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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Nehemiah) 1장 느헤미야의 기도-7장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의 수

영국신사77 2020. 4. 14. 18:40


느헤미야강해

김효성 목사

2018년 6월 8일


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마 5:18; 요 10:35; 갈 3: 16; 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진술대로(1:8),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그 본문이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야곱 벤 카임이 편집한 제2 랍비 성경(봄버그판)을 표준적 마소라 본문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서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목차례

[1-7장, 성곽 재건]

1장: 느헤미야의 기도

2장: 느헤미야가 유다로 보내짐

3장: 성곽을 건축함

4장: 원수들을 막으면서 일함

5장: 느헤미야의 선한 통치

6장: 산발랏의 음모

7장: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의 수

[8-13장, 회개]

8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읽음

9장: 죄를 고백함

10장: 백성들의 언약

11장: 예루살렘에 거한 자들

12장: 성곽 봉헌식

13장: 느헤미야의 바른 통치


서론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의 책으로 간주된다. 느헤미야의 저자는 느헤미야이다. 본서에는 ‘내가,’ ‘나의,’ ‘나를’ ‘나에게’ 등 일인칭 대명사가 약 114회 사용된다. 그것은 본서의 저자가 느헤미야 자신임을 잘 증거한다. 본서의 주요 내용은 예루살렘 성곽 재건(1-7장)과 회개(8-13장)이다. 또 본서의 특징적 진리는 하나님 백성의 순결성이다. 그들은 이방인과의 연혼 금지와 안식일 성수와 십일조 규례를 실천하였다.

KJV

영어 King James Version

NASB

영어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IV

영어 New International Version

LXX

고대 헬라어 70인역

Syr

고대 수리아어역

It

고대 라틴어역

Vg

고대 라틴어 Vulgate역

BDB

Brown-Driver-Briggs, Hebrew Lexicon of the O. T.

KB

Koehler-Baumgartner, Lexicon in Veteris

Testamenti Libros

Langenscheidt

Langenscheidt Pocket Hebrew Dictionary.

NBD

The New Bible Dictionary. IVP.

Poole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JFB

Jamieson-Faussett-Brown, A Commentary.


1장: 느헤미야의 기도

[1-4절]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20년 기슬르 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본서는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본서를 썼다(딤후 3:16). 그는 아닥사스다 왕 제20년 기슬르월에 수산 궁에 있었다고 말한다. 원문에는 ‘아닥사스다 왕’이라는 말이 없으나 2:1에 의하면, 제20년은 아닥사스다 왕 제20년을 가리켰다.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연대는 주전 464-424년경이었으므로 제20년은 주전 445년경이었다. 느헤미야는 왕의 술 관원이었다(11절).

그가 수산 궁에 있을 때, 그의 형제 중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왔다. 그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었다. 그들은 그에게 포로생활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부서진 채로 있었고 성문들은 불탄 채로 있었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지 140년, 바벨론에서 돌아온 지 92년의 세월이 흐른 때이었으나 그러하였다.1)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그것은 그가 어떻게 진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을 사랑했는지를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은 구약교회이다. 느헤미야는 구약교회를 사랑하였다.

[5-7절]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케세드)[자비]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5-11절은 느헤미야의 기도이다. 우선, 그는 회개의 기도를 올렸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그는 또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언약을 지키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자라고 말했다. 또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주야로 기도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그의 심정은 뜨겁고 간절했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고 하나님을 향해 심히 악을 행했음을 고백하였다.

[8-9절]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는 또 레위기 26:33과 26:39-42에 기록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그 언약을 붙들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였다.

[10-11절]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救贖)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라카밈)[긍휼]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느헤미야는 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입은 백성임을 고백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은혜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회복을 구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긍휼의 도우심을 감히 기대한다. ‘이 사람’이라는 말은 아닥사스다 왕을 가리킬 것이다. 그때 그는 왕의 술 관원이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구체적이었다. 그는 왕 앞에서 긍휼을 입어 고국의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기를 소원하였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스라엘을 위한 느헤미야의 심정을 본받아야 한다. 느헤미야는 포로생활을 면하고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유다 백성이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이 부서진 채로 있고 성문들이 불탄 채로 있는 형편을 듣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교회이었다. 교회의 건립과 확장은 하나님의 뜻이다. 어느 시대보다도 어지럽고 혼란한 오늘날, 우리는 참된 교회의 건립을 위해 더욱 기도하고 일하고 충성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회개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한다.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그는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위해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과 선조들의 죄악을 자복하여 회개하였다. 교회의 개혁과 갱신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만 가능한 일이며, 그것은 또 목사들과 성도들의 회개치 않은 불순종,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와 쾌락주의의 죄를 통회자복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첫 번째의 또 최상의 방법은 회개와 기도이다.

2장: 느헤미야가 유다로 보내짐

[1-6절] 아닥사스다 왕 20년 니산 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愁色)[슬픈 빛]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黙禱)하고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그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저자 느헤미야는 계속 1인칭으로 서술한다. 그는 파사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다. 아닥사스다 왕 20년, 즉 주전 445년경 니산월[1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었고 느헤미야는 그것을 들어 왕에게 드렸다. 이전에는 그가 왕의 앞에서 슬픈 빛이 없었으나 그 날 그의 얼굴에 슬픈 빛을 보고 왕이 그의 마음에 무슨 근심이 있는가 물었고 그는 그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의 황폐함을 인함이라고 말했다. 왕이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무엇을 원하느냐고 다시 묻자, 그는 하나님께 묵상 기도하며 자신을 그리로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시기를 왕에게 구했다. 왕은 즐거이 그를 보내기를 원하며 기한을 정하였다.

[7-10절]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군대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레박케쉬 토바)[이스라엘 자손의 형통을 구하는](KJV, NASB, NIV)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느헤미야는 또 왕에게 유다까지의 통행을 위해서와 또 그곳에서 필요한 들보 재목도 구했다. 그것은 아마 여러 날 동안 금식기도하며 생각했던 소원이었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였다”고 말한다. 왕은 군대장관과 마병도 보내어 그와 함께하게 했다. 느헤미야는 강 서편 총독들에게 왕의 조서를 전했다. 유다 땅에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형통을 구하는 자가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했다.

[11-16절]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 지 3일에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그의 마음에 두신](원문)(KJV, NASB, NIV)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龍井, 용의 우물)으로 분문(糞門, 배설물 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소화되었더라. 앞으로 행하여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그 밤에 시내를 좇아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 본 후에 돌이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서 돌아왔으나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인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고하지 아니하다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 지 삼일에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가 예루살렘 성의 형편을 살폈다. 과연 예루살렘 성벽은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태워진 채로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17-20절]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성을]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이름을 기억함]도 없다 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유다 사람들에게와 제사장들과 귀인들과 방백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를 도우신 일과 왕이 그에게 이른 말을 고하며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자고 말하였다. 그들은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였다. 그런데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이 말을 듣고 느헤미야의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비웃으며 그들이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성을 건축하려니와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권리도, 이름을 기억함도 없다고 말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의 도우심을 믿자.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기도했고 그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그는 왕의 호의와 허락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길을 믿었다. 그는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위한 소원을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두신 일이라고 말했고 또 하나님께서 그 일을 형통케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그런 믿음으로 기도하자.

둘째로, 우리는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과 타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자. 하나님의 일에는 언제나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그것은 마귀의 활동이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과 타협하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담대히 이루어야 한다.

3장: 성곽을 건축함

[1-4절]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羊門)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the Hundred, 일백)(NASB, NIV)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어문(魚門)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重修)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느헤미야의 인도 아래 시작된 성곽 건축의 일은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유다 나라의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5-8절]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主)의 역사에 담부(擔負)치[일을 돕지] 아니하였으며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편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로 더불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저희가 예루살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5절의 ‘그 주’라는 원어(아도네헴)는 ‘그들의 주님(Lord)’ (KJV) 곧 하나님을 가리키거나 ‘그들의 주군(主君)들’(NASB, NIV)을 가리킬 것이다. 7절은,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 곧 기브온과 미스바 사람들이(KJV, NASB, NIV) 강 서편 총독의 보좌에까지 중수하였고(NASB)”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8절의 ‘향품 장사 하나냐’는 ‘향품 장사들 중 하나냐’라는 뜻이다(KJV, NASB, NIV). 이 구절은, 향품 장사들 중에 성곽 건축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도 있음을 암시한다.

[9-19절]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는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풀무 망대를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중수하였고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거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糞門)까지 성벽 1천 규빗[약 450미터]을 중수하였고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으며 문짝을 달며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하사뱌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 형제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미스바를 다스리는 자 예수아의 아들 에셀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병기창고] 맞은편까지 이르렀고.

‘분문’(糞門)은 ‘배설물 문’이라는 뜻이다. 15절의 ‘셀라 못’은 ‘실로암 못’을 가리킨다(NIV). 17절은, “그 다음은 바니의 아들 르훔 아래 레위 사람들이 중수하였고”라는 뜻이다(NASB, NIV). 어떤 지역을 다스리는 자들이나 그 절반을 다스리는 자들도 성곽 건축에 동참했다.

[20-27절] 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 엘리아십의 집 모퉁이에 이르렀고 그 다음은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냐민과 핫숩이 자기 집 맞은편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아나냐의 손자 마아세야의 아들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하되 아사랴의 집에서부터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우새의 아들 발랄은 성 굽이 맞은편과 왕의 윗 궁에서 내어 민 망대 맞은편 곧 시위청(侍衛廳, the court of the guard)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중수하였고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여 동편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어 민 망대까지 미쳤느니라.)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내어 민 큰 망대와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오벨 성벽까지 이르렀느니라.

[28-32절] 마문(馬門)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 침방(寢房)[침실]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금장색[금장색들 중에](NASB, NIV) 말기야가 함밉갓 문(the Inspection Gate)[검사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고[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누(樓)에 이르렀고 성 모퉁이 누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고들이 중수하였느니라.

30절에 ‘여섯째 아들’을 언급한 것은 아마 다른 아들들은 이 일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2, 3, 8, 12장과 역대하 25-26장 등은 예루살렘 성의 열두 혹은 열 세 개의 문에 대해 증거한다. (1) 양문(羊門)(3:1; 12:39), (2) 어문(魚門)(3:3; 12:39), (3) 옛 문(3:6; 12:39), (4) 골짜기 문(2:15; 3:13; 대하 26:9), (5) 분문(糞門)(2:13; 3:14), (6) 샘문(2:14; 3:15; 12:37), (7) 수문(水門)(3:26; 8:16; 12:37), (8) 마문(馬門)(3:28), (9) 함밉갓 문[검사(檢査)문](3:31), (10) 에브라임 문(8:16; 12:39; 왕하 14:13; 대하 25:23), (11) 감옥문(12:39), (12) 성모퉁이 문(대하 25:23; 26:9); (13) 베냐민 문(렘 37:13; 38:7; 슥 14:10).

본장은 예루살렘 성곽을 재건함에 있어서 모두들이 협력했음을 증거한다. 첫째로, 그들은 남녀 귀천의 구별이 없이 이 일에 참여하였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을 비롯하여, 레위인들이 참여하였고(17절),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들과 또 유다의 각 지역들을 다스리는 자들이 참여하였고(9, 12, 14, 15, 16, 17, 18, 19절), 또 어떤 이의 딸들도 참여하였고(12절), 금장색과 향품장사, 또 다른 상인들도 참여하였다(8, 31, 32절). 전도와 교회 건립 같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자.

둘째로, 그들은 힘써 수고하였다. 성곽을 건립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돌이나 벽돌을 쌓았을 것이고 때로는 문을 달기 위해 들보를 얹었고 문을 달았고 자물쇠와 빗장을 설치했다(1, 3, 6, 13, 14, 15절). 어떤 이들은 성벽을 약 450미터 중수했다. 또 어떤 이는 한 부분을 ‘힘써’ 중수했다(20절). 하나님의 일 봉사는 수고와 희생이 필요한 일이다. 이기적 마음으로는 할 수 없다. 그들은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돈을 못 벌었을 것이고 여자들은 집안일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시간도, 돈도, 힘도 사용해야 하였다. 우리도 교회 건립을 위해 힘써 수고하자.

셋째로, 많은 사람들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다. 10절,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외에도 23절(두 번), 28, 29, 30절에 같은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행해야 할 것이다. 전도도 자기 집 옆에서부터 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교회 부근에서부터 전도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그러나 예루살렘 재건에 참여한 자들은 제한적이었다. 5절, “그 귀족들은 그 주(主)의 역사에 담부(擔負)치[일을 돕지] 아니하였으며.” 8절, “금장색들 중에 . . . 향품 장사들 중에.” 하나님의 귀한 예물에 참여치 않은 자들도 있었던 것 같다. 예루살렘 거민 모두가 성곽 공사에 참여한 것 같지는 않다. 언제나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즐거이 자원하는 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법이다. 모세 시대에 성막을 지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바치는 자들의 예물을 받게 하셨고 그 일을 위해 자원하는 자들이 그것을 만들게 하셨다(출 26:2; 35:21; 36:2).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자원하는 마음이 있는 자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자가 되자.

4장: 원수들을 막으면서 일함

[1-6절]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케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필역하려는가, 소화된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흙무더기’라는 원어(아파르)는 ‘흙’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쓰레기더미’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본다(BDB, KJV, NASB).

산발랏과 도비야가 유다 백성이 성 건축하는 일 때문에 분노하거나 비웃은 것은 정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발랏은 크게 분노하였고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유다 사람들의 일을 비웃었으며 도비야도 비웃었다. 그것은 단지 유대인들이 견고한 성을 지음으로 자기들보다 세력이 더 강해지는 것을 시기했기 때문이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호소하였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최상의 대처 방법이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계획대로 행했다. 성곽의 전부가 연결되었고 높이가 절반에 미쳤다. 이것은 백성이 마음을 들여 일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바른 일인가 그른 일인가가 중요하지, 그것이 바른 일임이 분명하다면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포기하거나 위축되지 말고 원래의 계획대로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7-14절]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重修)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무더기[쓰레기더미]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그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고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내가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으로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고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民長)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를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이 중수(重修)되어간다 함을 심히 분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고 하였다. 그들은 정당성 없이 심히 분노하였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가서 요란케 하기를 음모했다. 악인들의 시기심은 악한 목표를 이루기까지 그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을 인해 파수꾼을 두어 밤낮으로 방비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낙심치 말아야 한다.

느헤미야는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을 소집하여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였고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民長)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를,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하였었다.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기억하고 담대히 힘써 싸우라고 권면하고 격려한 것이다.

[15-20절]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그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내가 귀인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역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나뉘어 상거가 먼즉 너희가 무론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유다의 대적자들은 유다 백성이 자기들의 뜻을 알았다는 사실을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그들의 꾀를 폐하셨다. 유다 백성은 각각 성곽 쌓는 곳으로 돌아와 여전히 자기들의 일을 했다. 느헤미야의 수종자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지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다.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느헤미야 곁에 섰었다. 느헤미야는 인간이 해야 할 바를 다하였다. 즉 그는 대적자들의 침입에 대비해 방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성벽 쌓는 일도 계속하였고 대적자들에 대한 방비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21-23절] 우리가 이같이 역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었으며 그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고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역사하리라 하고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때때로 대적자들이 있다. 또 교인들 중에는 마음이 연약하여 하나님의 일을 계속하지 못하고 낙심하는 자들도 있다. 낙심은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매우 큰 문제거리이다. 그러나 우리는 본장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9절).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이루시는 섭리자이시다.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는 자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성경책을 펼쳐 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한다.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경을 읽자.

둘째로,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인간이 해야 할 바는 다해야 한다. 대적자들이 침공해 오려고 계획하고 있었을 때 느헤미야가 방비를 하면서 일했던 것처럼(9, 16-17, 22-23절), 우리는 요행이나 기적을 바라며 자기가 해야 할 일에 게으르지 말고 자기가 해야 할 바가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 하려고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그러나 인간의 도리는 다하는 것이 바른 생각이라고 본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는 일을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완수하자(15절).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3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눅 13:31-33).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했다(행 20:23-24). 우리는 굳게 서서 주의 일을 완수하자(고전 15:58).

5장: 느헤미야의 선한 통치

[1-5절] 때에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 혹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곡식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우리의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전당 잡히고 이 흉년을 위하여 곡식을 얻자 하고 혹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어 세금을 바쳤도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저희 자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으나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니 속량할 힘이 없도다.

유다 백성들의 삶은 유여하지 못하였다. 유다 땅에는 흉년이 들었던 것 같고 그들의 식생활에는 궁핍함이 있었고 심지어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려 곡식을 사야 하였고 빚을 내어 세금을 내어야 했고, 자녀들을 종으로 팔기도 하였다. 그런데 유다의 귀인들과 관원들은 대부업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의 고통과 원망과 탄식은 심히 컸다.

[6-10절]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중심에 계획하고 귀인과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취리(나솨)[고리대금](KJV, NASB, NIV)를 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저희를 쳐서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속량하였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저희가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위가 좋지 못하도다. 우리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함에 행할 것이 아니냐?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곡식을 백성에게 취하여 주나니 우리가 그 이식 받기를 그치자.

느헤미야는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가르친 바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율법은 동족에게 돈을 빌려줄 수는 있어도 이자를 받지는 말라고 명하였다. 출애굽기 22:25-26,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빌려주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債主)같이 하지 말며 변리[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레위기 25:36-37, “너는 그에게 이식[이자]을 취하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식[이자]을 위하여 돈을 꾸이지[빌려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식물을 꾸이지[빌려주지] 말라.” 시편 15:5, “[주의 장막에 유할 자는]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지 아니하며].”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중심에 계획하고 귀인과 관원들을 꾸짖었다. 동족 유다인들에게 이자를 받기 위해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좋지 못하였다. 그것은 율법을 어기는 죄악된 행위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그런 행위를 즉시 중단해야 하였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귀인들과 관원들에게 그 일을 그치자고 권했다. 자기와 자기 형제들과 자기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다 그런 일을 중지하자고 하였다. 또 그는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그의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요 그것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을 포함한다. 잠언 14:31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라고 말하였다. 신약성경도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장려하는데(요이 4; 요삼 3-4), 그것은 서로 사랑함을 의미하였다.

[11-13절] 그런즉 너희는 오늘이라도 그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취한 바 돈이나 곡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지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저희에게 그 말대로 행하리라는 맹세를 시키게 하고 내가 옷자락을 떨치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떨치실지니 저는 곧 이렇게 떨쳐져 빌지로다[비게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에게 선한 생각과 소원을 주셨고 느헤미야의 선한 생각은 유다 땅에 그대로 실현되었다. 백성들의 고통과 탄식은 그쳤을 것이다. 유다 땅은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땅이 되었다. 비록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와 부자가 섞여 살고 있지만, 부자들이 자기들의 이익만 구하는 이기적 욕심을 버리고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고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이 율법에 밝히 명령된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자들과 가진 자들이 자발적으로 행해야 할 선한 삶이다.

[14-19절]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20년부터 32년까지 12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합법적 봉급]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하여[무거운 짐을 지워]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40세겔을 취하였고 그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1백 50인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사면 이방인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하나와 살진 양 여섯을 준비하며 닭(치포림 )[새들, 가금류]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복을 주시옵소서].

느헤미야는 유다 땅 총독으로 봉직한 12년 동안 그와 그의 형제들이 총독의 봉급을 받지 않았고 백성을 압제하지 않았고 솔선해 예루살렘 중건을 위해 일하였고 개인의 재산 증식에 힘쓰지 않았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기적 탐심을 버려야 한다. 유다의 귀인들과 관원들은 동족 유다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다. 그로 인해 가난한 유다인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그것은 부자들과 가진 자들의 이기적 탐심의 문제이었다. 이기적 탐심은 이웃 사랑, 형제 사랑의 법에 반대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율법의 규정에 반대된다. 부자들은 더 가지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가진 것만으로도 잘 살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거나 아니면 그냥 구제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꼬박꼬박 이자를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지킨 선한 일이 아니고 죄악된 일이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귀인들과 관원들을 책망하였고 이자 받는 일을 그치자고 권했다. 우리는 이기적 탐심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부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먹을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며 살 줄 알아야 한다(딤전 6:7-8).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선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한 느헤미야는 백성의 경제적 짐을 덜어주기 위해 총독의 합법적 봉급을 받지 않았고 솔선하여 성곽 건립의 일에 힘을 썼고 개인 재산의 증식을 위해 땅을 구입하지 않았다(9, 14, 15- 16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고 구제하는 선행으로 나타난다. 주께서는 그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이런 선한 삶을 실천해야 할 것을 교훈하셨다. 마태복음 25:37-40,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바울도 “[네가 부자들을 명하여]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말했다(딤전 6:17-18).

6장: 산발랏의 음모

[1-9절]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저희가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내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내가 보내어 저에게 이르기를 너의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느헤미야에 의해 시작된 예루살렘 성곽 공사는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 등의 반대를 받았다. 느헤미야는 처음부터 그들과 상대할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자들을 상대하느라고 하나님의 일을 중단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그의 승인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대적자들은 여러 번 느헤미야에게 편지를 보내어 와서 함께 의논하자고 말했다. 6절의 ‘가스무’는 아마 ‘게셈’을 가리키는 것 같다(NIV). 대적자들은 느헤미야에 대한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유다 사람들과 함께 모반하려고 성을 건축하며 그 성의 왕이 되려 하고 선지자들을 세워 유다에 왕이 있다고 선전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대적자들의 목적은 느헤미야와 그 동료들을 두렵게 하고 피곤케 하여 그들로 성곽 중건을 중단하고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 이것은 마귀와 그의 종들의 하는 모든 활동의 목표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이 믿음으로 행하는 선한 일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단호하게 대처하였고 또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기도는 성도의 힘이다.

[10-14절]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헤칼)[성전]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스마야라는 사람은 느헤미야에게 거짓 예언을 하였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을 드렸다. 그는 자신을 크게 여기거나 자기 몸을 중시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자기 목숨에 연연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들과 백성을 끝까지 지키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바는, 스마야가 하나님의 보내신 자가 아니고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느헤미야에게 거짓 예언을 한 것이었는 것이다.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그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그를 비방하려 함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충성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우리를 범죄치 않도록 지켜주시고 또 악한 자들의 올무와 비방에서도 건져주신다(시 25:15). 느헤미야는 또 대적자들의 악한 계획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표이다. 성도가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최상의 해결책이다.

[15-19절] 성 역사가 52일 만에 엘룰 월(6월) 25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그때에 유다의 귀인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저희에게 이르렀으니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저희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나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항상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예루살렘 성곽 중건 공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52일 만에 끝났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대적자들은 느헤미야와 그 동료들을 두렵게 하려 하였다(9, 13, 14, 19절).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막아주시고 도와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다.

셋째로, 우리는 범죄치 말아야 한다. 느헤미야가 자기 목숨을 지키려고 성전에 들어가 숨었다면 그는 범죄하게 되고 사람들의 비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넷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하자. 느헤미야는 대적자들과 상대하지 않고 오직 성곽 중건에 전념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의 임무를 위해 충성하였다. 예루살렘 성곽 중건이 52일 만에 완수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만 전념하고 충성하자.

7장: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의 수

[1-4절] 성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사르 합비라)[‘관저의 관원’(KJV), ‘요새의 사령관’(NASB, NIV)] 하나냐로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위인(爲人)[사람됨]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 내가 저희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거민으로 각각 반차를 따라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이쉬 베미쉬마로 웨이쉬 네게드 베소)[각자 자기 파수 위치에서와 각자 자기 집 앞에서]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그 성은 광대하고 거민은 희소하여 가옥을 오히려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나냐는 사람됨이 충성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참으로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맡은 파수 위치에서 파수했고 또 각 사람은 자기 집을 파수했다. 그렇게 한 까닭은 그 성이 광대하고 거민이 희소하여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기로 한 자들의 가옥을 아직 건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다 예루살렘 성 파수하는 일에 협력하였다.

[5-7절]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인들과 민장과 백성을 모아 그 보계대로 계수하게 하신 고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보계를 얻었는데 거기 기록한 것을 보면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감동 속에 귀인들과 민장과 백성을 모아 그 족보대로 계수하였는데, 그때 그는 바벨론에서 처음 돌아왔던 자들, 즉 스룹바벨과 예수아 등을 중심으로 돌아왔던 자들의 족보책을 얻었다. 그것은 느헤미야 때로부터 보면 약 92년 전의 일이었다.

[8-38절] 바로스 자손이 2,172명이요 스바댜 자손이 372명이요 아라 자손이 652명이요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2,818명이요 엘람 자손이 2,254명이요 삿두 자손이 845명이요 삭개 자손이 760명이요 빈누이 자손이 648명이요 브배 자손이 628명이요 아스갓 자손이 2,322명이요 아도니감 자손이 667명이요 비그왜 자손이 2,067명이요 아딘 자손이 655명이요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98명이요 하숨 자손이 328명이요 베새 자손이 324명이요 하립 자손이 112명이요 기브온 사람이 95명이요 베들레헴과 느도바 사람이 188명이요 아나돗 사람이 228명이요 벧아스마웻 사람이 42명이요 기럇여아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사람이 743명이요 라마와 게바 사람이 621명이요 믹마스 사람이 222명이요 벧엘과 아이 사람이 123명이요 기타 느보 사람이 52명이요 기타 엘람 자손이 1,254명이요 하림 자손이 320명이요 여리고 자손이 345명이요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721명이요 스나아 자손이 3,930명이었느니라.

[39-42절]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973명이요 임멜 자손이 1,052명이요 바스훌 자손이 1,247명이요 하림 자손이 1,017명이었느니라.

[43-45절] 레위 사람들은 호드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74명이요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148명이요 문지기들은 살룸 자손과 아델 자손과 달문 자손과 악굽 자손과 하디다 자손과 소배 자손이 모두 138명이었느니라.

[46-60절]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게로스 자손과 시아 자손과 바돈 자손과 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살매 자손과 하난 자손과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르아야 자손과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갓삼 자손과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베새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비스심 자손과 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바슬릿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느니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소베렛 자손과 브리다 자손과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스바댜 자손과 핫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몬 자손이니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이 392명이었느니라.

[61-65절]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로부터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저희는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도합이 642명이요 제사장 중에는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에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이름한 자라. 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66-69절] 온 회중의 합계가 42,360명이요 그 외에 노비가 7,337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245명이요 말이 736이요 노새가 245요 약대가 435요 나귀가 6,720이었느니라.

[70-73절]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방백은 금 1천 다릭과 대접 50과 제사장의 의복 530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또 어떤 족장들은 금 2만 다릭과 은 2,200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 그 나머지 백성은 금 2만 다릭과 은 2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67벌을 드렸느니라. 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이 다 그 본성에 거하였느니라.

느헤미야 8-73절에 기록된 족보들과 그 수효는 에스라 2:1-70의 것과 비슷하다. 숫자상의 차이는 분류 방법의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온 자들의 총합계는 42,360명으로 동일하다(스 2:64).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느헤미야는 그의 동생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혹은, ‘관저의 관원’ 또는 ‘요새의 사령관’) 하나냐로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다. 느헤미야의 동생 하나니는 처음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 그 황폐한 소식을 형에게 전해주어서 느헤미야가 울며 금식하고 기도하게 하였던 인물이다. 그도 형과 같이 경건하였던 것 같다. 또 하나냐는 특히 그 사람됨이 충성되었다. 즉 하나냐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고 또 신실하였고 또 사람들 앞에서도 믿을 만한 인물이었다. 하나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이었다. 그런 자를 예루살렘 성의 통치자로 세웠으니 참 잘한 일이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악을 떠나게 된다. 잠언 16:6,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교회의 지도자들이든지 사회의 지도자들이든지 비슷하다. 모세는 전에 장인 이드로의 조언을 받아들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고 불의의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천부장, 백부장 등으로 삼았었다(출 18:21). 사도 바울은 교회의 장로의 첫 번째 자격요건으로 ‘책망할 것이 없음’ 즉 신앙과 인격의 온전함을 들었다. 그것은 오늘날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에 교회를 지켜 나갈 바른 믿음은 물론, 온유하고 겸손하며 선하고 너그러운 품성을 포함한다. 오늘날 사회의 지도자들, 즉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한 도덕성을 가진 인물이어야 바람직하다.

둘째로, 예루살렘 거민들은 협력하여 성을 파수하였고 특히 자기 집 앞을 파수하였다. 하나님의 일은 어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셨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받은 재능과 은사와 직분을 따라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또 서로 협력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교회를 세우며 지켜야 할 것이다.

셋째로, 인도자들은 백성을 잘 파악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처음 돌아온 자들의 명단을 얻었다. 모든 백성은 각 지파와 족속을 따라 그 수효가 파악되었다. 에스라 2장이나 느헤미야 7장은 아마 분류 방법의 차이 때문에 숫자상의 차이가 있었지만, 총합계는 동일하다. 오늘날도 교회의 직분자들, 특히 목사와 장로들은 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권징 아래 둘 만한 성도들을 잘 파악하고 관리해야 하며 또 구도자들, 즉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거나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자들까지도 잘 파악하고 인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