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History

테베 [Thebes]

영국신사77 2007. 5. 18. 12:08

                             테베 [Thebes]

 

   그리스 중부의 *보이오티아에 있던 옛 도시.

  그리스어로는 ‘Thebai’라고 하며, 이미 BC 3000년부터 주민이 산 흔적이 있다.

 

  BC 2000년부터 그리스인 제1진()이 이곳에 들어와 선주자를 밀어냈다. 신화에서는 페니키아계()의 카드모스가 이곳에 성을 쌓고 카드메이아라고 명명하였다. 페니키아 문자의 그리스 문자화()가 먼저 이 땅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 이야기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오이디푸스 및 ‘테베를 공격하는 7인()’ 등 그리스 비극의 소재가 된 신화 ·전설이 이곳을 무대로 많이 생겨, 그리스 초기에 이 곳이 번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곳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적을 방비하기에 적합하고, 농산물이 풍부하기 때문이었다.

 

  역사시대에 들어와, 민주정()의 아테네와는 적대 관계에 있었고, 스파르타와는 가깝게 지냈다.

 

  페르시아전쟁 중에는 페르시아 편을 들었고, 펠로폰네소스전쟁 뒤에는 아테네 편에 들어 스파르타와 대립하였다.

 

  에파미논다스가 나와, BC 371년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를 무찌르고, 한동안 그리스의 패권을 잡았으나 오래 계속하지 못하고, BC 362년 만티네이아 전투를 치르고 얼마 되지 않아 패권을 잃었다. 그 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패하여 완전히 파괴되었다.

 

  BC 316년 카산드로스에 의해 도시는 재건되나, 왕년의 번영은 회복하지 못하였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테베공략 7장군 [Seven Against Thebes]

 

  그리스신화에서 에테오클레스로부터 테베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테베를 공격한 7명의 장군한 또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

 

  테베 왕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친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친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한 뒤,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나라 밖으로 쫓겨났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폴리네이케스는 1년씩 번갈아 테베를 다스리기로 하고, 먼저 에테오클레스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에테오클레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폴리네이케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를 거부하였다. 아르고스로 간 폴리네이케스는, 왕의 궁전 입구에서 칼리돈오이네우스의 아들로서 살인죄를 짓고 쫓겨난 티데우스와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한편 두 딸을 각각 사자와 멧돼지에게 시집보내라는 신탁()을 받은 아르고스 왕 아드라스토스는, 두 사람의 행색을 보고 신탁의 의미를 깨달았다. 폴리네이케스와 티데우스는 각각 사자 가죽과 멧돼지 가죽을 몸에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드라스토스는 두 딸 데이필레아르게이아를 폴리네이케스와 티데우스의 아내가 되게 하였다.

 

  아드라스토스는 두 사위가 차지하여야 할 테베와 칼리돈의 왕권을 되찾기로 하고, 먼저 테베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모았다. 아드라스토스가 총사령관이 되고, 폴리네이케스와 티데우스를 비롯하여 파르테노파이오스·카파네우스·히포메돈·암피아라오스 등 7명의 장수가 군사들을 지휘하였다.

 

  7장군에는 총사령관 아드라스토스를 빼고, 이피스의 아들 에테오클로스를 넣기도 하고, 폴리네이케스 대신 아드라스토스의 형제인 메키스테우스를 넣기도 한다. 예언자 암피아라오스는 이 전쟁에서 질 것이고, 전쟁에 참가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가담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내 에리필레가, 폴리네이케스로부터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결혼 예복을 뇌물로 받고 부추기는 탓에 참전하게 되었다. 아드라스토스는 군사들을 이끌고 테베를 포위한 뒤 공격에 앞서 티데우스를 협상 사절로 보냈으나, 에테오클레스가 왕위를 양보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하여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편 티데우스는 테베에 머무는 동안, 테베인들과 운동시합을 하여 모두 이겼다. 화가 난 에테오클레스는, 티데우스가 돌아가는 길에 50명을 매복시켜 죽이려 하였다. 티데우스는 이들과 싸워 49명을 죽이고, 하이몬의 아들 마이온만 살려 주었다.

 

  폴리네이케스는 아테네 부근 코로노스에 살고 있던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찾아가, 테베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축복을 내려달라고 간청하였는데, 이는 오이디푸스의 지지를 받는 쪽이 승리할 것이라는 신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아들에게 모욕을 당한 바 있는 오이디푸스는, 축복 대신 저주를 내렸다. 이에 반하여 테베 측은 승리를 보장하는 예언을 들었다.

 

  7장군의 공격이 한창 치열할 때,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스파르토이의 자손으로서 동정을 지키고 있는 남자가 희생해야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에 크레온의 아들 메노이케우스가 성벽에서 용의 동굴로 몸을 던져 희생하였다. 이는 테베를 건설한 카드모스가, 군신() 아레스의 아들인 용을 죽여 신의 저주를 산 데 대한 속죄의 의미였다.

 

  테베의 성에는 7개의 문이 있었다. 폴리네이케스는 에테오클레스가 지키는 힙시스타이 문, 티데우스는 멜라니포스가 지키는 프로이티다이 문, 파르테노파이오스는 악토르가 지키는 보라이아이 문, 카파네우스는 폴리폰테스가 지키는 에렉트라이 문, 히포메돈은 히페르비오스가 지키는 온카이다이 문, 암피아라오스는 라스테네스가 지키는 호모로이다이 문, 에테오클로스는 메가레우스가 지키는 네이스타이 문을 각각 공격하였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격투를 벌이다 모두 죽어 오이디푸스의 저주가 이루어졌다. 티데우스는 멜라니포스와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그를 죽였으나, 자신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티데우스는 여신 아테나의 뜻으로 불사신이 될 수도 있었으나, 암피아라오스의 방해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자신을 끌어들인 폴리네이케스와 티데우스를 증오한 암피아라오스가, 여신의 의도를 눈치채고 멜라니포스의 목을 잘라 티데우스에게 던져 주었던 것이다. 티데우스는 잘린 목의 골을 파먹었고, 이 광경에 아테나도 그가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밖에 파르테노파이오스는 페리클리메노스가 던진 돌을 맞고 죽었으며, 카파네우스는 제우스도 자신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오만한 말을 한 벌로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죽었다. 암피아라오스는 페리클리메노스의 창에 찔리려는 순간, 제우스가 벼락으로 갈라 놓은 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결국 7장군의 테베 공략은 실패로 끝났으며 아드라스토스만이 살아서 아르고스로 돌아갔다.

 

  10년이 지난 뒤, 암피아라오스의 아들 알크마이온 등 7장군의 후예들인 에피고노이(단수형은 에피고넨)가 다시 테베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테베공략 7장군에 관한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인기있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으로는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테베공략 7장군 Hepta epi Thēbās》, 안티마코스서사시 《테바이스 Thebais》 등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학습 목표


  테베의 창건, 주요 인물, 그리고 그 멸망을 다룬 신화는 흔히 "테베史(Theban Cycle)"로 불리운다. 테베사의 첫 부분은 누이동생인 유로파(Europa)를 찾기 위한 캐드머스( Cadmus)의 노력으로 시작해서 테베의 창건으로 끝난다.  

 

  그 다음 이야기는 무서운 죄를 지음으로써 요카스터, 오이디푸스, 안티고네의 파멸을 초래한 라이어스(Laius)를 다루고 있고, 마지막 이야기는 에피고니(Epigoni)의 성공적인 공격을 묘사한다.



유로파


테베사는 티르(Tyre)의 왕인 아제노르의 딸 유로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제우스 신이 황소의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오자, 소의 양순함에 놀란 유로파는 꽃을 꺾어 소에게 주었고, 제우스는 그녀를 등에 태우고 크레테 섬까지 간 다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여기서 태어난 유로파의 아들이 바로 미노스(Minos)이다.

미 술
티티안(Titian 1495년 경-1576년), "유로파의 유괴"  1559-62, 보스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



캐드머스

  누이 유로파를 찾아 온 세상을 헤매던 캐드머스가 델피(Delphi)의 제사장에게 도움을 청하자, 제사장은 황소가 땅바닥에 드러누울 때까지 그 뒤를 따라가라고 알려준다.  황소는 보에티아(Boetia: "황소의 땅")에 이르러 땅바닥에 드러누웠고, 캐드머스는 그 곳에 도시를 세웠다.그의 첫 번째 임무는 그 황소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그는 부하 몇 명을 근처에 있는 아레스 (Ares)의 시냇가에 보내 물을 떠 오게 한다. 그런데 부하들이 시냇가에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뱀이 나타나 그들을 잡아먹어 버렸다.  캐드머스가 부하들을 죽인 그 뱀을 처치하고 나자, 한 목소리가 그도 언젠가는 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아테나 여신은 그에게 뱀의 이빨을 땅에 묻으라고 한다. 그런데 그가 뱀의 이빨을 땅에 묻자마자 무장한 병사들이 땅에서 튀어 나오고, 캐드머스가 그들 한가운데로 돌을 던지자 병사들은 자기들 중 하나가 돌을 던진 것으로 생각하고서 서로 싸워 그들 중 다섯 명만이 살아 남게 된다. 스파토이(Spartoi: "파종(播種)된 자들")로 불리우는 이 다섯은 캐드머스와 함께 도시를 건설하는 데, 이 도시가 바로 캐드메이아(Cadmeia)였다.  그러나 이 도시는 후에 왕인 제투스의 아내 테베를 기념해 테베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캐드머스가 죽인 뱀은 아레스 신에에 바쳐진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죄를 갚기 위해 8년 간 아레스의 노예로 일해야 했고, 그 후 그는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딸인 하모니아( Harmonia)와 결혼했다.  그들의 결혼은 인간과 신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데메테르와 이아손(Iasion)이 들판에서 사랑을 나눈 것도 바로 이 결혼식에서였다.

 

  캐드머스와 하모니아는 이노(Ino)와 세멜레(Semele), 오토노에(Autonoe), 아가베(Agave)와 폴리도러스(Polydorus)를 자녀로 두었다.  캐드머스와 하모니아는 오랫 동안 캐드메니아를 통치한 후에, 일리리안들(Elereans)의 공격을 받은 엔켈레안(Encheleans)에 가게 된다.  한 제사장이 캐드머스와 하르모니아를 그들의 지도자로 모시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캐드머스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엔켈레안의 왕이 되었다.

  캐드머스와 하모니아는 예언대로 말년에 큰 뱀으로 변했고, 제우스는 이들을 엘리시움(Elysium)으로 보내 주었다.


미 술
패리쉬(Parrish, Maxfield 1870-1966), "용의 이빨을 뿌리는 카드무스"
1908, 개인소장



외디프스

  캐드머스의 증손자 라이우스(Laius)는 엘리스(Elis)의 왕 펠롭스(Pelop)의 집에 머무는 동안 펠롭스의 아들 크리시퍼스(Chrysippus)와 사랑에 빠져 그를 납치했다.  델피의 아폴로 신탁은 라이어스가 이 죄의 댓가로 아들에 의해 살해될 거라고 예언했고, 라이어스는 아내인 요카스터가 아들을 낳자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아기의 발목에 말뚝을 박고 하인에게 아이를 내다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 하인은 아이를 코린트(Corinth)의 양치기에게 주고 대신 사슴을 죽여 그 심장을 라이어스에게 갖다 바쳤다.  양치기는 아기를 코린트의 왕 폴리버스에게 데려다 주었고, 폴리버스와 그의 아내 메로페(Merope)는 발목에 상처를 입은 이 아이에게 외디푸스("부어오른 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성장한 외디푸스는 축연에서 한 취객의 입을 통해 자신이 폴리버스의 아들이 아님을 알게 되고, 진짜 부모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델피의 신전에 갔다.  신탁은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기 때문에 조국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외디푸스는 귀국을 포기하고 대신 테베로 향했다.  그런데 도중에서 전차를 탄 한 노인과 그의 신하들에게 거칠게 떠밀리게 되고, 노인이 막대기로 그를 때리자 외디푸스는 홧김에 그 일행을 모두 살해했다.

 

  그런데 당시 테베에는 에키드나(Echidna)와 오르투스(Orthus)의 자식인 스핑크스(Sphinx)가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 사자의 몸, 새의 날개를 가진 이 괴물은 길가에 앉아 어려운 수수께끼를 냈고, 대답을 못하는 사람은 누구든 잡아 먹어 버렸다. 요카스터의 동생이면서 라이어스가 죽은 뒤 테베시를 대리 통치하던 크레온(Creon)은, 누구든 그 수수께끼를 풀어 나라를 구하는 사람은 요카스타와 결혼해 테베를 통치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바로,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오후에는 두발로 걷다가,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었인가?"였는데, 외디푸스가 댄 정답은 "인간"이었다. 이에 스핑크스는 테베의 성채에서 몸을 날려 죽어 버렸다.  외디푸스는 테베의 왕이 되었고, 어머니인 요카스타와 결혼했다. 신탁이 성취된 것이다.


"스핑크스" (기원전 540-30년 경, 로데 아일런드 School of Design 미술관)


  두 사람이 여러 명의 자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테베에 무서운 전염병이 퍼졌다. 아폴로의 신탁에 따르면, 이 재앙은 라이어스를 죽인 자가 여전히 테베 땅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외디푸스는 이 무서운 질병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철저한 조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 자신이 바로 그 범인임을 알게 되었다.  

 

  이를 안 요카스타는 목을 매 자살했고, 눈을 뜨고도 진실을 보지 못했던 외디푸스는 꼬챙이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테베를 떠났다.


미 술
스툭(Stuck, Franz von 1863-1928), "스핑크스의 입맞춤" 1895, 부다페스트,
Szepmuvestzeti Muzeum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외디푸스와 스핑크스"
구스타프 모로 "외디푸스와 스핑크스" 1864
앵그로의 "외디푸스와 스핑크스"와 모로의 "외디푸스와 스핑크스"비교
<원광대 서양화과 조은영 교수 자료 제공>
 



테베를 공격한 아르고스의 일곱 영웅

  외디푸스와 요카스타의 아들인 에테오클레스(Eteocles)와 폴리니세스(Polynices)는 장성하여 왕위를 계승할 나이가 되자, 1년씩 돌아가며 나라를 통치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1년 후 에테오클레스가 왕위를 넘겨주기를 거부하자, 폴리니세스는 아르고스의 왕 아드라스투스의 도움을 받아 테베 공격에 나섰다.  

 

  그런데 이 때 예언자 티레시아스가 "파종된 인간" 중 하나가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크레온의 아들이자 "파종된 인간"의 자손인 메노에세우스가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죽음을 택했고, 테베는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폴리니세스와 아드라스투스의 일곱 장군은 각자 테베의 일곱 성문을 공격했고, 이들 중 하나인 카파네우스만이 성벽을 기어오를 수 있었다.  

 

  그는 성벽 위에 선 채 제우스 신조차도 자기를 막을 수 없다고 큰소리 쳤고, 이에 격분한 제우스는 그를 번개로 내리쳤다.  폴리니세스와 에테오클레스는 동시에 서로를 쳐 죽었고, 크레온은 조국을 공격한 폴리니세스의 시신을 묻는 자에게는 엄벌을 내리겠다고 포고했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의 딸이자 폴리니세스(Polynices)와 에테오클레스(Eteocles)의 자매인 안티고네는 폴리니세스의 시신을 묻으면 사형을 받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묻어 주었고, 크레온은 그녀를 한 동굴에 가두고 입구를 막아 버렸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그녀의 약혼자 해먼(Haemon)이 거기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스스로 목을 매 죽은 뒤였다. 슬픔에 잠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해먼의 어머니이자 크레온의 아내인 유리디세(Eurydice) 역시 그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크레온은 그런 칙령을 내린 걸 후회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 소포클레스의 극 "안티고네"는 이 세 주인공의 고뇌와 도덕적 갈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조우현 역, <희랍비극>, 동서문화사, 1978년, pp. 157-198에 번역본이 실려 있음.)



에피고니
  테베를 공격한 7인 중 하나였던 앰피아라우스(Amphiaraus)는 예언가였다.  그는 테베 공격이 실패로 끝나고 자기도 이 전투에서 죽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들에게 나중에 자라서 테베를 재공격하라고 부탁했다. 그는 자기가 죽게 된 건 그들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아내인 에리필(Eriphyle) 때문이라며 반드시 복수하라고 명령했다.  에리필은 테베를 공격한 7인 중의 하나인 폴리니세스로부터 뇌물, 즉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받고 남편으로 하여금 이 원정에 나서도록 종용했기 때문이다.
앰피아라우스가 죽은 지 10년 후, 아들인 알크매온(Alcmaeon)은 다른 에피고니(Epigoni)들과 힘을 합쳐 테베를 함락시켰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과 아폴로의 신탁에 따라 어머니를 죽였고, 그 죄로 복수의 세 여신(Furies)에 쫒겨 다니다가 아르카디아(Arcadia)에 은신했다.  그는 그곳에서 페게우스(Phegeus)왕의 딸과 결혼했고, 그녀에게 하르모니아의 목결이를 주었다.  그러나 알크매온의 죄 때문에 아르카디아에 기근이 번지자 그는 그 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신탁에 따라 태양이 비치지 않는 곳에 살아야 했다.  그는 결국 아켈러스 강가에 거처를 정했고, 거기서 죄를 씻은 후 강의 신의 딸 칼리뢰(Callirhoe)와 결혼했다.  알크메온은 페게우스에게서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받아 칼리뢰에게 주려 했으나 페게우스의 아들들에게 살해당했다.



티레시아스
티레시아스는 테베의 장님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가이다.  스파르토이(Spartoi)와 차리클로(Chariclo) 중의 하나의 아들인 그는 200년 이상 살았다고 한다.  그의 실명(失明)과 예언 능력을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에 따르면 그는 청년 시절, 우연히 숲 속에서 교미하고 있는 두 마리 뱀을 보았다.  그런데 그가 지팡이로 뱀을 건드리자마자 여자로 변했고, 7년 후 다시 교미하는 뱀들을 보고 지팡이로 건드리자 도로 남자로 변했다. 그는 여자의 가슴, 남자의 생식기를 갖고 있었고, 남녀 모두의 삶을 체험을 통해 잘 이해했다.  그가 했던 가장 유명한 예언은 외디푸스의 운명, 나르시서스의 운명 등이었다.

 

 

                                                                                출처:XIII. 테베 이야기

 

 

 

 

 

                                 *보이오티아
요약
 그리스 중남부에 있는 주().
본문

 행정중심지는 레바디아이다. 남쪽은 코린트만, 북동쪽은 에보이아만에 면하고 남동쪽은 아티카주(), 북서쪽은 프티오티스주, 서쪽은 포키스주와 각각 접해 있다. 헬리콘산계(1,748m)에 의해 2개의 평야로 나누어지며, 비교적 땅이 평편하고 토지가 비옥하다. 북쪽 평원은 분지인데 예전에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호수였던 림니코파이스(코파이스호)가 있었으나, 지금은 물이 다 빠지고 곡물·면사의 산지로, 품질 좋은 가축 사육지로 이름 나 있다. 또한 헬리콘산의 구릉이 해풍을 막아주어 비옥한 토지에서는 밀·옥수수·포도·올리브·담배 등을 재배한다. 코린트만의 아스프라스피티아에서는 이곳에서 많이 산출되는 보크사이트를 원료로 하여 알루미나·알루미늄을 생산한다. 델포이의 동쪽 계곡으로 향하는 철도와 고속도로가 보이오티아를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가로지르며 나 있다.

  구석기시대의 주거흔적이 확인됨으로써 예부터 문화가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미케네시대에는 테베와 오르코메노스에 소왕국이 세워졌다. 고대그리스의 한 지역으로 아테네 북서쪽에 있었고, 농목업이 성하였으며 대부분 지역이 농장과 소도시였다.

 

  기원전 550년경 테베를 맹주로 하여 보이오티아 지역의 폴리스들은 처음으로 보이오티아동맹을 결성하여 연합정부형태로 통치하였다. 펠로폰네소스전쟁(BC 431∼BC 404) 때에는 스파르타와 함께 아테네에 대항해 싸웠고, 코린토스전쟁(BC 395∼BC 387) 때에는 스파르타에 대항하여 봉기하였다.

 

  BC 371년 테베의 장군 에파미논다스펠로피다스가 이끈 보이오티아동맹이 레우크트라전투에서 스파르타군을 물리쳤다. 그 뒤 10년 동안 보이오티아동맹은 그리스의 정치를 주도하였다.

 

  BC 338년 카이로네이아전투에서는 그리스의 독립을 주창하며 마케도니아에 맞서 싸우다가, 필리포스 2세에게 패하여 많은 사상자를 냈다.

 

  3년 뒤인 BC 335년, 알렉산드로스 3세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테베가 파괴당한 뒤 급속히 쇠퇴하였다.

 

     * 에파미논다스 [Epaminondas, BC 410 ?~BC 362]
요약
 고대 그리스 테베의 장군 ·정치가. 보이오티아연맹의 해체를 노린 스파르타의 요구를 거부해 침입한 스파르타 군을 사선진전술로 물리쳐 패권을 빼앗았다. 펠로폰네소스에 원정해 아르카디아와 메세니아를 독립시켰고 테베의 패권 확립에 노력했다.
본문

 초기의 경력은 불분명하다. 피타고라스학파의 류시스에게 사사하였고, 뛰어난 변설의 재능과 기지()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BC 371년 보이오티아 연맹위원에 선출되어 스파르타평화회의에 참석하였고, 그 회의에서 보이오티아연맹의 해체를 노린 스파르타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이에 반감을 사 침입한 스파르타군을 레우크트라에서 맞아 싸웠는데, 새 전술인 사선진전술()을 사용하여 적군 1만에게 결정적 타격을 줌으로써 스파르타의 패권을 빼앗았다. 이듬해 펠로폰네소스에 원정하여 아르카디아메세니아를 스파르타로부터 독립시켰고, 그 뒤에도 친구 펠로피다스와 협력하여 테베의 패권 확립에 노력하였다.

 

 BC 362년 4번째의 펠로폰네소스 원정 때 만티네이아전투에서 죽었다. 그의 죽음과 함께 테베의 패권도 잃게 되었다.

 

 

 

          *펠로피다스 [Pelopidas, BC 410?~BC 364]

 

 

요약
  테베의 장군 ·정치가. 민주화를 꾀한 탓으로 아테네로 망명했다 테베의 과두파와 스파르타 군을 쫓아낸 뒤 테베의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 펠로폰네소스에 원정하고 페르시아가 스파르타를 원조하지 못하도록 대왕을 설득했다.
본문

  민주화를 꾀한 탓으로 스파르타군()으로부터 테베를 점령당해(BC 382) 아테네로 망명했다. BC 379∼BC 378년 겨울 동지들과 함께 아테네에서 기습하여, 테베의 과두파()와 스파르타군을 쫓아내었다.

 

  그 후 친구인 에파미논다스와 같이 테베의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 ‘신성대()’를 이끌고 테기라에서 싸웠고(BC 375), 레욱트라에서는 결정적으로 스파르타에 이겼다(BC 371).

 

  BC 370∼BC 369년에는 펠로폰네소스에 원정하고, BC 367년 페르시아로 가서 스파르타를 원조하지 못하도록 대왕을 설득하였다.

 

  테살리아의 키노스케팔라이를 페라이의 참주() 알렉산드로스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키노스케팔라이에서 싸워 이겼으나(BC 364), 그는 그곳에서 전사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