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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조선업 도전-2 : (4)~(6)

영국신사77 2007. 2. 27. 13:01
`몽준은 연애 못해 중공업 맡겨` [조인스]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데…연애 못하니까 `항구`가져야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⑥
이코노미스트 아무튼 수출신용보증국(ECGD) 국장을 만나고 나온 정주영 회장은 낙담만 하고 있을 수 없어 다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야 했다. 이 시점에서 정 회장이 흥정할 수 있는 자산이라고는 세 가지뿐이었다.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백사장 부지를 찍은 사진 한 장, 그곳을 측정할 수 있는 5만분의 1 지도 한 장, 스콧 리스고에서 만들어준 26만t짜리 유조선 도면 한 장이었다. 그러니 있지도 않은 조선소에다가 만들지도 않은 배 그림만 들고 선주를 찾겠다고 했으니 자신이 생각해도 완전히 ‘봉이 정선달’이더라는 것이다.

“내가 강원도 통천에서 내려와 가지고 광화문만 한 집을 짓고 살 테니 두고 보라고 했던 것부터 남들이 들으면 봉이 정선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가 않았지 뭘 그래, 하하항. 그런 기분으로 덤벼들고 있었던 거예요.”

롱바톰 회장도 ECGD 국장이 선주 없이 차관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자기도 그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는 거지요. 나도 미처 선주가 있어야 한다는 예상은 못했으니까요. 그분한테 얘기를 죽 하니까 무릎을 탁 치면서 뒤늦게 국장 말이 맞다는 거예요. 근데 롱바톰 회장이 나중에 자세히 알고 보니까 애플도어에서 단순히 회장만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국 총리 밑에서 하원의원으로 있었는데 쟁쟁한 분이었어요. 사실 능력 있는 사람은 절대 자신의 과거 얘기는 안 하거든?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미래가 없는 사람이 자기가 왕년에 뭘 했고 하면서 잔뜩 과거 얘기만 늘어놓잖아요. 롱바톰 회장은 과거를 얘기 안 하니 몰랐는데 좌우간 그렇게 됐다면 선주를 찾아보자는 거예요.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을 총동원해서라도 그리스 선주를 찾아봐야겠다고 말이지.”

“말뚝이라도 박아놨어야지”

왜 하필 그리스 선주입니까?

“아, 그분의 처가가 그리스였어요. 그 당시 세계 해운업계의 흐름이 그리스가 잡느냐,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잡느냐 하는 경쟁 분위기였거든. 그러니까 과거 수백 년간 세계 해운업계를 주도했던 나라가 그리스였는데 그리스 해운사들이 가지고 있는 주력선들이 아주 낡고 노후해서 비틀거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 판국인데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해운사들이 그 무렵 막 추격을 해온 거지요. 그러니 그리스에서는 새로운 선박들을 구입해야 경쟁력을 복원할 거 아니에요.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보자는 전략이었지요. 그래놓고 선주를 찾는 동안 일단 나는 서울로 잠시 들어왔어요.”

국내가 불안해서였다. 운이 좋아서 이내 선주를 찾는다고 할 경우 그들이 조선소 부지라도 보자고 한다면 즉시 안내를 해야 하는데 전갑원(전 현대건설 부사장)에게 맡겨놓은 일이 어찌 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닦달하듯 궁금해 하는 부총리도 만나봐야 했다. 그동안의 협상 내용도 보고해야 했지만 선주를 찾아서 차관이 된다면 정부 보증이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울산 현장은 속이 뒤집힐 노릇이었다. 토목 공사쯤은 마쳤을 것으로 믿고 있었던 조선소 부지가 아직도 확정 되지 않은 상태로 줄곧 파일만 박아보는 처지였다. 난리였다. 정 회장의 성격에 초상집이 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여태 함마링(해머링·Hammering)도 안 하고 뭣 하고 자빠져 있는 게야! 전갑원이 어디 있어!”

전갑원 차장은 또박또박 이유를 내세웠다. 부사장을 끝으로 현대를 떠났으나 당시에 부장급만 됐어도 겁에 질려 찍소리 못했을 텐데 겁없는 차장급이라 현장 상황을 곧이곧대로 내세웠다.

“회장님께서 사진 찍어서 나가셨던 부지부터 사실은 암반 조사를 해보니까 암반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곳을 다시 실사했는데도 역시 아니고….”(전갑원)

“임마! 너는 계속 아니라는 소리만 하고 다시 찾은 곳도 또 아니라는 소리 아니야! 롱바톰 회장이 현장도 와보고 사진까지 찍어서 보여주고 왔는데 거기가 아니면 어쩌자는 거야?”(정주영)

“두 번째 부지도 아닌데 어떡합니까? 아무리 박아도 암반이 나오지 않습니다.”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찾아서 말뚝이라도 박아놨어야지! 내일 당장 선주가 온다고 하면 어쩔 작정이야?”

“제 마음대로 박습니까?”

“박아 임마! 박는 건 네 책임이라고 했잖아! 박았는데 안 나오는 것도 네놈 책임이야!”

훗날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를 위해 정인영 사장과 담판을 짓기도 하는 전갑원이라는 인물은 해외 건설 경험이 당시로서는 가장 많았고 토목 공사에서는 베테랑이었다. 게다가 그는 캐나다로 조선소 견학을 다녀온 입장이어서 그의 시각으로 부적합한 부지라고 할 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봐야 했다.

물론 그 이유가 뒤에 드러났지만 지반과 지형이 조선소 부지로는 부적합했다는 것이다.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최종 선정한 장소가 지금의 현대중공업이 들어선 미포만 일대다. 태초에 잡았던 자리는 지금 현대자동차 공장이 세워져 있다.

▶정주영 회장은 일찌감치 정몽준 의원에게 현대중공업을 물려줬다. “몽준이는 연애를 못해서”라는 이유가 흥미롭다. 사진은 1980년대 말 울산 현대중공업 현장을 순시 중인 정몽준 의원(오른쪽).

김학렬 부총리는 그때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을 것 아닙니까?
“서울로 돌아왔다고 연락을 하니까, 자기 방에서 만나지 말고 당장 대통령 앞에서 만나자는 거예요. 된다는 소리만 듣겠다 이거지, 하하항. 그래도 뭐 설명을 안 할 수 없고, 우선 선박을 발주할 선주를 찾는 게 시급하다고, 그게 된다고 해도 정부 보증이 있어야 차관을 해준다고 하더라, 그런 얘기를 죽 했어요. 근데 뭐 다른 얘기는 들을 생각도 안 해. 아이고 잘 됐다고, 정부 보증은 차관만 되면 열 장이라도 끊어줄 테니 됐고, 차관으로 조선소 건설 자금을 해결했다는 그런 소문만 나버리면 선박 주문이야 얼마든지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아 이러면서 당장 각하한테 보고 드리러 가자는 거예요. 완전히 거꾸로 해석을 해버리면서 너스레를 떠니 미치겠는 거라, 하하항.”

당초 조선소 부지엔 현대차가 대통령한테 갔습니까?

“가긴 어떻게 가요. 지금은 반반이다, 그러니 선주를 찾는다는 전제를 하고 부총리가 경제부총리니까 확실히 보증을 보장해줄 수 있겠느냐고, 그걸 다짐해 달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되레 큰소리야. 열 장이라도 끊어준다고 하지 않느냐고 말이야! 하하항. 근데 그 양반도 보통이 넘는 사람이에요. 뭐라고 하는고 하니, 정 회장, 건설 사업은 앞으로 별 볼일 없다, 날 샜다, 조선 사업 같은 중공업이 대안이니까 이걸 꼭 잡으라고 말이야, 아 이러네? 어떡하든 조선소를 하겠다는 정부 야심 때문에 저런 소리를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내 주력 사업이 건설인데, 경제부총리가 날 샜다고 하니 얼마나 흔들리겠어. 다시 물었지. 앞으로 별 볼일 없고 날 샜다면 그게 정부 정책이라서 그러냐고. 그랬더니 이 양반이 어찌나 빠른지 얼른 정 회장 같이 다방면에 유능한 사람은 제외하고! 이러잖아, 하하항. 그러니까 조선소밖에 생각하는 게 없었던 거야.”

사실 정 회장도 조선 산업이 하나의 대안이라는 것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건설업은 공사를 수주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기업은 활력이 넘쳐나지만 공사가 끝나면 썰물 빠지듯 흩어지고 만다. 새로운 공법과 아이템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단순 건설로는 기업의 장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60년대 말 전체 외화수입의 20% 넘게 차지했던 월남 특수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정부의 중화학공업 정책에 편승하고 연관 산업도 내다보면서 새로운 사업의 돌파구를 열 수 있다면 역시 조선 산업이었다. 더구나 풍부한 노동시장이 있고 그동안의 건설 경험까지 살려 도전해본다면 해외의 조선 물량도 넘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정 회장이 살아생전 재산분배를 할 때 유학을 시킨 정몽준(현 국회의원)에게 “바다는 네가 먹는다 생각하고 공부를 해보란 말이야”라고 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조선하고는 조금 다른 얘깁니다만 몽준 회장이 조선에 관심이 많았습니까?

“우리 아이들은 뭘 맡겨도 다 잘하게끔 돼있어. 내 피를 물려받았고 내 유전자(DNA)를 가지고 있는데 2등 기업을 하겠어? 하하항. 근데 몽준 의원은 연애를 잘하지 못해서 중공업을 맡긴 거예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데 연애를 못하니까 항구를 가져야 할 거 아니야. 중공업이 미포항 일대를 다 먹은 거 아니겠어? 하하항.”

몽준에게 “바다는 네가 먹는다”

그 후에 다시 런던으로 가시지 않았습니까? 선주는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까?

“쉽게 되는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어요. 온갖 정보를 다 수집하고 별별 사람 다 만나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결국은 찾았는데 그게 선박왕이라는 오나시스의 처남인 리바노스라는 선주였어요.”

리바노스를 만나게 되는 배경이 있었다. 롱바톰 회장의 친구인 선박 브로커가 리바노스를 소개하기도 했지만 때마침 리바노스는 싼값에 발주할 수 있는 조선회사를 찾고 있었다. 그는 국제 해운업계를 주름잡고 있던 그리스 선단의 대표급 집안으로 1세기 이상 해운업을 해온 그리스에서도 몇 안 되는 선주였다.

그러나 당시는 저물어가는 그리스 해운업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동안 일본에서 값싼 배를 몇 번 구입해 재미를 톡톡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마침 신생 조선국에서 선주를 찾고 있다는 정보를 듣자 현대가 싸게 해준다면 협상해 볼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이다.

훗날 두 척을 발주해놓고 달러가가 상승하자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한 척은 인수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도 싼값 흥정의 맛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정 회장이 만난 리바노스는 ‘스타브러스 리바노스’가 사망하고 뒤를 이어 가문을 이끌고 있던 ‘요르거스 리바노스’였다.

그 사람도 그리스의 대표적인 선주인데 신생 조선회사에 선뜻 발주를 하겠다고 응했습니까?

“장난감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응하겠어요? 우리가 가지고 간 울산 백사장 찍은 사진하고 스콧 리스고에서 만들어준 26만t짜리 유조선 도면을 꺼내놓고 잔뜩 설명을 하는 거지요. 그러고 뭣보다 애플도어 회장이 권했고 조건도 좋으니까 유조선 두 척을 발주하겠다고 ‘일단은 오케이’를 했어요. 근데 오케이면 오케이지 일단은 뭐냐고 했지. 그랬더니 영국에서 상담을 하고 계약을 하면 자기가 배를 인수해 와도 세금이 왕창 붙게 돼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세금이 안 붙게 자기 별장이 있는 스위스 중립국으로 가자고 그러잖아요. 그러면서 자기네 자가용 비행기를 영국으로 불러요. 그땐 나도 자가용이 없는데 되게 건방지대, 하하항.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의 리바노스 별장으로 갔지요. 몽블랑 산모리츠 소재의 그 별장이 또 스위스에서 유명한 스키장이래요. 돈 꾸러 나가서 별 곳 다 댕긴 거지요, 하하항.”<계속>


2007.02.27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우린 16세기에 철갑선 만들었소” [조인스]
英 은행, “큰 배 보기나 했나”에 거북선 그려진 500원 지폐 보여줘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⑤
이코노미스트


정주영 회장이 차관을 얻기 위해 접촉한 영국 버클레이은행 중역은 여러모로 정 회장을 자극시켰던 것 같다. 그들이 기업을 대할 때 어떤 자세였던가 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보여주고 있는 기본자세하고는 판이했던 것이다.

그 사이 현대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았습니까?

“아, 나중에 알았지만 철저히 조사를 했어요. 첨에는 롱바톰 회장이 한국까지 와서 직접 우리 현대가 했던 발전소, 정유공장, 해외건설, 고속도로, 그런 공사들을 전부 체크하고 갔지요. 거기다가 조선소를 지을 부지까지 봤는데 거긴 내가 토목공사를 시키고 있었거든? 내가 그럴 줄 알고 전갑원이를 시켰더니 그눔이 암반이 안 나온다고 투덜거리다가 나한테 혼났지. 하하항. 하여간 그런 걸 전부 보고서 버클레이은행에 추천서를 써줬는데도 버클레이은행에서는 그보다 더 철저하게 조사를 했어요. 각종 플랜트사업에서부터 교량 건설까지 부실이 없었는지도 조사하고 그룹의 대차대조표까지 뒤지고 말이지. 심지어 한국에 질 좋은 노동력이 있느냐 하는 것까지 알아봤다니까 그냥 만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 걸 보면 우리 금융기관들은 멀었지요.”

대단하군요. 만나시니까 어떤 내용을 궁금해 합니까?

“앉기가 바쁘게 이 양반이 얘기를 하는데 그게 면접이에요. 토스트를 먹어가며 얘기를 하는데 아주 예리해. 그렇지만 나는 대충 어떤 얘기를 할 거다 하는 걸 예상하고 나갔거든? 근데 우리가 25만t급 배를 만들겠다고 했으니까 대뜸 한국에서 25만t급 배를 보기나 했냐고 묻잖아. 난감하대…, 그냥 봤다는 대답만 해서는 대화가 끊어지잖아요. 그럴 때 순발력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게 500원짜리 지폐야. 그 당시 500원짜리에 거북선이 있었거든? 근데 내 지갑에 500원짜리가 없으면 큰일이잖아요. 근데 덜덜 떨면서 지갑을 꺼내 보니까 마침 있잖아! 하하항. 이거다 하고선 탁 내놓고 그랬지. 부총재는 16세기에 철갑선을 봤느냐고 말이야, 이게 16세기에 만든 대한민국 거북선이다, 대한민국 거북선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지폐에 새긴 거니까 대한민국 국민이 건조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고, 이 철갑선을 봤느냐고, 이게 지금으로 보면 유조선은 게임이 안 되는 함정이라고, 하하항. 그랬더니 부총재 눈이 팽 돌아가는 거야. 저들은 19세기에 처음으로 강선을 만들었거든? 더구나 해양대국이라는 영국인데 말이야, 그러니 눈이 안 돌아가고 배겨? 하하항.”

“옥스퍼드에서 박사학위 주더라”

(웃으며)만약에 500원짜리 지폐가 마침 없었으면 어떡하시려고 그랬습니까? 회장님 지갑에 500원짜리도 넣고 다니세요?

“그러니까 지갑에 손이 갈 때 덜덜 떨었지, 하하항. 내 지갑에 만원짜리는 하나도 없어, 다 잔돈이지. 그러고 내 얼굴이 돈인데 뭐, 하하항. 근데 부총재가 참 인상적인 사람이에요. 거북선을 보더니 아주 진지해져요. 자기네가 해양대국이기 때문에 강선은 세계 최초인 줄 알았다면서 3세기나 뒤늦게 강선을 만들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더구나 한국한테 뒤졌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역사적 사실은 우기지 않고 인정을 해요. 그게 신사의 나라 사람들이에요.”

그것으로 인터뷰는 끝나는 셈이었습니까?

“아니지요. 그 다음 질문이 의외예요. 내가 예상한 건 하나도 안 물어. 정 회장은 대학 전공이 이공학입니까, 경영학입니까? 이렇게 물어요. 이거 또 난감하두만. 내가 비록 대학은 안 나왔지만 모든 사회 경험을 대학 나온 사람 이상으로 경륜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얘기는 구질구질하게 하기 싫잖아요? 그래서 내가 그 부총재를 바라보고 웃으면서 오히려 반문을 했지요. 부총재께서 우리 조선 사업 계획을 보셨느냐고. 부총재가 봤을 리 없죠. 금융맨이고 봐야 알 턱이 없고 다만 융자를 검토하는 단계니까 밑에서 심사한 얘기를 들었을 테지요. 근데 이 사람이 능청스럽게 봤다고 그러잖아요. 그렇다면 잘 됐다 싶어서 나도 능청스럽게 시침을 뚝 떼고 그랬지요. 내가 버클레이은행에 낸 사업계획서를 옥스퍼드대학에 먼저 내봤다. 어제가 일요일인데도 그걸 제출하니까 대번 박사학위를 주더라. 그래서 내가 옥스퍼드대학 경영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이러면서 막 웃었어요. 그러니 뭐 부총재도 막 웃고 그랬는데 그 부총재가 더 재치 있어요. 역시 옥스퍼드대학이 권위 있는 대학이라고, 왜냐하면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한 박사도 사실 이런 계획서를 못 만들 거라고, 그런데 정 회장 같은 사람을 골라내는 거 보니 역시 옥스퍼드대학이 유명하지 않으냐고, 이러면서 웃는 거예요.”

결국 승인을 했습니까?

“그렇죠. 여러 가지 환담을 하면서 몇 가지를 더 알아보더니 버클레이은행에서는 차관을 결정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영국에서는 차관 시스템이 은행 결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은행이 결정을 하면 최종적으로 ECGD(Export Credit Guarantee Department)라고, 수출신용보증국이라는 곳에서 승인을 해야만 하는 겁니다.”

사실상 ECGD의 승인이 관건이었다. 영국에서는 차관을 해간 나라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영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은행에 보상을 해주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ECGD의 기준은 손톱이 들어갈 허점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행이 사업성 평가에서 만족스럽다는 결과를 통보해도 신용보증국에서는 별도의 조사를 했고, 차관 도입국가의 신용도와 경제적 성장성까지 체크를 할 정도였다. 그러니 서류가 보증국으로 넘어가면 현대만 장래성이 있어서 될 일도 아닌 셈이었고 정부의 신용도까지 검토가 된다는 얘기였다.

▶1970년대 사용하던 500원짜리 지폐. 정주영 회장은 영국 버클레이은행 중역들에게 이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가리키며 “우리가 바로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든 나라”라고 큰소리를 쳤다. 이런 순발력으로 정 회장은 버클레이은행 대출 건을 성사시켰다.


“한국 빅맨이 체어맨 정 맞나”

신용보증국의 승인은 낙관 하셨습니까?

“어떻게 낙관을 해요? 우리 현대의 신용이나 장래성은 솔직히 자신이 있었지만 그 당시 우리 정부의 이미지가 엉망이었단 말이에요. 어느 나라나 노사분규 일어나면 완전히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예요. 그 회사에 대해 먹칠을 하는 게 아니고 국가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지요. 근데 그 당시 평화시장 전태일 분신사건이 일어나 거리가 시위대로 혼란스러웠지요?”

아주 난감하셨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떡해요. 어렵게 은행을 통과했는데 한국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수 있어요? 수출 보증국에 승인신청서를 내고 또 기다리는 수밖에요. 근데 참 희한해요. ECGD에서는 그때까지 개인기업주를 직접 인터뷰한 예가 거의 없고 대부분 정부관료를 불러 조목조목 심사를 하는데 우리 정희영 상무가 노력도 했겠지만 존 코긴스라는 ECGD 국장이 직접 나를 만나보겠다면서 연락이 왔어요. 거기 국장은 다른 부처하고 달라서 완전히 독립기구이기 때문에 장관급이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결정을 하다시피 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만나자고 하니 일단 한국의 불안한 정국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검토를 해보겠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말이야, 만사를 제쳐놓고 냉큼 만났지요. 하하항.”

그러나 여기에도 비화가 있었다. 정희영 당시 런던지점장이 ‘콧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몸살을 앓아가면서’ ECGD 국장과 친밀한 사람을 찾아 온갖 노력을 다 했겠지만 ECGD 자체적으로 어느새 현대의 공사 능력과 국가의 성장 잠재력에 대해 이미 조사할 수 있는 자료는 전부 빼냈더라는 것이다. 인맥으로 대부분 융자를 해결하는 한국의 금융 시스템하고는 질적으로 달랐다는 얘기였다.

ECGD의 심사는 은행하고 차이가 있었습니까?

“아주 합리적이었어요. 일단 은행에서 심사한 내용을 중복 심사하는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구요, 신뢰를 하고서 자기들 의견을 얘기하는 거예요. 탁 만나니까 뭐라고 하는고 하니, 첫마디가 ‘한국의 빅맨이 체어맨 정이냐’고 그래요. 근데 이건 통역을 안 해도 내가 알아듣거든? 이런 거까지 통역하면 분위기가 깨진단 말이야. 그래서 비켜 임마, 그래놓고는 웃으면서 벌써 조사를 했냐고, 빅맨이 아니라 정주영이 자체가 자이언트라고, 그랬더니 막 웃으면서 역시 은행에서 얘기한 그대로라고 하잖아요. 하하항. 분위기가 아주 좋아진 거지요.”

정 회장의 영어 실력은 2000단어를 구사할 정도라고 했다. 그러니 웬만한 영어는 직접 메모를 하고 머리가 비상해서 중요한 협상 내용은 마치 속기를 하듯 자신만 알고 있는 특수한 부호로 적어두기도 한다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니까 나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지적을 하면서 논리가 아주 정연해요. 계획서는 잘 봤다, 애플도어라는 영국의 일류 기술 회사가 현대 기술자들을 영국에 데려와서 훈련 시키고, 스콧 리스고에서 도면을 받아 그대로 만들고, 그렇게 해서 현대가 인력을 잘 관리하면 건조를 할 수는 있을 거다, 그거야 영국의 최대 기술 회사가 참여하는 거니까 자기네가 인정을 하겠다 이거죠. 그러면서 그래요. 배만 주문해서 만들면 수지가 맞으니까 원금과 이자는 갚을 수 있겠다 하는 것도 버클레이은행 쪽에서 얘기를 하고 있으니 그것도 역시 그렇게 믿겠다, 다 믿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자기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이거예요.”

“누가 한국에 배 주문 하겠나?”

ECGD 측에서 의문이 있다고 하면 중요한 포인트가 됐을 것 같습니다만….

“그게 핵심이었어요. 뭔고 하니, 세계 선진국에는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여러 조선소가 있다, 그런데 한국이 영국에서 돈을 빌려 50만~60만t급 큰 도크를 만들어 30만t급, 50만t급 등 세계 최대의 배를 만들고 그걸 팔아 원리금을 갚겠다고 했는데, 내가 선주라면 한국에 주문 하지 않겠다, 누가 후진국 조선소에 그 엄청난 배를 주문하겠느냐, 한국이 지금까지 그런 큰 배를 한번도 만들어보지 못했고 경험도 없는 그런 나라 아니냐, 그런데 정 회장 같으면 주문을 하겠느냐? 내가 선주라면 주문을 안 하겠다, 이렇게 나온 거예요. 야…아찔한 겁니다. 그 순간 숨이 탁 막혀요. 그러니까 배라는 것은 다른 상품처럼 미리 만들어놓고 파는 것이 아니고 주문에 따라 제작해 파는 거니까 선주가 주문을 안 하면 만들 수도 없는 거고, 배를 만들어 팔지 못하면 돈은 갚을 수 없지 않으냐, 그런 얘기 아니에요?”

결정적인 관문이라고 할 수 있었겠군요.

“배를 주문하는 선주가 있어야 되겠다, 말하자면 배가 팔린다는 증명을 가지고 오든지 배를 주문하겠다는 선주의 계약서를 가지고 오라는 소리지요. 사실 그 얘기가 이치에 맞고 아주 사리에 맞는 얘기예요. 그러니 정말 결정적으로 탁 막히는 거지요. 그건 내가 답변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선박을 발주할 선주가 할 수 있는 대답이란 말이에요. 눈앞이 노랗더라는 말을 그때 내가 실감했어요. 근데 우리 정부에서는 내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가도 모르고 부총리가 밤만 되면 잘돼가지요? 이러면서 전화야, 미치겠어. 하하항.”

해결책을 찾아야 했을 것 아닙니까?

“당장 방법이 없잖아요. 국장한테는 선주를 찾아보겠다 하고선 맥없이 물러나오는 거지요.”<계속>

출처 : Tong - 마중물(Choi)님의 경제/직장통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함정이니 정부는 만나지 말라” [조인스]

서독 조선업체 이중 플레이 때문에 김학렬 부총리와 대판 싸움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④

이코노미스트

데이비스라는 국제 금융 브로커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조선 기자재를 팔아먹기 위해서도 컨설팅 회사들이 은행을 움직일 거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소개받은 곳이 영국의 애플도어(A&P Appledore)하고 스콧 리스고(Scott Lithgow)라는 선박회사였다.

정주영 회장이 유럽에서 1차로 접촉했던 서독의 아게베세 조선소하고는 내용상으로 이미 급수가 달랐다. 현대가 1971년 9월에 정식으로 기술과 판매협정 본계약을 체결하게 되지만 영국의 애플도어사는 실내 도크를 갖추고 특수 선박을 주로 건조하는 유명한 조선기술 회사였고, 스콧 리스고는 소형 특수 선박이지만 1만5000t급 선박을 매월 한 척씩 건조해 판매할 정도로 조선업계가 인정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1급 조선소였던 것이다.

“우리가 우물 안에서만 생각을 해왔다 이거예요. 구라파로 나와서 보니까 눈이 확 트이고 말이지. 애플도어라는 회사를 만나 정보를 듣다 보니 서독에서 만난 아게베세 조선소가 우리를 얼마나 봉으로 여겼는지, 얼마나 터무니없는 기술료를 요구하면서 흥정을 했었는지, 그런 걸 다 알게 되고 말이에요.”

“우릴 봉으로 알잖습니까”

아게베세 조선소가 언급됐지만 이 조선소는 정 회장만 상대한 것이 아니었다. 앞에서는 정 회장을 만나고 뒤로는 재빠르게 선을 넣어 부총리에게 자기들이 조선소를 건설해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며 흥정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김학렬 부총리와 정 회장이 부닥친 것도 사실이었다.

“아게베세 조선소에서 제시한 조건의 핵심이 상당히 호조건이고 내가 생각할 때는 구미가 확 당겨요. 정 회장께서 오케이만 한다면 조선소 설계도면과 용역비로 580만 달러를 요구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거기다가 선박을 건조하는 기술협력을 해주고 판매할 때마다 판매 수수료로 선박 가격의 5%만 달라는 것이고. 이런 조건이 어디 또 있겠어요? 결국은 580만 달러로 조선소를 지어주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하하하.”(김학렬)

“사람을 바깥에 내보내 놓고 정부에서 자꾸 뒤로 만나시면 협상을 어떻게 합니까? 메리도라는 친구도 앞에서는 우릴 만나고 뒤로 부총리님을 찾아갔지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서 깨지지 않았습니까? 580만 달러만 가지면 조선소가 다 되고 그게 또 훌륭한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정부에서 580만 달러 투자해서 조선소를 맨들지 뭣 때문에 이 고생을 시키십니까?”(정주영)

“아니, 좋은 조건이라면 열 번이라도 만나야 되는 것이고 정 회장이 모르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정보를 주는 건데 무슨 말을 그래 해요!”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시니까 그러지 않습니까?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면 정부에 580만 달러가 없어서 못하십니까? 그 돈으로 될 일이라면 차관을 할 필요도 없고 지금이라도 저희가 빌려드리겠습니다.”
“정 회장!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요. 정부에서 모르고 있는 내용이 있으면 설명을 해주어야지 무슨 말을 그래하고 있어요!”

“함정이 있거나 봉으로 알고 그러는 거니까 답답하시더래도 제가 결론을 볼 때까지 정부에서 자꾸 만나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어쨌든 1차 목표는 차관이었다. 설계나 용역이 급하지 않았다. 돈줄을 잡는 것이 절실해 애플도어사를 만났어도 기자재 상담은 뒷전이고 마음은 돈줄이었다. 그런데 국제 금융 브로커의 말이 정확했던 것이다. 상담했던 애플도어사의 롱바톰(Longbattom) 회장이 영국의 버클레이 은행을 움직일 정도가 된다지 않는가? 정 회장으로서는 귀가 번쩍할 수밖에.

“즉각 우리가 가지고 갔던 보따리를 다 풀었지요. 보따리라는 건 우리 계획서지요. 그러면서 조선소도 만들고 선박도 건조해야 되겠으니 어떡하든 차관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애플도어하고 기술협약도 하고 용역도 의뢰하겠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롱바톰 회장이 우리 계획서를 좍 보더니 좋다고,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오케이를 해요. 그러면서 버클레이 은행에다 차관 신청을 해보자, 그렇게 됐어요. 그러니까 롱바톰 회장은 알아볼 것 다 알아보고 버클레이 은행에다 차관 신청을 하는 거지요.”
며칠 시간을 달라 한 건 그 사이에 현대에 대해 알아본 것 아닙니까?

“하하항, 그것도 얘기가 긴데 그런 셈이지요. 그런데 가만 보니까 롱바톰 회장이 그동안 거래를 많이 하고 신용이 좋았던지 은행에서 대접하는 게 달라요. 당시만 해도 우리는 외국은행에 큰 차관을 요청하는 것도 첨이고 모든 게 어리둥절하고 긴장을 했을 거 아니에요? 그걸 알았는지 은행에 가니까 아주 친절하게 계획서를 두고 가라고, 충분히 검토해서 연락을 하겠다고, 그러면서 현관까지 나와요. 그걸 보면서 역시 선진국은 은행이 존재하는 목적이 다르구나 싶었어요. 우리나라는 어디 그래요? 계획서를 제출해보는 것조차 어렵고 낸다고 해도 전부 턱으로 가리키며 거기 앉으슈, 거기 두슈, 보고 연락할 테니 가서 연락하거든 오슈, 이러잖아요.”

▶정주영 회장은 배를 만든 경험이 없었지만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던 거북선 도안을 보여주며 선박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결국 1974년 6월 조선소 준공과 더불어 26만t급 초대형 원유운반선 2척을 건조해냈다. 사진은 그중 한 척인 애틀랜틱 배런호의 진수식 장면.

“정부와 기업 마인드 안 맞아”

계획서를 낼 때 특별한 질문은 없었습니까?

“일단 계획서를 봐야 질문을 하는 거겠지요. 다만 차 한잔 주면서 지나가는 말로, 조선소를 만들고 배를 건조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 소리는 해요. 근데 나는 또 그게 면접하는 건 줄 알고 얼른 대답을 했지요, 하하항. 그만큼 얼어있었던 거예요.”

어떤 대답을 하셨는데요?

“늘 내가 주장하던 소리였지요. 좌우간 조선소라는 게 별거냐? 도크라는 건 목욕탕 욕조를 크게 만드는 것하고 똑같은 거다 생각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고, 선박 건조는 커다란 철 그릇 속에다가 철로 만든 구조물 빌딩을 하나 세우는 거다 생각하면 되는 건데 그게 뭐 어렵겠느냐고, 우리가 빌딩 한두 채 지어본 게 아니라고 말이야. 설계는 아직 못하지만 영국에서 설계하고 시방서만 주면 못 만들 게 없다고 말이지. 그랬더니 막 웃으면서 재미있는 말씀이라고 그랬는데 옆에서 통역하는 눔이 쿡쿡 찌르면서 그만하셔도 된다고 그러잖아.”

사업계획서에는 조선소 규모나 건조할 수 있는 목표 물량까지 넣어두고 있었습니까?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일을 해보니까 참 장애가 많아요. 우선 정부하고 기업이 서로 마인드가 맞지 않아.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가 차관을 얻으려고 여러 나라를 교섭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영국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각국의 대사관에 상무관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한테 한국의 조선산업 실태를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 상무관들이 어디를 통해서 실태를 조사하겠어요? 당연히 우리 정부의 관련 부처에 자료를 요청할 거 아닙니까? 그걸 알고 박 대통령은 워낙 빠른 어른이니까 즉각 외무장관을 불러 각국의 상무관들한테 오히려 브리핑을 해주라고 지시를 했어요. 그게 신뢰감도 주고 조금 부풀려도 정부 자료니까 믿을 거 아니겠어요. 근데, 그렇게 했으면 빨리 우리한테 연락해서 계획서하고 입을 맞춰야 되는 거 아니에요? 성사시키는 게 목적이잖으냐 말이야. 그런데 뭐? 정부의 3차 5개년 계획의 목표는 15만t 규모다, 이게 될 소리예요, 이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니 보고서가 어떻게 날아가겠어요. 차암 대가리 쓰는 거 보면 아직 한참 멀었다 싶은 거야. 정부가 기업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조선소를 못하게 막는 거나 뭐가 달라요? 작성한 보고서를 하나 봤더니 한국이 그때까지 최대 규모로 건조한 게 1만7000t급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밝힌 3차 5개년 계획의 목표는 15만t 규모다, 그러니 25만t급 이상의 대형 유조선을 만들 경우 한국에는 기술 인력이 없을뿐더러 건조 경험을 가진 중간관리자도 없는 실정이므로 사업계획서 내용은 타당성이 없다, 이렇게 돼있는 거야. 누가 차관을 해주겠어요!”

회장님이 제출한 계획서에는 그런 규모가 아니었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갑갑하다는 거지요! 내가 가지고 나간 사업계획서에는 부지 17만5000평, 건물 3만7611평, 건조 목표는 최대선박 50만t에 연간 25만9000t급 5척으로 되어 있고, 길이 500m, 폭 80m, 깊이 12m의 드라이 도크를 1차로 건설한다, 그럭하고 450t급 골리앗 크레인 2기를 확보하는 것이 기본 골자다, 이거거든? 근데 정부에서 목표가 15만t이라고 했으니 말이야, 이건 똥 싸놓고 매화 타령하는 꼴이지, 일을 되게끔 하자는 소리예요 이게? 더구나 그건 해명하기도 쉽지가 않아, 정부 발표니까. 해명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거짓말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정부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버클레이 은행에서는 시간을 끌지 않고 곧바로 검토 결과를 알려왔습니까?

“아, 역시 일 처리가 빨랐어요. 우리는 은행이 그걸 전부 심사할 동안에 턱을 괴고 기다리고 있어야 될 노릇이지 별다른 방법이 없는 거 아니에요? 우리나라 은행 같았으면 니들이 영국에서 왔건 소련에서 왔건 알 바 아니니 심사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라고 했을 거야.
근데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배려했는지 다음날인가? 바로 연락이 왔어요. 언제 들어오라고 말이지. 그러고 말하는 걸 들어보니 유머도 있어요. 대체 어떤 사람인데 이렇게 큰 사업을 한다고 돈을 달라는 건지 통을 좀 들여다봐야겠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한번 면접 시험을 하겠다는 거지요, 하하하.”

그래도 적극적으로 검토를 해주고 희망을 보여준 건 버클레이 은행이 처음 아니었습니까?

“그랬지요. 아주 고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들어오라는 날이 마침 월요일이야. 그래서 기다리고 있을 때가 일요일이기 때문에 긴장할 것 없이 시내 구경이나 나가자 했어요. 우리가 그동안 영국에 와서 차관에 전력하느라고 호텔 문밖을 하루도 나가보질 못했거든? 그러니 나하고 동행하는 직원은 항상 죽을 지경이지, 하하항. 기분 전환도 시킬겸 템스강 상류에 셰익스피어 생가가 있는데 거기에 구경을 갔어요. ”

워낙 바쁘신 분인데 원님 덕이 아니라 버클레이 덕에 관광까지 하셨군요.

“그런 셈이지요. 점심을 먹고 돌아오다 런던 교회에 있는 윈저성도 보고 석양도 구경 했으니까요. 내가 해외를 수없이 나가지만 한번도 관광이라고는 제대로 못했어요. 정말 한번도 그럴 기회를 가지지 못했어. 그런데 그때는 생전 첨으로 여러 가지 공부를 한 셈이 됐어요. 하여간 그렇게 하고 그 이튿날 점심시간인데 12시가 돼서 버클레이 은행 부총재가 만나자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부총재가 직접 나왔는데 이상하게 점심시간에 부르는 거예요. 그런 게 우리하고는 문화의 차이랄까, 의식의 차이 같은데, 우리는 점심시간에 만나자고 하면 이거 밥을 사라는 얘기로구나,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그게 아니야, 커피와 토스트 하나 딱 들고 먹어가면서 얘기야. 그러니 괜히 지갑만 만지작거렸지. 하하항.”<계속>

출처 : Tong - 마중물(Choi)님의 경제/직장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