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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릭 워렌 목사가 말하는 `비신자에게 다가서는 예배`

영국신사77 2007. 7. 1. 10:17
릭 워렌 목사가 말하는 '비신자에게 다가서는 예배'

이해할 수 있는 예배와 메시지가 복음전도를 가능케 한다

과학적인 세계관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는 갈수록 '이해하지 못하면 믿을 수 없는' 세태가 믿음의 세계관을 수용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과학적 세계관에서 합리성으로 세뇌된 이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는 길은 무엇일까? 과연 이해할 수 있는 예배,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가 교회 안에서 가능할까? 과연 이러한 예배와 메시지가 진정한 복음을 통한 믿음의 세계로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을까? 美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크리스천 포스트 Christian Post>의 최근 기고에서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다음은 '이해해야 믿을 수 있는 세대'를 위해 예배와 메시지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는 그의 기고 내용이다.

새들백교회에서는 예배가 비신자들에게 깊이있고 의미심장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보통 예배에 대해 이야기할 때 크리스천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으로서의 예배를 말한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교회가 신자들이 전심을 다해 드리는 예배와 비신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도록 그들을 초청하는 장(場)으로서 예배를 구분하지 않았으면 한다.

새들백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대한 정의는 간단명료하다. “예배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말씀, 그분이 역사하심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예배가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지고 그분이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것

비록 비신자들이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하더라도 크리스천들이 예배드리는 것을 지켜볼 수는 있다. 그들은 우리들이 느끼는 기쁨을 주시하고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그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찰할 수 있다. 또한 비신자들에게 예배는 자신들의 삶에서 직면하는 의문과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를 듣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비신자들은 예배가 어떻게 크리스천들을 격려하고 힘을 주며 변화시키는가를 주의해서 볼 수도 있다. 비록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비신자들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느낄 수는 있다. 비신자들이 진정한 예배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들에게 이 예배야말로 강력한 복음의 증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은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가 제자들의 예배에 극명하게 나타남으로써 그 도시 전체에 있는 비신자들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배 중에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져야만 한다. 우리의 변론적인 논증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심령을 녹인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에서 복음을 영접하는 결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예배와 복음증거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복음전파의 목적은 첫 번째로 예배자를 만드는 데 있다(요4:23). 우리가 예배자를 찾을 때 우리는 그것을 복음전도라고 부른다. 다른 한편으로 예배는 복음전도를 위한 동기부여를 한다. 이사야의 강력한 예배의 경험(사6:1-8)이 그로 하여금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는 고백을 만들어냈다. 진정한 예배는 증인의 삶을 살게 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진정한 예배에서 하나님은 용서를 베푸시고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목적이 드러난다.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 복음전도를 위한 이상적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데 나는 크리스천들이 지혜롭고 진실한 태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비신자들이 지켜보면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그들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목도한다.

비신자를 배려하는 예배

진정한 예배가 비신자들에게 그토록 심오한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비신자들이 예배에 참석하게 되면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이나 필요, 심리적으로 느끼는 장애들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고전14:23). 사도 바울이 공적인 예배에서 방언을 제한할 것을 명한 것을 성경이 전하고 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방언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단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어리석게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나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한 이 충고에는 더 중요한 원칙이 담겨져 있다고 믿는다. 이 충고를 통해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한 요점은 예배에 비신자들이 함께 할 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배의 관례를 기꺼이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 가운데 있는 비신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장애들에 민감하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우리의 예배에 비신자들이 나오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사도 바울의 생각이기도 하다.

이해 가능한 예배 만들기

비신자를 위해 예배에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신학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예배환경의 변화, 즉 방문자를 맞이하는 방식이나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의 형식에 변화를 주는 것 또는 설교에서 대상을 고려해서 성경 해석에 주의하는 등에 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메시지가 항상 편안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때때로 우리에게 매우 불편한 것이기도 하다. 메시지가 비신자에게 다가서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해야 할 말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예배와 메시지가 비신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은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꿔주셨다(행2:11). 이 기적은 사람들을 회심시키고야 말았다. 심지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더라도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들은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비신자들은 청산유수의 메시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나와서 비신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성경이 자신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비신자들은 자신들이 존중받고 있으며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분위기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전달되는 분명한 성경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인생에서 겪는 수많은 문제의 해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지 설교자의 잔소리나 질책을 받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와 분명하고 뚜렷하게 이해되는 메시지는 비신자들로 하여금 복음의 능력 앞에서 마음을 열게 만든다. 비신자들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메시지를 이해할 때 그들은 변화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출처 : 엔토
글쓴이 : 이기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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