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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넘어선 결단 ‘워크맨 신화’를 쓰다- 모리타 아키오 소니 창업자

영국신사77 2007. 1. 23. 17:58
시대를 넘어선 결단 ‘워크맨 신화’를 쓰다- 모리타 아키오 소니 창업자
 
 
출처 블로그 > 僕と彼女と彼女の生きる道
원본 http://blog.naver.com/stussy9505/60033502544

 

 

    • 모리타 아키오 소니 창업자

    1956년 모리타 아키오 사장(당시)이 소니(SONY)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가지고 뉴욕에서 라디오 판매상을 만났을 때다. 판매상은 “우리 브랜드를 붙이는 조건으로 10만대를 주문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일종의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이었다. 소니 본사에서도 “브랜드 문제는 회사가 좀 성장한 후로 미루고, 지금 당장은 자금사정이 어려우니 큰 주문을 놓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심사숙고 끝에 모리타는 대량 주문을 포기하고, 소니 상표를 붙일 수 있는 소량 주문에만 응했다. 속으로 “소니를 반드시 유명한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면서….

    이 같은 노력이 30여 년 쌓이면서 소니 브랜드는 세계 정상에 올랐다. 모리타 회장은 은퇴 회견에서 “당신이 소니를 위해 내린 의사결정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것 하나를 들라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1956년 브랜드를 고수한 의사결정을 꼽았다. 그는 50년 전에 이미 브랜드와 무형자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장기적 관점에서 단기적 이익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와 지혜를 갖춘 경영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또 다른 일화 하나. 모리타 회장이 “걸어다니면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오디오인 ‘워크맨’을 만들자”고 했을 때 직원들은 “그런 제품은 팔릴 리가 없다”며 거세게 반대했다. 시장조사결과도 좋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시장조사는 어리석은 짓이다”라며 시장조사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객들은 무엇이 가능한지 모른다. 헨리 포드(포드자동차 창업자)가 일반인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면 그들은 아마 ‘자동차가 아닌,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는 최종 순간에 결단을 내리며 단언했다. “만약 3만개 이상 팔리지 않으면 회장을 그만 둔다.” 워크맨은 지금까지 무려 3억 개가 넘게 팔리며 소니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CEO는 직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당연히 결과에 대한 책임도 CEO 몫이다. 1999년 포천(Fortune)지는 워크맨 개발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의사결정 중 하나로 선정했다.

    모리타 아키오는 이부카 마사루와 함께 1946년 도쿄통신공업을 창립했다. 이부카는 기술을, 모리타는 경영과 마케팅을 담당했다. 1958년 세계적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사명을 소니로 바꿨다. 1999년 숨을 거두기 전까지 모리타는 소니를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전후 일본 경제 부흥의 상징적 인물로, ‘메이드 인 재팬’의 위상을 세계 시장에 드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99년 타임지에 의해 동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20세기 경제인’에 선정된 모리타 회장은 경영이념과 원칙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그는 10년 정도 착실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신용을 제대로 쌓을 수 없다는 것을 늘 강조했다.

    모리타 아키오는 기업 성장과 더불어 종업원이 그 조직 내에서 인생을 함께 성공시키는 그런 조직을 원했다. 그는 “나의 경영이념은 소니와 이해관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다. 특히 직원 행복이 나의 최대 관심사다. 그들은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를 소니에 맡긴 사람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행복해져야 한다. 그들이 세상을 떠날 때, ‘소니에서 근무해 정말 행복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라고 늘 말하곤 했다. 또 “직원 채용은 중요한 쇼핑이다”라고 강조하며 핵심인재 확보를 위한 집중적인 투자를 독려했다. ‘실력 제일주의’ 신념하에 1966년에 인사 제도를 학력 불문 체제로 뜯어 고쳤다. 지금도 소니의 입사 지원서나 사원 이력서에는 출신 학교란이 없다

     

                                                                                                         조선일보(200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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