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Opinion銘言

[에세이―이근미] 순수와 무공해:컴맹의 피해

영국신사77 2007. 3. 6. 14:33
                      [에세이―이근미] 순수와 무공해

얼마 전 60대의 소설가와 함께 어떤 분을 만나게 되었다. 50대 초반의 여성이었는데 스타일리스트 출신답게 아주 세련된 분이었다. 내가 명함을 드리자 “홈페이지가 있네요”라더니 자신은 컴퓨터와 담 쌓고 산다고 했다. “메일도 사용하지 않느냐”고 하자 그렇다면서 소설가에게 “우리는 끝까지 순수를 지키며 무공해로 삽시다”라고 말했다.

그 소설가는 원고를 손으로 써서 컴퓨터에 입력한다며 메일로 송고하는 건 다른 사람이 해준다고 했다. 두 분에게 “휴대전화로 문자는 보낼 줄 아느냐”고 하자 예상대로 “할 줄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내 주변의 40대 초반 혹은 30대 후반 중에서도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컴맹들이 있다. 이들은 대개 문자도 보낼 줄 모른다. 메일 사용이나 문자를 보내는 것은 지극히 간단한 일이건만 그들은 한결같이 “골치 아파서 싫다”고 말한다. 고학력에 전문직 출신인 그녀들의 ‘골치 아프다’는 ‘귀찮다’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시골할머니가 서울 와서 고무신을 벗고 택시를 탔다는 우스개가 있는데, 컴맹들도 그에 못지않은 웃음을 유발한다. 얼마 전 컴맹인 화가 언니에게 뉴욕으로 메일을 보냈다고 하자 “니 메일 뉴욕까지 가니?”라고 했다.

컴맹들이 순수에다 무공해로 사는 것까진 좋은데, 다른 사람에게 공해가 된다는 게 문제다. 메일이나 문자로 보내도 되는 사항을 이들에게는 꼭 전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할 때마다 “이 바쁜 세상에 이렇게 꼭 원시적인 방법을 써야겠냐, 제발 문자 보내는 방법 좀 배우라”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삭막하게 살지 말고 인간답게 살자”고 나에게 훈계를 늘어놓는다.

이들의 문제점은 단순히 메일과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이버 세계를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을 하면서도 인터넷을 가까이 하지 않으니 현실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말 문제야”라고 말하면서 정작 젊은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변화가 엄청나게 빠른 대한민국에서 컴퓨터를 멀리한다는 건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건만.

‘어깨동무하고 가자 앞으로 가자’라는 동요를 상기하자. 간단한 건 습득하여 남들과 보조를 맞추는 게 피차 편하게 사는 길이다. 내 주변 컴맹들이 제발 불순해져서 공해를 내뿜게 되길 기대한다.


이근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