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은 수에즈 운하와 수에즈만(灣)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동쪽은 아카바만(灣)을 사이에 두고 아라비아 반도(사우디아라비아 및 요르단) 및 이스라엘에 각각 접하며, 북쪽은 지중해에 면한다. 지리적으로는 북부와 남부로 크게 2분된다. 북부는 약 1,500m 높이의 엘티 산지에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지중해에 이르는 지역이고 전반적으로 사구(砂丘)로 뒤덮인 사막지대가 전개된다.
남부는 카타리나산(2,637m)을 중심으로 화강암 산지로 뒤덮여 있는데, 이는 홍해(紅海) 연안을 따라 뻗은 아프리카 산지의 연장이다. 정착주민의 대부분은 북부의 지중해·수에즈 운하 연안에 살고 있다.
북부 내륙과 남부에는 베두인족(族)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으며, 특히 이곳에는 유목민과 이스라엘 건국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난 난민이 많이 살고 있다. 토지간척과 관개를 통해 사막지대를 경지화하였다. 또한, 수에즈만 연안의 아부제니마 부근에서 철과 망간이, 아부두르바 부근에서는 석유가 채굴된다.
중앙 남부의 무사산은 시나이산이라고도 하며,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온 모세가 이곳에 도착하여 신(神)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산기슭에는 그리스정교의 성(聖)카타리나 수도원이 있고, 1844년 이곳에서 신약성서의 최고(最古) 사본의 하나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 발견되었고 또 부근의 신전에서는 시나이 문자로 된 비문(碑文)이 발견되었다.
시나이의 어원은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디아어(語)로 달을 의미하는 신(sin)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고대로부터 전략적인 중요성 때문에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근세에는 시나이반도의 영유를 둘러싸고 터키와 이집트가 싸웠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 이집트령으로 인정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시나이반도는 이따금 이스라엘에 점령되었고, 1967년 중동전쟁(中東戰爭) 이래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제4차 중동전쟁 후, 1974∼1975년 병력의 분리협정에 따라 연간 약 500만 t의 산유량을 내는 유전지대를 포함한 반도의 일부가 이집트령으로 되돌아갔다. 그 후 1977년 11월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의 이스라엘 방문과 1978년 9월 미국 대통령 카터가 주선한 캠프데이비드 회담을 통해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1979년 평화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이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시나이반도에서 군대를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1982년 4월에는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완전히 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