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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왕조

영국신사77 2007. 5. 23. 22:59
                                헤롯 왕조
 
 
출처 블로그 > oxhill4952님의 블로그
원본 http://blog.naver.com/oxhill4952/110004943046
 
 
 

                       

1.헤롯대왕(Herod The Great, B.C.37-3)


1. 인적 사항


① 헤롯은 '영웅의 아들'이라는 뜻.

② 이두매인으로 헤롯 안티파터 2세(B.C.55-43년)의 둘째 아들.

③ 로마의 속국으로 있던 유대의 왕으로 재위(B.C.37-4년).

④ 10명의 아내와 15명의 자녀를 둠.

⑤ 아들 아켈라오가 왕위를 계승


2. 시대적 배경


  B.C. 37-4년경, 유대의 분봉 왕으로 통치한 인물. 이 시기는 소위 신구약(B.C.400-A.D. 4년) 중 그 말기에 해당하는 때로, B.C.63년 로마 장군 폼페이(Pompey)의 예루살렘 점령으로 말미암아 마카비 왕가의 하스몬 왕조가 무너짐으로써 약 100여년간의 유대 독립 시대가 끝나고 로마의 식민 통치를 받던 때였다.

 

 헤롯은 처음에 부친 안티파터 2세에 의해 갈릴리 총독으로 임명되었었다. 그러다 헤롯은 후에 다시 로마에 의해 유대 왕으로 임명되어 로마의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투스의 심임을 받음으로써 유대 지역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 그 위치를 확고하게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헤롯이 로마에 대해 보인 과잉 충성은 로마에 대한 유대인의 적개심을 더욱 야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헤롯 왕가가 유대인들의 미움을 사는 결과를 가져왔다.


3. 주요 생애

  

♣헤롯은 일반적으로 평화로운 통치를 계속해 나갔다. 그는 유대인들의 인심을 항상 염두에 두고 조심스러운 정치를 해 나갔다. 로마와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유지해 나갔다. 헤롯은 그 후에도 자신을 후원한 한토니우스가 사망하자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의 호감을 사는 데도 성공했다. 그야말로 헤롯은 정치적인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는 통치기간 중에 유대의 국경을 확장하기도 했다. 그는 문화적으로는 헬라화를 시도하였고 위대한 건물들을 건축하였다. 그러한 업적은 어느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업적을 보아서 헤롯 당원들이 생겨날 정도로 정치적으로는 업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각 도시를 모두 새롭게 단장하였고 본래 “스트라토”라는 성채를 재건하여 가이사랴(Caesaria)라고 이름하여 로마의 팔레스틴 수도로 삼았다. 그는 전형적인 헬라 양식의 극장들을 지었다. 지금도 팔레스틴의 가이사랴의 유적지 해변에는 헤롯이 만든 극장과 수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헤롯의 정치는 밖으로는 유화적이었으나 가문 내에서나 측근들에게는 매우 잔인한 정치를 했다. 헤롯의 질투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헤롯의 질투성과 의심과 정권욕에 사로잡혀 거의 이성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생각해도 불안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정통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문제를 제기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사람은 혈통적으로는 이두메(에돔)출신이지만 명목상으로는 유대인이었다.  그 이유는 요한 히르카누스가 B.C. 125년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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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에돔)을 정복하여 모든 이두메인들을 강제로 할례를 받게 하여 유대인화하였기 때문이다. 하스몬왕조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여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여 유대인화한 것이 여러 대가를 치르게 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결국 하스몬 왕가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 헤롯은 자신이 참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취한 행동이 하스몬 왕가의 후손인 마리암네와 결혼으르 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 했다. 그러나 하스몬 왕가의 사람이 대제사장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두려워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하스몬 왕조에 대한 향수를 진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게 될 것을 내다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하나넬(Hananiel)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했다. 이러한 처사에 대하여 마이암네의 모친 알렉산드라는 내심 심하게 분개하게 되었다. 하스몬가의 사람이 아닌 하나넬이 대제사장이 된 것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알렉산드라는 요한 히르카누스의 손자인 아리스토불루스를 대제사장으로 세우기로 마음에 결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계략을 총 동원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라는 마침내 애굽의 여와 클레오파트라에게 연락하여 안토니우스로 하여금 헤롯에게 압력을 가하게 하였다. 할수없이 헤롯은 안토니우스에게 소환되었다.  그렇게 하여 결국 하나넬은 해임되고 아리스토불루스가 대제사장으로 임직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건은 알렉산드라의 정치적 대 승리였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헤롯과 알렉산드라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평정을 되찾는 것 같았으나, 나중에 헤롯은 알렉산드라가 클레오파트라와 연락이 있었다는 것을 간파하게 되었다. 그후부터는 헤롯이 알렉산드라를 감시하여 예루살렘 밖으로 나갈 수 없게 감시하였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라는 예루살렘에 완전히 연금되고 말았다. 헤롯은 사람들을 시켜서 결국 대제사장 아리스토불루스을 물에 빠뜨려 죽게 했다. 헤롯은 이 소식을 접하고 꽤나 슬퍼하는 척했다.


♣ 헤롯의 말년은 왕위 계승의 문제가 매우 복잡하였다. 헤롯이 이 문제를 풀기가 얼마나 어려웠던지 왕자들 가운데 3명을 살해하였고 그밖에도 많은 측근들이 죽임을 당했다. 헤롯은 하스몬 왕조의 주요 인물들을 45명이나 처형하였고 그 재산들을 몰수하였다. 처음에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히르카누스의 손녀 마리암네와 결혼까지 했지만 마침내 그는 마리암네와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까지 처형하였고, 하스몬 왕조의 피가 섞여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여 없앴다. 뒤늦게 파르티아에서 돌아온 히르카누스도 헤롯의 손에 죽었다. 헤롯은 자기의 죽음을 5일 앞두고 자신의 장자 안티파터를 죽였다. 헤롯은 왕위를 두고 지명자를 여섯 번이나 바꾸었다.

그는 얼마나 자신의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했던지 자신이 죽었을 때 유대인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여리고 경기장에서 다수의 유대인을 살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이 경건한 유대인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을 두고 국가적인 애도 기간을 확실히 하려는 그의 계산이었다.

헤롯은 B.C.4년 4월1일 장암과 수종, 동맥경화증 등의 합병증으로 죽었다.

헤롯이 죽은 후 헤롯의 가문은 매우 복잡하게 얽힌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헤롯 가문의 불륜과 정치적인 곡예는 로마인들까지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였다.


4. 성품


①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자신의 처자식과,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의 유아들을 무참히 죽인 것으로 보아 권력 욕이 강하고 잔인하자(마 2:16).

② 로마의 정권 변화에 능수 능란하게 대처하여 자신의 통치 기반을 확고히 한 것으로 보아 국제 정세에 밝고 처세술이 뛰어난 자.

③ 이방인으로서 30년 동안이나 유대를 통치한 것으로 보아 조직력과 지도력을 갖춘 자.

④ 대규모 건축 사업을 왕궁과 요새, 예루살렘 성전 및 이방 신전 등을 건축한 것으로 보아 의욕적인 추진력을 갖춘 자.

5. 구속사적 지위


① 베들레헴의 2세 이하 유아를 몰살함으로써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훼방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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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던 사단의 하수인(마 2:16).

②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영욕에만 집착하는 자의 비참한 종말을 보여준 자.


6. 주요 공적


① 이방인으로서 유대의 왕위에 올라 30년간 통치.

② 거대한 규모의 건축 사업을 통해 문화적 발전 유도.

③ 예루살렘 성전재건 시도. 

  ♣ 헤롯의 여러 가지 업적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별로 즐거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그 건물은 B.C.20년 경에 시작하여 예수님 당시에도 건축중이었고 64년 경에야 완성되었으니 84년이나 걸리는 대역사(役事)였다.

헤롯이 시작한 성전공사는 대단한 것이었다. 어떤곳은 45m까지 파고 기초를 놓았을 정도이고, 그 표면의 면적만도 480x300m가 되엇다. 그러나 그 성전은 완성된 지 불과 6년만에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헤롯이 짓고 있는 건물의 위용을 보고 감탄해 마지 않았으나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이 곧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막13:1-2) “13: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시127:1)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7. 실수


① 권력 유지를 위해 수많은 인명을 살해.

② 예수를 죽이려고 베들레헴의 2세 이하의 유아를 몰살(마 2:16).

③ 그가 벌인 건축 사업에 이방 신전도 포함한 것으로 보아 우상 숭배를 부추긴 듯함.


8. 평가 및 교훈


①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온갖 권모와 술수, 또한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헤롯 대왕의 영욕에 넘친 삶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슬픈 종말을 증거해 준다. 더욱이 그 역시 끊임없는 음모로 인해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마침내는 병으로 심히 앓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는가! 이렇듯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권력은 절대 부패할 수밖에 없다(갈 6:8).

②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자 베들레헴 2살 이하된 유아들을 모조리 몰살시킨 헤롯의 학살사건은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마 2:16). 또한 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를 넘어뜨리려는 사단의 흉악한 궤계와 미혹을 상징해 준다. 실로 사단은 이토록 무서운 욕망과 집착을 통해 성도에게 도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러한 사단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만 하는 것이다(엡 6:11;벧전5:8).

③ 유아 학살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방해하려는 헤롯을 통한 사단의 궤계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은 계획하신 그대로 면밀히 이행되었다. 이는 사단의 궤계가 아무리 사악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승리하심을 증거 한다. 이에 마귀를 대적하고 싸워 이겨야 할 우리 성도들은 이 싸움의 승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성취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음을 기억하며 담대히 주의 뜻을 이루어 가야 하겠다(롬 8:35-37).


9. 핵심 성구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 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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