偉人*人物

고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노자의 도덕경

영국신사77 2007. 1. 7. 17:22
고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노자의 도덕경
[원본 : http://kr.blog.yahoo.com/youngmoo_kim/1444900.html ]
2005/12/31 11:29

              “내 잣대로 남의 반듯함 평가 말아야”

제자인 공자와 스승인 노자가 사람의 반듯함과 청렴함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토론하는 모습.

고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  노자의 도덕경

 

“내 잣대로 남의 반듯함 평가 말아야”

 

자신의 청렴을 타인에게 강요는 금물

소신도 때에 따라서 굽힐줄 알아야

연말의 동창회나 어릴 적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는 시끌벅적하게 마련이다. 시시껄렁한 흰소리에도 웃고, 별것 아닌 무용담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 준다. 사소한 일도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얘기라면 어릴 적 추억과 연관되어 소중하게 여겨진다.

오래 사귄 사람들이므로 물론 불협화음도 곧잘 생겨난다. “왜 전화하지 않았느냐”에서부터 “누구네 경조사에서 볼 줄 알았는데 못 봐 섭섭하더라”, “돈 벌었으면 모임에 기부 좀 해라”는 이야기까지 뼈 있는 농담도 오간다. 초등이나 중등쯤 되는 어린 시절 친구 모임을 주도하려면 그런 질타를 기분 나쁘지 않게 할 줄 알아야 한다.

노자의 <도덕경> 58장에 ‘성인방이불할염이불귀(聖人方而不割廉而不龜)’라는 구절이 있다. 의역을 해 보자면, ‘성인은 반듯하되 그 반듯함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청렴하되 그 청렴함을 가지고 남에게 상처 입히지 않는다’는 정도의 뜻이 될 것이다. 이런 도는 노자시대보다 현대사회에서 더 필요한 덕목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 앞에서 한턱 내거나 모임에 기부를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하기도 한다.

또한 기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면 경쟁적으로 더 많은 액수를 기부하게돼 뒷사람이 아주 고약해지는 경우도 있다.

<도덕경> 58장의 뜻은 또한 ‘나의 반듯함과 청렴함’이 객관적인 기준에 부합되느냐는 물음도 가능하게 한다. 나보다 더 반듯하고 더 청렴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또 내가 지나치게 반듯하고 청렴할 수도 있다. 그러니 “나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이 반듯하지 않네, 청렴하지 않네”라고 탓해서는 안 된다.

청렴이 미덕이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청렴을 강요하여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오늘날의 세태에 딱 어울린다.

‘관포지교’ 고사에 나오는 인물 포숙아의 경우를 보자.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관중은 제나라 환공이 죽이고 싶었던 원수였다. 환공이 최고 권력자로 즉위할 무렵, 환공의 이복동생인 규가 중원을 얻으려고 일어났을 때, 관중이 규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어릴 적 친구였던 포숙아가 목숨을 걸고 환공에게 진언했다. 능력이 출중한 관중을 죽이는 것은 제나라의 손실이라고 하여 환공의 마음을 돌린 것이다. 목숨을 건져 제나라에 중용된 관중은 후일 명재상으로 국정을 이끌어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런 관중이 말년에 이르러 몸져눕게 되었을 때다. 환공이 관중의 뒤를 이어 재상이 될 만한 사람을 천거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관중은 포숙아를 천거하지 않았다. “포숙아는 당신을 천거했는데, 왜 당신은 포숙아를 천거하지 않는가?” 하고 환공이 묻자, 관중은 “포숙아는 지나치게 강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소신을 굽힐 줄 모르는 포숙아의 강직함이 국가를 경영하는 큰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설원> 권16에 ‘강직하다고 하여 휘어지지 않는다면 큰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올바르다고 하여 원만하지 않다면 오래 존재하지 못한다(直而不能枉 不可與大任 方而不能 不可與長存)’는 구절이 있다. 철학적으로나 윤리 도덕적으로 아무리 올바르다고 하여도 주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없다면 부귀영화도 짧다. 한 번 세운 소신을 우직하게 지키는 것도 의미 있지만, 필요와 환경에 따라 고집을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무한경쟁을 하는 오늘날의 직장생활 현장은 혹독하다. 이 살벌한 무대에서 살아남고 나중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자의 <도덕경> 58장보다는 리쭝우의 ‘후흑사상’을 참고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후흑(厚黑)이란 현실적인 처세술의 하나로 때로는 얼굴을 두껍게해 뻔뻔함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감정조절이 필요 하다는 것이다.

청나라 말기에서 근대중국으로 넘어가는 혼란기에 중국인들의 정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리쭝우는 현실은 난세나 다름없어 요순시대의 도덕군자론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다.

유방과 같은 사람들이 후흑사상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데, 난세의 영웅들은 대개 얼굴이 두껍고 야심을 가슴 깊이 감추고 있다.

리쭝우는 후흑의 도가 약한 사람은 역사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크지 않다고 본다. 항우와 유방의 천하다툼이 그 좋은 예. 항우는 군사력으로나 영토 면에서 유방의 한나라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낯 두껍고 음흉한 유방에 비해 항우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항우에게는 범증이라는 맹장이 있었다. 그는 유방 못지않게 큰 야심을 마음속에 숨기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범증도 후흑의 도가 상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범증은 항우의 사람이었고 둘이 한뜻으로 유방과 맞서고 있었으므로 천하에 그들을 상대할 적수가 없었다. 유방은 고전하다가 한 가지 묘책을 찾아낸다. 범증이 천하를 도모하려는 야심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항우에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

비분강개파인 항우는 곧바로 자기 사람을 의심했고, 역시 후흑의 도가 약한 범증은 그 속내가 드러나자 발끈하여 전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결국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등창이 나서 죽고 말았다. 이간질을 시켰을 때 범증이 ‘그래 어쩌겠소이까. 내 목을 치러 와 보시오’ 하는 식으로 낯 두껍게 반응했다면, 그리하여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유방의 아버지가 항우에게 체포되었을 때의 일이다. “네 아비를 죽여 국을 끓이겠다”고 항우가 약을 올리자, 유방은 “그 국을 보내라. 맛있게 먹겠노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유교적인 도덕관념과 효심이 지극한 항우나 범증 같으면 앞뒤 따져 보지 않고 분기탱천하여 필마단기로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후흑사상은 3단계가 있는데, 요순시대의 도덕통치에서 난세의 후흑통치로 옮아갔다가 이상문명 사회에선 다시 공맹으로 돌아가 민심을 얻고 천하를 평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은 것이나 진배없다는 뜻이다.

박병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