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海外 聖地순례/그리스 歷觀 & 聖地순례

빌립보 (이은주연구원) #2 (2)

영국신사77 2007. 6. 5. 12:13
 
 
                  

                        빌립보  유적지 

 

                                            (이은주연구원)


                                    *고대 빌립보 유적지*

 

 

 현재지명 필립비인 빌립보는 신약성서 중 두권의 성서에 기술되어있다. 이 두권은 사도행전과 옥중서신서중 빌립보서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사도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 중 마케도니아지역에 제일 처음교회를 세운 지역으로,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이 이 지역의 교회에 보낸 편지에 빌립보라는 지역이 나타난다.

 또한 사도바울이 유일하게 교회로부터 선교지원금을 받은 곳이 빌립보지역이다. 이러한 특별함있는 빌립보를 빌립보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사도바울 당시의 경제적 상황과 종교적 상황을 지정학적 위치와, 유적과 유물로 통해 좀더 이해해보자!

  빌립보의 지리상 위치는 현재 지명이 카발라인 네압볼리에서 에그나티아 길을 따라 북쪽으로 약 16km떨어진 레카니스(Lekanis)산을 중심으로 마케도니아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데살로니카가 지리상 동남쪽 160㎞에 있고, 지리상 남쪽 1.956㎞에 금광지로 유명한 팡게오 산(Pangeo)이 인접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로 더욱 알려진 마케도니아의 필립왕은 이곳에서 1년에 1천 달란트 이상의 금을 채취하기도 했다한다. 그런데  Aegae 또는 Vergina라고 불리는 곳에서 필립2세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이 무덤에서 금으로 만든 방패와 금팔찌등 많은 양의 금이 발굴되어 사설이 아님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천연자원 중 황금이 넘쳐나는 빌립보는 알렉산더에 의해 더욱더 도시의 모습으로 변모되었고, 알렉산더는 여기에 이민단을 보내었고 여기를 군사기점으로 삼았다. (원용국, 최신 성서고고학 신약편, 지혜문화사, 1991, pp265~269.)  그후, 기원전 168년 로마인들이 도시를 점령하고 그로부터 20년 후에 로마의 속주도시가 되었고 로마시민들이 이주하였다.

 

  기원전 31년 빌립보는 로마의 도시들처럼 자치권, 면세권, 절대사유권등 로마의 권리를 누리는 자치시로 승격되었다. 이제는 빌립보는 옛 이름 샘이라는 크리니데스(Krinides)라는 사라지고 경제력이 왕성한 도시인 빌립보로 기억되었다. 


  이 지역은 고대의 이름 “샘-크리니데스”에서 알 수 있듯이 물이 많은 지역이다. 로마시대의 복식의 특징을 살펴보면 ①실용성 존중 ②그리스 영향의 옷 ③염료개발로 집약된다. 고대 염료 중 가장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은 자주 즉 보라색이었다. ‘천상의 색’이라는 으로 불렸다. 이 색의 고귀함은 염료의 희귀성에도 있었다. 천연 재료로 얻을 수 있는 보라색 염료는 얻기 힘든 만큼 매우 고가였고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주피터 신을 묘사할 때 중심 색으로 보라색이 사용됐고, 신을 모시기 위해 올리는 제사에 제사장도 보라색 옷을 입었다. 로마시대에는 고위 공직자의 의복에만 보라색이 허용됐고, 보라색과 금으로 된 옷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만 입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자주색옷감은 특별한 염색기술이 필요했고 또한 공업용수가 풍부한 산업환경이 필요했다. 빌립보 지역은 염색산업환경에 적접한 지역이므로 이 곳에는 염색가공자들의 길드가 형성되었다고는 전해진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보라 -자주색의 염료가 희귀하여 보라색 염료는 소아시아의 두아디라와 페니키아(현 레바론)에서만 생산 되었다. 당시의 염색가공업에 관련되 유물과 유적이 빌립보에 남아 있지 않아 사실증명이 어렵다. 그리고 자주색만을 위한 염색가공무역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성서에서는 사도행전 중 빌립보 지역에서 처음 기독인 된 루디아의 경우 직업이 자주장사였다고만 기술되어 있고 “비아 에그냐티아(Via Egnatia)”의 일부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염색가공업을 중심으로 무역이 활성되었다고 생각되어진다.

 이 유적 에그냐티아는 기원전146년에 무역과 군사용으로 포장 건설된 길을 말한다. 이 “비아 에그냐티아”는 콘스탄티노플에서부터 로마까지 연결되어 있던 도로로서 이스탄불에서 네아폴리스, 필립보, 암피볼리스, 아폴로니아, 테살로니카, 펠라를 지나 알바니아의 아드리아 해를 건너 이탈리아 브린디시등 주요도시를 경유한다.  따라서 직접적인 고고학 유물은 없지만 간접적인 유물과 지리적 환경을 통해 빌립보에서는 염색가공무역이 활발했다고 이에 따른 길드가 생성되었다고 유추한다. 

 
  즉 빌립보는 천연의 자원이 풍부하고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다른 도시들과의 무역이 원할한 도시였다는 것 뿐아니라 군사기점도시였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도행전기자 또한 이 도시를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행16:12)”고 기술하고 있다.
    


  빌립보의 고고학적 발굴은 1914년에서 1983년까지 아테네에 있는 “프랑스연구소”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발굴하였다. 현재 빌립보지역에 남아 있는 유적지는 현재 도로를 사이에 두고 크게 두군데로 나누어진다. 왼편 산등성이에는 야외극장과 5세기 때 세워진 교회터, 고대 저수지입구였으나 와전되어 사도바울이 갇혔었다는 감옥이 있다. 도로 아래쪽은 당시의 시장터와 의견을 나누는데 사용된 아고라(Agora)와, 연설 연대인 베마(vema)가 있다. 귀신들린 점하는 여자를 고쳐 저자로 끌려나온(행16:9) 곳이 이 아고라였을 것이다. 또한 후대에 교회로 사용된 신전 터와, 사도바울이 전도여행을 떠난 로마행국도인 비아 에그냐티아(Via Egnatia)의 일부가 있다.  교회로 사용되어진 신전에서는 여러신들의 집이었다. 여러신들은, 토착신인 드라시안(Thracian), 그리스․로마의 신들인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지혜의 여신 “아테나”, 제왕 신 “제우스”, 대지의 여신 “퀴벨라”, 술의 신 “디오니수스”등이다. 이 신들이 빌립보에서 섬겨졌던 것은 위에서 언급한 알렉산더의 이민정책으로 로마인들의 이동으로 같이 유입되었다.  그리고 이 빌립보지역에서도 이집트의 신들의 신전이 있었다. 이집트 신들은 이시스, 세라피스, 호루스등을 섬겼다.  
  빌립보 유물 중에는 신약성서에 표기된 용어의 명확한 해석을 도와준 것도 있다. 사도행전16장 19절에 “관헌들(ἄρχοντες)”와 20절에 “상관들(στρατεϒοι)”이라는 특별한 용어로 표기 되었는데 빌립보의 비분을 통해  이 용어가  로마 식민지의 “집정관”의 예의적 명칭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 

  
  또한 로마집권 자치시로 승격된 당시에 빌립보에서 통용되어지는 법률은 민중의 결의 없이  로마 시민을 취조하는 것을 금지하는 바레리아 법(Lax Valeria, 주전 509년)과 어떤 경우에 무엇을 위해서든지 로마시민을 형벌하는 것을 금지하는 폴키아 법(Lax Porcia, 주전 248년)이었다. 따라서 사도행전 16장 38절에 “빌립보 관리들은 바울이 ‘로마 사람’이라는 말에 두려워 했다”라는 구절은 빌립보가 로마의 식민지요, 또 자기들의 지위가 로마의 권세에 의하여 폐위될까 두려워서라기보다는 법 때문이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과 빌립보서에 나타난 빌립보교회의 상황을 고대 빌립보도시의 종교, 경제의 환경을 간략한 역사와 유적과 유물로 살펴보았다. 빌립보는 기원전 360년경에 아테네인 망명자 칼리스트라투스(Callistratus)에 의해서 창건되었다. 356년에 마케도니아 필립2세가 정복을 하였고 도시의 모습을 알렉산더가 정립하였으나 빌립보가 속한 마케도나아 제 1지역의 수도가 암비볼리여서 빌립보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군사식민지로 남아 있다 로마시대에서부터는 도로의 발달로 도시가 번화하고 로마도시의 특권까지 갖게 되었다.


빌립보는 극소수의 원주민과 대부분 헬라인과 로마인들로 구성되어졌고, “비아 에그냐티아(Via Egnatia)”의 경유도시였기에 정치, 경제, 문화, 종교등 모든 분야에서 많은 교류가 있었다.  
   바울은 다른 지역의 선교 활동 중에서도 빌립보교회와 계속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어떤 교회보다도 이 교회를 특별히 사랑하였다.(행16:12-40, 살전 2:2, 고전 7:5-7, 빌 4:15-16). 아마도 박해가운데 위와 같이 모든 것이 혼합되고 경제적 지표가 중심이 되는 빌립보에 순결함과 믿음의 헌신을 하는 빌립보교회여서 그러하였을 것이다.

우리의 양식을 품을 논두렁에 새싹이 움트는 연두빛 3월에 이들 초대빌립보교회의 숭고함을 그려본다. ^.~*



 

'◈◈ 海外 聖地순례 > 그리스 歷觀 & 聖地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살로니카 (2)  (0) 2007.06.05
데살로니가  (0) 2007.06.05
빌립보 [Philippi]  (0) 2007.06.05
테살로니카(Thessalonica)  (0) 2007.06.04
고린도[코린토스(Corinth)]<네이버>  (0) 2007.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