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 11장-20장(전체리스트) |
2006-12-21 10:01:33 read : 44 "기독교인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주로 섬기며, 성경 말씀들을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고 살아간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실패하고 좌절하고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복된 말씀을 왜 이루지 못하고 있을까? 마음에 품지 않은 복은 절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어설픈 지식에 얽매인 우리는, 정작 가장 중요한 마음의 힘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원인은,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긍정을 선택하라. 기쁨을 선택하고 걱정을 버리라. 높은 단계로 도약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라, 가정이 번창하고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상상하라. 머리와 가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상상해야 실제로 그것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손을 바꾸어 바이올린을 켜리라는 결심하고 각고의 노력과 연습을 한 끝에, 마침내 성공하여 카운티 교향악단의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습니다. 그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의 말씀을 믿고 이루었는데, 이것이 바로 산을 옮기는 믿음입니다. 20절에 보니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기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라고 했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아주 곤란한 문제 해결하는 것을 산을 옮긴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즉 산은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커다란 문제 등을 함축하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라는 말은, 인간적으로 보면 아주 불가능하게 보이는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믿음을 의미하는데, 사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이런 산과 같은 어려운 문제들을 믿음으로 수없이 해결하여 왔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절대가능의 신조를 가지고 일생을 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이 앞에 가로막힌다 해도, 나는 단념하지 않으리라. 나는 계속 도전하리라. 나는 산에 오르리라. 아니면 산 밑에 터널을 파고 통과하리라. 아니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그대로 산을 변화시켜 금광으로 만들리라.”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비록 겨자씨처럼 작아도, 활용하기만 하면 큰 힘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것을 그냥 그대로 묻어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묻어두면 결국은 없어지거나 썩어서 다시 활용할 수 없을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이삭을 예로 들 수가 있습니다. 그의 삶은 너무나도 평탄한 삶입니다. 왜일까요?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기 때문에 편한 것입니다. 차를 타면서 운전수를 믿어버리고 버스를 믿어버리면 편합니다. 그러나 못믿으면 불안합니다. 덜컹 소리만 나도 가슴을 졸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그 일은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이삭은 40에야 결혼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서 절대로 서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라고 하는 좋은 아내를 주었습니다. 물이 없어도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적들이 우물을 빼앗아도 같이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다 양보했습니다. 그가 땅만 파면 물이 나왔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이렇게 편합니다.
그때 리빙스톤은 “주여, 제 믿음을 보옵소서 이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주께서 소생케 하심을 믿습니다” 하고 눈을 떴을 때, 그 아이가 몸을 틀더니 일어나 앉는 것입니다. 이것이 리빙스톤의 선교적 역사에 대단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후 리빙스톤은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여기라” 는 구절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가 아프리카 전역을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은 병든 자요, 어려운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에게 자기는 가진 것 없어도 오직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여기라 하신 말씀만 믿고 무조건 붙들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승패는, 얼마만큼 기도생활을 늘릴 수 있느냐의 여하에 달려있습니다. 기도 시간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은 확실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영적 전쟁의 승패는 기도의 방패가 제 위치에 있는가의 여하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꼼짝 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힐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도행전 12장이 잘 가르쳐 줍니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끊어지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문제에 부딪힐 때 옥문을 열어 제키며 우리를 묶고 있는 세상의 끈들을 자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도의 능력입니다.
“첫째, 기도에 승리하는 교회가 되어라. 둘째, 교회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기도 리더쉽을 키워라. 셋째, 교회를 능력 있는 기도 공동체로 만들어라”
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반드시 기도의 부흥으로 시작되었음을,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음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가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외쳤습니다. 즉,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예수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은과 금은 많아졌으나 예수님의 이름, 예수 이름의 권세를 잃어버렸습니다”
라고 비평합니다. 교회 건물들은 저마다 커지고 웅장해졌습니다. 교인들도 많아졌습니다. 재력도 있어 보입니다. 유명인사들도 교회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능력은 쇠약해져만 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본문에도 비극적인 구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여기의 제자들이란 말을 교회로 바꾸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교회에 데려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내가 교회에 문제를 가져와도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능히 변화시키지 못하더이다. 능히 바꾸지 못하더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 세상을 고칠 수 있느냐,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느냐의 문제를 알아야 합니다. 결국 문제가 문제가 아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없음이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이미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낼 때에 성경 공부하는 방법을 먼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학원이 아니라, 교회는 가족이요 하나님의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게임이 아닙니다. 소풍놀이가 아닙니다.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내며 세상을 다스리며 정복하는 권세를 제자들에게 먼저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흉내내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되어진 사람하고, 예수 믿는 것처럼 흉내내는 사람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만나셨습니까? 성령 충만의 체험이 있으십니까? 가치관과 모든 삶이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되어졌습니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권능으로부터 코드가 빠져 있다고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단절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권능에 연결시키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내 신앙을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해야 합니다. 내 삶을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는 일입니다. 내 기도를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해야 합니다. 우리의 꿈을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해야 합니다. 자녀의 삶을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해야 합니다. 사업을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찬양이, 우리의 비젼이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되기만 하면, 능력의 바람이 일어나게 됩니다. |
출처:인터넷 설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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