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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른듯 우아하게… 아부는 생존전략: ‘아부의 기술’ 리처드 스텐겔

영국신사77 2007. 1. 8. 16:54

          [잠깐! 이 저자] 서투른듯 우아하게… 아부는 생존전략

                                 ‘아부의 기술’ 리처드 스텐겔

                                                                                        김수혜기자 goodluck@chosun.com
                                                                                        입력 : 2007.01.05 21:20

    • 인간에게는 아부의 DNA가 있다’ ‘아부의 기술은 진화한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에 대한 아부의 달인들이다’…. 작년 말 최대 화제작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리처드 스텐겔(51) 편집장이 쓴 ‘아부의 기술’(원제 You’re Too Kind: a Brief History of Flattery)이었다. 스텐겔 편집장은 최근 번역 출간된 이 책에서 “현대사회에서 적절한 아부는 인간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라고까지 치켜세웠다. ‘교묘하게 말을 꾸미고 얼굴 빛을 남 보기 좋게 하는 이 가운데 어진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이 鮮矣仁이라)는 유교 전통에 익숙한 국내 독자들에게 그의 ‘아부론(論)’은 신선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영문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스텐겔 편집장은 로즈 장학금을 받고 옥스포드 대학에 유학했다. 80년대 초 타임지 기자가 된 뒤 할리우드와 워싱턴 정가를 취재했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자유에의 먼 여정’도 썼다. 리처드 클라인 코넬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서평에서 “이집트·그리스·로마·중세를 거쳐 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아부의 역사를 망라했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아부 지침까지 주는 책”이라고 호평했다. 스텐겔 편집장을 4일 새벽 전화로 불러냈다.
    • ▲리처드 스텐겔 타임지 편집장이 2006년‘올해의 인물’로‘당신(You)’을 꼽은 타임지를 들고 있다. 스텐겔은“독자들에게 아부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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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아부’에 관심을 갖게 됐나.

      “아마 내가 아부에 능통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칭찬을 하려면 목이 딱 붙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렇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어딜 가나 아부가 매우 흔하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할리우드를 취재할 때 아부를 더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부는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 전략이다. 사다리를 올라가는 병법(兵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부의 역사를 찾아보니, 아부는 진화론적 생존전략이었다.”

      ―아부의 최고 전략은.

      “뻔하게 나가면 안 된다. 남이 지나치는 디테일을 찾아내 칭찬하라. 난 작가를 인터뷰할 때 그의 대표작보다 자기 딴엔 야심 차게 내놓았으나 세간에선 주목 받지 못한 책을 거론한다. 그냥 ‘그 책 좋았다’고 두리뭉실하게 말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사람들은 그 책의 진가를 잘 모르는 것 같던데 나는 이런 점이 좋았다’는 식으로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자신 없는 부분을 남들이 인정해주길 바란다. 이렇게 하면 내가 진심으로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 사람, 날 만나기 위해 제대로 공부를 하고 왔군’ 하는 흐뭇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말을 스스로 믿어야 한다.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to give true praise)이 내 전략이다.”

      ―아내에게도 아부를 하나?

      “아내는 사실 내가 말로 아부하는 것보다 집안 청소하고 애들 옷 입힐 때 더 좋아한다.”

      ―당신은 레이건과 클린턴 같은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국민에게 아부를 일삼는다고 썼다.

      “나는 사실 미국 정치인들이 좀 더 솔직 담백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솔직한 게 능사가 아니다. 제대로 솔직하게 굴어야 한다. 국민에게 ‘나는 너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말하는 건 나쁜 전략이다. 소비자에게 귀 기울여서 잘못될 리 없다. ‘여론조사 신경 안 쓴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이 있는데 어리석은 소리다. 자기한테 표를 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안 들어서 어쩌겠단 말인가. 국민에게 적절하게 아부하지 못해 실패한 미국 대통령이 지미 카터다. 카터는 1979년 전국에 생중계된 연설에서 ‘미국이 권태(malaise)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지지부진하다’고만 했지, ‘이 지지부진을 떨칠 대안이 있다’는 소리는 안 했다. 이런 사람을 미국인은 용서하지 않는다. 반드시 응징한다. 카터는 재선에 실패했다.”

      ―대중에 대한 아부가 포퓰리즘으로 흘러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1920년대 워렌 하딩 대통령은 미남에 풍채 좋고 목소리까지 낭랑했다. 국민들에게 ‘이런 걸출한 인물이 우리 대통령’이라는 뿌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그는 존재 자체가 국민에 대한 아부인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가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지 대공황 등 다가오는 국가적 위기의 징후를 읽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신이 아는, 최고의 아부 달인은?

      “TV 진행자 자니 카슨. 그는 남을 칭찬할 때 어딘가 서툴러 보였다. 바로 그 때문에 솔직하다는 인상을 준다. 너무 유들유들하게 남을 칭찬하면 아부꾼이라는 의심을 산다.”

      타임지는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했다. ‘유투브’같은 동영상 사이트와 블로그를 통해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뭉개버린 대중이야말로 2006년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독자에게 아부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런 소리 많이 들었는데 우리가 선정한 You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뉴스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말한다”고 했다. 스텐겔의 책은 2002년 출간된 이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중국, 일본 등 14개국에 번역 소개됐다.

      전화를 끊기 직전 그는 “절대로 아부하려고 하는 소리가 아닌데, 지금까지 한 인터뷰 중 당신 질문이 가장 심층적”이라고 ‘아부’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