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의 성경번역
글 □ 존 폭스 성경 번역의 사명을 자각한 틴데일 1483년 윌리암 틴데일이 태어났다. 그는 생각이 깊고 학문을 좋아하는 젊은이로 자랐다. 어린 나이에 벌써 옥스포드의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 캠브리지로 옮겨가서 그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완성한 그리스어의 대가 에라스무스와 사귀었다.
틴데일은 재빨리 놀라운 새 책(성경)과 친숙해졌다. 그는 처음에는 성경을 학자의 호기심에서 집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곧 호기심 이상의 더 많은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읽고 또 읽었다. 한층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는 중에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깊이 감동 받았다. 틴데일은 자기 혼자서만 이 보물을 간직할 수 없었다. 그는 사제들과 함께 토론을 하면서, 그들에게 성경을 연구하라고 권고하였다.
어느날 열띤 토론 중에 그는 성경 번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고 선언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틴데일의 반대자들은 “하나님의 법보다는 교황의 법이 더 좋다.”고 말했다. 그러자 틴데일은 일어나서 소리쳤다. “나는 교황과 교황의 모든 법률을 무시한다. 나는 언젠가는 영국을 개척해 나갈 청소년들이 교황보다 성경을 더 잘 알도록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다면 그렇게 하고 말겠다.”
틴데일은 그리스 원어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런던의 주교 쿠쓰버트 톤스탈에게, 궁전에서 그 작업을 수행하도록 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비록 주교가 학문을 좋아하긴 했지만, 성경번역을 지원해 줄 뜻은 없었다. 그래서 궁전에 그러한 일을 할 방이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하였다. 그러자 틴데일은 런던으로 가서 부유한 상인 흠퍼리 몬마우쓰의 집에 거의 1년 동안 묵으면서 번역을 조용히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 1년 동안에 그는 성직자들의 박해로 위협을 받았다. 루터의 작품을 소지하거나 읽거나 복사하는 행위로 인해, 감옥에 끌려가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성경번역은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이었다. 그는 슬프게 말했다. “런던의 주교 궁전뿐만 아니라, 영국 도처에서 성경번역을 할 만한 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성경 밀수꾼 그러나 틴데일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새 인쇄술로 찍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영국 국민들에게 보급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인쇄비용을 조용히 계산해보았다. 만일 그의 작품이 영국에서 완성될 수 있다면, 아니 망명생활을 하면서라도 완성할 수 있다면, 그 생활도 기꺼이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1524년에 그는 다시는 보지 못할 조국을 떠나 독일 함부르크에서 힘들고 고달픈 망명생활을 하면서 번역에 착수했다. 부지런히 일해서 다음 해에는 신약성경과 그가 쓴 인쇄물 원고들을 콜로그네 시의 한 인쇄업자에게 조판하도록 넘겨주었다.
그러나 그 희망이 실현될 즈음 급한 소식이 그에게 전해졌다. 마음이 산란한 상태에서 그는 급히 인쇄소로 달려갔다. 모든 출판물들을 운반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챙겨가지고 함부르크를 떠났다.
코췌레우스라는 신부가 인쇄업자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던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술을 많이 사주고 취하게 한 다음에, 마침내 깜짝놀랄 비밀을 얻어냈다. 영어 신약성경이 실제로 인쇄소에 들어와 있고, 거의 완성되어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음모에 놀란 그 신부는, 즉시 그 사실을 시의 행정관에게 보고하여 인쇄물을 압류하도록 하고, 이러한 사태를 런던의 주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사자를 영국으로 보냈다. 그렇게 한 이유는 틴데일이 갑작스럽게 잠적했기 때문이었다. 귀중한 인쇄물을 챙겨 틴데일은 웜즈 시로 피신하였다. 그곳은 루터파와 개혁주의 신앙의 열심이 최고조에 달해있는 곳이었다. 마침내 거기서 그는 그의 계획을 완수하였다. 1526년. 처음으로 영어로 인쇄된 신약성경을 완전하게 생산해 낸 것이다.
코췌레우스가 제공한 정보가 알려져 책이 감시를 받게 되었기 때문에 틴데일은 처음보다 더 작은 크기로 책을 편집하여 인쇄하였다. 이렇게 제본된 성경책은 좀 더 쉽게 숨길 수 있었다. 그는 번역 성경을 영국행 배에 선적하기 시작하였다. 상자 속에, 맥주통 속에, 옷보따리 속에, 밀가루 자루 속에….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여 성경책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보냈다. 항구에서 성직자들이 철저한 감시했지만 많은 성경책들이 안전하게 양도되어 나라 방방곳곳에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다. 불 태워도 또 늘어나는 틴데일 성경책 적개심에 불타는 성직자들 사이에 큰 소동이 벌어졌다. 몇 개월 걸려 한 권 베껴쓰는 성경책이라면 부자들 외에는 살 사람이 없지만, 틴데일의 성경책은 골치거리였다. 하루에도 수백 권씩 인쇄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격도 모든 사람이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실로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였다. 코췌레우스의 고발로 이들 성직자들은 적개심이 일어났다. 성경책을 적발하기 위해 임명된 관리들이 철저하게 항구들을 감시했다. 수천 권의 성경책들이 이렇게 해서 곳곳에서 적발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런던에 있는 성 바울의 십자가 밑에서 불태워졌다. 그러나 틴데일은 성직자들의 그따위 방해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성경책이 없어진 곳에 다시 수천 권의 성경책을 공급하였다. 그는 인쇄기가 그들 모두를 무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책을 태우면서 내가 추구하고 있는 다른 중요한 것들은 태우지 못했다. 만일 그들이 나를 불사른다면 책을 태우지 않아도 될텐데….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또한 그렇게 되겠지… .” 책을 영국으로 반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교회의 관리들은 곧 깨닫게 되었다. 그 때 런던의 주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었다. 그는 안트와프의 무역상 어거스틴 파킹톤을 찾아가서 바다 저쪽에 있는 영어 성경책을 모두 사버릴 수는 없겠는지 물었다. 파킹톤은 틴데일의 은밀한 친구였다. 그래서 그는 대답하였다. “전하, 전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영국 안에 있는 어떤 상인보다도 제가 그 일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돈을 주고 사야만 하는 일이니까, 돈만 내시면, 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제가 전하를 위해서 안 팔리고 있는 나머지 성경책을 몽땅 사서 전하께 가져갈 수 있습니다. 자신있습니다.” “좋은 생각이오, 파킹톤씨.”하고 주교는 말했다. “당신은 나를 위해서 서둘러서 그것들을 사 오시오. 그것들을 몽땅 사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든지 대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 책들은 아주 몹쓸 책이니까요.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없애버릴 겁니다. 성 바울의 십자가 밑에서 태워버릴 겁니다.” 그리하여 구매 계약이 체결되었다. 주교는 책을 받았고, 파킹톤은 감사와 칭찬을 받았고 틴데일은 돈을 벌었다. 이 후에 새로 인쇄된 신약성경은 더많이 발간되어 영국으로 빨리 보급되었다. 그래서 주교는 파킹톤에게 다시 사람을 보내어, 책이 더 많아졌으니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전하”하고 상인은 대답하였다. “정말로 최상의 방책을 말씀 드리자면, 그들이 찍어내고 있는 활자판을 몽땅 사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번 충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적들이 지적한 틴데일 성경의 오류
틴데일의 적들은 조판으로 계속해서 찍어내는 신약성경을 없앤다는 것이 그들의 능력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톤스탈 주교는 다시는 책을 사서 태우는 일을 하지 않는 대신에 그것들이 형편없는 책이라고 설교하였다. 2,000가지가 넘는 오류들을 발견해 냈다고 주장하는 설교를 끝내고는 들고 있던 책을 활활 타고 있는 불 속에 집어던졌다. 토마스 모어경은 영국 내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그가 주교의 뒤를 이어 공격을 하였다. “틴데일의 성경책에서 오류를 찾는 것은 바다 속에서 물을 찾는 것처럼 쉽다. 그물처럼 온통 구멍이 숭숭 나있는 옷을 기워 입기보다는 새 천으로 아예 옷을 새로 짓는 것이 쉽다. 틴데일의 성경책은 수정하거나 교정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쁘다” 틴데일은 이러한 공격에 대해서 분연히 답하였다. 확실히 그를 반대하는 자들은 대여섯 가지의 오역을 가지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 극히 사소한 일을 비난했을 뿐, 토론에서 우월한 입장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그러나 영국 곳곳의 각기 다른 강단으로부터 이러한 공격이 진행되었고 사람들은 틴데일의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의 친구들은 영국에서 더욱 증가하고 있었다. 그들은 틴데일의 성경책을 할 수 있는 한 잘 방어해 냈고,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다. 라티메르의 옹호 1529년에 라티메는 “일어날 수 있는 일(On the Card)”라는 유명한 설교를 캠브리지에서 하였다. 이 설교에서 그는 성경을 번역하여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도록 한 공로를 찬양하여 많은 관심을 끌었다. 수사(修士)들은 분노하였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이론이 정연하여 수사들은 답변하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그들은 수사 버킹함을 내세웠다. 근거없는 무식한 궤변에만 능한 버킹함의 무지함을 개혁주의자들은 비웃었다. “그리하여 …” 하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띤 채 설교자는 물었다. “그 성경에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했는데, 그러한 말을 농사짓는 사람이 만일 읽게 되면, 농사일을 그만두게 되기 쉬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씨는 어디에 뿌리고, 추수는 어디에서 합니까? 여러분, 또 그와 마찬가지로 만일 빵 굽는 자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전부 부풀게 하였느니라’는 말을 읽게 되면 그 자는 누룩을 지나치게 아껴 우리의 건강을 해치게 될 것입니다. 또 단순한 사람이 ‘네 눈이 너를 실족케하거든 빼어버리라’라는 말을 읽게 되면 그는 자제하지 못하고 눈을 뽑아버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온 영국에 맹인들이 가득 찰 터이니, 그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고 국왕께 큰 손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게 되면 온 영국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다음 주 일요일에 성 에드워드 교회에는 군중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모여들었다. 라티메르가 수사의 설교에 답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그 노인은 강단으로 올라갔다. 물을 끼얹은 듯이 고요한 중에 설교가 시작되었다. 버킹함과 그의 일당이 캠브리지에 나타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상대방을 납작하게 만든 논박이었다. 그들의 논점이 너무 유치하고 어리석다는 것을 차근차근 진지하게 따져나갔다. 언어의 실질적인 뜻과 비유적인 뜻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이거나, 바보들이라고 그는 말했다. 사용된 이미지와 이미지가 나타내고자 하는 사물 사이에 언어의 진정한 뜻과 비유적인 뜻을 구별할 수 있어야 했다. “가령…”하고 그는 강단 앞 좌석에 앉아있는 그의 반대자를 부끄럽게 힐끗 쳐다보고서, 그는 계속하였다. “만일 우리가 여우 한 마리가 수사의 후드를 걸치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면, 그 그림을 여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활하고 외식하는 자를 나타낸 것으로서 흔히 그런 복장을 입고 위장되어 있는 요물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토론에서 많은 사람들이 개혁주의자들의 편에 서게 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날이 갈수록 영국 여론의 물결은 너무나 강력히 국민들의 성경을 옹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억제할 수 없었다.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경책은 곳곳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고 읽혀지고 있었다. 나이키 주교는 대주교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편지를 썼다. “나의 능력이나, 어떤 신령한 사람의 능력으로도 이제 그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일이 좀 더 계속된다면 우리들 모두를 파멸시킬 것입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마침내 성경의 길이 활짝 열렸다. 왕도, 교황도 성경 전파의 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과오와 미신과 영혼을 짓누르는 압제의 너무나도 긴긴 영국의 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틴데일 체포 음모 그러나 틴데일 자신은 그날을 보지 못했다. 여러 해 동안 그를 체포하려는 노력이 진행되어 왔지만, 모든 계획들이 실패로 돌아갔었다. 그러나 1534년 말에 새로운 음모가 그의 목숨을 노렸다. 이 비열한 목적으로 파견된 사람들은 전에 왕이 부리던 사람들보다 더 유능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실패가 거의 없는 악당들이었다. 그들은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외모가 아주 훌륭했지만, 성격이 못된 핸리 필립스였다. 그는 신사의 역할을 담당했다. 또 한 사람은 스테포드 수도원의 수도사로서 일을 추진하는 자이며 필립스의 하인 역할을 맡은 가브리엘 돈이었다. 그들은 일을 맡긴 자들로부터 많은 돈을 받았다. 처음에 돈은 루베인으로 갔고 여기서 그는 필립스를 만났고 두 사람은 안트와프로 갔다. 이 무렵 틴데일은 안트와프의 영국상인 포인즈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성경을 사랑했고 틴데일의 다정한 친구였다. 필립스는 이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손쉽게 알아냈다. 공손한 태도로 호의를 가진 것처럼 위장하여 의심없는 노인네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틴데일은 이 비열한 스파이를 주인의 식탁에 종종 초대했을 뿐만 아니라 포인즈씨를 설득하여 그를 하숙생으로 받아들이게까지 하였다. 이렇게 친밀하게 교제를 하면서 필립스는 틴데일의 모든 사생활과 그를 치기 위한 증거들을 수집하였다.
모든 필요한 정보를 다 확보한 뒤에 필립스는 마침내 그 일을 조용히 마무리지을 조치를 강구하였다. 우선 안트와프시 당국을 통하여 그를 체포할 수 있는지 조사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도 얻을 수 없음을 알고는 안트와프 시장에게 아무런 신청도 하지 않았다. 그는 부루셀 궁궐로 갔다. 그곳은 거기서 약 30마일 떨어져 있었다. 그는 부루셀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계략으로 틴데일을 체포하다. 필립스는 그 상인의 집으로 갔다. 자기가 틴데일씨와 함께 저녁 식사를 그곳에서 해도 좋다는 말을 포인즈 부인으로부터 들었다. 그는 그 말에 찬동하고 밖으로 나와서 부루셀궁에서 함께 데리고 온 수사관의 부하들에게 대문간에서 대기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런후에 틴데일의 방으로 올라가서 그에게 40실링의 돈을 꾸어달라고 청하였다. “오늘 아침에 지갑을 잃었어요.”
그 때 필립스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선생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께 저녁을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그 때 문곁에 서있던 수사관들이, 죄없는 희생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틴데일이 나타나자마자 필립스가 그의 등 뒤에서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그들이 체포해야 할 자가 저 사람이라고 신호를 하였다. 틴데일은 안트와프에서 18마일 떨어진 빌보르데 성의 지하감옥에 갇히게 됐다. 그의 모든 책과 글들이 황제의 대리인 수중에 들어갔다.
안트와프에 있는 그의 친구들은 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의 석방을 보장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허사였다. 그가 옥에 갇힌 이후부터 그의 탈옥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가 감옥 관리자에게 쓴 탄원서를 읽으면 불쌍하기만 하다.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기로 되어 있다면, 나의 소유물 중에서 따뜻한 이불을 보내 달라고 부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낫지 않습니다. 이곳 지하실은 병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내 셔츠는 너무 헤어져서, 기울 수도 없습니다. 내 바지를 기울만한 헝겊 한 조각만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형편으로 거의 2년을 보냈다. 이제 틴데일의 적들은 사건을 마무리지어야만 했었다. 틴데일은 이단혐의로 부루셀 궁궐 앞으로 끌려갔다. 변호사의 도움도 거절하고 자신이 직접 자기 변론을 하였다. 그의 재판관은 그들이 별로 들어보지 못했던 진리를 설명할 때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별 확신도 없으면서 그에게 유죄판결을 해야만 했다. 이 일이 생기기 오래 전에 틴데일은 자신에 관해서 예언한 적이 있었다. 영국에 있는 그의 친구들이 핍박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이 나를 불사른다면, 그들은 나의 성경책은 태우지 않을 텐데… . 그 때 했던 예언이 이제 실현된 셈이었다. 틴데일의 순교 1536년 10월 6일, 화요일에 윌리암 틴데일은 형장으로 끌려갔다. 화형 기둥에 결박당했지만, 먼저 목이 졸리고, 그 다음엔 그의 죽은 시체를 불태웠다. 그는 마지막으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주소서.” 그리하여 당대에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 가장 깨끗한 영국 제일의 애국자는 이렇게 숨을 거두었다. 종교개혁자들의 모든 생애를 살펴보아도 윌리암 틴데일의 생애만큼 위대한 삶을 산 위인은 드물다. 그는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주님의 가장 가까운 생애를 보내었다. 그는 은밀한 가운데 선행을 하라고 권고하시는 주님의 뜻을 따라서 처음으로 발간한 신약성경에 그의 이름도 달지 않았다. 그는 왕의 특사 보건에게 말했다. “이곳 황제의 신하들이 성경책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국민들도 번역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출판을 허락해 주십시오. 왕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라면 누가 번역을 하더라도 좋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았으니 하루 이틀밖에 이 땅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저는 즉시 주님의 나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발 앞에 비천한 나 자신을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내 육신은 얼마간의 고통과 고문을 겪으면서 제물이 되겠지요. 내가 무슨 죽음을 당하든지, 그것은 그분의 은혜로운 뜻입니다.” 가난과 고생과 오해가 운명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징역살이와 죽음이 언제나 그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일을 완수하기 위하여 징역살이나, 죽음도 그를 동요시키지 못했고 그의 목숨을 때가 되기 까지는 뺏지도 못하였다.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 선택된 어떤 사람보다도 그는 더 높은 명예를 얻었다. 종교개혁의 모든 영웅들 중에서도 윌리암 틴데일은 가장 명예로운 인물이었다. 틴데일 번역성경의 평가 틴데일 시대 이전의 영어 성경은 번역판을 보고 번역한 작품에 불과했다. 즉, 그것은 라틴 불가타 성서 또는 그보다 더 오래된 라틴어 성경에서 번역한 것이었다.
틴데일은 처음으로 히브리어 원전과 그리스어 원전에서 번역을 시도했다. 그는 옛날 원어를 가지고 진실을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학자와 개역자들이 별로 고칠 데가 없는 완벽하고 고상한 번역으로 그 진실을 구현해 냈다. 따라서 후속 번역판들이 모두 틴데일의 개정판보다도 더 나은 리얼리티를 얻지 못했다. 그의 성경 전편을 통해서 그의 천재적인 특성이 숨결로 남아 있다. 현대의 학자들이 수정해 보려고 해도, 부드러움과 위엄이, 섹슨의 단순성과 장엄함이 조화있게 뒤섞여서 비할 바 없이 완벽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을 정도이다. 그것은 한 인간 즉 윌리암 틴데일이라는 한 인간의 영혼이 부각된 흔적이었다. 신약은 그가 특히 전심전력을 다하여 만든 작품이었다. 그는 고칠 점이 있으면 계속해서 고치고 판을 거듭하면서 출판하였다. 구약은 모세 5경과 역사서와 선지서의 일부만 번역하였다. |
번호 | 제 목 | 기록 | 작성일 |
58 |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John Bunyan) | ||
57 | 윌리엄 틴데일의 성경번역 | ... | |
56 | 프란시스 투레틴(Francis Turretin)의 생애 | ||
55 | 서머나의 폴리캅 | Hyun | |
54 | 로마 카톨릭에서의 50년을 뒤로 하고 | ||
53 | 아이삭 뉴턴(Issac Newton, 1642-1727) | 임현근 | |
52 | 조지 뮐러 | Hyun | |
51 | Rodney (Gipsy) Smith | FB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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