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노인의 지혜를 활용하라
최홍섭 산업부 차장대우 hschoi@chosun.com
입력 : 2007.02.15 23:00
- ▲최홍섭 산업부 차장대우
- 레바논과 이스라엘 국경지대에 있는 배관(配管)업체 버마드사(社). 그곳에서 약간 놀라운 모습을 보았다. 북한에서 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60청춘 90환갑’이란 구호를 내건 적은 있지만, 버마드에는 80대와 90대 노인이 수두룩하다. “혹시,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라고 물으면 곤란하다. 생산량의 90%를 세계로 수출하면서 연간매출이 수천억원에 이른다.
별관 작업장에는 94세인 에릭 쉐바 할아버지가 88세의 아내 베이트나 할머니와 함께 백발을 뒤로 넘긴 채 조용히 밸브 고리를 끼우고 있다. 퇴근할 때에는 자녀와 손자가 이들을 차로 태워 간다. 작업하다 말고 손을 꼭 잡던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메인 생산라인에는 83세의 메일 엘랏 할아버지가 젊은 작업자를 지도하고 있다. 그는 “노동을 한다는 건 감사한 일”이라며 “모든 일이란 신성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노인들은 체력부담 때문에 하루 6시간씩 주4일 근무한다. 회사측이 이렇게 노인을 활용하는 것은 인력부족 때문이 아니다. 일라나 휴즈 부장은 “젊은이가 갖지 못한 인생경험과 지혜를 활용하겠다는 의도”라며 “일부 라인에선 젊은 직원과 섞여서 일하게 한다”고 말했다.
아직 버마드의 사례는 극히 예외적이지만, 빠르게 다가오는 노령화 시대를 감안하면 그리 먼 훗날의 얘기도 아니다.
한국은 이미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7%를 넘어선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50년이 되면 35.7%까지 늘어난다. 문제는 고령화 사회, 실버 사회의 기본 인식이다. 예전에는 늙은 뒤 은퇴하여 햇볕 따스한 외국 휴양지에서 한가롭게 지내는 걸 선망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급속히 늙어가는 대한민국에서 고령자 대책이 그런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KDI나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선 노인의 근로와 생산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노동을 통해 ‘인생 2모작’을 개척하고 삶의 활력을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인들은 급여와 대우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함은 물론이다.
인구학자 폴 월리스는 고령화 사회가 세계경제에 줄 충격을 지진에 비유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는 2020년쯤 세계 경제는 에이지퀘이크로 뿌리째 흔들리는데, 그 강도가 리히터 규모 9.0에 달한다는 예측이다. 이 때문에 각국은 바쁘다. 일본은 60세이던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정년연장법’을 작년부터 시행했는데, 90% 이상이 일단 퇴직시킨 뒤 재고용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현역 때보다 낮은 임금을 주고 퇴직자의 기술을 사는 셈이다. 독일 메르켈 정부도 정년을 65세에서 67세로 높인다.
그러나 한국은 노인 근로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이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 차원에서 전무(全無)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거 중동 건설현장을 누볐던 50대 후반 이상의 노련한 우리 기술자들이 나이 때문에 국내에서 푸대접받고 다시 해외로 나가는 사례도 있다. 얼마 전 건설교통부와 해외건설협회가 해외근무 퇴직자들의 해외 재취업을 위한 이력서를 받았더니 신청자 800여명 중 70%가 50~60대였다고 한다. 일부 기업에선 자문역·상담역·고문 등을 두고 있지만 형식적인 자리에 그치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5년 전 부산고 교장을 끝으로 정년 퇴임하자마자 홀연히 필리핀으로 건너가 필리핀한국학교 교장으로 ‘제2의 생’을 살고 있는 황인수(68)씨와 비슷한 사례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늘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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