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Opinion銘言

반크(VANK)

영국신사77 2007. 1. 17. 23:38

                       [만물상] 반크(VANK)

 

                                                                             문갑식 논설위원 gsmoon@chosun.com
                                                                                             입력 : 2007.01.15 23:16

    • 1999년 서경대 일문과 4학년 박기태는 해외 펜팔 친구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려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웹사이트에서 한국 관련 영문자료를 찾다 깜짝 놀랐다. ‘한국 최초의 국가는 서기 668년 형성됐다.’ 독자가 5000만명이라는 이 잡지는 고구려가 멸망한 해를 한국사의 출발점으로, ‘동해’를 ‘일본해’로 써 놓고 있었다. 그는 세계에 한국을 바로 알리기 위한 사이버단체 ‘반크’(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를 만들었다.

      ▶박기태는 회원들과 함께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300여 통의 편지와 이메일을 보내 끈질기게 정정을 요구했다. 이 잡지가 ‘동해’와 ‘일본해’를 함께 쓰고 한국사 오류를 바로잡기까지 2년이 걸렸다. 반크는 다른 기록들도 샅샅이 뒤졌다. 야후, 미국 국무부, 유니세프, WHO, 그린피스, 컬럼비아백과사전, 여행사이트 론리플래닛, 다큐채널 히스토리…. 웹사이트·국가기관·언론사 등 300곳과 교과서 1000종에서 ‘동해’가 되살아났다.

      ▶반크의 활약이 알려지자 일본이 2005년 반격에 나섰다. 반크 홈페이지는 일본 네티즌들이 보낸 영문 욕설로 더럽혀졌다. 분개한 한국 성인들의 회원 가입이 폭주했다. 반크 회원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73세 할아버지까지 1만5000명에 이른다.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부르자고 했다는 소식에 반크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모르는 게 없을 것 같은 미국 CIA의 ‘월드 팩트북’ 한국 부분에 최근 ‘한국은 1000년간 독립국가였다’는 대목이 추가된 게 반크의 눈에 잡혔다. 5000년 역사에서 4000년이 뭉텅 잘려나간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영향받은 것이라고 판단한 반크 회원들이 항의에 나선 지 한 달 만인 어제 CIA는 ‘수천 년 오랜 독립 역사를 지닌 한국’으로 정정했다고 한다.

      ▶반크는 오류 시정뿐 아니라 해외 ‘인터넷친구’ 사귀기, 국제협력 네트워크와 한국 홍보자료 검색엔진 구축, 20만 ‘사이버 외교관’ 양성을 추진한다. 수십 년 동안 정부는 엄두도 못 낸 일을 ‘사이버 외교사절단 겸 관광가이드’들이 해 나가고 있다. 그 힘을 반크는 ‘겨자씨 믿음’이라고 말한다. 씨앗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가 그 어떤 풀보다 큰 나무로 자라듯, 한 명의 해외 친구를 사귀면 60억 세계인이 ‘친구의 나라 한국’을 사랑하게 된다는 믿음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기적을 이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