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밀라노칙령은, 양 황제의 의견차이로 인하여 밀라노에서 공포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칙령이라기보다는 동방지역의 총독들에게 보낸 포고문의 형식이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가톨릭대사전에서- |
'Mission믿음간증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사·목회자‘아바연합’전남 하의도 의료선교…주민 200여명 진료 (0) | 2007.03.04 |
---|---|
“아내 잃은 슬픔딛고 다시 전도 시작합니다”… ‘각설이 전도왕’ 이병래 장로 (0) | 2007.03.04 |
옥한흠 목사, “대형교회 일궈보니…” (0) | 2007.03.02 |
안디옥[안타키아(Antakya)] (0) | 2007.02.28 |
[해외 선교사가정 열전 (1) 셔우드 홀] 부모님 평양서 의료선교 (0) | 2007.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