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밤에 인생의 항로를 인도해준 등대는 새벽기도였다. 삶의 암초를 만날 때마다 새벽제단을 쌓았다. 좋은 일이 있을 때나 궂은 일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새벽기도를 드렸다. 사실 나에게는 아무런 배경이 없다. 권력도, 금력도 없다. 그러나 남들이 갖지 못한 무기 하나는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다.
“하나님, 어떤 결과도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리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나의 공직생활은 동선(動線)이 확실했다. 아침 6시에 안양의 집을 나서서 7시에 종합청사 뒤편의 대중 목욕탕에서 운동을 했다. 그리고 19층 국무회의장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19층 계단을 오르고 나면 몸에서 땀이 솟는다. 국무회의장은 장관들이 회의를 하는 곳이다. 장관들이 회의를 하면 비서관들은 그 뒤에 앉아 회의를 지켜본다. 장관석과는 불과 1m. 그러나 평생 그 1m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공직을 마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는 꿈이 있었다. 맡은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다. 청와대 비서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마음 속에서는 한 가지 간절한 기도 제목이 싹트고 있었다. 국무회의를 참관할 때마다 그 기도는 더욱 강렬해졌다.
“하나님, 1m의 벽을 허물어주옵소서. 장관이란 자리는 여리고 성 처럼 견고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이 없음을 믿습니다. 저도 1m 앞 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현실을 보면 모든 것이 암담해보인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불가능이 없다. 하나님은 자녀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기도는 역사를 바꾸어놓는다. 기도는 기적의 재료가 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여리고 기도를 드렸다. 출근하면 맨 먼저 계단을 걸어올라가 19층 국무회의장에 들렀다. 문고리를 잡고 간절히 기도를 드린 후 내 자리에 돌아와 업무를 시작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성경은 내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나는 기도만 하고 노력은 하지 않는 게으른 크리스천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님은 기도하면서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의 기도를 더 신속하게 응답하신다. 감나무 밑에 누워 감이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은 신자가 될 수는 없었다. 시험을 앞두고 기도만 하다가 백지 답안지를 내는 미숙한 학생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 저도 언젠가는 국무위원이 되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도록 도와주옵소서. 꿈이 있는 백성은 흥한다고 하셨지요? 제게도 꿈이 있습니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나는 긍정의 힘보다 훨씬 강력한 ‘기도의 힘’을 믿는다.
우리 가족은 아주 오랫동안 안양에서 살고 있다. 가족은 모두 안양 충만한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김석철 목사님의 메시지는 우리 가족의 영적 만나였다. 그런데 주일예배 때 다소곳한 자세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참한 처녀가 눈에 띄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피아노 반주자가 우리 가족이 됐으면 좋겠다. 며느리로 들어오면 분위기가 한결 좋아질 텐데…. 찬송도 함께 부르고 기도도 함께 하면 훨씬 행복할 텐데….”
그 반주자는 김 목사님의 딸인 은혜양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놓고 은밀하게 기도를 드렸다. 과연 기도의 힘은 무서웠다. 아들 지훈이가 은혜양과 자연스레 교제를 시작하더니 결국 결혼에 이르렀다.
목사님 가정과 사돈을 맺으면서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믿음 안에서 잘 자란 여성 한 사람이 가정의 분위기를 얼마나 밝고 아름답게 바꿔놓는지를 실감했다. 며느리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대가족이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행복한가. 목사님을 사돈으로 맞은 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엄청난 기도의 원군을 얻은 것이다.
지금은 대광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김석철 목사님은 충만한교회를 떠나 세계비전교회를 섬기고 있다. 포항중앙교회 서임중 목사님도 나를 위해 기도를 아끼지 않는 고마운 분이다. 많은 목사님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다. 이렇게 많은 기도 지원을 받고 있으니 어찌 내 인생이 순탄치 않으랴.
2003년 5월. 고난의 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직자들은 인사철이 되면 거의 홍역을 앓는다. 그때 고충처리위원회에 근무했다. 내 적성에 가장 잘 맞는 곳이 있었다. 나는 그 문제를 놓고 기도를 드려왔었다. 그런데 에상하지 못한 부서에 배속된 것이다.
“하나님, 또 어떤 뜻이 있으신가요. 그 뜻을 좀 가르쳐주세요.”
나는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새벽기도를 통해 놀라운 말씀의 응답을 받았다.
“어느 곳에 있든지,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영광을 생각하라.”
그것은 놀라운 응답이었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