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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500만 달러는 술값으로 하겠다`

영국신사77 2007. 3. 9. 14:31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500만 달러는 술값으로 하겠다` [조인스]
그리스 선주가 `16% 깎자`…한국 정부선 `차관 보증 못해준다` 돌변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⑦
이코노미스트 조선소를 건설하기 위한 정주영 회장의 행보는 사실 눈물겨운 과정의 연속이었다. 모든 일이 성공한 다음의 회고는 웃음이 묻어나게 마련이지만 가난한 한국의 일개 건설업자에 불과했던 사람이 유럽의 중심부를 파고들며 차관을 하고 26만t에 달하는 유조선을 발주해달라고 선주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누가 봐도 미쳤다고 할 만큼 어려운 고행이었다. 전 현대중공업 사장이었던 유관홍 성동조선 회장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무렵은 가발 팔러 다니고 그럴 때 아닙니까? 가발 한 컨테이너 해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당시 우리나라 전체 수출 물량이 12억 달러가 안 되던 때고 지금 생각하면 (2006년 12월, 세계 11번째 3000억 달러 달성) 정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인데, 조선업을 누가 하겠다고 했겠습니까? 조선소를 봤다고 하는 기업인도 몇이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엄청난 조선산업은 엄두조차 내는 사람이 없었을 거라고요. 지금의 현대중공업을 보면 조선산업이 어떤 거다 하는 걸 짐작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덩치를 그 당시로 가져가서 생각한다고 해보세요. 나설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지금에 와서 현대가 시작 안 했으면 누군가는 했겠지, 그렇게 가상적으로 말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자꾸 누군가는 했을 거라고 (정 명예회장을) 평가절하한다면 그건 당장 반문을 해볼 수 있지 않습니까?”

정 회장의 회고는 계속됐다. 워낙 기억력이 비상한 인물이라 몇 줄의 메모만 앞에 놓고 있었을 뿐 시종 기억으로 당시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분위기를 상당히 찾는 편인데 눈 덮인 별장에서는 순순히 계약을 했습니까?

“그게 참 애간장을 다 태우는 거야. 계약을 하게 될 테니까 백충기 하고 황병주, 통역하는 김준식이까지 데리고 근사한 별장에 도착을 했는데 첨에는 고급술을 좍 차려놓고 한잔 마시면서 금방 서명할 것처럼 분위기를 잡아요. 자기가 본 것처럼 현대 칭찬도 막 늘어놓으면서 말이지. 그러니 런던에서 일단 좋다고 했으니까 나도 사인만 하면 된다고 믿었죠. 근데 설계도면을 다시 보자면서 펼치더니 대뜸 16%나 깎자고 그러잖아. 술이 확 깨잖아요.”

“다음에 날짜 잡아서 의논하자”

가격이 얼마인데 16%나 깎는다는 말입니까?

“그때 25만9000t 선가(船價)를 척당 3600만 달러로 해서 유조선 2척에 7200만 달러를 제시했는데 그렇게 나오니 말이야. 척당 근 500만 달러를 깎고 배도 2년 6개월 만에 건조해야 한다는 거라. 그런 조건을 이행 못하면 원리금 전액을 변상하기로 그렇게 계약하자는 거지요. 그러니 스위스까지 와가지고 다 됐구나 했는데 그렇게 배를 내미니 말이지, 환장하겠어. 정말 고민하는 거예요. 공기는 얼마든지 맞출 자신이 있는데 16%나 깎자니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그러나 정 회장은 원가 계산에 집착해 단안을 주저하는 법이 한번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손해 보는 장사는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65년도에 태국에서 고속도로 공사할 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이때에도 조선소 건설 공기를 단축하고 선박 건조를 조기에 달성하면 16% 정도는 만회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행했던 팀들이 처음부터 너무 양보했다고 버틸 것을 주문했다.

어떻게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술이 확 깨는데 술을 한잔 더 먹고 하자 했지요. 그러면서 확 마셨어. 그랬더니 리바노스 이 친구가 첨에는 술도 부어주면서 웃고 그랬는데 점점 못마땅한 얼굴로 변해. 근데 느닷없이 리바노스가 자기가 선가를 좀 더 알아보고 다음에 날을 잡아서 다시 의논하자고, 이렇게 나오네.”

계약을 미루겠다는 것 아닙니까?

“리바노스도 버티는 거지요. 다음이 어디 있어? 별장까지 자기 비행기 보내 불러들였는데 다음에 하자는 생각이겠어? 자기 요구대로 할 거냐 안 할 거냐 그거야. 그리스 국민성이 또 개인적 성향이 아주 강하고 그리스·로마 시대만 해도 그리스어(헬라어)가 지금의 영어처럼 세계 공용어였잖아요. 그러니까 자존심도 강해.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한테 그리스인이라고 하면 아주 싫어해. 원래 ‘그리스’가 ‘노예’라는 뜻이거든. 좌우간 다시 날 잡자는데 미치겠어. 그게 1~2분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사실 피가 마르는 거예요. 그렇지만 일어나면 끝이야. 어떡해, 내가 그냥 오케이 할 수는 없고 그랬지. 좋다고, 깎아주는 건 오늘 마신 술값으로 하자고, 우리는 동방예의지국 국민이라 남의 별장에 초대받으면 빈손으로 못 오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양보하겠다고, 그렇게 나간 거야. 그랬더니 이 친구 눈이 금방 황소만 해져. 500만 달러를 술값으로 하겠다고 했으니 말이야, 하하항.”

회장님 그릇이 보통 아니라고 생각했겠네요.

“어차피 양보하는 거 우리 국민성이라도 느끼게 해줘야겠다고 한 거지,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는데. 하하항. 근데 사실 그때는 16%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우리 현대가 신생 조선소 아니에요. 그러면 무엇보다 첫 수주가 제일 중요해요. 그게 말하자면 조선소의 이력서가 되는 거거든. 누구로부터 몇 t급을 수주했느냐, 이걸 가지고 국제금융의 여신과 보증할 때 참고가 되고 다음 선박을 수주하는 데도 절대적 효력을 미치는 거란 말이지. 그래서 좋다고, 같이 갔던 직원들이 내 옆구리를 계속 찌르면서 좀 더 버티자고 했지만 찬스라는 게 있는 거거든.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우리 돈으로 환산해 14억원을 수표로 받았는데 냉큼 우리 한국은행에 입금을 시켰죠. 그게 1971년 12월 5일이에요. 내 생일은 잊어버리는데 그날은 못 잊어, 하하항.”

▶1974년 울산 현대조선소의 모습.

일본 언론, 우리 조선산업 매도

그야말로 대한민국에 대형 조선소가 태어날 수 있도록 잉태시킨 날이 됐군요.

“그렇지요. 지체할 시간이 있어요? 그때부터 시간 싸움이고 카운트가 시작되는 거거든. 관광이 어딨어, 입금시킨 서류하고 계약서를 들고 즉각 영국으로 나와서 ECGD 국장한테 그 서류를 턱 내놓으니까 그 사람이 진짠가 해서 눈이 커지는데, 그걸 쳐다보는 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말아야, 하하항. 군소리 없이 결재를 해줘서 차관이 성립됐지요. 참 기가 막힌 과정이지만 어떻게 보면 리바노스가 우리 조선소의 한 은인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돼요. 지금도.”

훗날 드러났지만 이 당시부터 이미 일본은 조선 시장에서 한국은 절대 대형 선박을 건조할 능력이 없다고 루머를 퍼뜨리고 있었다. 상무관을 동원해 선주들에게 한국의 조선업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겨우 5만t급밖에 만들지 못하니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비열한 방해공작까지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시장을 먹기 위해 어떤 면에서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언론 플레이라는 분위기를 느끼게도 했지만 일본의 대형 일간신문이 한국의 조선산업을 형편없이 부정적으로 들여다보는 기획기사를 쓰기도 했던 것이다. 그게 지난 88년 7월이었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연재한 기획기사 일부는 이렇게 파들어가고 있었다.

“부산시 근해 46㎞에 떠있는 거제도. 비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가운데 한국 제2위의 조선회사. 대우조선공업의 문을 들어서면 거대한 크레인이 우뚝 솟아있다. 높이 110m, 끌어올리는 능력은 세계 최대. 미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로켓 발사대를 매입해 겨우 설치한 것이다. 발 아래에는 13만5000t 중량의 유조선 등 5척이 있었고, 근처 도크에서는 25만t의 대형 탱커(VLCC)가 건조 중이었다. 텅 빈 선대(船臺)나 도크가 일본의 조선소와는 큰 차이다. 대우는 조선업에 진출해 8년. 그동안 한번도 흑자 시기가 없었다. 영업의 신(神)으로 불리는 김우중 회장은 톱 세일즈에 착수해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장미 선적 화물선 3척을 수주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거액의 적자는 쉽게 줄 것 같지 않다.

부산에서 북동쪽으로 약 60㎞, 세계 최대의 조선소로 성장한 울산의 현대중공업을 찾아가면 방대한 조선소의 9기(基) 도크나 선대에 13척의 탱커(VLCC)가 위용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익 없는 번영이었다. 한국조선공업협회 조사에 의하면 가맹 12개사의 지지난해 적자는 총 886억원에 이른다.

한국 조선이 왜 이러한 적자를 보게 된 것일까. 관계자가 일치되게 지적하는 원인은 네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1년 반 동안 원화가 18% 절상되면서도 여전히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지난해 ‘6·29 민주화 선언’ 후 노사분규로 임금인상 투쟁이 일어나 2년 동안 37% 상승한 것. 셋째로 철강재나 기기, 자재값이 1년에 50% 이상 오른 것, 넷째는 30~40%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수출 선박용의 기기와 자재가 엔고(円高)로 고가(高價)가 된 것이다.”

보증서 받기까지 애 먹기도

그러나 지금의 상황도 일본은 이렇게 부정적이기만 할까? 일본의 거대 언론들은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한국의 조선산업 발전을 보며 경악에 가까운 신음을 토해내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ECGD에서 승인을 했고 버클레이 은행에서도 차관을 결정하게 된 것 아닙니까? 그 절차는 수월했습니까?

“영국에서는 완전히 오케이를 했는데 그때부터는 우리 정부하고 마찰이에요. 이건 얘기 안 하려고 했지만 당초에 부총리가 차관만 얻어내라고 말이야, 대통령께서도 직접 뭐든지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버클레이은행에서 차관을 해주려면 한국 정부가 보증을 서줘야 하는데 그 무렵 우리 정부가 수출하는 기업들한테 보증을 해줘서 부도가 나고 아주 엉망이 된 일이 있었거든? 거기에 놀라가지고 정부에서 이젠 보증 못 한다고, 현대만 왜 도와줘야 되느냐고 말이야, 아 이러고 나오니 말이지.”

보증을 해주겠다는 약속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보증도 보증 나름이지, 이건 국가적인 사업 아니에요. 근데 뭐 변소 갈 때 급하지 나오면 그만이라는 거 하고 똑같애, 빌어먹을 것들이 말이야. 어찌나 속이 뒤집어지는지 집어치울 생각까지 했어. 그런데 뒤에 알았지만 대통령께서는 그걸 모르고 계신 거야. 그래가지고 김학렬 부총리한테 이제 어떡할 거냐고, 확실히 보증을 보장해줄 수 있겠느냐고 다짐을 받을 때 열 장이라도 끊어준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이야, 정부 보증서 없이는 글렀으니까 집어치우자고, 그랬더니 어? 이 양반은 도리어 태평이야. 걱정 말래요. 아니, 상공부에서 못한다고 그러는데 무슨 소리냐고 그랬지요.”

경제부총리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나도 나중에 알았는데 그걸 ‘그림자 보고’라고 한다는 거야. 부총리가 총리 안 거치고 직접 대통령한테 보고해서 재가를 받아버리는 거래요. 나중에는 다 알게 되지만 재가받기 전까진 뭔가 보이기는 보이는데 정확히 모른다는 거지, 하하항. 그래가지고 얼른 보증서 보내서 차관이 성립됐지요.”

 

 



                                                                                                            <이코노미스트 878호>

 

2007.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