偉人*人物

선양[Shenyang :심양(瀋 陽)]

영국신사77 2007. 1. 16. 22:28

 

               선양 [(심양), Shenyang]

 

 

 

  중국 라오닝성[遼寧省]의 성도(省都). 옛이름은 봉천(), 만주어명은 무크덴(Mukden)이다. 둥베이[]지방 최대의 도시로, 이 지방의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이다. 둥베이 남동부의 노년기산지 말단부가 평야와 접하는 랴오허강[] 유역에 있다.

 

  일찍이 전국시대()부터 개발되어, 한대()에는 요동군()에 속했고, 뒤에 고구려()의 영토에 속해 있다가, 다시 당()의 지배하에 들어가서 심주()가 되었다. 그 후 발해()에 속했다가, 요()·금()시대에는 동경로(), 원대()에는 심양로()가 설치되었으며, 명()은 변경의 요지로 삼아 심양위()를 두었다.

  청조()가 일어나자 1625년
랴오양[]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성경()이라 개칭하였으며, 1644년에 베이징을 국도로 정한 뒤에는 이 곳을 배도()로 삼고, 1657년에 봉천부()를 설치하였다.

 

  19세기 말에 러시아와 일본의 둥베이 침략이 시작되자, 선양은 침략의 목표가 되고, 러일전쟁[:1904∼1905] 때 공격의 목표가 되었다.

  청조가 멸망하자 둥베이는 지방 군벌()의 지배하에 들게 되었고, 선양은 그 두목
장쭤린[] 정권의 본거지가 되었다. 1932년에 일본에 의해 ‘만주국(滿)’이 건국되면서 도시명이 봉천시()로 개칭되었고, 그 후 일본의 둥베이 지배의 주요기지로 발전하여 만주국 제1의 도시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만주국이 붕괴되자 지명이 다시 선양으로 바뀌었으며, 창춘[]·다롄[산하이관[]·단둥[]·지린[]으로 통하는 주요철도가 분기하여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부근에 푸순탄전[] 및 번치[]·안산[] 등 탄전·철산이 있어, 기계·전기기기·기관차·자동차·착유()·제분·방적·화학 등의 공업이 크게 발달했으며, 부근 일대는 중국 최대의 중화학 공업지대가 되어 있다.

  시가지는 동부의 고궁을 중심으로 성벽에 둘러싸인 구성내()와, 일본인에 의해 개발된
서부의 상가·주택가·문교지구, 중간의 관청가, 창춘~다롄 철도 서쪽의 공장지대 및 노동자 주택지구와 제2차 세계대전 후 북·동·남부로 확산된 신시가지 등으로 구분된다.

  시내에는 청대의 고궁·동릉(북릉() 및 둥베이
라마교의 본산인 황쓰사 등 사적·명소가 많으며, 랴오닝대학·둥베이재정경제대학·둥베이의과대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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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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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의 아파트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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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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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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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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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양(瀋 陽 : ShenYang : SHE )

 

 중국 동북지방(만주) 최대의 도시인 심양은 요녕성의 省都(성도)로 행정, 문화의 중심지다. 심양은 간체자로 沈陽(심양)이라고 쓴데서 나타나듯이「석양이 아름다운 도시」로 불리우기도 한다.

 

 상해, 북경, 천진 다음으로가는 도시이다. 총면적은 8,500㎢, 인구 511만명이다. 심양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고도로, 이미 전한 시대에 초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 원대의 원정2년에 (심양로)라 불리게 되었고, 沈陽(심양)이라는 도시명칭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심양시는 중국최대의 중공업 도시로서 전기, 기계, 금속, 군사공업이 발달되었다.

 

o 도로와 교통: 심양은 6개의 철도간선, 5개의 국가급 도로, 9개의 국내외 항공로가 교차되며, 남쪽으로는 홍콩, 마카오로 통하고 북쪽으로는 유럽, 동쪽으로는 한반도, 서쪽으로는 중원대륙으로 나가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심양은 2000여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고도이며, 1625년부터 1644년까지 淸朝의 도읍이였으나, 北京으로 천도한 이후 奉天으로 불렸다. 항일전쟁에 승리하고 중국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후에, 다시 심양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沈陽이라는 지명의 沈은 渾河의 원래 이름인 沈水에서 나온것이며, 陽은 중국어로 강의 북쪽을 가리킨다. 조선말기부터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가난과 일제의 학정을 피해 많은 조선족 사람들이 심양으로 이주하여 지금까지 정착하여 살고 있다.

 

 주로 고궁, 신락유적지, 북릉공원, 동릉공원, 9.18기념비, 요녕텔레비전탑, 심양동물원, 심양식물원, 본계 석회암 동굴, 하궁 수상세계, 도께비 언덕, 천산, 봉황산등 관광지가 있다.

 

o 기후와 환경

 북온대 계절풍 영향을 받는 반 습윤성 기후의 특성으로, 겨울에 춥고 여름은 무더우며, 사계절이 분명하고 계절 과도기가 아주 평온하다. 장마철은 7-8 월이며, 3-4 월은 강우량이 적은 편이며 건조한 날씨 지속된다. 평균 강우량은 820mm 이며 평균기온은 7.4℃(1 월 평균: 12.7℃. 8 월평균: 23.8℃)이다. 공업단지-철서구는 오염이 심한 편이고, 기타지구는 오염 정도가 낮은 편이나, 전체적으로 보면 심양은 중국에서 오염이 심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심양의 기온

도시명

기온(℃)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심   양

(瀋 陽)

최고평균

-5.9

-2.1

5.7

15.8

23.0

27.6

29.6

28.7

23.7

16.2

5.3

-3.0

최저평균

-17.8

-14.2

-5.4

2.9

10.2

16.1

20.3

19.1

11.6

3.9

-5.3

14.0

평     균

-12.3

-8.4

-0.1

9.2

16.5

21.6

24.6

23.6

17.1

9.4

-0.3

-8.9

강우량mm

6.2

6.8

17.1

34.8

61.8

90.7

179.8

167.8

78.8

41.1

20.8

9.2

 

 

심양의 주요시장

 심양의 주요 상업지대는 주로 中街(步行街)와 太原街 일대에 분포되어있으며, 대부분 상가의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이다.

 그중 심하구(沈河區) 풍우단(風雨壇)거리에 있는 오애(五愛)시장은, 전국 5대 정기자유시장 중 하나이다. 요녕및 동북지방의 의류경공업 도매로써, 품종이 다양하면서 질좋고 싼 물건들이 많은 곳으로 222번, 324번, 603번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

 

 남호공원(南湖公園) 고문물시장은 수십여개의 점포가 골동품, 서화, 도장, 자기, 옥기, 목각, 산호, 보석장신구 등과 옛날돈 등을 판매한다. 심양의 유명 토산품인 황제하사품 베개 및 모필화, 비단조화, 채석상감화 등도 이곳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매주 주말이면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매우 번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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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명소

故宮(고궁)

 

  심양 고궁은 청태조 누루하치와 그의 아들 청태종이 지은 황궁으로, 1625년에 짓기 시작하여 11년후인 청나라 숭덕(崇德) 원년(1636)에 완공되었다. 심양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면적이 6만㎡로, 현존하는 것으로는 북경의 고궁 다음으로 큰 궁전건물이다.

 

  90여 개의 건물에 300여 칸에 이르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으로, 지은 지 350년이 넘는 현재까지도 온전하게 보존돼 있다. 건물 안에는 당시의 의상, 보물, 문화재, 무기 등이 원형대로 전시되어 있다.

 

 북경에 있는 것보다는 아늑한 분위기의 이곳은 만주족, 한족, 몽골족의 건축문화를 한데 혼합해 놓은 것에 그 가치가 있다. 특히 색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만주족의 습성이 많이 반영되어, 심양 고궁은 북경의 고궁과는 달리, 청색 등 다양한 색이 사용되었다. 또한 각각의 건물들에는 당시의 궁정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보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내부는 동·중·서로로 크게 나뉘고, 출구는 남쪽에 있다.

 

  동로에는 고궁을 대표하는 대정전(大政殿)이 있는데, 황제와 신하들이 정무를 보던 곳이다.

 

  중로에는 숭정전(崇政殿), 봉황루(鳳凰樓), 청령궁(淸寧宮) 등의 주요 궁전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숭정전은 2층 팔각형이 특징이며 특별한 의식이 있거나 알현할 때, 봉황루는 연회가 있을 때에 사용되었다.

 

  서로에는 황제의 도서관이나 무대가 있고, 후세에 건룡제가 증축한 문소각(文遡閣)도 있다.

 

北陵公園(북릉공원)

 심양의 북쪽에 위치한 청나라 태종의 황태극 부부능. 능묘 앞에는 황색유리

기와로 된 아름다운 전각이 우뚝 솟아 있다.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만주족 수장의 기개가 엿보인다. 청나라는 사실상 태종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듯,  심양 시가지 동쪽끝에 있는 그의 아버지 청태조 누르하지의 능에 비하여, 우람하다. 그는 누르하치의 네 번째 아들로 문무를 겸비한 탁월한 인물로, 그의 형들을 제치고 발탁되었다.

 해마다 8월15일이 되면(이곳에서는 노인절이라고 부른다) 조선족들이 이공원의 거대한 연못가에 모여서 기념행사를 한다. 병자호란때 조선으로 쳐들어와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항복시킨 그는, 아직도  무덤속에 살아있는 듯, 그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갱도는 문이 굳게 잠겨 있다.

 

東陵(동릉)

 청나라를 건국한 태조 누루하치와 그 황후의 묘가 있는 이 공원은, 시내의 중심에서 동쪽으로 상당히 벗어난 곳에 있다. 162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붉은 벽돌담이 능을 둘러싸고, 하마비(下馬碑), 석비루(石碑樓) 등이 서 있다. 능묘까지는 108개의 계단이 이어지며, 뒤로는 천주산이 있고, 앞쪽으로는 운하에 면하고 있다. 공원 내에는 노송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고, 풀이 무성하게 땅을 덮고 있기 때문에 사색하며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약 11km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은, 심양시 동북부의 구릉지대에 있으며 540만㎡ 면적.

 

서탑가(西塔街)

 서탑가는 심양시의 동, 서, 남, 북에 탑과 절을 지어, 그 서쪽에 있는 탑을 중심으로 한 거리란 뜻으로 이름이 붙게 되었지만, 현재는 탑이 없다. 서탑가 지역은 코리아타운으로, 탑이 세워진 사거리를 중심으로 한국인들이 밀집해서 생활을 하고 있다.

 

 시부대로(市府大路)가 중심인 이곳은 일제시대 국밥장사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던 8명의 독립지사 부인들의 가게가 문정성시를 이루면서 독립운동의 중추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사방 1km의 거리로, 조선족 백화 상점과 한성 구물 광장의 빌딩이 있고, 활발한 경제활동의 지역이자 상업의 지역, 소비의 중심 지역이라 볼 수 있다.

 시부대로(市府大路), 연변가(延邊街), 신개도가(新開道街) 중심으로 한성 구물광장 빌딩의 뒤편에는 조선족 의원과 서탑 시장이 있다.

심양-서탑가.gif

 많은 한국 사람이 오고 가는 서탑가는 보따리 상인이나 자영업자나 기업이나 단체에서 꼭 들러 보는 명소이다. 심양역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하며, 10분 거리에 심양시청이 있다.

 

柳條湖(유조호)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만주사변신호탄으로 발사한 포탄이 터진곳이다. 당시에는 유조호라고 불렀고, 지금은 9.18사변 炸彈碑(작탄비) 유조호라고 부르지만, 호수는 보이지 않는다. 일본군은 이 폭발이 중국측의 소행이라 덮어 씌우고 일제히 중국침략을 개시했었다.

  지금 현장에는 거대한  9.18사변 기념관이 건립되어, 만주 사변과  일본군의 만행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본계수동(本溪水洞)

 400만~500만년 전에 형성된 대형 수중동굴로, 본계(本溪)시에서 동쪽으로 35km거리에 있는 태자(太子)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수중동굴은 매우 넓으면서 수심도 깊어 평균수심이 1.5m에서 가장 깊은 곳은 7m나 된다. 특히 총 5800m 중 개방된 2800m의 구불거리는 지하강을 따라 다양한 형태의 동굴을 지나게 되는 구곡은하(九曲銀河)는 삼협(三峽), 칠궁(七宮), 구만(九灣)으로 나눠져, 곳곳이 눈을 뗄 수 없는 경치로, 이름 그대로 마치 은하수를 건너는 기분이 들게한다. 동굴 안은 항상 섭씨 10℃ 정도의 온도가 유지되 사계절이 봄날씨이며, 수중동굴에서 보트를 탈때는 약간 쌀쌀하기 때문에 겉옷을 준비하는게 좋다. 300m 길이의 수중이 아닌 일반동굴 구간에는 괴석들이 우뚝솟아, 동굴안에 또 동굴이 있는가하면,우물, 용담(龍潭), 백세지(百歲池) 등이 펼쳐져있다.

 

안산시- 탕강자 온천

 심양 아래 철강의 수도라 불리는 안산에 위치하고 있는 탕강자는 중국 동북지역의 유명한 온천지역으로, 중국 4대 온천 물리치료센터 중 하나이다. 섭씨 72℃ 온도의 온천수는 칼륨, 나트륨, 마그네슘, 유황 등 30여 종의 미량 원소들이 함유되어 관절염, 풍습병, 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당나라 때부터 천연 온천수를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기 시작했으며,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는 이곳에 용궁과 봉지, 오대진지 등의 황가온천탕을 만들어 즐겨 이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당왕유지 용천별장" 등의 역사 유적지도 남아있어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몇 억년의 화산재들이 온천물의 물리화학반응을 거쳐 형성된 열광 진흙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온도가 45도로 유지되어 풍습 관절염, 신경쇠약 에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피부미용에도 좋다고한다.

 

o 교통

안산 기차역 앞에서 직통버스가 있다.

 

요녕성 박물관

 18개의 전시관에 10여건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이곳은 본래 동북박물관이라 불리웠다. 많은 전시된 유물 가운데 당,송,원,명,청 때의 서예, 그림, 자수, 도자기등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이 많아 유명하다.

 

옥불원

 심양시 아래 '철강수도'라 불리는 안산의 동산풍경구에 위치하고 있는 옥불원은 삼면이 산들로 둘러싸인 곳으로 옥불각을 중심 건축으로 하여 삼동식 산문, 옥대교, 연못지, 와과섬 등의 각각 특색있는 건축양식으로 나눠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중국이 인정한 AAAA급 풍경구로, 거대한 규모의 신비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으며, 옥에 조각된 석가모니상과 관음보살 등은 옥이 지닌 은은한 멋과 섬세한 조각의 아름다움을 잘 느낄 수 있다.

 

o 개방시간

하절기 7:30 - 18:30

동절기 8:00 - 16:00

 

o 교통

안산시내에서 308번 버스 이용.

 

장쭈어린폭사현장(張作林 폭사현장)

 트롤리 버스를 이용한다. 5路로 황쓰꽝창에서 하차하여 약 15분 정도 걸으면 된다.

 관동문 참모 가와모토의 음모에 의해 펑티엔파 군벌의 증진 장쭈어린이 폭사당한 사건이 1928년 6월 발생, 계속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천산(千山)

심양 아래 철강으로 유명한 안산시의 동남쪽에서 17km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천산은, 총면적 125㎢에 관광을 위한 풍경구가 72㎢, 보호지대면적이 53㎢이다. 예로부터 적취산(积翠山), 천화산(千华山), 천정산(千顶山)이라 불렸으며, 볼만한 곳이 많아 걸음을 옮길때마다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60년대에는 전국 10대 명산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며, 80년대에는 국가 최고중점 풍경 명승구들 중 하나로 뽑히기도 하였다.

 

  천산은 자연풍광이 기묘하면서도 역사문화가 유구하여 인문풍광도 풍부하다. 기봉(奇峰), 괴석(怪石), 범송(苍松), 배꽃(梨花)은 천산의 4대 자연풍경이다. 우뚝우뚝 솟아있는 군봉(群峰) : 선인대(仙人台),오불정(五佛顶), 연꽃봉(莲花), 사자봉, 와상(卧象), 금강봉 등 110여개의 고봉에서는 산의 경치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다. 천산에는 종교문화의 역사도 깊어, 일찍이 1400년 전 북위시기의 불교 유적이 남아 있으며, 당대의 불당 건축과 요금시기의 불교성지가 있다. 청대에는 도교가 들어와 불교와 도교 두 종교의 사원이 한 산에 공존하면서, 흥성기에는 사당만 40여개에 스님과 도사가 1000명에 달했다. 현재는 20여개의 사당만 남아있으며, 높이 70m의 천성 미륵보살상이 유명하다.

 

 천산풍경명승구는 풍경관광구와 온천휴양구로 나뉘어져 있다. 풍경관광구는 50㎢로 자연풍광자원과 종교문화가 주를 이루어, 여행객들은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명승지를 돌아보며 종교적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온천휴양구는 28㎢ 면적에 온천과 다양한 오락을 중심으로 풍경관광구에서 경험할 수 없는 즐거움을 채워준다.

 

요녕텔레비젼탑(遼寧電視塔)

 1984년 8월 8일에 지어져 1989년 9월에 대외에 개방된 요녕TV방송수신탑은 총 높이가 305.5m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대상공원(帶狀公園)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여행, 관광, 식사, 오락, 방송수신탑의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심양시의 대표적 건축물이면서 관광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탑의 탑루는 187m와 215.5m 사이에 지어져 있으며, 모두 6층으로 이루어져, 회전식 레스토랑(45분에 1바퀴 회전함)과 전망대, 무도홀, 레크레이션홀, 상점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26명을 태울 수 있는 초속 5m 속도의 고속엘리베이터는 40초면 196m의 전망대에 도착한다.

 193m에 자리하고 있는 회전식 레스토랑은 400㎡의 면적에 최고의 요리사들이 만든 동북지방,사천,광동 요리 및 40여 종류의 교자연을 맛볼 수 있으며, 동시에 사방으로 트인 창으로는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북릉공원과 황금빛 고궁, 넘실거리는 운하를 감상할 수 있다.

 

신락유적박물관

 심양시에서 북쪽으로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74년에 발굴이 시작되어, 신석기 시대의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신락유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석기 외에 독특한 모양을 가진 도기 등도 발견되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약 7200여년 전 신석기 시대 모계사회의 유적이다.

 

장학양구거진열관(張學良舊居陳列館)

 장씨솔부박물관(张氏帅府博物馆)"은 1900녀대 초 동북지방의 군벌로 이지역 일대에서 가장 큰힘을 발휘하며 중국 국민당과 일제 등과 관련하여 많은 역사적 사건의 중심인물이었던 장작림과 그의 아들 장학량 옛 관저와 사택으로,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인 장학량 구거주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8년 12월에 개방을 하였다. 박물관 부지면적은 3.6만㎡, 건축면적이 2.76만㎡로 전람공간은 1600㎡이다.

 장학량 구거주지는 지은지 이미 88년의 역사를 갖고있으며, 심양 사람들은 이곳을 주로 "장씨솔부(張氏帅府)" ,"대솔부(大帅府)"라 부르는데, 높은 벽돌담장으로 둘러싸인 정원과 몇개의 건축물은 거대한 건축군을 이룬다.

 1914년에 장학량 장군의 부친 장작림이 건축하기 시작하여 1916년부터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으며, 이후에도 계속해서 증축하여 동원(東院), 중원(中院), 서원(西院)과 원외건축 등 4개 부분으로 조성된 건축체계를 만들어냈다. 부분별 건축물은 각기 풍격이 달라 중국 전통 스타일, 중국과 서양의 혼합스타일, 유럽형,일본형의 모든 건축양식을 볼 수 있으며, 후에 이곳은 중국정부에 의해 '전국우수근대건축군'에 지정되었다.

 '장씨솔부'는 1985년 심양시 인민정부에의해 시급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 이후 1988년에는 요녕성 정부에 의해 성급문물보호단위로, 1996년에는 국무원에 의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1998년에는 요녕성에서 이곳에 박물관을 지어 각종 전람회를 열고있다.

 

증기궤차진열관(蒸氣机車陳列官)

 1984년에 문을 연 진열관으로, 여러가지 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1927년에 제조된 체코슬로바키아제 기관차, 1907년에 만들어진 미국제 기관차를 비롯하여 9개국의 14대의 증기 기관차가 있다.

 

랴오허강[遼河(요하)]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 남부 평원을 관류하는 강. 위치 :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 남부 평원. 길이 약 1,400km. 원류는 서랴오허강과 동랴오허강으로 나뉘는데, 서랴오허강이 동랴오허강보다 길다. 서랴오허강은 대싱안링[大興安嶺]산맥 남부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흐르다가 지린[吉林] ·랴오닝[遼寧] 성경(省境) 부근에서 라오하강[老哈河]을 합치는데, 그곳까지는 시라무룬강[西拉木倫河]이라고 부른다. 랴오닝성에 들어와서, 싼장커우[三江口] 부근에서 창바이[長白]산맥에서 발원한 동랴오허강을 합쳐 랴오허강이 된 뒤, 그대로 남하하다가 훈허강[渾河]을 합치고 나서 잉커우[營口]에서 보하이해[渤海]로 흘러든다. 상류부에서 다량의 토사가 유출되어 하구부의 랴오둥만[遼東灣]에 광대한 삼각주를 형성한다. 하류부에서는 자주 홍수가 일어났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치수공사가 이루어졌다. 또, 서랴오허강 연안지대에서도 풍사(風砂)의 피해가 컸으나 대규모의 방풍림이 조성되어 판산[盤山] ·진셴[錦縣] 부근의 범람원은 광대한 농경지로 개간되고 있다. 원래 둥베이 지방 남부의 주요 내륙수로가 되어왔으나, 철도가 개통된 뒤 수운(水運)은 쇠퇴되고, 현재는 농업용수원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보하이해[渤海(발해)]

 중국 랴오둥반도[遼東半島] ·산둥반도[山東半島]에 의해 황해와 구분된 내만성(內灣性)의 해역(海域).  하천들의 퇴적으로 수심은 평균 20 m, 중심부에서도 40m에 미치지 못한다. 랴오둥 ·산둥 두 반도를 잇는 먀오다오[廟島] 군도에 의해 황해와 구분된다. 북쪽 ·서쪽 ·남쪽으로부터 랴오허강[遼河] ·롼허강[河] ·하이허강[海河] ·황허강[黃河]을 비롯한 대소의 하천이 흘러든다. 고위도 지역인데다가 만구(灣口)를 가로막는 반도 ·섬들로 해서 난류(暖流)가 흘러들지 않기 때문에 수온은 낮은 편이고,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을 받아 연안의 해면이 결빙된다. 연안에는 친황다오[秦皇島] 등 어항이 많아 고등어 ·갈치 ·조기 등을 어획한다. 무역항으로는 톈진신강[天津新港] ·후루다오[葫蘆島] ·친황다오 ·룽커우[龍口] 등이 있다. 만내의 해안선이 단조로워 항만입지에 불리하고, 따라서 항구들은 모두 인공항인데, 앞의 2개 항구는 하구(河口), 뒤의 2개 항구는 북서풍을 피할 수 있는 육계도(陸繫島) 안쪽에 건설한 것이다. 하이허강 하구 부근은 창루염구[長蘆鹽區]라고 부르는 염전지구로서 생산량은 중국 제1위이다.

 

 

              내용출처 : [기타] http://www.startour.pe.kr/local/china/china_infom_SHE.htm

 

 

 

 

                         선양 [瀋陽(심양)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의 성도(省都). 위치 : 중국 랴오닝성. 면적은 8,515㎢, 인구 386만 명(1998)이다. 옛이름은 봉천(奉天), 만주어명은 무크덴(Mukden)이다. 둥베이[東北]지방 최대의 도시로, 이 지방의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이다. 둥베이 남동부의 노년기산지 말단부가 평야와 접하는 랴오허강[遼河] 유역에 있다.

 

  일찍이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개발되어 한대(漢代)에는 요동군(遼東郡)에 속했고, 뒤에 고구려(高句麗)의 영토에 속해 있다가, 다시 당(唐)의 지배하에 들어가서 심주(瀋州)가 되었다. 그 후 발해(渤海)에 속했다가 요(遼)·금(金)시대에는 동경로(東京路), 원대(元代)에는 심양로(瀋陽路)가 설치되었으며, 명(明)은 변경의 요지로 삼아 심양위(瀋陽衛)를 두었다.

 

  청조(淸朝)가 일어나자 1625년 랴오양[遼陽]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성경(盛京)이라 개칭하였으며, 1644년에 베이징을 국도로 정한 뒤에는 이 곳을 배도(陪都)로 삼고, 1657년에 봉천부(奉天府)를 설치하였다. 19세기 말에 러시아와 일본의 둥베이 침략이 시작되자 선양은 침략의 목표가 되고, 러일전쟁[露日戰爭:1904∼1905] 때 공격의 목표가 되었다.

 

  청조가 멸망하자 둥베이는 지방 군벌(軍閥)의 지배하에 들게 되었고, 선양은 그 두목 장쭤린[張作霖] 정권의 본거지가 되었다. 1932년에 일본에 의해 ‘만주국(滿洲國)’이 건국되면서 도시명이 봉천시(市)로 개칭되었고, 그 후 일본의 둥베이 지배의 주요기지로 발전하여 만주국 제1의 도시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만주국이 붕괴되자 지명이 다시 선양으로 바뀌었으며, 창춘[長春]·다롄[大連]·산하이관[山海關]·단둥[丹東]·지린[吉林]으로 통하는 주요철도가 분기하여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부근에 푸순탄전[撫順炭田] 및 번치[本溪]·안산[鞍山] 등 탄전·철산이 있어, 기계·전기기기·기관차·자동차·착유(搾油)·제분·방적·화학 등의 공업이 크게 발달했으며, 부근 일대는 중국 최대의 중화학공업지대가 되어 있다.

 

  시가지는 동부의 고궁을 중심으로 성벽에 둘러싸인 구성내(舊城內), 일본인에 의해 개발된 서부의 상가·주택가·문교지구, 중간의 관청가, 창춘~다롄 철도 서쪽의 공장지대 및 노동자 주택지구와 제2차 세계대전 후 북·동·남부로 확산된 신시가지 등으로 구분된다.

 

  시내에는 청대의 고궁·동릉(東陵)·북릉(北陵) 및 둥베이 라마교의 본산인 황쓰사 등 사적·명소가 많으며, 랴오닝대학·둥베이재정경제대학·둥베이의과대학 등이 있다.

 

  심양은 요령성의 수도이고 북경과 상해, 천진에 이어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오늘날 중국 동북공업지대의 중심이자 교통의 축이기도 하고, 정치·문화적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중심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총 면적은 약 8,500㎢이며, 지리적으로 요하평원의 중부, 혼하(渾河)의 북안에 자리잡고 있다.

 

  심양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고도로 이미 전한(前漢)시대(기원전 206년∼서기 24년)에 초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 원(元)대에 심양로(瀋陽路)라 불리게 되었고, 『심양』이라는 도시명칭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청의 시조 누루하치가 이곳을 도읍으로 설치, 성경(盛京)으로 이름 붙였으나 청의 북경천도와 함께 개칭, 1945년에 다시 심양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심양고궁(瀋陽古宮) -- 중국에서 북경 고궁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완전하게 보존된 고대 제왕 궁전으로, 찬란하고 기세웅장하다. 청태조 누루하치와 제 2대 태종 때의 황궁으로, 1625년에 짓기 시작하여 11년후인 청나라 숭덕(崇德) 원년(1636)에 완공되었다.

 

  총 면적은 6만㎡로 90여 개의 건물에 300여 칸에 이르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으로, 지은 지 350년이 넘는 현재까지도 온전하게 보존돼 있다. 내부는 동·중·서로로 크게 나뉘고 출구는 남쪽에 있다. 동로에는 고궁을 대표하는 대정전(大政殿)이 있는데, 황제와 신하들이 정무를 보던 곳이다. 중로에는 숭정전(崇政殿), 봉황루(鳳凰樓), 청령궁(淸寧宮) 등의 주요 궁전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숭정전은 2층 팔각형이 특징이며 특별한 의식이 있거나 알현할 때, 봉황루는 연회가 있을 때에 사용되었다. 서로에는 황제의 도서관이나 무대가 있고, 후세에 건룡제가 증축한 문소각(文遡閣)도 있다.

 

  북릉공원(北陵公園) -- 심양시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면적 330만㎡로, 청조 2대 황제인 태종과 그의 황후가 잠들고 있는 능묘이다. 정문에서 묘릉인 소릉(昭陵)에 이르는 참배도로에는 해태, 기린, 낙타, 말, 코끼리, 사자의 6쌍의 돌짐승이 늘어서 있다. 언덕과 산기슭 전체가 공원으로 되어 있어, 한여름에는 녹음이 아름답기 그지없기 때문에 봄, 가을에 걸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끊이지 않는 공원이다. 이른 아침에는 태극권이나 기공으로 땀을 흘리는 사람들도 보인다.

 

 

  동릉공원(東陵公園) -- 시내의 중심에서 동쪽으로 상당히 벗어난 이 공원은 청나라를 건국한 태조 누루하치와 그 황후의 묘가 있다. 162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붉은 벽돌담이 능을 둘러싸고, 하마비(下馬碑), 석비루(石碑樓) 등이 서 있다. 능묘까지는 108개의 계단이 이어지며 뒤로는 천주산( 柱山)이 있고, 앞쪽으로는 운하에 면하고 있다. 공원내에는 노송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고, 풀이 무성하게 땅을 덮고 있기 때문에 사색하며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조호(柳條湖) -- 북릉공원 동쪽에 있는 호수로 이전에는 유조구(柳條溝)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유조호'라고 부른다. 그러나 호수는 없으며 지금 현장에는 거대한 9.8사변 기념관이 건립되어 만주사변과 일본군의 만행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ttbird79 (2005-09-14 11:54)

 

 

  심양은 요녕성의 성도이면서 중국 동북지방의 최대도시입니다. 1625년 누루하치가 세운 금나라부터 만주제국에 이어 청왕조가 북경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수도로서 번성하였으며, 북경으로 수도가 이전된 후에도 중국의 두번째 수도로서 동북 무역의 중심지로서 중요성을 인정받은 곳입니다.

  심양이라는 이름은 원대에 지리적으로 심수(沈水)의 양(陽 / 풍수사상에 의하면 물의 북쪽을 陽,남쪽을 陰이라 칭한다)에 위치한다고 하여 심양로(沈陽路)라 불리기 시작하였고, 1625년 청태조가 도성을 요양(遼陽)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1634년 청 태종이 심양을 성경(盛京)이라 개명하였습니다. 이후 1644년 수도를 다시 북경으로 옮기면서 배도(陪都)라 개명하였고, 청조가 중국을 완전히 통일한 후에는 이곳에 봉천부(奉天府)를 설치하였습니다. 심양이라는 이름은 1945년에야 다시 찾게되었습니다. 금나라를 시작으로 만주제국에서 청대까지가 부흥시기였기에 이곳에 가면 만주시대의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있으며, 심양 고궁, 청대황제의 릉(복릉, 북릉 등) , "九一八"사변기념관, 장씨솔부 등 다양한 관광지들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심양의 코리아 타운은 "서탑가"로 불리는 곳으로, 엄밀히 말하면 한국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코리아 타운이 아닌 조선족 중심의 주거,상업지역이죠..

 

  서탑가는 옛날에 지어진 심양시의 동, 서, 남, 북에 위치하던 탑과 절에서 그 서쪽에 있는 탑을 중심으로 한 거리란 뜻으로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현재 서쪽 탑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서탑가는 현재 많은 조선족들이 모여 살며, 학교,병원,문화관을 지어 그들을 위한 행정,상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소수 민촉촌거리입니다.

 

 

 
 
<출처:
http://www.hanatour.com/asp/travelinfo/if-14000.asp?country_code=CN&state_code=&city_code=SHE&alldetail_code=CC16CSHE0001&popup_yn=N >

 

korbin25 (2005-09-13 16:59)

 

  심양은 요녕성의 성도(省都)이면서 동북지역의 교통요충지 이다.

원래 서탑의 코리아타운은 코리아타운이기 앞서 조선족이 움집하여 조선족타운을 형성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중국이 개혁개방되면서 한국인들이 대거 유입 지금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지금도 설왕설래 말이 많지만 서탑은 냉정히 말해 코리아타운이라기 보다는 조선족타운이 발전하여 된 타운이며 호칭에는 별다른 의의가 없습니다.

 

  조선족은 한국과 국교가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북한(조선)으로 부터 문화, 관습 등이 많이 유입되어 조선족의 사회를 지탱하여 왔으며 개방 후에는 남한의 문화 등이 범람하여 정신적 이데올리기를 겪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일부 지식층 인사들은 친북성향이 강한데 이는 어쩔 수 없는 한 세월의 비극이기도 하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유적, 중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고구려유적과 함께 지난해 7월1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청 영릉. 누루하치 조상들의 묘와 사당이 있다.
오마이뉴스 김태경
  2006년 7월 1일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세계문화유산대회에서 중국은 고구려 유적 뿐 아니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선양 고궁과 역대 황제릉 3개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켰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이들 유적들은 모두 만주지역에 있다.

 

  선양 고궁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1644년 산해관을 넘어 중원을 점령하기 전, 후금(後金)으로 불린 시절에 만들었다. 태조 누르하치와 태종 황타이지가 주로 이용했고, 3대 황제 순치제도 여기에서 즉위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청나라 역대 황제릉은 3개다.

 

  먼저 영릉(永陵)으로, 청나라의 시조 누루하치의 고향인 랴오닝성 신빈현(新賓縣)에 있다. 영릉에는 누루하치의 6 대조, 조부, 부친, 백부, 숙부 등의 무덤과 사당이 있다.

 

  다음은 선양에 있는 복릉(福陵)[동릉]으로, 청 태조 누르하치의 무덤이다.

 

  마지막은 역시 선양에 있는 소릉(紹陵)[북릉]으로, 청 태종 황타이지의 무덤이다.

 

  현재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문화유산은 21 개다. 이외에 자연유산이 4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중복되는 게 4개, 문화경관이 1개다.

 

  문화유산 가운데 소수민족이 남긴 것은 선양고궁과 청 영릉 등 3곳, 티벳의 포탈라 궁, 윈난성의 리강 고성, 선비족이 세운 북위가 만든 윈깡 석굴 등이다. 

 

                                                                             [오마이뉴스 2004-10-07 12:14]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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