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강화읍교회
어느 독일인이 한국에 와서 특색 있는 교회를 보기 원했다. 한국인 친구는 그를 인도하여 여의도 순복음 교회와 소망 교회 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독일인은 고개를 내저으며 다른 교회가 없느냐고 하였다. 한국인 친구는 그를 강화읍 성공회 성당으로 인도하였다. 그는 교회를 보자마자 “Wunderbar(wonderful), Wunderbar"를 연발하였다. 이와 같이 감탄할 정도로 이 교회는 가장 한국적인 건축양식을 최대한 살려 지은 건물로서 현재도 교회당으로 사용하며 매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곳이다.
성공회(聖公會, The Anglican Domain)는 1890년 9월 조선에 처음 전파되었는데, 강화에는 1893년 봄에 코프(C. J. Corfe) 주교가 갑곶에 거점을 마련하면서부터이며 같은 해 7월 워너(L. O. Warner) 신부가 파송되어 본격적으로 강화에서 성공회 선교가 시작되었다.
현재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 트롤로프(趙瑪可) 주교가 설계, 감독하여 건축한 것이다. 경복궁 공사에 참여했던 대궐 목수가 시공하였고 사용된 목재는 백두산 원시림산 적송이며, 기와와 석재는 전부 강화도산이며 제대, 세례대, 축대 등 석공사는 중국인 석공이 맡았다고 한다. 1899년 가을부터 대지정지 작업을 시작해 1900년 11월 15일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성당으로 축성하였다. 건립 이후 몇 차례(1914, 1936, 1949, 1984)의 보수공사가 있었다.
성당이 위치한 강화읍 관청리 언덕은 고려중기 몽고군의 침입에 항쟁하기 위해 강화도에 천도하고 내성을 축조한 남쪽 성터의 일부분이다. 이곳은 1896년 강화읍 선교를 책임 맡았던 트롤로프신부가 자리잡은 임시회당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으로 강화읍 시가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견자산 언덕마루이다.
700평의 대지위에 배 형태의 터를 닦아지어진 교회는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과 종각이, 중앙에는 성당이, 배의 고물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교회를 관리하는 주교관이 배치되었다. 이 예배당 구내에는 한국 최초의 고아원인 장미원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성당의 내부구조는 입구인 앞툇칸, 회중석(會衆席), 지성소(至聖所), 소제대(小祭臺), 제대, 예복실로 배치되어 있으며, 내부에 석제 성수대(聖水臺)가 있는 바실리카양식으로 남북 고간이 4간, 동서 도리간이 10간인 총 40간 규모의 건물이다. 그 밖에 정원수 중 눈에 띄는 것은 6월에 꽃이 만발하면 사방에서 꿀벌이 모여들고 꽃향기가 그윽한 보리수 두 그루가 있다. 강화성공회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111호로 처음 지정된 이래 강화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인천지방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1월 4일 국가사적 424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성공회 강화읍교회
한국성공회의 대표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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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읍교회는 한국성공회의 대표적 유적지이다. 언덕 위에 자리한 기와와 목재로 지어진 한국적인 전통양식 교회당건물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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