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History

그리스

영국신사77 2007. 5. 18. 00:41

                     그리스의 유적과 명소

 

 

                                                                                                 felixjang ( 2004-08-20 )

[유적이나 관광지]
․아테네의 유적
→데살로니까의 유적
우리나라의 부산과 같이 그리스의 제2의 도시로 주전 315년에 건설된 도시이 며 기독교 전 파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갈레리우스황제의 묘로 300년경에 세워졌다가 기독교 교회로 개조된 로톤다가 있다. 이 곳에는 로마시대와 옛 기독교 시대의 조각물과 건축물들이 전시외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지진으로 인한 손상 때문에 폐쇄되어 복원 수리중 이며 현재는 내부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아토스산
그리스 동북쪽에 할키디키반도의 3곶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곳으로 1054년 이래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지이며 여자와 자동차는 출입금지인 성역으로 20여개의 수도원과 약 2천여명 의 수도사들이 속세와 단절하고 수도사로서의 고행을 수행하는 곳으로 대표적인 수도원으 로는 스타브로니키타, 이비론 수도원등이 있고 그리스내에서도 자치국으로 인정하고 있으 며 방문하기 위해서는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메떼오라의 유적
세계의 불가사의 라고 할 만한 이곳은 주변 약30Km의 들판에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새워 진 수도원이 있다. 현재는 6개의 수도원이 개방되며 각 수도원마다 나름대로의 출입방법이 있었으나 현재는 계단을 설치하여 출입할 수 있게 하였고 일반인들도 방문할 수 있으나 여 자들은 무릎아래까지 덮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

→델피의 유적
고대의 그리스인들은 지구가 평평한 원반형이라 믿었고 그 중심이 델피의 성지라 생각하였 으며 종 모양의 약 1m 크기의 대리석으로된 대지의 배꼽이라는 '옴파로스' 돌이 있다. 이 곳에는 아폴론 신전이 있다.


→올림피아의 유적
주전 10세기경에는 그리스 신화의 최고 신인 제우스신의 숭배중심지였고, 제우스 신전, 헤 라 신전, 주전 338년 필립2세가 그리스 통일을 기념한 삘리삐온, 70개의 제단이 있다. 또한 기록상으로는 제1회 고대 올림픽이 주전 776년으로 되어 있으나 그 기원은 더 오래되었다고한다.

 

 


 

 

                                                              그리스 유적

 

                                                       janeangel ( 2005-01-27 18:09:42 작성 )



1.근대올림픽경기장: 시내 한가운데 있으며 손기정씨, 황영주 선수의 이름이 석탑에 새겨져있다.

2. 파르테논신전 전경 : 처녀의 집이라는 의미로 천정 상단에 헤라클레스의 용맹스러운 모습 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사각 모서리 기둥에 알렉산더대왕이 페르 샤를 정복하고 제사를 지낸 흔적이 남아있다. 밑으로는 디오니소스 극 장, 소크라테스 감옥, 이로데스-아티쿠스 음악당등이 있다.

3. 에렉테리온 신전(파르테논신전 옆 건물)의 시녀상들: 6 명의 시녀들이 무희의 모양으로 기 둥을 바치고 있는 모습

4. 제우스신전 : B.C.6세기경에 건립된 건축물 로서 지진으로 모두 파괴되고 지금 현재 남아 있는 기둥 8개는 로마시대 아드리우스 황제가 세운 것이며 아드리우스의 문 (제우스신전의 입구)을 통해 들어간다. 로마의 아드리우스황제가 아테네를 정 복하면서 기념으로 세운 문으로 사진의 우측의 기록된 글은 "아테네는 테세우스 의 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좌측에는 "이제는 아드리우스의 땅 이다"라고 재미있게 기록되어 있다.

5. 포세이돈신전 : 아테네에서 남동쪽으로 69KM, 아티카 반도 제일 끝 지점인 "SUNION" 곶의 산 언덕에 지어진 바다의 신.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노래했던 바다 의 수호신 포세이돈을 모신 신전. 15개의 도리아식 원주를 드러내 놓고 있으 며 파르테논신전보다 몇 년 늦게 지어진 것이다. 해질 무렵 신전에서 바 라보는 석양은 푸른 바다를 붉은 포도주 빛으로 물들인다.

6. 메트로폴리스 대성당 : 아테네 제일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성당으로1840년부터 15년간 걸쳐 지어졌다.

7. 로마시대의 아고라와 바람신의 탑 : 로마시대 초기 기원전 1세기~기원 후 2세기의 아 고라 유적. 전체적으로 황토색 땅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황량한 곳이지만 옛날 에는 시장 겸 집회장으로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던 곳이었다. 아고라의 입구로 들어서면 곧바로 대리적으로 만들어진 팔각형 "바람신"의 탑을 볼 수 잇다. 1세 기 때의 천문학자 "안드로니코스"가 세운 것으로 당시에는 해시계, 믈시계, 풍향 계의 3가지 기능을 했었다고 한다. 탑의 8면은 각각 정확하게 동,서,남,북과 북 동,남동,남서,북서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8. 미크리 미트로폴리스 교회 : 비잔틴양식이 한창 붐을 이루던 12세기에 지어졌다. 일명 "엘 렙프테리오스 교회"라고도 한다. 교회 외벽에는 고대 그리스 특유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9. 소크라테스 감옥

10. 에피타 브로스 : 아테네로부터 170km정도 떨어져 있으며 의술의 신인 아스클래피오스 신전과 원형극장(신비의 음향 효과)이 있다.

11. 미케네 : 미케네 문명의 발상지로, 사자문,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아가메논의 황금 마스크가 묻혀 있던 원형 묘지

 

 

 

 

                               그리스의 역사

 

                                                                                             kobe_d207 ( 2005-11-19)


 가. 그리스 문명의 기원

  • 그리스 문명의 기원인 에게(Aegea) 문명은 전기 크레타문명(혹은 미노스문명, B.C 3000 ∼ 1400)과 후기 미케네문명(B.C 1400 ∼ 1200)으로 구분되며, 이 문명의 주인공은 아케아인, 이오니아인, 에올리아인, 도리아인임.
  • 고대 그리스인은 B.C 1000년경까지 씨족공동체를 유지하다가 B.C 8∼9세기에 폴리스 (Polis)를 형성하였고 스스로를 "헬레네"인이라고 지칭하면서 선민의식을 갖게됨.

 나. 고대 국가시대

  • 고대 폴리스(Polis)가 발전하여 형성된 도시국가들중 가장 일찍 성장한 것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로서 각각 독자적 정부형태를 발전시켰고, 대외적으로 식민도시 건설을 통해 세력을 확장함.
  • 페르시아전쟁(B.C 492∼479)후 아테네는 Pericles (B.C 495∼429) 황금기를 맞이하였으며 펠로폰네소스전쟁 (B.C 431∼404)등 내란이 이어졌으나, 연극, 철학, 역사, 수사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 두드러진 업적을 남김.
  • 알렉산더 사후 마케도니아가 삼분되면서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출신의 "안티고노스" 가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이 시기와 로마 지배 기간의 일부에 해당하는 헬레니즘 시대(B.C. 323∼30)에는 폐쇄적, 자기 만족적 폴리스(Polis) 문명에 동방적 요소를 가미시켜 개방적이고 보편성있는 문화를 발전시킴.

 다. 이민족 지배 시대
 

  • 로마 비잔티움 지배기간 (B.C. 2세기∼A.D. 1453)

ㅇ B.C. 2세기경부터 로마제국의 침략을 받아 그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로마제국 분열(A.D. 295)후에는 비잔티움(동로마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감. 당시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그리스 문명을 보존, 전파시키는 중심지 역할을 함.
 

  • 오토만 제국 지배기간 (1453∼1830)

 ㅇ오토만 제국의 지배하에서 이슬람교로의 개종은 원칙적으로 자유였음. 그러나 이슬람교도가 되면 지배계층의 특권을 누릴 수도 있었던데 반해, 개종을 거부한 기독교도들은 비잔티움 시대의 농민이나 봉건제하의 농노와 같은 비참한 생활을 감수해야 하였음.

ㅇ18세기 후반 불란서혁명 이후 유럽에 팽배하였던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1821∼27년간  Ypsilantis 형제의 거병으로 시작된 독립 항쟁이 확산되었고 마침내 영국, 불란서, 러시아의 지원하에 1830.2 런던의정서에 의해 독립이 보장되어 3.25 독립왕국이 수립됨.

 라. 근대국가 형성기간 (1830 ∼ 1913)

  • 독립왕국이긴 했으나 영국, 불란서, 러시아에 의한 내정간섭이 지속되었고 Otto 국왕 치하기간(1830∼1863)중 3명의 섭정에 의한 개혁도 실패하였음. 1843년 영국, 러시아의 조종에 의한 군부쿠데타 발생 등 정국불안이 계속되었으며, 과거 찬란했던 그리스 회복을 목표로 한 "Megali  Idea(위대한 계획)"도 주변 강대국에 의해 좌절됨.
  • George 1세 치하(1863∼1913)인 1863년 입헌군주국이 되었으며, 1872년부터는 대외지향적인 Heodoros Deliyiannes와 국내우선주의자인 Charilaso Tricoupes가  주도하는 양당에 의해 정국이 주도됨
  • 1878년 사이프러스가 오토만 제국 지배로부터 영국지배로 넘어갔으며 그리스는 1912∼13년 에 발생한 제1,2차 발칸전쟁에서 승리하여 마케도니아의 일부지역을 회복함.

 마. 양차 세계대전기간(1914∼1949)

  • 제1차 세계대전 기간중 국왕 Constantine 1세와 수상 Venizelos의 의견 대립으로 1916년 동 국왕이 국외로 추방됨. 불가리아와는 뉘이 (Neuilly)조약을, 터키와는 세브르(Sevres) 조약을 맺어 인근국가와 국경을 확정함. 그러나 세브르 조약은 터키의 Mustafa Kemal에 의해 무효화되었고 이에 따른 터키와의 전쟁 결과 1923년 로잔느(Lausanne) 조약이 체결되어 양국간에 현재와 같은 영토경계가 확정됨. 로잔느조약에 의거 해외로부터 130만의 그리스인들이 입국하게 됨으로써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됨.
  • 1923년이후 국내정치 최대 현안은 왕정의 존속여부였으며, 1924년에 공화정이 선포되었으나 1935년 왕당파의 승리로 왕정이 부활되는등 정치 불안이 계속됨. 대외적으로는 인접국가 와의 관계개선을 도모하는 한편 영국, 불란서와의 협력관계를 긴밀히 유지함.
  •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1∼1944.10월간에는 독일, 이태리, 불가리아 등 기축국에 의해 점령당하였으며, 동 기간중 좌익인 민족해방전선 (National Liberation Front)과 좌익 공화파인 민족민주연맹(National Democratic League)이 레지스탕스 운동을 전개함. 이들은 국왕의 전후 귀국에 반대하는 동시에 망명 정부와도 대립함. 1944.10. 망명정부 수반인 George Papandreou는 소수의 영국군과 함께 아테네로 돌아와 민족해방전선에 대한 무장해제와 해산을 시도하자 내란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는 바, 1947년 트루만 독트린에 따른 미국의 군사재정 지원으로 동 내란은 1949년에 종식됨.

 바. 입헌군주제기간 (1949 ∼ 1967)

  • 입헌군주제로 복귀한 후 내각의 잦은 교체로 정정이 불안해짐. 1964년 Paul국왕의 서거로 왕위를 계승한 Constantine 국왕이 1965.7 당시 George Papandreou 수상과의 반목을 기화로 내각을 일방적으로 해산함에 따라 국내정정이 극도로 불안해졌으며 1967.4 George Papadopoulos 육군대령을 중심으로한 우익군부에 의한 무혈 쿠데타가 발생하여 구주 역사상 최초의 군사정권이 수립되었고 Constantine 국왕은 국외로 추방당함.

 사. Papadopoulos 군사정권 기간 (1967.4 ∼ 1973.11)

  • Papadopoulos 대령 주도하의 군사정권은 표면적으로는 민주헌정을 표방하였으나, 정당활동 금지 및 계엄령 실시 등 사실상 군부독재 정치를 실시하였고, 마침내 Papadopoulos 자신이 1967.12 총리에 취임한데 이어 1972.3에는 섭정에 즉위하였음. 그리고 1973.6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국체를 왕정에서 대통령 중심제 공화정으로 변경한 후 동년 7월에 대통령에 취임함. 그러나 이에 반발한 Demetrios Ioannides 헌병준장에 의한 역쿠데타가 동년 11월에 발생하여 새로운 군사정권시대를 맞이하게 됨.

 아. Ioannides 군사정권 기간 (1973.11 ∼ 1974.11)

  • Ioannides 장군을 주축으로 한 소수 혁명주도 장교들은 혁명 이후 Phaidon Gahizikis 중장을 대통령으로 하고 민간인 Adamantios Androutsopoulos를 수상으로 하는 민간내각을 구성하였으나 실제 권력은 Ioannides 장군 주도하의 소수 군부인사들이 장악함.
  • 1974.7 사이프러스내 Enosis 운동(사이프러스와 그리스 병합운동)을 지원하여 사이프러스내 군부쿠데타를 유발시키고 Makarios 사이프러스 대통령을 축출함. 그러나 터키의 군사개입 으로 사이프러스 분단이 초래되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Androutsopoulos 민간 내각과 군부 세력들이 퇴진함.
  • Ghizikis 대통령은 당시 불란서에 망명중이던 Constantine Karamanlis 전총리에게 조각을 위촉함으로써 민정복귀가 이루어지고 계엄령 및 언론통제가 해제되었으며 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의 정치활동이 다시 허용됨.

 자. Karamanlis 신민당 집권기간 (1974.11 ∼ 1981.10)

  • 1974.11 민정이양을 위한 총선거에서 Karamanlis 총리가 창당한 신민당이 압도적으로 다수의석(총 300석중 220석, 득표율 54%)을 확보하여 단독내각을 구성하였고, 1974.12 국민투표를 통하여 입헌 군주제가 폐지되었으며 1975.6 공화제 헌법이 선포됨.
  • 집권초기 신민당 정부는 오랜 군정에 따른 국민들의 민주화 여망에 부응키 위하여 대내적으로는 공산당 합법화등 좌익세력에 대한 관용, 언론통제 폐지 및 시장 경제정책을 추진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발칸제국 및 제3세계와의 관계개선에 주력함.
  • 그러나 국내 좌 .우익세력간의 충돌, 경제적 불황, EC 가입문제, 사이프러스사태 해결 부진, 터키와의 분쟁격화 등으로 대내외 정세가 점차 불리하게 되자 신민당은 국민의 재신임을 묻기 위하여 1977.11 조기 총선거를 실시함. 동 조기총선에서 신민당은 단독내각 구성이 가능한 의석 (171석, 득표율 41.84%)을 다시 확보하였으나 1974년 총선에 비해 49석을 상실하는등 지지율이 크게 하락함.
  • 이에 자극을 받은 신민당은 국민의 지지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체제 정비를 추진, 1980.5 Karamanlis 총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George Rallis를 신민당 총재 및 총리에 임명함. 그러나 1974. 11 민주 회복과 함께 창당된 Andreas Papandreou 총재가 이끄는 사회당(PASOK)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됨.

 차. Papandreou 사회당 집권기간 (1981.10 ∼ 1989.6)

  • 1981.10 실시된 총선에서 사회당(총재 : Andreas Papandreou)은 총 의석 300석중 172석(득표율 48%)을 확보, 정권교체를 이룩함. 이러한 정권교체에는 신민당의 7년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권태감과 고물가, 고실업률등 민생문제에 대한 정부시책의 실패 및 프랑스의 사회당정권 등장에 따른 심리적 영향 등이 배경을 이루고 있음.
  • 사회당 정부는 선거공약사업의 일환으로서 사회주의 개혁을 추진하였는 바, 선거연령 인하(종전 20세에서 18세로), 세속혼과 이혼인정 및 간통죄 폐지, 그리스 정교회의 시민생활 간섭 축소, 대학교육 체제의 개혁, 주요 기간산업의 국유화, 임금의 인플레 연동제 등을 채택함.
  • 그러나 사회당 정부가 선거공약 사업이었던 EC 및 NATO 탈퇴, 그리스 주둔 미군기지 철수 등을 이행하지 못한 한편, 인플레율과 실업율의 증가, 국제수지 적자확대에 따른 외채증가등 경제사정의 악화로 국민의 지지도가 점차 하락추세를 보이고, 1984.6 구주의회 선거에서 사회당과 근소한 차이의 득표에 고무된 신민당이 총재를 고령의 Averof 대신 Mitsotakis로 교체하는 등 정치기반을 보강하는데 주력하자 조기총선을 검토하게 됨.
  • 사회당 정부는 국민들의 지지율이 더 이상 하락하기 전에 조기총선을 실시키로 결정하고 85.5로 예정되었던 의회내 대통령 선출을 동년 3월로 앞당겨 실시하여 Karamanlis(신민당출신) 대통령 후임에 전직 대법원 판사인 Christos Sartzetakis를 선출하는 한편, 85.10로 예정된 총선을 동년 6월에 실시함으로써 총의석 300석중 161석을 확보(득표율 45%)하여 근소한 차이로 신민당을 누르고 재집권, 단독 내각을 재구성함. 또한 1986.3 총리와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대통령의 행정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헌법개정을 단행함으로써 집권 제2기(85∼89) 정치권력 기반을 강화함.

 카. 신민당 주도 과도연립정부 기간(1989.7 ∼ 1990.4)

  • 1989.6 실시된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총 300의석중 145석을 얻어 사회당(125석)보다 다수의석을 확보하였으나, 절대과반수 미달로 1989. 7 공산당을 위시한 좌파연합(28석)과 임시내각을 구성하였음.
  • 1989.11 제2차 총선에서는 신민당이 148석, 사회당이 128석, 좌파연합이 21석을 얻어 어느 당도 절대과반수 의석을 얻지 못하여 6개월 이내 제3차 총선을 실시하는 조건으로 3당이 전 그리스은행 총재인 Zolotas를 총리로 천거하여 3당 연립내각을 구성함.

 타. Mitsotakis의 신민당 집권 (1990.4 ∼ 1993.10)

  • 90.4 총선결과 Mitsotakis 총리가 이끄는 신민당은 총의석 300석중 150석을 획득하고, 1석을 확보한 민주개혁당(85년 신민당에서 분당)의 지지를 받음으로써 가까스로 과반수인 151석을 확보, 집권하게 됨.
  • 이어 90.5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신민당의 Karamanlis 후보가 재적의원 300명중 153명의 지지를 획득, 대통령에 당선됨.

 파. Papandreou 사회당 재집권(1993.10 ∼ 1996.1)

  • 1993.10 총선결과, 사회당(PASOK)이 49%의 지지율로 의회에서 총 300석중 171석을 확보함으로써 재집권함. 또 95.3 대통령 선거에서는 K. Stephanopoulos 후보가 재적의원 300명중 181표를 획득, 당선됨.

 하. Konstantin Simitis 사회당 집권 (1996.1. ∼ 2004.3.)

  • Papandreou 총리가 건강 악화로 96.1 사임하자 Konstantin Simitis가 총리직을 승계함. 사회당(PASOK)은 96.9 조기총선에서 41%(의회 300석중 163석 확보)의 지지율을 확보하여 재집권함.
  • 2000.4 조기총선에서 집권 사회당(PASOK)이 3회 연속 재집권에 성공함.(43%지지율, 의석 300석중 158석 확보)

 거. Konstantinos Karamanlis 신민당 집권 (2004.3. ∼ )

  • 2004.3. 총선에서 신민당이 집권함.(45.43%지지율, 의석 300석중 165석 확보)
                                                                                           출처 : [기타] 주 그리스 대사관

 

'◆World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테베 [Thebes]  (0) 2007.05.18
라틴어 [Latin language]  (0) 2007.05.18
인도유럽어족 [印度─語族, Indo-European languages]  (0) 2007.05.18
그리스어 [Greek language]  (0) 2007.05.18
그리스 (2)  (0) 2007.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