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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과학의 만남] 노아홍수 (上, 中, 下)

영국신사77 2007. 5. 16. 14:10

                     [신학과 과학의 만남] 노아홍수 (上)

 

                                                                                         2005.5.5. 



  우주 탄생 이후 지구 최대의 격변을 꼽는다면, 주저없이 노아의 대홍수를 지목할 것이다. 지진과 같은 강한 진동에 지축이 기울어지면서 지하 맨틀(지하 700㎞)속 깊음의 샘들이 전 지표면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 이른바 ‘우주적 변란’(지난해 8월 31일자 32면 참조)이 노아 홍수 때 발생했을 것으로 창조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지난 2004년 12월 하순, 남아시아를 강타한 것과 맞먹는 지진해일이 노아홍수 당시 지구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1000여개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런 전무후무한 우주적 변란 속에서, 노아는 어떻게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을 방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을까? 성서는 의외로 명쾌하게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새가 그 종류대로,육축이 그 종류대로,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창 6:20)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모든 것이 각기 그 종류대로 두 마리씩 네게로 올 테니…”(쉬운 성경)

  수많은 동물이 노아에게 스스로 ‘다가왔다’는 의미다. 영어 성경을 참고하면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will come to you(Noah)”(NIV) “…shall come to you(Noah)”(NASH)

  동물들이 노아에게 나왔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04년 12월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해일이 수십만명의 생명을 앗아갔으나, 동물의 목숨은 그렇지 못했다. 그때 ‘놀라워라! 동물의 6감, 사전 대피 목격담 이어져…’ 등의 외국 언론들의 기사가 이어져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진이 일어난 지난해 12월26일 당시, 스리랑카 뿐 아니라 피해 지역 곳곳에서 동물들이 대피하는 장면을 수없이 봤다는 목격담을 싣고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해일이 인도 남동부 해안가를 덮치기 10분전 한 등대지기는, 한 무리의 영양이 해안가에서 근처 언덕으로 급히 달려가는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주 야생동물보호구역 관리자 A D 바루아씨는 “26일 지진해일이 발생한 이후 8일이 지난 현재(1월3일 밤)까지 보호구역 안의 동물 2000마리 중 1마리만 죽은 채 발견됐고 나머지는 모두 무사했다”고 밝혔다.

 스리랑카 최대 야생동물 보호구역인 얄라 국립공원을 취재한 AP통신 기자 역시 놀랍게도 코끼리 물소 사슴 등 야생동물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으며 죽은 동물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타전했다. 이 공원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게한 데 실바 위제예라트네씨는 “동물들이 해를 입지 않은 것이 분명하며 아마 고지대로 미리 대피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얄라 국립공원에는 코끼리 악어 멧돼지 물소, 회색 랑구르 원숭이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표범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기 때문에 지진해일 발생 당시 외신 뿐 아니라 동물애호가들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었다.

 동물행동학자들에 따르면 통상 동물은 사람에 비해 5감각이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200배까지 발달돼 있다. 예컨대 사람의 가청주파수는 16∼2만㎐이지만 말의 경우 종류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보통 2∼2만㎐이기 때문에 기수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말을 타고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을 질주하다보면 갑자기 말이 놀라 도주하는 경우를 종종 체험하게 된다. 기수의 눈에는 말이 놀랄 만한 물체나 이렇다 할 소리가 들리지 않으나 말은 기수의 시야 밖에 있는 야생동물의 발자국 소리와 채취 등을 알아차리곤 한다. 예민한 후각과 청각 등을 동원해 기수보다 훨씬 먼저 이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지진해일이 발생하면 지구의 자기장 기온 음파 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야생동물이 이런 변화를 감지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해일의 경우 강도와 범위가 매우 강하고 광범위했기 때문에 야생동물은 더욱 확실하게 감지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지진해일이 노아홍수 당시 1000여개가 발생했다면 야생동물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주 입구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을 것이란 추론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동물행동학자를 놀라게 한 것은 모세의 기록이 그들이 갖고 있는 식견 이상으로 사실적이라는 데 있다.

  “깨끗한 짐승과 깨끗하지 않은 짐승과 새와 땅 위에 기는 모든 것이 노아에게 왔습니다”(창 7:8∼9)

남병곤기자
nambgon@kmib.co.kr
◇도움말 주신 분 △한국창조과학회 △심영기 교수(인제대 나노공학부) △김완모 박사(숭실대 기독교학과 겸임교수) △왕대일 교수(감신대 구약학)



 

 

 

                         [신학과 과학의 만남] 노아홍수 (中)

 

                                                                                         2005.5.13. 



  “…모든 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창 7:14∼15)

  도대체 방주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기에 이렇게 많은 동물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뿐만 아니라 그 많은 동물이 들어갈 만큼 컸던 방주의 안정성은 확보돼 있었다는 말인가? 노아홍수를 부정하는 학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이 부분에 대해 회의적이다.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방주는 길이 300규빗,너비 50규빗,높이 30규빗(창 6:15) 규모로 제작됐다. 규빗은 당시 도량형 단위였다. 1규빗(큐빗·cubit)을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18인치 정도에 해당한다. 아무튼 성서에 소개되고 있는 1규빗은 45㎝보다 길었을 것이란 게 일반적인 견해다.
 
 따라서 1규빗을 최소한 45㎝로 계산하더라도 방주의 크기는 길이 135m, 너비 22.5m, 높이 13.5m에 해당한다. 축구장의 길이(국제규격)가 100∼114m임을 감안하면 방주는 그것보다 더 길게 제작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의 넓이를 계산하면 4만1006.25㎥로 화물 운반용 기차 522량에 해당한다.

 방주의 특징은 배가 아니라는 데 있다. 범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돛은 물론 노와 키 등 추진 수단이 전혀 없었다. 창조과학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주는 순전히 화물을 싣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는 방주를 ‘ark’(상자)로 번역하고 있다(창 8:4?NIV,KJV,NASB).거대한 상자로, 오직 저장 공간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주의 안정성은 어느 정도였을까? 통상 배의 안정성은 그것의 구조비율에 의해 결정되는데, 파도에 의해 배가 부서지는 정도인 구조 안정성,배가 기울어졌다가 다시 평형을 이루는 복원 안정성, 배안의 화물들이 안정하게 유지되는 파랑 안정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대형선박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퀸 엘리자베스 호는 그 비율(길이:너비)이 8.16대1이며 캔버라 호는 8.2대1이다. 몇몇 대형 유조선들은 대략 7대1에 가깝다. 조선기술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속도을 감안, 설계된 것인데 속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6대1의 비율에 가깝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방주의 길이와 폭의 비율은 300대50 즉, 6대1에 해당된다.

 한국창조과학회가 1993년 한국의 해사기술연구소에 의뢰, 노아방주의 안정성을 확인한 결과 안정성이 매우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주와 동일한 부피를 가지면서 길이와 너비, 그리고 높이의 비율만 다르게 한 13척의 배를 선정, 안정성을 비교 검토했다. 실험은 13척 모두 50분의 1 축소 모형으로 실시됐다. 그 결과 방주만이 파도의 높이가 43m 이하에서 파랑 안정성과 복원 안정성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방주를 건조한 나무의 두께가 30㎝ 이상이었다면 30m 이상의 파도에도 파손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선급협회(ABS)에서는 파도 높이가 40m 이상일 때는 배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올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바다에서 발생한 가장 큰 파도의 높이는 30m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방주는 최악의 경우에도 놀랄 만큼 안정성이 확보돼 있었다는 결론이다.

 이런 크기와 안정성이 확보된 방주에 과연 얼마 만큼의 동물들이 들어갔을까? 미국의 분류학자인 어언스트 마이어에 따르면, 현존하는 동물의 종류는 포유류 3,500종, 양서류와 파충류 5,500종, 조류 8,600종, 어류 1만8,000종, 피막동물 1,700종, 극피동물 4,700종, 절지동물 81만5000종, 연체동물 8만8,000종, 곤충 2만5,000종, 강장동물 1만종, 해면동물 5,000종, 원생동물 1만5,000종 등으로, 모두 100만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94만2400종 이상이 물속에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방주에 수용될 필요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포유동물이라 해도 고래나 대부분의 양서류는 물론이고 곤충도 다수가 물속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방주에 수용된 동물은 이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따라 최대 1만7,600종이 방주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을 암수 한쌍씩으로 계산하면 3만5,200마리가 된다. 방주 용적으로 볼 때 대략 양 12만5280마리 정도가 들어갈 수 있다. 동물 1마리의 부피를 양 1마리로 계산하더라도 이들 동물이 차지한 용적은 겨우 방주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런 과학적 계산을 하지 않고 추상적 개념으로 성서에 접근, 부정하려는 시도는 ‘과학의 오만’이 아닐 수 없다.

남병곤기자
nambgon@kmib.co.kr
◇도움말 주신 분 △한국창조과학회 △심영기 교수(인제대 나노공학부) △왕대일 교수(감신대 구약학) △김완모 박사(숭실대 기독교학과 겸임교수)

 

 

 

 

Home > 뉴스 > 테마기획 > 신학 입력 : 2005-05-20 15:37
                      [신학과 과학의 만남] 노아홍수(下)


  지구상에 존재하는 무려 200여 나라와 민족에게서, 성서에 등장하는 동일한, 혹은 비슷한 유형의 ‘홍수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대부분 아라랏(아라라트) 산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나라나 민족들이다. 아라랏 산에 근접해 있는 나라와 민족들일수록 성서에 소개된 홍수 설화를 구체적으로 갖고 있으며, 멀어질수록 조금씩 변형된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라랏 산 접경 지역에 있는 터키 이란 아르메니아공화국 등지에서는 성서의 홍수 설화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페르시아 인도 미안마 인도네시아 뉴기니아 타히티 하와이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알래스카 북미인디언(체로키 만단 타코족 등) 멕시코(파파고스 피마스 톨렉스 아즈텍 니초아칸족 등) 이집트 수단 나이지리아 콩고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스 시리아 스칸디나비아반도 피지 안다만섬 수마트라 아일랜드 등에서는 다소 변형된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이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설화는 죄 지은 인류, 물에 의한 파멸, 은혜를 입은 노아의 가족, 방주의 예비, 구원 받은 인류의 자손, 구원 받은 동물의 종자, 전 지구적인 파멸, 산에 기착한 방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대표적 표의문자인 한자의 배 선(船)자가 담고 있는 뜻 또한 홍수 설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관련 학자들의 설명이다. 배 주(舟)자와 여덟 팔(八)자,그리고 사람을 뜻하는 입 구(口)자로 이루어진 이 글자는 노아 홍수 당시 구원 받은 사람이 8명(노아와 부인,셈 함 야벳 등 아들 및 그들의 부인 3명 등 모두 8명)임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남아프리카의 호텐토트 족은 그들이 노(Noh)라는 조상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믿고 있으며, 하와이 원주민들 역시 오직 누우(Nu-u)와 그의 가족만이 홍수로부터 구원받았다는 설화를 갖고 있다. 노(Noh)와 누우(Nu-u)는 ‘의롭고 흠없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살았던’ 노아(Noah?창 6:9)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이런 홍수 설화의 중심인 방주에 대한 발견 기록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다. 최초의 기록은 베로수스가 BC 275년에 저술한 ‘갈대아와 아시리아의 역사’라는 책에 나타나 있다. 성직자였던 베로수스는 이 책에서 BC 475년에도 사람들이 아라랏 산에 올라가 방주(잣나무)에 입혔던 역청(창 6:14)을 벗겨내 부적으로 사용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후에도 안티오크(안디옥)의 테오필로스(115∼185),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315∼403),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345∼407) 등 교부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이어서 중세 초기 백과사전 편집자인 세비야의 이시도루스(Isidorus?560∼636)와 아르메니아의 왕자였던 진 헤이톤(Jean Haithon?13세기), 그리고 중세 말기 마르코 폴로(1254∼1324) 등 7∼8명의 선교사와 탐험가들의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17∼18세기에는 주로 여행가들에 의해, 19세기에는 지질학 등 관련 학자, 20세기 들어서는 탐험가들에 의해 방주에 대한 증언이 뒤따랐다. 프랑스 탐험가인 페르난도 나바라는 아라랏 산을 세 차례나 등반했는데, 그중 1952년과 1955년 등반에서 그곳에 방주가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얼음속에 파묻혀 있던 방주의 조각을 갖고 내려왔으며 그 조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역청이 발라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방주가 기착한 곳은 어디쯤일까? 성서는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창 8:4)고만 기록하고 있다. 터키대사관에 따르면, 아라랏 산은 아르메니아 고원에 솟아 있는 화산으로 터키 동부지역의 반 세반 우르미야 등 3개 호수를 연결하는 삼각지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직경이 약 40㎞인 이 화산은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5165뻍,다른 한 봉우리는 3685뻍에 이른다. 터키인들은 이 봉우리들을 각각 ‘대(大)아르’와 ‘소(小)아르’라 칭한다. 산등성이에는 식물이 거의 없고 용암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9∼10월에는 쌓였던 눈이 녹기도 하지만 2개의 정상 7부 능선부터는 만년설로 덮여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이 방주가 기착한 곳은 대아르일 것으로 추측한다. 영어성경은 추측의 오차를 줄여주고 있다. “…on(upon) the mountains of Ararat”(아라랏 산들에 머물렀다?NIV,KJV)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느 봉우리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아라랏 산의 여러 봉우리 가운데 어느 한 봉우리에 머물렀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남병곤기자
nambgon@kmib.co.kr
◇도움말 주신 분 △한국창조과학회 △심영기 교수(인제대 나노공학부) △김완모 박사(숭실대 기독교학과 겸임교수) △왕대일 교수(감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