 연결된 수도꼭지를 틀어서 다른 곳에 전달될 수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성령을 다시 달라고 구하는 기도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성령이 고여 있는 저수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교회 어디엔가에 고여있다고 막연히 추측한다. 글쎄 어느 교회인지? 장로교회인지, 감리교회인지, 오순절교회인지?

 성령은 한 번 강림하여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저수지에 고여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영원토록 성부와 성자에게서 (지금도 계속) 나오신다(요 15:26; 갈 4: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장3절).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성령의 피조물인 교회가 성령을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승천하신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오순절 뿐만 아니라 지금도 계속 부어주신다. 성령이 굳이 어디엔가 저장되어 있다면 그 저수지는 하나님이다. 

      사도행전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이와 맥을 같이 하는 또 다른 잘못된 주장이 있다. 성령과 은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이므로, 우리가 구할 필요도 없고 구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유명한 신학자이자 목회자가 이렇게 주장하는 책을 출판했다.

 필자는 이 분이 성경을 제대로 보고하는 소리인지 궁금하다. 성령은 비록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동시에 사람인 우리에게 “구하라!”는 기록도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위에서 잠시 예를 든 눅 11;13이나 행 4:32이외에도,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성령을 구하라고 기록한다.

  더군다나 오순절의 성령 강림에 대한 약속을 받았을 때도, 제자들은 가만히 기다린 것이 아니라, 열심히 기도하면서 기다렸다.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또한 은사도 사모하고 구하라고 한다. 

       고전 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 14:2-3,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 

  성경에 이렇게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도, 성령이나 은사를 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성경보다 사람의 주장을 우위에 놓는 잘못된 주장이다.   

  또 어떤 사람은 “성령을 구하라”는 구절들은 구속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속사적 해석이란 성경 전체를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과 성취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인데, 이것이 지나쳐서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록, 특히 성령의 능력으로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것은 예수님이나 사도들에만 ‘독특한’ 일들이므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비반복적’이라는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과연 그런가? 성경은 구속사적인 틀 안에서 모범적으로도 해석해야 한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누구도 갈 수 없는 독특한 일들을 했지만, 인격과 사역에서 우리들의 모범이 되기도 한다. 특히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한 것은, 교회 시대 전체에 걸쳐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는 일들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도, 사도들처럼 성령을 구하여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 전파 사역에 임해야 한다.

 

                                                      어떻게 성령을 받는가?

  무엇보다도,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사람이 알고 구하기 전에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요엘 2:28~29,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다. 

     사도행전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이처럼 성령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사람이 구하든 구하지 않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신다. 따라서 오랫동안 구해서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연히 받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주시지만, 구하는 자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성령을 구할 것을 기록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곧 성령을 기다리라 라고 말씀하셨다(행 1:4). 그러면 제자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멀뚱이 기다렸는가? 그렇지 않다. 제자들은 열심히 구했다(행 1:14).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을 포함한 120 문도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쓴 결과 며칠 후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다.

 얼마 후 이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지만 일심으로 소리 높여 하나님께 간구하여, 모인 곳이 진동할 정도로 강하게 성령이 임하여, 그들은 또 다시 성령충만을 받았다(행 4:24, 31).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면서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주시지만, 대부분의 경우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사실이다. 

  ② 둘째,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구하기 전에 먼저 사모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좋은 것을 가지기 전에 먼저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다. 좋은 집, 좋은 직장, 자녀의 교육 등, 좋은 것을 가지기 전에 우리는 먼저 마음 속에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다.

 성령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좋은 것을 가지겠다는 거룩한 소망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시키신다.

 

       시편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

 

       시편 81:10,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사모하는 사람은 마음 속에 상상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상상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는 세상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상상력이 의지력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마음 속에 내가 성령 받은 모습을 그리면서 사모하는 것이, ‘내가 이것을 해야 되겠다’는 의지력을 발동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마음 속의 소원이 바로 행동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자동차 개발에 열심을 낸 동기가 있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위독했다, 그는 급히 말을 달려 의사를 모시러 갔지만, 급한 마음에 비해 말은 너무 늦었다.

 그래서 어린 포드는 말보다 빠른 기구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품고, 그것을 사모하여 노력한 결과 마침내 자동차 왕이라는 닉 네임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시켜 주시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듯 주를 찾기에 갈급한 사람에게(시 42:1), 주님은 성령으로 채워 주신다.

 이 세상 것으로는 주린 영혼의 갈증을 채워 주시지 못한다. 돈, 명예, 부귀도 잠시 뿐이다. 오직 성령의 생수만이 우리의 갈증을 해소해 준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  

 내 속에서 성령의 생수의 강이 계속 흘러나올 때, 우리는 세상 것에 기웃거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 일에 소원을 두고 하나님 나라 일, 곧 예수를 증거하는 일에 열심을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령을 사모해야 한다.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구할 마음이 생기 때문이다. 

  ③ 셋째, 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나는 성령을 구할 마음이 생기지 않은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는 주시지 않는가보다”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이 고린도전서 12;13이 말하는 구원 성령세례와, 사도행전이 말하는 능력 성령세례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능력 성령세례가 무엇인지 모르고, 또한 믿는 자는 모두 구원 성령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성령을 다시 구할 필요가 없다고 배워서 구할 마음이 생기지 않은 것이다. 이미 받은 것 다시 구할 필요가 없다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는 성령을 주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다(누 11:13). 어떤 사람은,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그러니 강요하지 말라”고 한다.

 갈증을 모르는 말로 하여금 물을 먹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말에게 소금을 많이 먹이면 갈증이 나서 물을 찾을 것이다.

 

  성령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성령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이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받지 않았으면서도 받은 것처럼 잘못 알고 있었거나, 구하면 안 된다는 잘못된 신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받으면 좋다는 사실을 알면,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고,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면 당연히 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필자도 처음에는 구할 생각을 않았다. 소위 말하는 보수, 정통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는 것이 좋다는 깨달음이 오자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고,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니 당연히 구할 마음이 생겼다. 그 결과 구해서 받았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20세기 최대의 부흥사인 D. L. 무디는 성령을 받아서 최대의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성령이 너무나 강하게 임하여 제발 거두어 달라고 할 정도였다.

 19세기 미국 제2 영적대각성운동의 지도자인 변호사 출신의 찰스 피니는 변호사 사무실의 뒷방에서 기도하던 중 받은 성령 체험을 이렇게 기록했다.

 “불 옆에 앉으려는 순간 나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너무나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성령은 나의 온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휩쓸듯이 나를 뒤엎었다. 나는 마치 전류가 끊임없이 나를 통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것은 정말 파도처럼, 한없이 흐르는 사랑의 파도처럼 밀려왔고 또 하나님의 숨결인양 가까웠다. 이 모두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날개처럼 나를 부채질 하였다. 나는 주님 앞에 나의 모든 영혼을 맡긴 채 한없이, 한없이 울었다.”

 

  이 체험을 통해 그는 구원의 확신을 얻고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위대한 주의 사자가 되었다. 

  그렇다. 성령이 강하게 임하면, 우리는 죄악으로 물든 나의 더러운 모습을 보고, 통분하여 울고, 나의 죄를 성령으로 깨끗하게 씻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운다. 눈물이 콧물과 범벅이 되어 죄의 깊이와 은혜의 깊이를 절감하며 운다. 또한 기쁨이 넘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 결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심령이 치유되고,

 -말씀을 담대하게 전파하고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를 받고

 -남은 여생을 예수만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결단을 하고.

 -신랑 예수의 재림을 사모하고

 -신앙생활의 재미를 누린다. “믿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모하고 구하여서 성령을 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금방 받고, 어떤 사람은 사모하고 구한 지 십 년 만에 받는 사람도 보았다.

 그러므로 한 번 구하여서 못 받았다고 포기하지 말라. 계속 구하라. 누가복음 11장 9~13절의, ‘구하고 찾고 두리리라 그러면 성령을 주시지 않겠는냐’는 이야기 바로 앞에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가?

 늦은 밤에 친구 집에 떡을 구하러 온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친구가 떡을 구했는가? 구했다. 어떻게 구했는가? 친구이기 때문에 구했는가? 아니다. 너무나 달라고 떼를 쓰니까 주지 않으면 도저히 밤새도록 잠을 못잘 것 같으니까 주인이 귀찮아서 주어 버렸다.(누가복음 11장 5절~8) 

 

       누가복음 11장 8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이 이야기 다음에 성령을 구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성경은 단어 중심이 아니라, 앞 뒤 문맥을 따라 해석해야 한다. 예수님이 떡을 구하는 비유를 말씀하신 바로 다음에, 성령을 구하는 기도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강청하는 기도’를 하여 성령을 구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한 두 번 구하여서 받지 못했다고 실망하여 포기하지 말고, 받을 때까지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인 ‘성령’을 주실 것이다.

                                                                                                                                           구요한 목사/ 글로리아넷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