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 2007.01.21 15:2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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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광석은 용광로에 들어가 불순물이 제거된 후 순수한 철만 정제된다. 하나님은 가끔 역경이라는 이름의 용광로를 준비하신다.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는 항상 정금 같은 선물을 준비하신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2001년,내게 닥친 시련의 용광로는 너무 뜨거웠다. 대우그룹의 부도는 우리에게 치명적이었다. 당시 200개 협력업체 중 53개사가 부도를 냈다. 대우가 우리에게 결제해줄 돈은 119억원,우리가 발행한 어음은 89억원이었다. 돈은 한푼도 받지 못한 채 어음을 막는데 급급했다. 은행과 보증기금에서 특별융자를 받아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집에 있던 반지 목걸이 보석 등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내다팔았다. 사업가의 아내는 항상 불안한 법이다. 아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모든 패물을 내놓았다. “고마운 사람,당신의 사랑 때문에라도 반드시 지금의 고난을 극복할 것이오. 그리고 훗날 이 힘겨운 날들을 은혜롭게 간증할 것이오.” 가난한 집에 손님이 찾아오거나 행사가 많으면 안주인은 괴로운 법이다. 대접할 음식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나도 그 말을 처음으로 절감했다. 그 위기의 시간에 추수감사절이 다가온 것이다. 가진 것이 없는데 무엇을 드려야 하나. 지금은 빈 손인데…. 추수감사주일을 하루 앞두고 아내가 장롱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주택청약통장,그것은 정말 비장의 카드였다. 아내가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것이었다. “여보,이 통장을 해약해서 추수감사 헌금으로 바칩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내의 말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묘안도 없었다. 아내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내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보,어차피 모든 것의 소유자는 하나님이시잖아요. 나중에 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이니 미련없이 바칩시다.” 과연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하나님의 딸이었다. 우리는 은행에 가서 통장을 해약했다. 은행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왜 이것을 해약하십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큰 돈이 될 텐데요.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럴 일이 있어요. 아주 중요한 곳에 사용할 것입니다.” 우리는 청약통장을 해약한 돈으로 추수감사절 헌금을 정성껏 드렸다. 그해 추수감사절은 내게 큰 은혜가 됐다. 나는 신앙은 현재형이라고 생각한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나중은 약속어음일 뿐이다. 과거는 부도수표와 같다.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중에 사업이 좀 잘 풀리면?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이다. 2001년의 추수감사절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바로 지금 감사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통장을 해약해 추수감사 헌금을 드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하나님은 훤히 알고 계셨으리라. 나는 성경을 믿는다. 사업의 원리,대인관계의 원칙,교육의 방식도 모두 성경에서 배웠다. 우리의 통장 헌금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됐음을 믿는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30배나 60배나 100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 4:20). 통장 헌금을 드린 후 엄청난 사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
업데이트 : 2007.01.22 15:4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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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에 떨어진 씨앗이 30,60,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은 300,600,1000배의 수확을 주시기도 한다. 고작 30배인가. 겨우 100배인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 숫자의 의미를 안다. 30이 때로는 300이 되고,3000이 될 수도 있음을…. 주택청약통장을 해약한 돈으로 선뜻 추수감사헌금을 드렸다. 그리고 그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회사 상황은 워낙 급박하게 돌아갔다. 부도를 막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부도난 회사로부터 일부 자금이 회수되기 시작했고,어음도 무리없이 해결됐다. 누군가가 말했다. 위기는 곧 위험한 기회라고. 회사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을 찾아갔다. 특히 외국 자동차 회사들로부터 주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주문이 쏟아졌다. 직원을 더 채용하고 생산라인도 확장했다. 공장을 24시간 동안 풀가동해야 겨우 주문을 감당할 수 있었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된 영문인가.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주택청약통장을 해약해 추수감사헌금을 드렸더니,상상도 못할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기복신앙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인 걸 어쩌랴. 우리 제품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2001년 추수감사절이 지난 후 외국의 자동차 회사들이 품질을 확실하게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항상 우리의 방법과 지식과 상상을 초월한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주문을 감당하느라 모두 정신이 없었다. 우리 제품은 지금도 90% 이상을 외국으로 수출한다. 외국기업들은 한번 계약을 체결하면 보통 5년 동안은 거래를 계속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5년 동안 먹을 곡식을 준비하신 것이다. "하나님,바로 이것이었군요.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저희 부부를 시험하셨군요. 자금줄을 꽁꽁 묶으신 다음,추수감사절을 지내게 하시고,장롱 속 통장을 꺼내게 하셨군요. 그리고 순종하는 우리 부부에게 이렇게 물붓듯 물질의 복을 주시는군요." 우리 부부는 감사와 감격의 기도를 드렸다. 수출은 상상못할 정도로 증가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승법(乘法)'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추수감사 헌금의 1000배 이상으로 축복해 주셨다. 어느 날,우리 부부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여보. 마가복음 4장20절 말씀은 참으로 옳아.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30,60,100배가 아니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야." "맞아요. 기도의 응답이 이렇게 빠르고 놀라울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이듬해에는 사업이 너무 커져서 할 수 없이 회사를 하나 더 세웠다. 지금은 6개의 회사로 늘어났다. 모두 나름대로 독립해서 잘 운영되고 있다. 이제 남은 삶 동안 회사 6개를 더 세우려 한다. 그래서 G12그룹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G12란 곧 예수님의 12제자를 일컫는 것이다. 12개의 회사가 예수님의 제자같은 회사가 되어 세계 곳곳에 교회를 세운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화재로 전소된 터전 위에 MGS(My Great Shepherd,나의 위대한 목자)란 회사를 세웠듯이,역경의 파도를 넘은 회사들마다 간절한 신앙고백이 깃들기를 바란다. 기도는 최고의 자산이다. 내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화양감리교회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서로 손을 잡고 기도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가족의 기도,교인들의 기도,어머니의 기도,목사님의 기도…. 이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기도의 지원병을 가진 사람은 항상 희망이 있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
업데이트 : 2007.01.23 17:1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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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삶은 심플해야 한다. 신앙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사탄은 우리의 관심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킨다. 그래서 정신없이 바쁘게 만든다. 그러면 어느 것 하나에도 성실할 수가 없다. 맹수 조련사들은 사자나 호랑이를 훈련시킬 때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사용한다. 왜? 의자를 맹수의 눈앞에 들이대면 의자의 네 다리에 신경을 쓰게 된다. 맹수는 신경작용의 분화로 인해 곧 무력해진다. 사탄은 맹수 조련사가 사자를 훈련시키듯 크리스천들에게 많은 호기심과 과중한 일을 맡겨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삶의 철학이다. 내 삶은 트라이앵글의 세 꼭짓점을 연상시킨다. 회사와 가정과 교회를 삼각형의 세 꼭짓점으로 삼고 그 위를 끊임없이 움직였다. 아주 단순한 동선(動線)인 셈이다. 그리고 나의 3대 인생목표 중 아직도 성취하지 못한 100개 교회 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설날도 어김없이 해외선교에 나설 것이다. 17년째 명절 선교여행인 셈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내게는 최고의 보람이다. 1995년. 네팔 선교여행은 매우 많은 추억을 남겼다. 네팔의 키투완 교회를 건축한 일은 잊을 수 없다. 우리는 고장난 자동차의 문짝을 잡고 천길 낭떠러지 길을 수없이 넘고 또 넘었다. 조금만 삐끗하면 아스라한 골짜기로 추락할 상황이었다. 나는 덜컹거리는 문짝을 붙잡고 계속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제가 이곳에서 죽으면 하늘에서 받아주시겠지요. 선교하다가 죽으면 그것이 바로 순교가 아닙니까. 그러나 성취할 목적이 있는 사람,사명이 있는 사람은 섣불리 데려가시지 않는다면서요? 저희들의 안전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를 세울 수가 있잖아요.” 공포에 떨면서 기도를 드렸다. 기도하고 나면 마음 속에 평강과 희락의 비둘기가 내려앉았다. 우리는 힘차게 찬송을 부르며 진군을 계속했다. 그리고 키투완 교회 준공예배를 드렸다. 고생이 심하면 심할수록 은혜와 감동도 그만큼 컸다. 네팔에서 돌아오는 길에 캄보디아 선교정탐에 나섰다. 동행한 목사님은 캄보디아 방문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었다. 150만명을 학살한 잔혹한 현장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목사님을 설득해 기어이 캄보디아를 찾았다. 물론 킬링필드 등 비극의 현장을 모두 돌아보았다. 그런데 캄보디아의 김인순 선교사가 대뜸 우리를 찾아와 읍소하는 것이었다. “장로님,우리는 지금 교회와 학교를 건축하고 있어요. 그런데 땅값과 건축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요. 장로님께서 좀 도와주세요.”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었다. 우리 수중에는 겨우 500달러 정도뿐이었다. 이것이 교회 건축에 도움이 된다면 좋으련만…. “김 선교사님,지금은 수중에 돈이 없어요. 한국에 돌아가서 좀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러나 김 선교사는 막무가내였다. “그때는 이미 늦어요.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선교기금이 마련됐다. 그 돈을 선교사님께 모두 드려 마을 동산에 ‘언덕위의 교회’를 세웠다. 1층은 학교,2층은 교회로 사용됐다. 이듬해 이곳에 대홍수가 발생해 주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마을이 온통 침수된 것이다. 주민 대부분이 지대가 높은 교회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교회를 찾은 사람들은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그때부터 이 교회는 ‘노아의 방주’로 불리고 있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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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다마(好事多魔). 2006년 내 삶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다. 1년 동안 해외에 5개 교회를 개척했다. 그 교회들은 나름대로 풍성한 선교의 열매를 맺고 있었다. 오랜 기도 제목인 교회 기도원도 건축됐다.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룬 한 해였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화양감리교회에 출석했다. 중·고등부와 청년부도 내가 처음 만들었다. 장년이 된 후로는 주로 재정과 선교에 관련한 직분을 맡았다. 46년째 한 교회를 섬기는 것도 어머니의 가르침에 영향 받은 바가 크다. “모교회를 잘 섬겨야 복을 받는다. 주일은 반드시 모교회에서 예배를 드려라.” 전국 각지에 출장을 다니면서도 주일은 어김없이 한 교회를 섬겼다. 이것이 바로 놀라운 축복이었다. 한 교회에 오래 충성하다보니 교회가 바로 가정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교회는 삶의 터전이요 영적 운동장이었다. 어린 시절,교회 앞마당에서 뛰놀며 꿈과 비전을 품었듯 내 자녀들도 이 교회에서 꿈과 소망을 품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됐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청소년들은 성경적인 지식보다는 신앙적인 분위기에 훨씬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젊은 부부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교회에서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라. 그것이 최상의 신앙교육이다.” 그동안 네 분의 목사님을 모셨다. 하나님은 꼭 필요한 때,꼭 필요한 종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교회 기도원을 마련하지 못해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토록 간절히 염원했던 알파하우스가 완공된 것은 최고의 기쁨이었다. 사업도 탄탄대로였다. 중국 선양에 5000평 규모의 공장을 세웠고 2개 건물을 더 건축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풍에 돛을 단듯 순조로운 데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기도를 드릴 때마다 일말의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이었다. “교회나 기도원을 지으면 사탄도 그 옆에 자신들의 진지를 구축한다는데 절대 시험에 들지 말아야지. 기도로 단단히 무장해야지.” 교회나 기도원을 짓다가 실족해 교회가 분열되고 목회자와 교인들이 상처를 입는 경우를 몇 번 보아았다. 교회나 기도원은 돈으로 짓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기도로 지어야 한다. 그러잖으면 나중에 꼭 시험을 당하게 된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언행에 각별히 유의했다. 좋은 일이 많으면 반드시 궂은 일도 따라오게 마련이다. 사탄은 사람의 교만한 마음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탄은 나의 아킬레스건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회사였다. 외국 기업들로부터 많은 물량을 주문받아 활발하게 운영되던 회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평소 아무런 하자가 없던 생산라인에 문제가 발생했다. 가동되던 기계들이 연달아 경고음을 냈고 작동이 중단됐다. 어떤 날은 하루에 11회나 기계가 멈춰섰다. 이쯤 되면 거의 생산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었다. 더욱 답답한 것은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거의 불량품이 없었다. 그런데 한꺼번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자동차 회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제품을 함부로 수출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신용과 제품을 모두 잃을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도대체 원인이 뭐란 말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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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상황이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벽에 이르렀다. 이 절망의 벽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두려웠다. 생산라인이 언제 멈출지 모른다. 규격에서 약간씩 벗어난 제품을 바라보는 것은 여간 큰 고통이 아니었다. 자동차 부품에 이상이 생겨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그것은 죄악이었다. 생산라인을 아무리 점검해보아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외국 회사들로부터 주문받은 물량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이르렀다. 지금껏 사업을 하면서 이번처럼 답답한 적은 없었다. 수재나 화재를 당했을 때도 지금처럼 막막하지는 않았다. 외국에서는 납품 독촉이 빗발쳤다. “왜 아직도 부품이 도착하지 않는가. 당신들 때문에 자동차 조립을 못하고 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2006년 6월16일. 공교롭게도 ‘6’이라는 숫자가 세번 들어간 바로 그날부터 기계결함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3개월 동안 불면의 세월을 보냈다.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신뢰를 잃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사업을 시작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아니 두려웠다. “하나님,이제 완전히 항복합니다. 다 끝났어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2006년 9월15일. 완전한 절망을 선포한 날이다. 나는 출근을 포기했다. 이제 중요한 결단을 내릴 일만 남아 있었다. 사태를 방치하면 다른 회사도 붕괴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여보,왜 출근하지 않으세요?” 아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다. “다 끝났어요. 회사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아요. 도무지 방법이 없어요. 완전히 백기를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기도원에 가서 실컷 기도나 하고 올 생각입니다.” 아내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따라나섰다. “당신 혼자 가면 안돼요. 내가 곁에서 함께 기도해줄게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보자고요. 이제 다른 방도가 없잖아요.” 아내와 함께 기도원에 올랐다. 기도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급하게 오느라 기도원 열쇠도 가져오지 못했다. 우리는 기도원 현관 앞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사업을 하면서 지금처럼 외롭고 막막한 적은 없었다. 갑자기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제가 완전히 백기를 들었잖아요. 그런데 더 이상 또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 사업은 완전히 끝이 났어요. 100개 교회를 세우겠다는 꿈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울부짖었다. 나는 원래 이런 식의 기도를 드린 적이 없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리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다. 감상적인 신앙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꺼이꺼이 울면서 기도하는 것은 내 본연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신 차려라. 침착해라. 값싼 감상주의에서 깨어나라. 정신은 맑은데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때 마음 속에서 커다란 울림 하나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나는 네가 이곳에 돌아올 줄 알았다. 이제부터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염려하지 말라.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 성경 말씀 한 구절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 말씀 때문에 나는 정신을 수습했다. 그리고 비로소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다. 내 인생의 보석 같은 그 말씀….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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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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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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