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애굽과 여호와 하나님(1998년 12월호)
윤용진
kireb@netsgo.com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1. 요셉과 모세 사이의 역사
가. 셈족 치하의 애굽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 등극하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에 힘입어 애굽의 정치체제를 봉건군주들을 중심으로 한 지방분권 체제에서 국무총리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로 급히 전환시켜 놓았다(47:20-26). 요셉의 후광을 입어 그의 형제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살기 좋은 땅 고센과 라암세스를 중심으로 번창하였다(창47:6,11). 그러나 주전 1806년 요셉이 죽자 지방의 봉건군주들은 기근으로 인하여 할 수 없이 빼앗기게 된 권리들을 되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중앙의 고위관리들은 요셉 이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갈등과 투쟁으로 애굽의 국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이 때를 틈타서 애굽을 장악한 셈족이 있었다. 그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내려와 팔레스틴을 거쳐 애굽으로 쳐들어 왔다. 애굽인들은 그들을 가리켜 힉소스(Hyksos, '외국에서 온 통치자'란 뜻)라고 불렀다. 힉소스족은 모두 여섯 명의 왕들이 애굽을 약 150년(주전 1720-1570년) 동안 통치했다. 이 사실은 애굽의 역사를 가장 잘 전해주고 있는 주전 3세기경의 애굽 제사장 마네토(Manetho)의 기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주전 3천년기로부터 기록되어 있는 애굽 왕(paraoh)들의 명단에 보면 위의 기간에 해당되는 애굽 왕들의 이름이 없다. 주전 약 16세기 초엽, 드디어 힉소스족은 애굽인들의 강한 저항을 받고 쫓겨나게 된다.
나. 아피루(Apiru)로서의 히브리인
출1:8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저들을 팔레스틴으로 축출하고 애굽의 제 18왕조를 세운 애굽의 새로운 통치자를 가리킨다. 애굽인들에게 있어서 요셉과 힉소스족의 통치, 즉 셈족 계열의 이방인들에 의하여 오랜 세월 동안 다스림을 받은 사실은 엄청나게 큰 수치일 뿐만 아니라 원한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히브리인들의 숫자가 급속히 팽창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남아살해를 명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종 내지 노예(Apiru 또는 Habiru라고 부름)로 부리며 큰 고통과 학대로써 잔혹하게 다스리게 된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당하는 고통은 요셉 이후로부터 힉소스족들이 쫓겨날 때까지 누렸던 번영과 평안을 송두리째 잠식하고 말았다. 옛적의 영화는 사라지고 이제는 가장 비참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되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그들은 옛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마저 뿌리 채 흔들리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역으로 인한 히브리인들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 없었다(출2:23-25).
2. 거절할 수 없는 출애굽 제안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의 수여와 더불어 히브리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창15:13-16)이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를 주시겠다는 약속은 비참한 처지에 있던 히브리인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히브리인들의 반응에 관계없이 시행하실 주권적 사역으로서 자신의 신실하심에 입각한 은혜였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나일강 유역을 떠나 애굽을 벗어난다는 것이 곧 죽음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왜냐하면 애굽의 종과 노예로서 히브리인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애굽사람들이 포기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을 탈출하는 것을 그들의 막강한 군사력이 그대로 놔둘 리 없었고, 군사들의 추격을 따돌린다 해도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으며 홍해를 무사히 통과한다 해도 시나이반도의 사막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나이반도의 사막은 물 한 모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으로 삭막하기 그지없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따라서 사막지대 최대의 적인 물과 양식문제, 낮에는 뜨거운 태양열, 밤에는 혹독한 추위, 그리고 험준한 사막지대의 미로에 도사리고 있는 도적떼들, 전갈과 불뱀들이 모두 생사를 좌우하는 넘어야 할 과제들이었다.
3. "나는 여호와니라"(출3:15;6:2-3)
거절할 수 없는 엄청난 제의에 대하여 모세는 백성들이 기뻐할 뿐만 아니라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모험이라는 생각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의문을 가질 것을 예상했다. 이것을 모르실 리 없는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Jehovah), 즉 히브리어 발음으로 "야웨"라고 계시하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6:2-3)
"야웨"는 "to be", "to become", "to live" 등의 뜻을 가진 동사 '하야' 또는 '하와'의 일반동사 능동형(Qal) 내지 사역동사의 능동형(Hiphil)의 의미로 볼 수 있다. 그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일반동사 능동형(Qal)으로 볼 경우
그 뜻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3:14)를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비하신 속성 중에 자존성(自存性)을 말한다. 따라서 '야웨'가 지니는 신학적인 의미는 '유일하신 분'(the one who is), '절대 불변하시는 분'(the absolute and unchangeable one), '영존하시는 분'(the existing, ever-living) 등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아 왔던 애굽의 신들은 거의 모두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세력들이었기에 그러한 피조물들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유일하신 창조주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10가지 재앙으로 애굽 사람들을 치신 것은 그들이 믿는 우상들을 훼파하심으로써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유일하시고 참된 구원자이심을 드러내고자 함이었다(출7:3-5).
2) 사역동사의 능동형(Hiphil)으로 볼 경우
먼저, to be의 차원에서 '야웨'는 "마땅히 있을 것을 있게 하는 분"(the one bringing into being / giver of existence / creator)을 뜻한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히브리인들을 출애굽 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는 과정에 필요한 물과 양식, 낮에는 시원한 그늘과 저녁에는 따뜻한 온기 등의 모든 필요를 능히 채워주실 분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to live의 차원에서 '야웨'는 "삶(생명)을 가져다주시는 분"(life giver)을 뜻한다. 이것은 죄악의 상징인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을 받아 약속의 땅에 이르는 과정에 생사의 갈림길이 많으나 궁극적으로 여호와는 자기 백성에게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마지막 to become의 차원에서 '야웨'는 "마땅히 되어야 모습으로 되게 하는 분", "언약을 성실히 이행하시는 분"(performer of his promises)을 뜻한다. 이것은 "너희는 내 백성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창17:7)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이행하시는 분이심을 가리킨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신다.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출6:7-8)
그리하여 하나님은 애굽에서 구속해 낸 히브리인들을 시내산에서 자기의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서 세계 역사의 무대 위에 선포하신다(출19:5-6).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특권인 동시에 사명이었다.
4. 마치며
사람들은 구원과 영생의 메시지를 접하지만 선뜻 따라 나서지 못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구속하시고 만들어 가시는 분, 즉 세상에 보내신 목적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온갖 은혜와 은사를 주시며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나는 너를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사48:17). 오늘과 같은 어려운 때일수록 여호와께 대한 굳센 믿음을 가지고 따르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며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윤용진
kireb@netsgo.com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1. 요셉과 모세 사이의 역사
가. 셈족 치하의 애굽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 등극하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에 힘입어 애굽의 정치체제를 봉건군주들을 중심으로 한 지방분권 체제에서 국무총리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로 급히 전환시켜 놓았다(47:20-26). 요셉의 후광을 입어 그의 형제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살기 좋은 땅 고센과 라암세스를 중심으로 번창하였다(창47:6,11). 그러나 주전 1806년 요셉이 죽자 지방의 봉건군주들은 기근으로 인하여 할 수 없이 빼앗기게 된 권리들을 되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중앙의 고위관리들은 요셉 이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갈등과 투쟁으로 애굽의 국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이 때를 틈타서 애굽을 장악한 셈족이 있었다. 그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내려와 팔레스틴을 거쳐 애굽으로 쳐들어 왔다. 애굽인들은 그들을 가리켜 힉소스(Hyksos, '외국에서 온 통치자'란 뜻)라고 불렀다. 힉소스족은 모두 여섯 명의 왕들이 애굽을 약 150년(주전 1720-1570년) 동안 통치했다. 이 사실은 애굽의 역사를 가장 잘 전해주고 있는 주전 3세기경의 애굽 제사장 마네토(Manetho)의 기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주전 3천년기로부터 기록되어 있는 애굽 왕(paraoh)들의 명단에 보면 위의 기간에 해당되는 애굽 왕들의 이름이 없다. 주전 약 16세기 초엽, 드디어 힉소스족은 애굽인들의 강한 저항을 받고 쫓겨나게 된다.
나. 아피루(Apiru)로서의 히브리인
출1:8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저들을 팔레스틴으로 축출하고 애굽의 제 18왕조를 세운 애굽의 새로운 통치자를 가리킨다. 애굽인들에게 있어서 요셉과 힉소스족의 통치, 즉 셈족 계열의 이방인들에 의하여 오랜 세월 동안 다스림을 받은 사실은 엄청나게 큰 수치일 뿐만 아니라 원한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히브리인들의 숫자가 급속히 팽창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남아살해를 명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종 내지 노예(Apiru 또는 Habiru라고 부름)로 부리며 큰 고통과 학대로써 잔혹하게 다스리게 된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당하는 고통은 요셉 이후로부터 힉소스족들이 쫓겨날 때까지 누렸던 번영과 평안을 송두리째 잠식하고 말았다. 옛적의 영화는 사라지고 이제는 가장 비참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되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그들은 옛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마저 뿌리 채 흔들리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역으로 인한 히브리인들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 없었다(출2:23-25).
2. 거절할 수 없는 출애굽 제안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의 수여와 더불어 히브리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창15:13-16)이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를 주시겠다는 약속은 비참한 처지에 있던 히브리인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히브리인들의 반응에 관계없이 시행하실 주권적 사역으로서 자신의 신실하심에 입각한 은혜였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나일강 유역을 떠나 애굽을 벗어난다는 것이 곧 죽음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왜냐하면 애굽의 종과 노예로서 히브리인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애굽사람들이 포기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을 탈출하는 것을 그들의 막강한 군사력이 그대로 놔둘 리 없었고, 군사들의 추격을 따돌린다 해도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으며 홍해를 무사히 통과한다 해도 시나이반도의 사막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나이반도의 사막은 물 한 모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으로 삭막하기 그지없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따라서 사막지대 최대의 적인 물과 양식문제, 낮에는 뜨거운 태양열, 밤에는 혹독한 추위, 그리고 험준한 사막지대의 미로에 도사리고 있는 도적떼들, 전갈과 불뱀들이 모두 생사를 좌우하는 넘어야 할 과제들이었다.
3. "나는 여호와니라"(출3:15;6:2-3)
거절할 수 없는 엄청난 제의에 대하여 모세는 백성들이 기뻐할 뿐만 아니라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모험이라는 생각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의문을 가질 것을 예상했다. 이것을 모르실 리 없는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Jehovah), 즉 히브리어 발음으로 "야웨"라고 계시하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6:2-3)
"야웨"는 "to be", "to become", "to live" 등의 뜻을 가진 동사 '하야' 또는 '하와'의 일반동사 능동형(Qal) 내지 사역동사의 능동형(Hiphil)의 의미로 볼 수 있다. 그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일반동사 능동형(Qal)으로 볼 경우
그 뜻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3:14)를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비하신 속성 중에 자존성(自存性)을 말한다. 따라서 '야웨'가 지니는 신학적인 의미는 '유일하신 분'(the one who is), '절대 불변하시는 분'(the absolute and unchangeable one), '영존하시는 분'(the existing, ever-living) 등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아 왔던 애굽의 신들은 거의 모두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세력들이었기에 그러한 피조물들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유일하신 창조주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10가지 재앙으로 애굽 사람들을 치신 것은 그들이 믿는 우상들을 훼파하심으로써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유일하시고 참된 구원자이심을 드러내고자 함이었다(출7:3-5).
2) 사역동사의 능동형(Hiphil)으로 볼 경우
먼저, to be의 차원에서 '야웨'는 "마땅히 있을 것을 있게 하는 분"(the one bringing into being / giver of existence / creator)을 뜻한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히브리인들을 출애굽 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는 과정에 필요한 물과 양식, 낮에는 시원한 그늘과 저녁에는 따뜻한 온기 등의 모든 필요를 능히 채워주실 분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to live의 차원에서 '야웨'는 "삶(생명)을 가져다주시는 분"(life giver)을 뜻한다. 이것은 죄악의 상징인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을 받아 약속의 땅에 이르는 과정에 생사의 갈림길이 많으나 궁극적으로 여호와는 자기 백성에게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마지막 to become의 차원에서 '야웨'는 "마땅히 되어야 모습으로 되게 하는 분", "언약을 성실히 이행하시는 분"(performer of his promises)을 뜻한다. 이것은 "너희는 내 백성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창17:7)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이행하시는 분이심을 가리킨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신다.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출6:7-8)
그리하여 하나님은 애굽에서 구속해 낸 히브리인들을 시내산에서 자기의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서 세계 역사의 무대 위에 선포하신다(출19:5-6).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특권인 동시에 사명이었다.
4. 마치며
사람들은 구원과 영생의 메시지를 접하지만 선뜻 따라 나서지 못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구속하시고 만들어 가시는 분, 즉 세상에 보내신 목적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온갖 은혜와 은사를 주시며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나는 너를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사48:17). 오늘과 같은 어려운 때일수록 여호와께 대한 굳센 믿음을 가지고 따르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며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출처 : 말씀의 공간
글쓴이 : 착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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