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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결단의 순간] 서울대 출신 약사의 비장한 낙향

영국신사77 2007. 3. 6. 15:08
[CEO 결단의 순간] 서울대 출신 약사의 비장한 낙향 [조인스]
김성오 메가스터디 사장, 급전 600만원 빌려 문 연 시골 약국을 기업형으로
‘4.5평 경영’ 온라인서도 통해
이코노미스트


입시 기업의 대명사로 불리는 메가스터디. 유명 강사인 손주은 사장으로 유명한 회사이기도 하다. 손 사장과 함께 국내 최대의 온라인 교육 기업을 이끄는 또 다른 주역이 김성오(49) 사장이다. 그는 이 회사의 중등교육 사업인 ‘엠베스트’를 창업해 5년 만에 매출 230억원의 기업으로 키웠다. 약사 출신으로, 경남 마산의 4.5평 약국에서 출발해 경남권 최대의 기업형 약국을 경영했던 김 사장에게 가장 어려웠던 선택은 무엇일까.
1983년 7월 경남 마산의 교방동. 조그만 상가 건물에 다섯 평도 안 되는 작은 약국이 문을 열었다. 새 주인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온 김성오 약사.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일요일엔 교회에 가야 해 주 6일만 근무한다”는 뜻으로 ‘육일약국’이라는 간판을 올렸다.

서울대 약대를 나온 전도 유망한 25세의 젊은 약사에게 낙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김성오 약사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2푼 이자로 급전 600만원을 빌렸다. 실내 인테리어를 꾸미는 데 200만원, 약장을 채우는 데 300만원을 썼다.

그런데 300만원으론 다섯 평 약장의 절반도 못 채우는 것이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에게 부탁해 빈 약품 박스로 나머지 진열대를 채웠다. “개업하기 위해 어렵게 찾은 곳이 마산의 변두리 교방동입니다. 보증금 없이 월세 70만원짜리 점포였어요. 구멍가게보다 못한 수준의 출발이었습니다.”

빈 상자로 진열대 채우고 개업

그를 울린 것은 자존심이었다. 마산 출생으로 서울대 약대를 나온 그에게 ‘4.5평짜리 약국 주인’은 너무 초라한 출발이었던 것. 80명이던 동기생 중 지방에 약국을 차린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손님들이 “오죽 할 게 없으면 이런 시골까지 내려왔느냐”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았다.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취직하는 방법도 있었지요. 그러나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안 되겠더라고요. 목회자인 아버지는 가정 경제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셨거든요. 자존심 무릅쓰고 개업하는 수밖에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습니다.”

약국 자리 치고는 경쟁력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위치는 나쁘고 규모는 작았다. 30분, 1시간에 한 명 정도 손님이 올까말까였다. 해법을 찾아야 했다. 교방동에 육일약국을 개업한 그날, 김 사장은 ‘주관적인 경쟁력’을 마음에 새긴다. ‘객관적인 경쟁력이 없으면 주관적인 경쟁력을 만들자! 이것밖에 밑천이 없다’.

“그 약국에 가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인상을 깊게 심어줬어요. 모처럼 한 아주머니가 아이를 업고 왔으면 ‘참 눈이 크네요’하면서 칭찬을 해줬어요. 그리고는 그 손님의 이름을 40번, 50번씩 속으로 부르는 겁니다. 이렇게 이름을 외워 다시 그 손님이 오면 ‘○○○ 선생님’하면서 조제 차트를 꺼냈지요.”

자기 이름을 묻지도 않고 조제 차트를 척, 내놓으면서 상담을 해주니 손님들에게 육일약국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길을 물어오면 약사 가운을 벗어놓고 300~400m를 걸어나와 꼼꼼하게 안내를 해줬고, 전화를 한 통화 쓰자는 ‘뜨내기 손님’한테도 무조건 친절했다. 과연 효과가 있었다. “그러고 나면 반드시 사흘 안에 그 집에 사시는 분이 거의 예외 없이 약을 사러 나타나곤 했습니다.”

차별화 마케팅도 고민했다. 당시 육일약국은 40W짜리 형광등 6개만 켜면 충분히 조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그곳에 25개의 형광등을 설치했다. 한 달에 20만원이나 전기요금이 나왔지만 4.5평밖에 되지 않는 약국은 ‘아주 특별한 곳’으로 비춰졌다.

육일약국은 결국 개업한 지 1년 만에 빚을 다 갚았다. 10년 후에는 마산역 앞으로 진출했다. 약사 13명을 둔 기업형 약국으로 확장해서다. 김 사장은 “약사가 19명 있다는 서울 종로의 보령약국 다음 가는 큰 규모였다”면서 “진해·창원·거제에서 오는 고객이 50만 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마산의 잘나가던 ‘약사 CEO’가 다시 서울에 올라온 것은 96년이다. 대학 졸업장 들고 낙향한 지 13년 만의 일이다. 손위 처남인 손주은 메가스터디 사장의 권유에 의해서다. 교육 사업에서 덩치를 키우던 손 사장이 그에게 구애를 한 것. 처음엔 새마을열차, 비행기를 타고다니면서 약국과 학원을 ‘겸영’하다가 2001년부터는 아예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처남 권유로 13년 만에 서울행

메가스터디가 고등부 교육에 매달리는 사이 김 사장은 2002년 독립을 선언한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교육 사업을 펼치기로 결심한 것. 손 사장은 “중학생은 무리다”며 만류했다.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중학생에겐 면대 면으로 하는 학원 강의가 더 효과적이라는 견해였다.

가족들 역시 “탄탄한 회사의 부사장이 낫지 껍데기 뿐인 회사의 사장이 뭐가 좋으냐”고 반대했다. “제 뜻을 따라주던 직원 한 명과 창업을 했지요. 사실 교방동 육일약국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이미 선발회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메가스터디 엠베스트는 변방에 자리 잡아야 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김 사장의 역전승이었다. 역시나 성공 비결은 ‘마음 씀씀이’였다. 사무실에선 50여 명에 이르는 온라인 담임교사들이 전화, e-메일, 문자 메시지로 수강생들의 학습을 ‘관리’해주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했던 출결 체크, 개인별 학습 관리, 상담 등이 일대 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온라인의 장점을 살려 일류 강사를 기용하되, 오프라인 교육의 장점이었던 학원 담임교사 제도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엠베스트는 서비스 시작 8개월 만에 중등부 1위에 올랐다. 올해는 230억원 매출에 60억원대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한 달 3만원의 단과 수강료를 받던 때에도 5만원을 들여 안산까지 애프터서비스를 다녔습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투자입니다. 나중에 입 소문을 내주니까요. 4.5평 그 좁은 곳에서 배운 체험 경영이 온라인에서도 그대로 통해요.”

김성오 사장은…


1958년 경남 마산 출생. 마산고·서울대 약대 졸업. 83년 마산에 육일약국을 세워 나중에는 손 꼽는 기업형 약국으로 키웠다. 전자부품 회사인 영남산업을 경영하기도 했다.

96년부터 메가스터디에 합류, 현재는 인터넷 중등교육 회사인 엠베스트 경영을 맡고 있다.

그의 경영론은 “‘남의 떡’인 S급 인재를 부러워하기보다 내 식구를 더 큰 인재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단추를 끼우는 일이 직원들이 주인인 회사라고 소개한다.

“얼마 전 한 간부 사원이 ‘사장님 이번 설날은 일요일이어서 참 다행입니다’라는 말을 해요. 휴일이 많으면 직원들이 반가워해야 하는데 저희 회사에서는 거꾸로입니다.

휴일이 많으면 온라인 교육 사업을 하는 회사로선 그만큼 매출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휴일 걱정을 하는 직원에게 ‘이 회사 니꺼가”라고 했지만 마음이 너무 고맙지요.”


이상재 기자 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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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