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소아시아반도의 북서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에게 해 연안에서 5㎞ 정도 떨어진 내륙의 히살리크 언덕에 있는 트로이는 신화와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장소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 당시의 드로아(트로이)항구는 고대 트로이를 흐르는 스카만더 강에 토사가 쌓여서 내륙으로 밀려난 고대 트로이를 대신하여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새로운 드로아 항구가 열렸던 곳일 뿐이다. 이곳에서 매일같이 떠나가는 배를 타고 사모드라키를 경유하여 만 하루정도 뱃길을 달려 가면‘새 동네’라고 이름 지어진‘네아 뽈리’에 도착 하게 된다. 바울 사도는 그의 두 번째 선교여행을 소아시아의 끝인 이곳에서 반환점을 찍고 다시금 그가 왔던 지역을 거슬러 뒤돌아가고자 했을 때 그 유명한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았다. 그러나 당시의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 사람들을 다르게 구별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살고 있는 지역만 다를 뿐이지 의복도, 사람도, 언어도 동일한 문화권의 사람들인데 어떻게 사도 바울은 꿈속에 나타난 그 사람이 마케도니아 사람인 것을 알았을까?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에 까발라(네아볼리)에 다녀오게 되었다. 그리스 정교회는 웬만해서는 교회나 성화를 손대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는데, 바울 사도 도착 기념교회에서는 도로 변에 접한 외벽에 그려진 성화를 지우고 대신 모자이크로 벽화를 다시 만들고 있었다. 이 곳을 찾는 모든 관광객의 순례 목적이 바로 이 그림일 만큼 이 벽화는 중요한 의미의 가지고 있다. 개작의 책임을 맡은 안토니라는 이탈리아 장인은, 네아볼리의 자치 의회와 교회에서 주문한 대로 모자이크 화를 다시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놀라운 것은 그림의 내용인 즉, 바다 건너 드로아 성에서 환상을 보는 바울 사도와 네아볼리에 도착하는 사도의 그림 사이에 있는 그를 부른 주인공, 공사 전의 벽화에서 보았던 얼굴하고는 다른 얼굴로 그려져 있었는데, 문제의 새로 그려진 얼굴은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아버지 빌립 2세와의 갈등으로, 죽을 때 가지 수염을 기르지 않은 미동의 얼굴, 그대로의 알렉산더였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는 기원전의 인물이데. 안토니는 한 정교회 신부가 전해준 이야기라며 입을 열었다. 바울 당시, 당대의 인물은 아니었지만 회자되던 가장 유명한 마케도니아 사람은 알렉산더 왕이었다. 바울 사도가 환상을 볼 당시, 통용되던 동전에도 웬만한 신전이나 궁전에도 용맹한 모습으로 전투에 임하는 얼굴 혹은 전신의 벽화와 모자이크들이 그려져 있던 왕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환상 속에 나타나 바울 사도를 부른 인물은 필히 알렉산더의 얼굴을 하고 나타났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마케도니아 인이 자기를 부른 것이라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리스인 대부분이 인정하고 있기에 교리적이든 역사적이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단다. 그래서 몇 해 전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다시 찾았을 땐, 옛 과는 전혀 다른 그림의 사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개작의 이유가 일리는 있지만, 왜 그리스인들은 성경이 이름을 말하지 않은 마케도니아 사람을 알렉산더라고 규정 했을까? 마케도니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기에 조금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긴 하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공해와 매연으로 흐려졌던 벽화를 대신하여 금빛 나는 모자이크화가 보기도 좋았고 의미도 있어 좋았지만 그리스는 신앙과 전설, 역사와 신화가 혼합된 혼돈과 혼란의 장인 것 같아서 아주 오래된 동전의 양면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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