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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김광석회장 ⑾~(15)

영국신사77 2007. 4. 5. 23:48
                [역경의 열매]―김광석회장 ⑾~(15)

 

 

 

[등록일시]:2005-01-23 오후 4:08:09

 [역경의 열매―김광석 ⑾] 어머니 소원대로 인쇄소집 딸과 결혼


어머니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이름을 세번 부를 때까지 대답하지 않으면 곧바로 회초리를 드셨다.

“내가 섬진강에 빠져 죽으면 네가 내려오겠지? 그러면 내가 벌떡 일어나 불효막심한 네 놈의 뺨을 후려갈길 것이다.”

등골이 오싹했다. 어머니는 정말 그럴 분이셨다.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겨울방학을 맞아 나는 시골에 내려와 있었다. 어머니는 온종일 일을 하시고 눈을 흠뻑 맞은 채 귀가하셨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인사 드릴 기회를 놓친 것이 영 찜찜했다. 아니나 다를까,방문이 벌컥 열리고 어머니가 분노한 표정으로 들어오셨다.

“대학생? 참 좋구나. 어미는 온종일 일하느라 눈범벅이 되어 들어오는데 대학생 아들놈은 아랫목에 누워 인사할 줄도 모르는구나. 서울의 대학에 다닌답시고 기고만장이 하늘을 찌르네. 대학생들은 참 좋겠다. 대학생은 버릇이 없어도 용서가 된다더냐?”

잘못을 빌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는 팬티만 입은 채 집 밖으로 쫓겨났다. 엄동설한에 맨몸으로 쫓겨났으니 오죽 추웠을까.

“내가 잘못했어요. 벌을 받아 마땅해요.”

진심으로 반성했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 어머니가 나오시지 않았다. 보통 10분쯤 지나면 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실 어머니였다. 몸은 점점 굳어졌다. 자명종이 10시를 알리는 소리를 아스라히 들으며 나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가족이 놀라서 뛰쳐나와 나를 안방으로 데려갔다. 어머니가 깜빡 잠이 드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이런 분이셨다. 좋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30년을 희생했으니 이제 나도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해서 좀 손해를 보면 또 어떤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결혼하겠습니다. 제발 섬진강에 빠져 죽겠다는 말은 거두어 주십시오.”

그제서야 어머니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1967년 3월25일 하동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분의 딸인 정현경과 결혼식을 올렸다. 나보다 일곱살이나 어린 순박한 처녀였다.

결혼과 함께 내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6명의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는 임무가 부과됐다. 어머니는 장남은 뭐든지 할 수 있는 큰그릇이라고 여겼고 나는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연구 노트에 ‘구할 求’자를 써놓고 그 밑에 이렇게 적었다.

‘남이 찾지 못한 것을 찾아내야 성공할 수 있다.’

나는 한달이면 거의 20일을 밤을 지새우며 연구했다. 나중에는 폐결핵에 걸려 체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약사가 건강을 잃으면 환자들에게 할 말이 없어진다. 좋은 처방을 만들어 약국은 대성황을 이뤘으나 몸은 점점 망가져 갔다. 그리고 약국 운영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제약회사를 만들어볼까? 아니야,그것은 제약이 너무 심해서 안돼. 기능성 화장품을 만들어볼까? 아니야,그것은 시설투자가 너무 많아. 건강은 극도로 악화됐으나 꿈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역경의 열매―김광석 ⑿] ‘보이지 않는 손’ 인도따라 사옥 마련


폐결핵으로 몸은 점점 망가져갔다. 그러나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열정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을 시작하면 정신없이 몰입하는 것이 꼭 어머니를 빼쏘았다. 내가 참존화장품회사를 만들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그런 성격 때문이었다.

사업이 안정을 찾아갈 무렵 서울 성수동 신양교회에 출석하는 정훈 장로가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나와 오랫동안 친교를 나누어온 사이였다.

"김 사장,내가 어젯밤에 참 이상한 꿈을 꾸었어. 지금 우리 교회가 새 성전을 건축했잖아. 이제 십자가를 세워야 한다고. 그런데 어젯밤 꿈에 '김 사장이 십자가를 세워줄 것'이라는 음성이 들렸어. 참 이상하지? 왜 하필 김 사장이냔 말이야. 우리 교인도 아닌 사람을…."

"정 장로가 그런 계시를 받았다면 내가 순종할 수밖에 없잖아. 내가 기쁜 마음으로 하겠어."

나는 흔쾌히 신양교회에 50m쯤 되는 십자가를 세워주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교회였지만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깜짝 놀랄 일이 발생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사옥을 마련하기 위해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압구정동 둑길 옆에 아주 좋은 건물이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건물에 들어가서 한강을 내려다보던 나는 그만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강 건너편에서 웅장한 십자가 하나가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신양교회의 십자가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아시고 사옥 맞은편에 십자가를 세우게 하신 것이다. 그 건물은 나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건물을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우연이 없다. 하나님의 치밀한 섭리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하나님은 먼저 십자가를 세우게 하시고, 그 맞은편에 아름다운 사옥을 예비해놓으셨다. 이렇게 섬세하고 구체적인 하나님의 손길이 있는데 누가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가? 이런 놀라운 기도응답이 있는데 누가 하나님은 침묵하신다고 하는가?

 

   우리는 사옥을 마련하면서 다시 한번 크게 도약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시나리오였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 해외여행을 통해 '클린싱 워터'를 개발한 것에 스스로 고무돼 자꾸 외국에 나가고 싶었다. 외국의 신상품을 확인하는 것은 사업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 드렸다.

"하나님,저는 해외여행 경험이 적어요. 세계일주를 일곱번쯤 하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내 기도를 '급행'으로 응답하셨다. 한달에 한두번은 반드시 해외출장이 잡혔다. 그 덕분에 전 세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처음에는 외국여행이 재미가 있었으나,  점점 힘이 들었다.그래서 요즘은 기도제목을 아예 바꾸었다.

"하나님,이제 제발 해외에는 그만 나가게 해주세요. 체력이 허락하지 않아요."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인생은 얼마나 황홀한가. 나는 나중에 약국사건의 밀고자가 누군지를 알게 됐다. 그러나 그를 완전히 용서했다. 처음에는 한숨을 쉬면서 괴로워했으나, 나중에는 그를 위해 기도해주었다. 그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가? 그가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도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 덕분에 사업을 일으켜 성공하게 됐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정리=임한창기자 hclim@kmib.co.kr

 

 

 


[역경의 열매―김광석 ⒀] “세상쾌락과 단절” 기도중에 약속


   예수를 믿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세속적 기쁨과의 단절이었다. 주일성수나 십일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세상 기쁨과의 단절은 정말 큰 고통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퍽 즐기는 편이었다. 어느 날 나는 기도 중에 두고두고 후회스런 약속을 하고 말았다.

      “하나님,이제부터는 정말 성결한 삶을 살겠습니다. 세속적 쾌락은 이제 끝입니다. 제 성결한 생활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이 기도를 드리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감했다. 친구들의 숱한 유혹을 물리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 약속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어쩌랴. 하나님과의 약속인 것을….

1991년 11월8일. 그날은 장남의 생일이었다. 우린 그해 아예 교회 옆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곽선희 목사님을 모시고 감격스런 축하예배를 드렸다. 곽 목사님의 심방은 우리 가족을 감동시켰다. 수만명의 교인 중에서 우리 가정을 택해 방문해주신 것이다. 목사님의 방문은 우리 가족의 신앙생활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 봄 곽 목사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김 집사님,중국 옌볜에 과기대가 있는데 오는 7월에 개교한답니다. 방송과 어학시설 기자재가 필요하답니다. 총 경비가 7000만원쯤 든다고 하니 집사님이 다른 분과 힘을 합쳐 지원을 좀 해주시지요.”

“목사님, 제가 혼자 다 하겠습니다.”

나는 나중에 5억원을 더 보태 과기대에 공학관을 세웠다. 김진경 총장은 이 건물을 ‘참존공학관’으로 부르겠다고 헀지만, 나는 그 제안을 사양했다. 1996년말에도 곽 목사님이 은밀히 나를 부르셨다.

   “올해 내가 ‘자랑스런 프린스턴인상’을 받았어요. 상을 받고 미국 풀러신학대학교를 방문했는데, 한국 학생이 300명이 넘어요. 세계 80여개국 학생들이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한국인 카운슬러가 한 명도 없어요. 상담교수를 채용하려면 1년에 5만달러가 소요되는데 그 기금을 마련할 길이 없답니다. 100만달러를 마련해놓으면 그 이자로 한국인 교수 한 사람을 채용할 수 있다더군요.”

목사님의 설명은 계속됐다.

   “우리보다 교세가 훨씬 약한 일본은 이미 기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그 말을 듣고 문득 김 집사님 생각이 났어요.”

몸에 전율이 일었다. 나는 목사님을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목사님,문득 성경 구절 하나가 떠올랐어요. 제가 그것을 목사님께 말씀드려도 될까요?”

순간 곽 목사님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햇병아리 신자가 목회자, 그것도 곽선희 목사님께 성구를 들려주겠다니 보통 무례한 언사가 아니었다. 나는 목사님의 표정을 주시하면서 천천히 그러나 아주 또박또박 성경 구절을 외워나가기 시작했다.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곽 목사님도 고개를 돌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역경의 열매―김광석 ⒁]

 

                       “주께서 쓰신다면 100만달러 내겠어요”


   장학기금 100만달러는 다소 힘겨운 액수였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왜 내 입술은 마태복음 21장 2∼3절 말씀을 외우고 있었을까? 곽선희 목사님은 눈물을 닦은 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셨고 나는 여전히 심하게 떨고 있었다.

   “목사님,주께서 쓰시겠답니다. 주님은 물질 뿐만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주께서 쓰시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제가 100만달러를 준비한다, 안한다 말할 자격이 없어요. 그저 순종할 뿐입니다. 즉시 100만달러를 준비하겠습니다.”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우리보다 교세가 훨씬 약한 일본이 이미 기금을 마련했다는 말도 내 자존심을 자극했다. 나는 100만달러가 어느 정도의 액수인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교인 중에서 나를 선택해 이런 중요한 일을 맡기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드렸다.

곽선희 목사님의 얼굴이 다소 상기돼 있었다. 내가 처음에 성경을 낭독하겠다고 했을 때는 아마도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 하는가’라고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또박또박 외우고 ‘주님께서 쓰시겠답니다’라고 말했을 때는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셨다. 곽 목사님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김 집사님,성도에게 이렇게 큰 감동을 받기는 처음입니다. 오늘 집사님께 아주 좋은 설교 제목 하나를 얻었어요. 그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나는 더 이상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목사님께 송구스럽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오늘 집사님께 배운 설교제목은 ‘주가 쓰시겠다 하라’입니다. 아주 멋진 설교제목입니다.”

나는 목사님께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

“목사님,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장학기금을 헌금했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래야 제 마음이 편안합니다.”

나는 그날 아주 기쁜 마음으로 회사에 돌아왔다. 그리고 장학기금 마련 방안을 모색했다. 곽 목사님은 그날 교역자들과 볼링경기를 했는데 300점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 마음이 기쁘면 하는 일도 모두 즐거운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면 항상 기쁨이 넘친다. 이것은 내 인생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혜다.

   사업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찾아와 상의해올 때가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말라기 3장 10절에 사업 성공의 비결이 숨어 있다고 설명해준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온전한 십일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아예 매주 십일조를 준비해 하나님께 드린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는데도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그것에 대한 대안도 갖고 있다.

   사업 성공의 두번째 비결은 새벽기도. 하나님께서는 미명에 우리에게 놀라운 지혜를 주신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기복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예수를 믿어 복을 받은 사람이다. 예수를 믿어 저주를 받는다면 누가 신앙생활을 하겠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그의 자녀들이 받아 누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왜 기복적인가? 물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은 더욱 복된 일이다.

 

 


 

   [역경의 열매―김광석 ⒂]

 

                      주일 결혼식 가던 아내 ·장남 교통사고


  미국 풀러신학대학교의 장학기금 100만달러를 마련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내가 소유하고 있던 건물을 팔면 기금을 곧 마련될 줄 알았다.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달러당 830원이던 환율이 940원으로 상승했다. 가만히 앉아서 1억원의 기금이 늘어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외환위기 태풍이 몰아쳐 부동산시장도 꽁꽁 얼어붙었다.

“하나님,참으로 큰일입니다. 제가 지금 국제적 망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제게 지혜를 주십시오.”

기도 중에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내 자신을 향한 통렬한 질책이었다.

‘왜 건물을 팔려고만 하느냐. 은행에서 빌리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

내가 왜 그 생각을 일찍 하지 못했을까. 나는 부랴부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기금을 마련했다. 그런데 그것을 곧바로 미국에 보내지 못했다. 조금 지나자 1달러가 1440원으로 상승, 차액 4억3000만원을 더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작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니 그 돈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몇개월 후 풀러신학대학교측에서 신문 한 장을 보내왔다. 거기에는 ‘어느 익명 기증자의 선행’이란 제목의 글이 실려 있었다. 내가 곽선희 목사님과 함께 장학기금 100만달러를 기부하고 신분을 밝히지 않은 내용이 게재돼 있었다.

   그 즈음 하나님은 나를 위해 또 다른 선물을 준비해놓으셨다. MBC의 ‘성공시대’에 출연해 사업 실패와 성공, 예수를 믿게 된 사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이야기 등을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TV 출연을 통해 나는 사업과 신앙에 한결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하나님이 왜 나를 강권적으로 붙드셨을까?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텐데…. 아마 하나님의 은혜를 여러 사람에게 알리게 하시려고 나를 택하신 것은 아닐까?’

하나님을 만난 후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가끔 무서운 사건들을 통해 나를 깨우치셨다. 1991년말에 일어난 엄청난 사건은 우리 가족의 신앙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날은 주일이었다. 집안일을 도와주던 처녀의 결혼식이 경남 하동에서 열렸다. 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내와 큰아들은 새벽부터 분주했다. 나는 하동에 내려가는 것을 말렸으나 워낙 정이 많은 아내는 반드시 가보아야 한다면서 길을 나섰다. 아내를 향해 내가 말했다.

“그곳은 무척 먼 곳이야. 눈길이 위험하니 내 차를 이용해요.”

가족은 차를 타고 하동으로 내려갔다.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 차를 내주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망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해 기도를 드렸다. 그날 따라 가족을 위한 기도를 매우 뜨겁게 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동생이 교회 앞에 서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형님, 제 말에 놀라시면 안됩니다. 형수님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보통사고가 아닌 듯싶었다.

“어느 정도의 사고인가?”

“대형사고입니다. 전주 예수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빨리 내려가 보십시오.”

앞이 캄캄했다. 아내와 큰아들이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정리=임한창기자 hc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