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김광석] ⑴~(5) |
[등록일시]:2005-01-09 오후 3:24:22
[역경의 열매―김광석 ⑴]
무허가 피부약 판매로 산속 도피
한계상황.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이었다. 약국에서 제조한 피부약을 다른 약국에 판매하는 것이 이렇게 큰 죄일 줄은 정말 몰랐다.
1979년 겨울. 나는 경남 양산의 한 사찰에 도피해 있었다. 내가 조제한 약을 다른 약국에 판매한 죄로 무려 8억3,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피신한 것이다. 산속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그리고 살을 도려내듯 차가웠다. 밤만 되면 산짐승처럼 꺼이꺼이 울부짖었다. 억울했다. 거액의 벌금은 너무도 가혹한 조치였다. 국민의 건강생활에 기여한 점을 감안한다면 경고조치 정도로 끝낼 수도 있지 않은가.
반공연맹중부지부장 중구새마을협의회장 마을금고연합회장 등을 맡아 많은 봉사를 해왔던 공로는 무슨 소용인가. 새마을훈장 협동장을 받은 나를 이 정부가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 것인가. 좋은 약을 만들어 환자를 낫게 한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인가. 이건 정말 억울하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솟구쳐올랐다. 그때 암자의 작은 골방에 지저분한 신문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이미 빛이 바랜 몇달 전 신문이었다. 누런 종이 위에 고딕체의 기사제목이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무허가 약사 벌금 8억3,000만원 선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와 비슷한 형편에 처한 사람이 또 있었던 모양이었다. 신문을 집어들고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그런데 그 기사는 바로 내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신문을 이 방에 갖다놓은 모양이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섬세하게 조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나를 악기처럼 다루는 그 조율사는 누구인가?
“하나님.”
암자에서 나는 처음으로 하나님을 불렀다. 그때 나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
“하나님, 지금 저를 시험하고 계시는 거지요? 시험을 능히 이겨낼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암자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나는 그동안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을 설득해 개종시키곤 했다. 그래서 아무도 선뜻 내게 기독교를 말하지 않았다. 이런 내가 하루아침에 하나님을 찾은 것은 기적이었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지은 죄악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다. 그 안으로 급하고 강한 바람이 무수히 관통했다. 분노 억울함 증오 서러움 등이 작은 입자로 변해 무수히 방출됐다. 아, 그 시원함…. 세상의 모든 걱정을 망각의 강으로 흘려보냈다. 가슴이 텅 비었을 때 그곳에 평강과 희락이 채워졌다. 기도생활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이제부터 나도 예수를 한번 잘 믿어볼까.
문득 정신을 차렸다. 내 몸은 눈물과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는 말끔하게 걷히고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이 충만했다. 이제 정면돌파 인생을 살자. 더 이상 도피인생을 살아선 안된다. 그래, 언제까지 도망만 다닌단 말인가. 당당하게 자수하자. 하나님께서 내게 분명히 더 좋은 선물을 주실 것이다.
암자에서 내려와 경찰서로 향했다.
“제가 바로 김광석입니다.”
경찰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 내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이지현기자 jhlee@kmib.co.kr
[역경의 열매―김광석 ⑵]
다니던 불교 집회서 기독교 개종선언
56일 동안의 영등포교도소 생활은 내게 참 좋은 인생의 약이 됐다. 그동안의 교만을 낱낱이 회개하는 기회였다. 그리고 마음속에서는 한 가지 소망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출소하면 교회에 열심히 나가리라. 나도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고통스런 오늘을 아주 멋지게 간증하리라.”
교도소 생활은 아주 평안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불교를 깊이 믿으시던 어머니의 성화가 빗발쳤다. 어머니는 출소한 나를 불러앉히고 거듭 강조했다.
“한 가정이 두 종교를 믿으면 되는 일이 없는 법이다. 어미가 공을 들였기 때문에 네가 풀려난 것이다. 오늘부터 벌금 액수를 줄여달라고 다시 기도를 시작할 것이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집회처를 찾아갔다. 그 건물은 내가 그 모임의 불교 신도회장을 맡았을 때 건축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내가 나타나자 모두 손을 꼭 잡고 걱정을 해주었다. 그러고는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좀 들려달라고 말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신도들을 한번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도무지 기쁨의 흔적이 없었다.
“여러분, 나는 이제부터 하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그것은 가히 폭탄선언이었다.
“이번에 제가 큰일을 치르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어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삶을 원격 조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어요. 오직 절대자만이 불변의 진리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기독교인들은 표정이 밝습니다. 그들은 찬양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없어요.”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어머니는 거의 기절할 정도로 흥분돼 있었다. 아들이 사람들 앞에서 개종을 선언한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으신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참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손짓을 하시며 ‘너의 양식을 준비해두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시 인자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위로해주셨다.
“아들아, 수고했다. 지금까지 네게 닥친 고난은 사랑의 매였느니라. 이제부터 네 삶은 내가 책임진다.”
나는 엉엉 울었다. 그동안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나는 정말 울고 있었다. 베개는 눈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로 받아들여졌다.
“하나님,감사합니다. 제 삶을 인도해주시옵소서.”
그날부터 잠버릇도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그 동안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새우잠을 잤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수면을 취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이었다.
1984년에 나는 드디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화장품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회사명을 ‘부한화장품’으로 정했다. 그속에는 ‘부유한 대한민국’을 꿈꾸는 나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화장품명을 참존화장품으로 정했다. 거기에는 ‘참 좋다’는 뜻과 ‘매력지대’(Charm Zone)라는 뜻이 포함돼 있었다. 가진 것이라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뿐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무모하기 짝이 없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주여,저는 매니저일 뿐입니다. 사장은 하나님이십니다.”
임한창기자 hclim@kmib.co.kr
[역경의 열매―김광석⑶]
그때의 시련은 하나님의 시험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기업을 시작했다. 자본이 풍부한 상황에서 시작해도 어려운데 나는 벌금 8억3000만원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약국 운영 수익금으로 벌금을 내가면서 회사를 운영했다. 현실은 홍해처럼 암담했으나 마음속에는 평강과 희락,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그러나 이런 자신감에 함정이 있었다. 제품을 생산하면 곧바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 줄 알았으나 상황은 반대로 흐르고 있었다. 회사의 최소 운영비는 7200만원이었으나 매출은 고작 300만원이었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회사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나를 지금 시험하는 것이야. 내가 이 시험을 능히 이겨내리라.’
내가 예수를 믿고보니 주변에 기독교인들이 참 많았다. 특히 대리점 사장들 중에 기독교인이 많았다. 하루는 회사에서 나오는 데 한 여직원이 나를 불렀다.
“사장님,차를 좀 태워주세요.”
“어디로 갈 건가요.”
나는 약간 불쾌한 표정으로 승낙했다. 그러자 여직원은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초동에 가는데 사장님께 꼭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 분이 있어요.”
그녀는 서초동에 있는 서울교회로 나를 인도했다. 이요한 목사님이 아주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셨다.
“김 사장님,그 동안 성경공부를 해보신 경험이 없으시지요? 오늘부터 저와 함께 성경공부를 합시다. 성경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아마 놀라시게 될 겁니다.”
“그렇게 하지요.”
엉겁결에 대답했다. 이 목사님은 성경의 줄거리를 들려주면서 역사적인 사건들과 성경을 절묘하게 연결시켰다. 그것은 정말 신비로운 발견이었다. 목사님 말씀에 정신없이 빨려들었다. 성경 말씀이 꿀송이 포도송이처럼 달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점심 때 시작한 성경공부는 해가 질 때에야 끝났다. 지루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김 사장님,성경공부가 참 재미있지요? 내일 오후 2시에 다시 오세요.”
“꼭 그렇게 해주십시오.”
이튿날 택시를 타고 서초동으로 향했다. 그날 따라 교통체증이 아주 심했다.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성경공부에 맞추기 위해 샛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골목길에 한 사람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나타났다. 그는 내가 예수를 믿기 전 나와 가장 친했던 사람이었다. 몇년 동안 소식이 끊겼는데 골목에서 그를 만난 것이다. 그 친구와는 가장 멋진 세상적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그만 소리를 지를 뻔했다.마음속에서 두 목소리가 싸우기 시작했다.
“성경공부를 택할 것이냐,아니면 친구를 택할 것이냐. 이제 너의 태도를 분명히 밝힐 순간이 왔다. 어서 선택하라.”
자동차에서 내리면 세속적 친구를 택하는 것이요,그대로 지나치면 신앙을 택하는 셈이었다. 성경공부는 다음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 친구를 지금 만나지 못하면 영원히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나님도 지금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다. 2개의 마음이 격렬하게 싸움을 벌였다.
[역경의 열매―김광석⑷]
목사님과 1대1 성경공부 ‘구원 확신’
‘친구냐,성경공부냐.’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세속과 성결,불신앙과 신앙,세상과 교회,인간과 하나님…. 이것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만약 자동차에서 내려 친구를 만나는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다시 세속의 탁류에 휩쓸리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원래 의도대로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미했다.
“기사님,속도를 좀 높여주세요.”
친구가 자동차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며 나는 그를 외면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우연한 사건을 통해 나를 시험하셨다. 왜 하필 그 시간,그 장소에 그 친구가 나타난 것일까? 더구나 그곳은 비좁은 골목길이었기 때문에 자동차가 서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건을 우연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오묘한 시험이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성경공부를 선택했다. 아,얼마나 위험한 순간이었던가.
조금 늦게 이요한 목사님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5시간 동안 1대1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기독교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비밀들이 양파껍질 벗겨지듯 자연스럽게 풀렸다. 성경이 그토록 과학적이고 무오한 줄은 정말 몰랐었다. 이 목사님으로부터 5시간씩 총 15시간 동안 성경을 공부했다. 목사님과 1대1 성경공부를 한다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목사님은 사흘간의 성경공부가 끝나던 날 조용히 나를 불렀다.
“김 사장님,축하 드립니다. 이제는 기독교인으로서 자격을 갖춘 셈입니다. 그러나 제가 한 가지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 정직하게 대답해주셔야 합니다.”
나는 바짝 긴장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뭐 이리 복잡한가,이제 와서 뭘 또 묻는단 말인가? 일단 목사님의 질문에 귀를 기울였다.
“김 사장님,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실히 믿습니까?”
“100% 믿습니다. 저는 미지근한 것은 딱 질색입니다.”
“이제 김 사장님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목사님은 내 손을 잡고 축하해주셨다. 그러나 마음속에 풀리지 않은 한 가지 질문이 있었다.
“목사님,궁금한 것이 있어요.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뭐하러 새벽기도 산기도 철야기도를 하는 것입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성경을 모두 믿으면 일단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인간은 아주 나약한 존재랍니다. 그래서 처음 마음을 끝까지 지속하기가 그리 쉽지 않아요. 인간의 삶이란 끊임없는 시험의 연속입니다. 그 시험에서 이기려면 항상 영혼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천국에 갈 때까지 긴장을 유지해야 하지요. 새벽기도 성경공부 영성훈련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이제 아시겠지요?”
목사님의 설명은 항상 명쾌했다. 내가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들을 정확하게 가려내 설명해주었다. 목사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우리는 계속 신앙을 확인해야 합니다. 내 자신의 삶은 주변 사람들이 확인시켜줍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친교를 통해 거듭난 기독교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그래서 교회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날부터 내 인생은 전혀 새롭게 변화됐다.
[역경의 열매―김광석 ⑸]
어머니 별세전 전도못한 나는 불효자
목사님께 집중적으로 성경을 배운 후 마음이 담대해졌다. 지금까지는 집시신자였으나 이제는 정착할 차례였다. 여러 교회를 순회하며 어정쩡한 신앙생활을 즐길 수는 없었다.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리라. 그동안 수많은 기독교인을 불교로 개종시킨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남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리라. 교회에 정식 등록을 했다. 아내는 주일마다 양복을 챙겨입고 외출하는 나를 주시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여보,혹시 요즘 교회에 출석하지 않나요?”
“맞소. 내가 당신의 신앙생활을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당신도 내 신앙생활을 간섭하지 말아야 하오.”
아내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아시면 벼락을 칠 텐데요…종교건물까지 지어서 바친 사람이 갑자기 웬 교회입니까? 제발 정신을 좀 차리세요.”
아내의 핀잔을 무시하고 예배당으로 향했다. 도둑고양이처럼 가족 몰래 교회에 출석한지 2개월여가 지났다. 하루는 어머니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불러세웠다.
“너 요즘 교회에 다닌다면서?”
“예,그렇습니다. 저도 이제부터는 제가 선택한 종교를 믿겠습니다. 어머니가 참견하실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표정이 무척 우울했다.
“한집에 두 종교를 믿는 사람이 모여있으면 되는 일이 없단다. 내 나이 이제 예순 여덟이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니. 내가 죽으면 그때 네 마음대로 믿거라.”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신앙은 타협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의 문제입니다. 진리가 둘일 수는 없어요.”
어머니는 단호한 내 태도에 놀랐다. 그리고 우리의 논쟁은 계속됐다.
“가만 보니까 네가 요즘 어디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게로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말솜씨가 좋다더니 너도 참 많이 변했다. 그러면 공평하게 우리 두 사람이 모두 각자의 신앙을 포기하자. 그건 동의하겠지?”
“예.”
어머니와 가까스로 합의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어머니는 나를 안심시켜 놓고 종교시설로 향했고 나도 친구를 만난다고 속이고 교회로 향했다. 서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소천하고 말았다. 내가 교회에 출석한 지 6개월만이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나는 몇년 안에 어머니를 교회로 인도할 자신이 있었다.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내가 좀더 담대했어야 했는데,어머니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어야 했는데 내가 참 불효를 했구나.”
전도도 타이밍이 있는 법이다.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일단 나의 신앙생활은 자유를 얻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순순히 교회에 나갈 것으로 보였던 아내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아내의 반대는 의외로 강력했다. 신앙문제로 부부가 서로 얼굴을 붉혀갈 무렵 아내가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여보,나도 당신을 따라 교회에 출석하겠어요.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우리가 출석할 교회를 내가 선택하게 해주세요.”
임한창기자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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