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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

영국신사77 2007. 5. 26. 23:32
                                   암비볼리
 
 


                                            암비볼리

 


                          암비볼리(Amphipolis)


  빌립보 남서쪽 약 53km 지점에 있는 도시로서, B.C167-146년 무렵에는 마게도냐 북부지방의 수도였다. 이곳은 빌립보 지방보다 크고 요충지(要衝地)였으나 바울일행은 단지 지나가는 정도로 그친다.

 

  아볼로니아(Apollonia)암비볼리에서 약 43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 곳은 갈라디아에 있는 '아볼로니아'와는 다른 곳이다.

 

  데살로니가 데살로니가는 데르마 만의 갑(岬)에 위치한 부산한 항구도시였다. 데살로니가 성읍은 유명한 에그나티아 가도와 북쪽으로 다뉴브에 이르는 대로를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한 중요한 성읍으로서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 성읍의 인구는 20만 명에 이르렀고, 마게도냐의 최대 도시였다. 주전 167년 마게도냐가 로마에 패하면서 수도가 암비볼리(Amphipolis)로 되었다가 주전 146년부터 데살로니가가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가 되었다. 이곳은 아볼로니아 남서쪽 64km지점이며 데르마이크만(Thermaic Gulf)에 위치해 전략적 요충지였고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였다. 데살로니가(Thessalonica)는 마게도냐 내륙의 풍요로운 농경지를 동쪽에 있는 육로와 해로에 연결시켜 주었다. 그래서 키케로(Cicero, B.C.106-43)는 이곳을 '우리 영토의 심장부'라고 했다. 이 도시는 B.C.42년 빌립보 부근의 싸움에서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에게 가담했기 때문에 자유시(Civitaslibera)의 특권이 주어졌다. 또 데살로니가는 인구 약 20만의 도시로 정치, 경제의 중심지여서 자연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으며 유대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살전2:14-16).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이곳을 발칸 반도 전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보았다(살전1:7,8). 그러므로 그들은 빌립보에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빌립보에서 160여km나 떨어져 있는 이 도시에 사력을 다하여 들어왔던 것이다(R.N.Longenecker).

 

 

 

 

  아볼로니아와 암비볼리 조회수 : 66
네압볼리와 빌립보에서 하루를 지내니 7월이 가고 8월 첫날이 되었다. 일찍부터 서둘러 전날 들렸던 빌립보를 지나 바울이 유럽 전도여행을 했던 여정을 따라 차를 몰았다. 지금은 도로 포장이 잘되었으나 옛날 바울 당시의 길은 현재 도로 포장 좌측으로 옛 길인 에그나티아 길이 일부 남아있었다. 암비볼리(Amphipolis)는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약 60㎞ 떨어진 스트림몬(Sterimon)강 유역에 있으며 에게해안으로부터는 내륙으로 약 4.8㎞ 지점이다. 로마의 에그나티아 가도상에 있던 이곳은 마게도냐 첫 번째 지방의 수도였다.

고속국도를 따라 해변을 끼고 달린 차는 국도에서 스트림몬강의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1km 정도 가자 BC4세기경에 만들어진 사자상이 서있었다. 그러니까 이 사자상은 바울 이전에 세워진 것이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투옥 중 석방된 후 형제들을 위로하고 데살로니가로 가는 도중 그 중간에 있는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다녀갈 때(행17:1) 이 길을 따라 갔기 때문에 바울도 이 사자상을 보았을 것이고 바울이 본 그 사자상을 나도 보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욱 흥분되었다. 이곳은 BC 480년 파사(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의 침공을 받았는데 그는 침략시 이곳에 다리를 놓고 강을 건넜다. 이곳은 당시 아홉길로 알려져 있었다.

다리를 건너 암비볼리 마을을 찾았다. 지난번에는 사자상 앞에서 차를 돌려 바로 아볼로니아로 갔으나 이번에는 박물관을 찾아보기로 하고 마을에 들어서자 입구에 박물관이 서있었다. 박물관 안에는 특별히 금으로 만든 면류관이 박물관 입구 바로 안에 놓여져 있어 문득 바울 사도의 고전9:24~25에 나오는 말씀이 머리에 스쳐갔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박물관의 유물을 보고 유물 발굴지가 있는 언덕 위에 올라가니 그곳에는 비잔틴 때의 회당 구조와 비슷한 교회터가 두 곳이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바닥에 태극 모양의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었다.

이곳 암비볼리는 BC497년에 다리오왕으로부터 도주해 온 밀레도 출신 아리스타고라스가 정착했으나 쫓기다가 살해된 곳이다. 그리고 32년 후에 아테네인들은 1만명을 보냈으나 그들도 멸절되었다. 마침내 BC437년에 니키아스의 아들 하그논이 또다른 아테네인들을 데리고 와서 애도니족을 몰아내고 서쪽, 그리고 남쪽 주위를 굽이굽이 흘렀기 때문에 하그논은 그 성읍의 이름을 암비볼리(성읍의 둘레)라고 하였으며, 무방비 상태에 있는 동편을 가로질러 성벽을 쌓았다.
BC167년 마게도냐가 로마인에 의해 네 개의 지방으로 분할될 때 암비볼리는 스트림몬강에서부터 네스토스까지에 해당하는 첫 번째 지역의 주요 도시로 선정되었다. 암비볼리에서의 발굴작업으로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의 초석들이 발견되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공회당과 마차 경주장까지 갖추었던 큰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수백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 되어 있었다.

예상외의 암비볼리에 대한 자료를 사진에 담고 출발한 나는 계속해서 바울이 갔던 아볼로니아로 차를 몰았다. 아볼로니아(Apollonia)는 암비볼리로부터 48㎞, 데살로니가로부터 61㎞ 정도 떨어져 있는 볼레(Borle) 호수 남쪽에 위치해 있다. 로마의 에그나티아 도로(Via Egnatia)에 접해 있는 이곳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도시와 구별하기 위하여 믹도니스의 아볼로니아라고 언급한다.

바울은 암비볼리를 떠나 데살로나가로 가는 도중 이곳을 잠시 들렀다. 조금은 찾기 어려운 아볼로니아에 도착하자 별다른 유적이 없고 작은 바위에는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라는 사도행전 17장1절의 말씀이 새겨진 비마(강단의 일종)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로마 때 회당의 잔재 건물이 남아있었는데 목욕탕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약간의 아쉬운 마음으로 나오자 바로 옆에 현대에 세워진 바울 기념 교회가 있어 바울이 이곳을 들렸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카페명 : 명일순복음교회

 

 

[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 이야기] (28) 암비볼리·아볼로니아
[국민일보 2005-09-07 15:42]

네압볼리와 빌립보에서 하루를 지내다보니 7월이 가고 8월의 첫날이 되었다. 일찍부터 서둘러 전날 들렀던 빌립보를 지나 사도 바울의 유럽 전도 여정을 따라 차를 몰았다. 당시 바울이 걸었던 에그나티아 가도는 현재 포장도로 좌측에 일부만 남아 있었다. 암비볼리(Amphipolis)는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약 60㎞ 떨어진 스트리몬(Sterimon) 강 유역에 있으며 에게해부터는 약 4.8㎞ 지점이다. 로마로 향하는 에그나티아 가도에 있던 이곳은 마게도냐 첫번째 지방의 수도였다.

고속도로를 따라 해변을 달리다가 스트리몬 강의 다리를 건넌 뒤 오른쪽으로 1㎞ 정도 가니 BC 4세기께 만들어진 사자상이 서 있었다. 바울 이전에 세워진 것이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석방된 후 형제들을 위로하고 이 길로 데살로니키로 갔기 때문에(행 17:1) 바울도 이 사자상을 보았을 것이고 바울이 본 그 사자상을 나도 보았다는 사실에 더욱 흥분되었다. 이곳은 BC 480년 파사(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1세의 침공을 받았는데 그는 이때 이곳에 다리를 놓고 강을 건넜다. 이곳은 당시 아홉길로 알려져 있었다.

다리를 건너 암비볼리 마을을 찾았다. 지난번에는 사자상 앞에서 차를 돌려 바로 아볼로니아로 갔으나 이번에는 박물관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입구에 박물관이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는 특별히 금으로 만든 면류관이 전시돼 있어 문득 고린도전서 9장 24∼25절에 나오는 바울 사도의 말씀이 머리에 스쳤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박물관의 유물들을 둘러보고 유물 발굴지인 언덕 위에 올라가니 비잔틴 때의 회당 구조와 비슷한 교회터가 두 곳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바닥에 태극 모양의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었다.

암비볼리는 BC 497년에 다리오로부터 도주해온 밀레도 출신 아리스타고라스가 살해된 곳이다. 그리고 32년 후에 아테네인들은 1만명을 보냈으나 그들도 멸절되었다. 마침내 BC 437년에 니키아스의 아들 하그논이 또 다른 아테네인들을 데리고 와서 애도니족을 몰아내고 성읍의 이름을 암비볼리(성읍의 둘레)라고 불렀으며 동편을 가로질러 성벽을 쌓았다. BC 167년 마게도냐가 로마인에 의해 4개 지방으로 분할될 때 암비볼리는 스트리몬 강에서부터 네스토스까지 해당하는 첫번째 지역의 주요 도시로 선정되었다. 암비볼리에서는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의 초석들이 발견되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공회당과 마차 경주장까지 갖추었던 큰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수백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 되어 있었다.

암비볼리에 대한 자료를 챙기고 나는 계속해서 바울이 찾았던 아볼로니아로 차를 몰았다. 아볼로니아(Apollonia)는 암비볼리로부터 48㎞,데살로니키로부터 61㎞ 정도 떨어져 있는 볼레(Borle) 호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에그나티아 가도에 접해 있는 이곳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도시와 구별하기 위하여 믹도니스의 아볼로니아라고 불린다.

바울은 암비볼리를 떠나 데살로니키로 가던 도중 이곳에 잠시 들렀다. 조금은 찾기 어려운 아볼로니아에 도착하자 별다른 유적은 없고 작은 바위에는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키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라는 사도행전 17장 1절 말씀이 새겨진 비마(강단의 일종)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로마시대 목욕탕이었다고 전해지는 건물 일부가 남아 있었다. 약간 아쉬운 마음으로 나오는데 바로 옆에 현대에 세워진 바울기념교회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며 바울이 이곳을 들렀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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