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믿음간증歷史

[역경의 열매]―김광석 회장⑹~(10)

영국신사77 2007. 4. 5. 23:41

 

                 [역경의 열매]―김광석회장⑹~(10)

 

 


[등록일시]:2005-01-16 오후 3:07:47


[역경의 열매―김광석⑹] 믿음 생기자 세상보는 눈 달라져


아내의 태도가 의외로 단호했다. 교회 출석은 하겠지만 교회를 선택하는 일은 자신에게 맡겨 달라는 것이었다.

“교회의 ‘교’자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교회를 선택한단 말이오.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나를 따라와요.”

“내가 그동안 눈여겨보아둔 교회가 있어요. 당신이 그 교회에 출석한다면 나도 당신 뜻에 따르겠어요.”

아내를 따라 출석한 곳이 소망교회였다. 우리 부부는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에 완전히 매료됐다. 곽 목사님의 설교는 우리 부부의 영혼을 가랑비처럼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바로 이곳이다.”

우리 부부는 곧 교회에 등록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신앙생활에 돌입했다. 예수를 믿고 나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모든 사람을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 시련을 당할 때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했다.

친척 중 예수를 잘 믿어 크게 복을 받은 가정이 있다. 국회조찬기도회 부회장을 지낸 김명규 장로 가정은 대대로 예수를 잘 믿어왔다. 김 장로 부모님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기도를 드리는 분들이다. 자녀들을 위해 부모가 매일 기도를 드리니 그 후손들이 잘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들은 모두 장로가 됐고 딸들도 권사가 되어 교회에 봉사하고 있다. ‘신앙의 명가’를 이룬 것이다. 김명규 장로는 내게 끊임없이 전도를 해왔었다.

“형님,예수를 믿으세요. 형님 같은 분이 왜 예수를 믿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형님은 예수를 믿어야 행복할 사람입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타종교 단체의 신도회장을 맡고 있다는 것을 잊었어? 그동안 예수 믿는 사람을 설득해 종교를 바꾸게 한 것만도 한둘이 아니야.”

나는 이런 강퍅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이런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분명히 이변이었다. 김명규 장로가 내게 왜 그렇게 집요하게 신앙생활을 권유했는지,그 이유를 지금은 알 것 같다.

사업은 계속 지지부진했다. 약국을 운영해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직원들 월급을 주기도 벅찼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제품이 미국 교민들 사이에 꽤 인기가 있었는데 이상한 소문이 퍼진 것이다. 피부에 후유증이 남는다,옥살이를 한 사람이 만든 물건이라 믿을 수 없다…. 이 문제를 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악소문일수록 전파속도가 빠른 법이다. 나는 대사관으로 가서 미국 비자 신청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벽에 부닥쳤다.

“당신은 국가에 내야 할 벌금을 아직 완납하지 않았소.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출국할 수 없습니다.”

앞이 캄캄했다.

“하나님,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미국에 나가는 것입니다.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것을 주님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도와주십시오.”

벌금분납 편의를 봐준 사람을 찾아가 애원했다. 그 분이 내 신원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미국행이 결정됐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면세구역에 들어서는 순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장로님 한 분이 인사를 건네왔다.

“김 회장님,어디 가십니까?”

그런데 내게는 그 인사가 이렇게 들렸다.

“김 회장님,성경은 갖고 다니십니까?”

                                                                                      정리=임한창기자 ?clim@kmib.co.kr

 

 

 

[역경의 열매―김광석⑺] “자네 십일조 생활은 하고 있는가?”


“성경을 갖고 가십니까?”

장로님의 인사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미국에 간다는 사실에 흥분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것이다. 지금까지 난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외국 관광은 상상도 못했다. 오히려 외국에 다니며 돈 쓰는 사람들을 증오했었다.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때 하루에도 몇번씩 머리 위로 비행기가 날아갔다.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지금 네 꼴이 도대체 뭐냐. 네가 쌓아놓은 명예와 부는 사상누각일 뿐이다. 이 불쌍한 사람아. 외국 구경 한 번 못가보고 이렇게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말았느냐.”

그때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었다.

“하나님,저도 외국에 한 번 가게 해주세요. 그러나 단순한 관광은 싫습니다. 목적이 분명한 여행을 보내주세요.”

1986년 미국에서 제품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이것은 분명히 기도응답이었다. 그런데 성경도 챙겨오지 않다니…. 비행기 안에서 계속 울었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 이상한 눈빛으로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하나님,저를 용서해주세요. 제가 이렇게 사특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미국에 보내주셨는데 성경도 못 챙겨온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드디어 미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나를 맞은 사람은 대학 동창인 이희종 장로였다. 그는 1970년 미국으로 이민가 그곳에 삶의 둥지를 틀었다. 한때는 직장암에 걸려 사경을 헤맸으나 기도로 나음을 받고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몇년전 한국을 찾아와 내게 성경을 사주며 전도한 적도 있었다.

“여보게 친구,예수를 만난 후 인생이 완전히 변했다네. 직장암도 기도로 나음을 받았어. 하나님이 고쳐주신 것이야. 자네에게 예수를 소개하기 위해 한국에까지 날아온 걸세. 교회에 함께 가세.”

당시에는 친구 권유에 코웃음을 쳤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앙 안에서 형제가 돼 먼 이국땅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고깔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나타난 이 장로의 모습은 마치 천사 같았다. 우리는 사흘 동안 함께 지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초신자인 내게 신앙생활의 많은 부분을 가르쳐 주었다. 여행 마지막날 그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광석이,자네 십일조 생활은 제대로 하고 있는가?”

말문이 꽉 막혔다. 사실 나는 십일조를 하고 있지 않았다. 아픈 곳을 정면으로 찔러대는 친구가 좀 야속했다. 대답이 없자 친구가 다시 말했다.

“십일조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는 사람일수록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해야 한다네. 물질의 주인은 어차피 하나님이야. 그러므로 돈을 벌려면 돈의 주인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네.”

나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한달에 한번씩 십일조를 하면 액수가 너무 커서 망설일 수도 있을거야. 그러니 매주 십일조를 드리도록 하게. 10분의 1보다 좀더 드려도 괜찮아. 나랑 아예 약속을 하세. 앞으로는 십일조를 철저히 하겠는가?”

“응.”

나는 엉겁결에 약속을 하고 말았다. 친구의 논리적인 설득에 도저히 반기를 들 수 없었다.

                                                                                       정리=임한창기자
hclim@kmib.co.kr

 

 

 

 

 

 

 

   [역경의 열매―김광석⑻] “너의 십일조로 나를 시험하라”


이희종 장로는 철저한 십일조를 강조했다. 사업 성공의 지름길은 십일조라고 단언할 정도였다. 엉겁결에 십일조 약속은 했지만 마음이 썩 편치는 않았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친구와 이미 약속해버린 걸….

내 여행 목적은 분명히 제품 설명이었다. 이 장로와 헤어져 시카고에 도착했다. 신라식당에 한인 여성 200여명이 모였다. 그들은 참존화장품의 기능에 대해 서릿발 같은 질문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한 여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참존화장품이 약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번 증명해보세요.”

그때 하나님께서 퍼뜩 지혜를 주셨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참존은 약용입니다. 약용 중에서도 최고의 약용입니다. 이 제품을 쓰면 처음에는 좋아지다가 나중에는 나빠진다고 악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옳지 않은 말입니다. 우리 제품을 사용하시면 처음에는 좋아지다가 나중에는 놀라울 정도로 더 좋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교민들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다. 그들은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세미나를 계기로 우리 제품의 판매망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다.

미국 출장은 대성공이었다. 제품 판매량은 점점 늘어갔다.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는 한 지인이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김 사장님은 크리스천이시지요? 혹시 십일조를 하고 계신가요?”

나는 아주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물론입니다.”

그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업하는 사람이 온전한 십일조를 하기란 쉽지 않아요. 김 사장님은 십일조로 하나님을 한번 시험해볼 자격이 있군요.”

하나님을 시험한다? 그건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한단 말인가. 이런 무례한 표현을 함부로 해도 되는 것인가. 그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하나님을 시험한다고 했나요?”

“예,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을 한번 보세요. 그곳에 해답이 있을 겁니다.”

그가 돌아간 후 얼른 성경을 펼쳐 말라기 3장 10절을 찾아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곳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라’고 한 말씀이 기록돼 있었다. 1984년 정초에 꾸었던 꿈이 퍼뜩 떠올랐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김광석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리고 머리에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동안은 사랑의 매였다. 얼마나 힘들었느냐. 이제부터 네 양식을 재겠다.”

주위의 많은 사람이 “나도요”라고 외쳤으나 하나님은 “넌 아니야”라고 말씀하셨다. 그 신비로운 꿈에 등장한 ‘양식’이라는 단어가 바로 이곳에 기록돼 있었던 것이다.

                                                                                      

 

 

  [역경의 열매―김광석⑼] ‘10의 2조’ 드린후 사업 급성장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한다? 그것은 무서운 게임이었다. 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양식’이란 바로 십일조를 가리킨 것이었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을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다. 말라기 3장 10절의 말씀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안을 했다.

“하나님,제가 다음주에 10의 2조를 드리겠습니다. 제 사업이 지금 어렵다는 것을 주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그 대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10의 2조를 드리는 대신 다음달 매출액을 배로 늘려주셔야 합니다. 저는 성격이 좀 급한 편입니다. 당장 다음달에 증거를 보여주셔야 합니다.”

다음주 예배 때 10의 2조를 드렸다. 그건 하나님과 나만의 은밀한 약속이었다. 아니,한 천진난만한 초신자가 하나님을 상대로 겁도 없이 거래한 것이었다.

“하나님,분명히 보여주셔야 합니다. 약속시한은 정확히 한달입니다. 배의 매출을 책임져주십시오.”

10의 2조를 드린 후 매출액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실 것으로 믿고 주일마다 어김없이 10의 2조를 드렸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대리점을 비롯해 외국에서 갑자기 주문이 쇄도했다. 직원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공장은 24시간 가동됐다.

“어,이게 아닌데. 이건 감당하기 좀 벅찬데….”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주문에 거의 혼이 빠졌다. 그리고 월말에 직원들과 함께 매출액을 계산해보았다. 전월까지 평균 매출은 1억원이었다. 그런데 그 달에는 매출이 무려 8억원이었다. 배를 요구했더니 여덟배를 주신 것이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하나님,이제 알았어요. 더 이상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을 겁니다. 너무 많은 축복에 제가 정신을 차릴 수 없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사업은 급성장했다. 매출은 계속 상승곡선을 그렸다. 국내외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말라기 3장 10절 말씀이 얼마나 정확한 예언의 메시지인가를 체험했다. 어차피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소유를 잠시 내가 위탁받았을 뿐이다.

1989년 12월 31일. 내게는 아직도 4억3000만원의 벌금이 남아 있었다. 한달에 1000만원씩 43개월 동안 갚으면 된다. 십일조 시험 사건 이후 사업이 번창했기 때문에 벌금을 일시에 갚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4억3000만원을 한꺼번에 완납해버렸다. 법원 직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김 사장님,1000만원씩 43개월 동안 내셔도 됩니다. 4억3000만원의 이자만 해도 얼맙니까. 일을 좀 지혜롭게 처리하세요.”

“아닙니다. 완납하겠습니다. 80년대의 비극은 이것으로 모두 끝났습니다. 90년대는 정말 새롭게 맞고 싶습니다.”

몸속의 혹 하나를 제거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해일처럼 가슴에 밀려왔다. 주님,감사합니다. 제게 이런 기쁨을 주시다니요. 저를 이토록 사랑하시다니요. 아무 공로도 없는 저를 이렇게 붙잡아주시다니요. 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흫러내리고 있었다.


 

 

 

 [역경의 열매―김광석 ⑽] 물로 된 화장품 ‘클린싱 워터’ 첫 생산


말라기 3장 10절 말씀이 확실하게 증명된 셈이다.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한다? 그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성경에 분명히 그렇게 나와 있는 것을 어찌하랴. 나는 10의 2조를 드리면서 매출이 배로 늘어나길 기도했다. 그런데 매출이 8배로 증가했다. 그것은 신상품 덕분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일본 미스비시백화점을 들렀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주 신비로운 화장품이 있었다. 물로 된 ‘클린싱 워터’라는 것이었다. 끈적거림이 전혀 없는 제품이었다. 나는 무릎을 쳤다.

“바로 이것이다. 이런 제품을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

6개월의 연구 끝에 국내 최초로 클린싱 워터를 생산했다. 그러나 주위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물이 무슨 화장품이냐. 현대판 봉이 김선달식 발상이다. 팔릴 제품을 만들어야지. 연구비만 날리게 생겼군.”

그러나 하나님은 끊임없이 나를 격려했다.

“국내에서 처음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장성이 있다. 강하고 담대하라. 끝까지 밀고 나가라.”

나는 30만개의 샘플을 만들어 보급했고 그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 덕분에 4억3000만원의 벌금을 한꺼번에 완납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참으로 오묘했다. 하나님은 항상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게 하셨다. 나는 국민교육헌장과 비슷한 창업이념을 만들어 매일 그것을 묵상했다.

“참존은 부유한 대한민국을 위해 창업한다….”

빚을 갚기 위해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돈을 벌어 호의호식하기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은 더욱더 아니었다. 1990년대부터 비로소 흑자인생이 시작됐다. 사업은 탄력을 받아 일취월장했다. 예수를 믿으니 두려울 것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혹독한 시험을 통해 나를 연단하시고 복을 들이부어주셨다.

‘만약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가정을 하면 소름이 오싹 끼친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기는 것을 썩 좋아하던 사람이다. 신앙이 없었더라면 세속의 탁류에서 지금도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가 가정을 잘 지켜줘 별다른 시련이 없었다.

우리의 결혼은 아주 극적이었다. 나는 성균관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스카라극장 앞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때 하동의 어머니로부터 호출명령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내게 절대적이 존재였다. 어머니는 아주 고압적인 자세로 말씀하셨다.

“너도 이제 장가를 가야 한다. 며느릿감으로 세 여자를 보아두었다. 차례차례 만나보거라.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인쇄소집 딸이 가장 좋아보인다.”

난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미 교제하던 여자가 서울에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전 지금 사귀는 여자가 있어요. 다음에 그 여자를 데려오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데리고 살 여자를 고르는 거잖아요.”

이 말이 결정적으로 어머니의 심사를 건드렸다.

“알았다. 7남매의 맏이란 놈이 저만 생각하는구나. 당장 서울로 올라가거라. 우리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다. 많이 배운 너는 잘살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뭐냐? 너무 억울하다. 섬진강에 빠져 죽는 수밖에 없겠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리=임한창기자 hc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