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았던 이미지의 중견 탤런트가 난데없이 튀는 옷차림으로 TV 드라마에 나와 푼수를 떨거나 미모의 탤런트가 수다스럽게 능청을 떠는 연기로 요즈음 눈길을 끈다. 연기자의 기존 이미지에 정면으로 배치돼 ‘망가지는’ 배역이지만 시청자들의 취향이 시트콤이나 코믹 드라마에 쏠리다 보니 중견 탤런트들까지 앞다퉈 변신을 시도하는 것 같다. 시청자의 취향은 바로 시청률을 좌우하는 흐름이므로 그 정도 망가지는 것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자세다.
몇 달 전 사석에서 만난 학계 인사에게 한 장관에 대한 인물평을 부탁했다. 학창 시절부터 그 장관과 절친한 사이라는 얘기를 듣고 난 다음이었다. 그의 인물평은 간결했다. “그 친구 전혀 딴사람 됐어요.” 초임 공무원 때부터 똑소리나게 일 잘하고 소신이 분명했던 친구였는데 장관이 된 후 연기자가 변신하듯 사람이 아주 달라졌다는 평가였다. 경제부처의 엘리트 공무원으로 공정한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던 원칙은 간 데 없고 현 정부의 기계적 평등주의를 강조하는 ‘코드 장관’이 됐다고 했다. 그 장관은 그래도 더 이상 망가지기 전에 현직에서 물러나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발탁된 전·현직 장관 등 고위 공직자 중에는 청와대 코드에 무리하게 맞추려다 완전히 이미지를 망친 몇몇 인사가 있다. 공기업 사장 재직 당시 실적을 부풀려 혁신부문 상을 받은 인사가 장관에 발탁돼 정부 혁신을 주도하겠다고 휘젓고 다닌 사례는 차라리 소극(笑劇)에 가깝다. 언변과 수완은 뛰어나도 개혁과는 무관해 보이던 그렇고 그런 인사가 고위직에 발탁된 다음부터는 개혁을 입에 달고 다니며 감읍해 마지않는 모습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다.
최근 불쑥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해 부동산 시장에 혼란을 초래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코드 인사의 한계와 폐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행시 출신의 추 장관은 공보관과 주택도시국장 등 요직을 거쳐 건설행정 분야에 정통한 관료로 손꼽혔던 인물이다. 현 정부 들어 건교부 차관으로 승진한 뒤 지난 17대 총선에 나서 낙마했다가 지난해 4월 장관에 기용됐다. 이에 감격한 때문인지 간부 시절 업무 처리에서 신중하고 치밀했던 그가 장관의 처신에 어울리지 않게 튀는 언행으로 실적 알리기에 열을 올렸고 그러다 보니 실수가 잦아졌다. 신도시 건설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 주요 정책에 대한 소신도 흔들려 청와대 방침에 따라 말을 뒤집기가 예사였다.
관료 출신 장관 가운데 유난히 망가지는 인사가 눈에 띄는 것은 학계와 법조·언론계에 비해 승진에 민감한 공직사회의 체질 때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공직사회 일각에는 고위직에 오를 수만 있다면 스타일 구기는 것쯤이야 물 마시듯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연기자는 시청자를 위해 망가지는 것을 감수한다지만 고위 공직자의 변신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공직자가 국민을 위해 정책의 오류를 시인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 한다면 권장할 만한 변신이다. 그러나 일신의 영달을 위해 통치권자의 코드에만 맞추려는 변신은 정책 수립과 집행에 난맥상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정부가 강도 높은 대책을 쏟아내지만 아파트값이 떨어질 줄 모르는 이유도 코드 인사와 무소신이 빚어낸 정책을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데 있다. 종부세를 신설하고 아무리 세금을 올려도 다음 정부에서 세제 세율의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세금공세 약발이 먹혀들 리 없다.
소신 대신 코드를 택한 고위 공직자를 발탁한 책임은 물론 통치권자에게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당분간 이들을 끌어안고 갈 모양이다. 이런 공직자들이 다음 정부에서는 어떻게 바뀌어 또 어떤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 언론이라도 끝까지 주목해 소식을 전해야겠다.
김성기 세?sokim@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