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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박수받으며 떠나기: 이에야스와 옹정제

영국신사77 2007. 1. 19. 21:48

                   [금요칼럼] 박수받으며 떠나기


                                         -이에야스와 옹정제

 

                                                                                                                  박병곤 논설위원



  ...지도자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잠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일본의 에도 바쿠후(幕府) 창시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철저히 준비된 지도자였다. 유소년 시절부터 인질생활을 겪으면서 전쟁의 참상을 체험한 그는, 평화를 갈망하는 백성들의 염원을 잘 알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은 강자들과,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인내하면서 140년이나 계속된 전국(戰國)시대를 마감하려고 노력했다.

  사냥터에서 얻은 고기는 아랫사람들에게 먹이면서, 자신은 마른 밥알을 씹었다. "벼슬과 재물은 신불(神佛)이 잠시 맡긴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며 근검절약을 솔선했다. 과거의 정적이라도, 뉘우치면 모두 포용할 줄 알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세계로 눈을 돌려, 해외교역을 통한 국부(國富) 증대에 힘을 쏟았다. 그때가 임진왜란이 끝난 지 불과 10년쯤 지난 17세기 초였으니,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얼마나 탁월했던가 !

  중국 청나라의 5대 황제인 옹정제(雍正帝)는 유능한 독재자로 평가받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수도자처럼 경건하고 치열했다. 옹정제는 지방 관리들과 주고 받는 서한을 통해 광대한 중국을 통치했다. 당시 지방의 고위 관리인 총독이나 순무는 내각에 보내는 문서와 별도로 황제에게 '주접'이라는 보고서를 직접 올렸다. 황제는 이 보고서에 붉은 붓으로 정정하거나 편지 여백에 특별 지시를 적어 보내고 다시 답장을 받았다. 이것이 '주비유지'다. 옹정제는 112책에 달하는 '옹정주비유지'를 출판했다. 출판된 분량의 몇 배에 달하는 편지뭉치가, 청조 말년까지 궁정에 가득 쌓였다고 한다. 그는 이 같은 서한통치로, 중국 관료제의 뿌리 깊은 부패를 척결했다.

 

  그의 개혁 정신은 "하늘이 청조의 군주에게 내린 특별임무는,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여 만민이 안심하고 편히 살도록 하는 것"이라는 지론에서도 잘 나타난다.

  국가 지도자는 국민통합을 이뤄내고 시대정신을 구현하며,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의 아들과 가신을 포용했던 것이나, 옹정제가 천주교를 금지시켰으면서도, 이를 어긴 수누 일족에 대해 관용을 베푼 것은 통합의 리더십이었다.

 

  출신을 따지고 노선을 검증하는 '순혈주의 인사'로는, 유능한 인재를 등용할 수 없다. '뺄셈의 정치'가 아닌 '덧셈의 정치'가 되어야, 의사소통이 원활해지고 화기(和氣)가 살아난다. 평화를 염원하는 시대정신을 받든 이에야스는, 전쟁 종식에 심혈을 기울였다. 옹정제는 관료들의 부패를 뿌리 뽑지 않고는, 민중의 삶을 도탄에서 구할 수 없음을 알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날뛰는 집값,넘쳐나는 실직자,좀체 살아나지 않는 경기,흔들리는 공교육…. 이를 바로잡는 민생 회복이다. 한국인의 스트레스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보도됐다. 오죽했으면 올해의 사자성어에 구름은 가득한데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밀운불우(密雲不雨)'가 선정됐을까.

 

  노 대통령이 박수를 받으며 물러나려면, 민생회복의 서기(瑞氣)가 비치도록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는 길뿐이다. 차기 주자들도 떠날 때 박수받으려면, 국민의 염원이 무엇인지 노심초사해야 할 것이다.

 

                                                                                                           ppk@busanilbo.com

/ 입력시간: 2006. 12.22. 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