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新約]강해/◆ 사복음서 · 사도행전 강해-1

마태복음 1장-4장 [Ⅰ.예수의 가문,탄생,세례,시험,사역 1:1-4:25]]◆ 밤중소리

영국신사77 2020. 4. 10. 17:28


마태복음 1장-4장 

제목차례

마태복음 1장(1-8)

1) 약속의 메시야 (1절)

2)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1절)

3)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여인들 (3절, 5절, 6절, 16절)

4) 아브라함의 족보에 들어가 있는그리스도인들 (17절)

5) 세 가지 모습을 보이신 예수님의태어나심 (18절∼21절)

6)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 (18절∼20절)

7) 주님의 이름이 가리키는 것 (21절∼22절)

8) 마리아의 요셉의 인간성과 믿음 (18절∼25절)


마태복음 2장(9-12)

9) 헤롯왕(마태복음 2:1-3)

10) 동방박사 (1절∼6절)

11) 동방박사들의 모범적인 경배 (9절∼11절)

12) 라마에 관한 예언 성취 (12절∼18절)


마태복음 3장(13-21)

13) 세례요한이란 사람 (1절∼4절)

14)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1절∼2절)

15) 세례에 관한 성경적 증거 (5절∼6절)

16) 세례요한의 설교 (7절∼8절)

17)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심 (10절∼12절)

18) 성령과 불 세례 (11절)

19)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 (7절∼9절)

20) 세례를 받으신 예수 (10절∼15절)

21) 하늘의 음성 (16절∼17절)


마태복음 4장(22-29)

22) 시험하는자 (1절)

23) 주님은 왜 시험을 받으셔야했나 (1절)

24) 예수님의 시험이 주는 교훈 (1절∼2절)

25) 예수님이 받으신 첫 번째 시험 (1절∼4절)

26) 예수님의 두 번째 시험 (5절∼7절)

27) 예수님의 세 번째 시험 (8절∼11절)

28) 사탄의 세 가지 유혹의 전술 (10절∼11절)

29) 마귀를 이기는 세 가지 무기 (10절∼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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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강해

제목차례

1) 약속의 메시야 (1절)

2)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1절)

3)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여인들 (3절, 5절, 6절, 16절)

4) 아브라함의 족보에 들어가 있는그리스도인들 (17절)

5) 세 가지 모습을 보이신 예수님의태어나심 (18절∼21절)

6)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 (18절∼20절)

7) 주님의 이름이 가리키는 것 (21절∼22절)

8) 마리아의 요셉의 인간성과 믿음 (18절∼25절)


(1) 약속의 메시야

(마태복음 1:1)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우리는 오늘부터 새벽 예배 시간에 마태복음 강해를 듣게 됩니다. 

마태복음은 신약 성경의 첫 번째 말씀으로 나와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복음서, 역사서, 서신서, 예언서 등으로 구분됩니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과 같이 공관 복음으로 불려지며 

요한복음과 나뉘어집니다. 

복음서가 둘로 나뉘어져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요한복음과 달리 공관 복음이라고부르는 것은 

이 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관점이 같기 때문입니다.


1. 마태복음의 특색

마태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마태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원래 레위란 이름을 가졌던세리였습니다. 마태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의미로 이 복음은 이 마태에 의해서 주후 약 70년경을 전후하여씌어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넷이지만 공관 복음으로 부르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 역시 제각기 특색이있습니다. 성령께서 마태를 통해서 이 복음을 기록하게 하셨을 때, 네 가지 특색을 나타내셨습니다.


(1) 마태복음은 왕의 복음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마태는 이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주인공 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왕의색채로 그린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이스라엘이 기다려 온메시야는 그들의 왕이셨기 때문입니다. 메시야를 고대하는 이스라엘에게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증거하기위하여 이 책이 기록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 왔을 때, '유대인의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그의 별을 보고 왔노라'고 한 말에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의 법정에스셨을 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는 빌라도의 물음에 예수님이 '네 말이 옳도다'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은 자신이 왕으로 오신 분이심을 스스로 증거하신것입니다. 마태복음을 열면 맨 먼저 지루하고 긴 족보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족보는 바로 왕의 혈통으로서의족보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태

어나심은 그 당시 왕의 자리에 있었던 헤롯에게 자기 왕권에 대한위협을 주었습니다. 헤롯은 이런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베들레헴 근처의 수많은 남자애들을 죽인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밝혀 주고 있는 것은 다윗왕의 왕권을 영원히 계승하실 왕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의 승리의 입성은 왕으로서의개선을 말해 주는 그림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 28장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이 말씀은 그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왕적인명령이신 것입니다.


(2) 그리고 마태복음의 특색 중 다른 하나는 마태복음은 메시야의 복음이란 사실입니다. 마태복음에는 구약 성경의 인용이 65회나 나옵니다. 이 수효는 다른 복음서에 나와 있는모든 수효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숫자인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예언 성취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그가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요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심을충분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다음에 마태복음은 배척의 복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왕이요 메시야이신예수님은 왕으로서의 그리고 메시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멸시와 배척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유독 마태복음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

입니다. 어머니가 요셉에게 배척을 당할 뻔한 일, 헤롯이 아기예수를 죽이려 한 일, 예수를 증거한 세례 요한이 목 베임을 받은 일,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신일 등의 기사는 마태복음이 배척의 복음이었음을 말해주는 사건들입니다.

(4) 그리고 마태복음의 특색이라고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마태복음은 재림의 복음이란 사실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재림 사상에 철저했습니다. 마른 복음서에서는 찾아 볼 수없는 주 재림에 관한 많은 기사를 실었습니다. 특히 24장은 전 성경에 나타난 주 재림의 예언에 대한 축소판이라고 불릴만치 주 재림에 관한 자세한 계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5장에는 주 재림시 그를 맞이할 성도들과 그렇지못할 성도들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여러 가지 비유로 이해하기 쉽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이 말씀에 우리들의신앙 생활의 초점을 맞추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소망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우리의 소망에 흔들림이없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 이스라엘은 그들의 왕을 배척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육적인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의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의 백성이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모든 백성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이 마태복음을 통하여 우리의 이 왕을 영접하여야하며 그 명령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잘 배워 순종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2)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마태복음 1:1)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와 그의 탄생에 관한 기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는 일에있어서 1절에서 그 족보를 결론적으로 간추렸습니다.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것은 그의 신분에깊은 뜻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말은 남녀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잉태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아브라함의자손이라 부르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탄생 언약은 이미 창3장에서 여인의 후손으로 약속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그 여인의후손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기 위한 작업으로 아브라함을 그 조상으로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에 대하여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원래 아버지 품속에 영원 전부터 계셨던독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창3:15절에서 언약하신 여인의 후손으로 세상에 보내심으로 말씀이육신으로 태어나게 하시어 사탄의 머리를 치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계획을 이루심에 아브라함을 육신적인조상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1:1절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함에 아브라함이 그의 첫 조상으로 등장하게된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예수님의 첫 조상으로 선택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백성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메시야를 세상에 보내시려는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라고말씀하신 씨는 곧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신 것입니다(갈3:16). 이처럼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조상으로 선택받은 이유는 그의 씨로부터 메시야를 탄생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 수있는 것입니다.

(1) 이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갈대아우르 땅에서 부르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이 세상에서부르시는 것도 그의 약속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씨라고 하는 메시야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부르심에는 반드시 그의 아들에 대한 약속이 따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로 말미암아 영생을주시기 때문입니다.

(3)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메시야의 언약에 관한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처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 것은 누구든지 믿음이 아니면의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거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4) 다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중요한 이유는 아브라함의 육적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이나 그들만을 구원하시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그들 가운데서 약속하신 메시야를 탄생시키시려는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성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이나 제사 제도 역시 오실 메시야를 맞이할 준비로 주신 하나의그림자였습니다. 만약에 그런 의미가 없다면 구약과 신약의 구별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그리스도의 태어나심과 그의사역의 의미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5) 구약의 이같은 예표와 상징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성취됨에 따라 예표와 상징은 사라져 버리고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인류 구원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3.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 되는 이유

성경에서는 왜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만이 아니라 다윗을 등장시켜 아브라함과다윗의 자손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까?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다윗과 연결시키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이다윗의 왕권을 계승하는데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 9:6절 말씀을 보면 장차 오실 메시야는 평강의 왕이신데다윗의 위에 앉아 그 나라를 굳게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은 다윗의 왕권을 계승할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시는 분입니다. 왕은 그의 백성들을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해야 할 그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결론 :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동일한 혈통을 가진 하나님의자녀들입니다. 갈 3:29절에서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자'라고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혈통은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에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을 배우면서 우리의 왕이신 우리 주님을 더욱 깊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여인들

(마태복음 1:1,3,5,6,16)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마태복음 1:1절에 있는 말씀에 세계란 말이 있습니다. 세계란 족보란 뜻으로 사람의 근본 곧 뿌리를 말합니다. 대개동양 사람들은 족보를 중요시하는데 그 족보에는 남자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혈통은 남자에게만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은 시집가서 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 아버지의 국적에 따라 그 아이의 국적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례적으로 다섯 명의 여인의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섯명의 여인 중 네 명의 여인은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주 비천한 여인들이란 점에서 이 여인들의 등장은 우리에게 어떤교훈을 주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1. 다말

3절에서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다말은 누구입니까? 

그는 야곱의 아들 유다의 며느리로 유다의 두 아들과 살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한 채 과부로 지내온 여인입니다. 

이 다말이 매춘부로 분장하여 시부를 유인하여 그와 동침함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유다 가문의 법통을 이어 받아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조상에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말은 그의 행실로 본다면 칭찬 받을 만한 여인이 아니지만 

유다 집안의 장자를 낳아 메시야의 혈통을 이으려는 그의 믿음이 가상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관습에 따라 셋째 아들인 셀라와 동거하여 아들을 가져야 할 처지였지만 

유다가 이를 즐겨하지 아니했음으로 

다말은 시부로부터 아들을 가질 것을 결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비록 시부로부터 태어날 아들이었지만 유다 집안의 장자가 되리라고 믿은 것입니다. 

다말은 쌍둥이 형제를 낳았고 그 아들들을 키우는 일에 평생을 과부로 지냈습니다. 

그는 비록비천한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메시야의 족보에 올리신 것입니다.


2. 라합

5절에서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라합이란 여인은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입니다. 그는 이방 여인이며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그 성에서 술을 팔아 온 기생의 신분으로있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 줌으로 그의 가족과 함께 멸망 중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신분의 천하고 존귀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보아스를 낳았는데이 보아스는 룻기에 아름답게 나오는 인물로 다윗 왕의 아버지 이새의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 천한여인을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족보에 올리신 것입니다.


3. 룻

5절에서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룻이란 여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룻은 이방 땅 모압 여인으로 나오미가 흉년을 맞아 모압 지방으로 피난 갔을 때 얻은 며느리입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이죽자 며느리인 룻은 시모의 나라인 이스라엘로 시모와 함께 왔습니다. 룻은 시모의 신앙을 본 받아 하나님을 참으로 공경하는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다윗 조상의 유력한 사람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아들 오벳을 낳았으며 이 오벳이 이새를 낳았고이새는 다윗을 낳음으로 룻은 다윗 왕의 할머니가 된 것입니다.


4. 우리아의 아내

6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의 신복인 우리아 장군의 아내였습니다. 우리아가 전선에서 적군과 싸우고 있을 때, 그의 아내 밧세바는그 녀의 미모에 반한 다윗 왕에 의하여 동침하게 되었고 그 후 다윗은 이 우리아를 적군의 손에 죽게 하고 그 아내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 여인이 솔로몬이란 위대한 왕을 낳았으며 이 여인은 메시야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누리게 된 것입니다.


5. 마리아

16절 말씀을 보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란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은혜를 받은 경건한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을 메시야의 육신적인 어머니로 섭리하셨고 예수님은이 여인에게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신성시하여 그녀를 영원한 동정녀로 주장하고 그에게는 원죄가없는 것으로 주장하며 또한 그의 부활 승천을 주장하며 마리아를 중재자로 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당연시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다만 한 사람의 인간인 여자로, 다만 그가 은혜를 받아 메시야의 어머니로 섭리되었을 뿐 그 이상도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선택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인물이나 가문이나인종이나 인격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선택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선책을 받은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4) 아브라함의 족보에 들어가 있는 그리스도인들

(마태복음 1:17)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우리가 성경에서 누구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부르느냐는 문제를 아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아브라함의자손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는 유대인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은 다만 육신의 혈통적인자손일 뿐 성경에서 가리키고 있는 참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은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미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이라고 하는 의미가 사라진 것입니다.


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달라진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의 육적 후손으로 이스라엘을 이루신 일은그들의 혈통에서 여자의 후손을 탄생시키시려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후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의의미가 달라졌습니다. 롬9:8절에서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시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같은 사실을 18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7절에는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리스도까지의 족보를 네 대로 나누어 각 대 수의 수효를 명시했습니다. 그런데 각 대수가열 네 대라고 명시되어 있으면서도 유독 바벨론으로 이거 한 후부터 그리스도의 대수까지는 열 세 대로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 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이거 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2절부터 계속되는 마지막 대 수는 분명 열 세 대인것입니다.

'바벨론으로 이거 한 후에 여고냐는(이 사람은 이 이전 대수에 들어가 있는인물임) 스알디엘①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②을 낳고, 스룹바벨은 아비훗③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④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⑤을 낳고, 아소르는 사독⑥을 낳고, 사독은 아킴⑦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⑧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⑨을낳고, 엘르아살은 맛단⑩을 낳고 맛단은 야곱⑪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⑫을 낳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란칭하는 예수⑬가 나시니라(마1:12-16). 이 족보의 서열에 따르면 열 네가 아니라 열 세대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부터는 이제 새로운 세대가 열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세대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탄생되는 모든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들이 열 네 번째 세대에 들어갈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까지의 족보는 육적인이스라엘의 혈통으로 이어 왔지만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약속의 씨가 태어나신 이후부터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언약의 자손이 될 그리스도인 들에게 넘어올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이후로 태어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열 네 대째로들어갈 것입니다.


2.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네 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라고 말한 대상이 누구입니까? 이에 대하여창22:15-18절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17절 말씀에서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있는 대로 네 씨가 대적의문을 얻으리라고 하신 예언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18절에서 '네 씨로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에 나타난 대로 그리스도의 씨로 번질 천하 만민이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영생을 얻을 천하 만민을 가리킨 것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씨란 결코 육신적인 자손을 가리킨 것이 아닌 것입니다.

창12장에는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의 약속이 나옵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그 중에 '땅의 모든 족속이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임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2절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룬다고 하신 약속도 이스라엘을가리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약속의 자녀들만이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약속의 자녀들입니까?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자기의 아들들이 되기 하셨다'고 했습니다(엡1:3-5). 아브라함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이와 같은 목적을이루기 위하여 이들(예정된 자)의 조상으로 선택받았으며 그 같은 언약은 아브라함의 씨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성취된 것입니다.


결론 :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한 세대를 빈 채로남겨 놓았습니다. 바벨론 이거부터 그리스도까지의 대 수를 14대로기록했지만 실제로는 13세대로 나와 잇는 것입니다. 이 남은 한 세대는 육적 이스라엘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란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다시 계속되어야할 아브라함의 자손은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언약의 씨가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바로 이 족보에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아브라함의 자손답게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세 가지 모습을 보이신 예수님의 태어나심

(마태복음 1:18-2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눅 2:1-7)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기독교에는 5대 교리가 있습니다. 이 5대 교리는 성경 전체의 진리를 축소시킨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진리에 선건전한 신앙으로 성장하려면 이 교리 위에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해 주고 있는 절대적인 5대 교리를 간추려보기로 합니다.


1. 기독교의 5대 교리

(1) 첫째는 그리스도의 강생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품속에 영원 전부터 계셨던독생하신 하나님이 아들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신 일입니다. 그 분이 바로 말씀이신데 그 말씀이육신으로 오신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2) 둘째는 그리스도의 속죄입니다. 이 속죄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심으로 완성하셨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고 하셨습니다.

(3) 셋째는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4) 넷째는 그리스도의 승천입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시고 부활하신 그 몸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 말씀을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5) 다섯째는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이 재림은 두 가지 면에서 임합니다. 하나는 주님을 거역한 무리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이 들의 최종적인 구원입니다. 이다섯 가지 중 어느 한가지라도 믿지 못하면 우리의 구원은 온전치 못합니다. 이 다섯 가지 교리는 기독교에만 있는 절대적인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기독교의 5대 교리를 배우고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탄생

위에서 말씀드린 기독교의 5대 교리 중 그 첫번째 것이 주님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최대의 사랑이요인간의 최대의 기쁨이며 하나님의 최대의 이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에서 첫번째로 손꼽는 사건을 든다면 하나님의 천지창조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최대 사건은 주님의 탄생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모습을 보이신 주님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주님은 성자로 오셨습니다. 이 사실은 가브리엘이 예고했습니다 '성령이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일컬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곧 성삼위 되신 제 2위의 성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하늘에 말씀으로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태어나실 수 없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권능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2) 주님은 인자로 오셨습니다. 인자란 사람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가 사람으로 오신 이상, 사람을 통하여 태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다음 세 번째로 주님은 우리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들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죄인의 구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처럼 사람도 되시고 하나님도 되시는 신비스러운 출생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며 그 분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이 창안해 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끌지 아니하시면누구든지 믿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믿음이 없는 사람과 분리하여 우리로 그를 믿어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데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 역사는 이처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이루어 놓으신 그 일에 참여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인류 최대의 잔치 자리에 초청하셨습니다. '수고하고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 아들을 믿으라는것입니다. 그를 믿으면 구원을 주십니다. 영생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에 이르렀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고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6)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

(마태복음 1:18-2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눅 2:1-7)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사실은 

기적 중에 기적이요 이적 중에 이적입니다. 

사탄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인간들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만약 기독교에서 이 교리가 무너지면 

기독교 그 자체가 무너질 것이기때문입니다. 

마태는 이 일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는 어떤 주석이나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만이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설은 설명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18절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나타났더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정혼이란 말은 서로 의합하여 결혼하기로 결정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거하기전이란 이들이 부부 관계를 갖기 이전이란 뜻입니다.


1. 예수님의 선재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된 것은 이삭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잉태할시는 그의 아내와의 부부 관계에서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둘 다 잉태될 수 없는 육체적 조건을 가지고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권능으로 이삭이 잉태될 수 있도록 그들의 육체를 주장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경우와도다릅니다 그의 잉태도 기적이지만 그 기적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간 관계를 통해서 이루게 하신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이전에 이미 독생하신 하나님의 존재로 하늘에 실재로 계셨던분입니다. 그 분이 다만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부모에 의해 비로소태어나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이전에 하늘에 존재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말씀은 그런 독생하신 하나님이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것을 의미하는데 이 일은 성령의 권능적인 기적으로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는 다음 두 가지 절대적인 요소가 필요한것입니다. 그 하나는 그리스도는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 아니시란 사실입니다. 그가 성령의 권능으로 동정녀의몸에 잉태되신 것은 그리스도가 아담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아니시란 확고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15:47절에서예수님을 '둘째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담의 후손이 아닌 새로운 사람으로 탄생하신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다음에 그리스도는 전혀 죄가 없는 분으로 태어나신 분이란 사실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은 전혀 죄로 오염되지 않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기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약 인간의 방법에 의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라면 그 분은 결코 우리의 구주가되실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음으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죄 값이 사망이란 말은아담의 자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그가 아담의 자손으로 오셨다면 비록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해도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대속 제물이 될 수가 없는것입니다.


2.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

사람이 아니면 아담의 죄를 속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만이 우리의 죄를 대속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성령으로 잉태되어 '말씀이 육신'이 되셔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가 사람이 되셔야 죄인들을위한 속죄 제물이 되실 수 있기 때문에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말씀이 어떻게 마리아의몸에 잉태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우리로서는 해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명한 해답이 눅1:37절에이처럼 나와 있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아들이 성령의 권능에 의하여 사람으로 오셔서 죄인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실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비밀로 하늘의 천군천사도 몰랐으며 선지자들도 몰랐고 사탄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메시야를 십자가에 목 박은 일은 이같은 하나님의비밀을 몰랐기 때문입니다(행3:17). 이같은 일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셨지만 그 예언의참 뜻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사7:14).


결론 : 예수의 성령 잉태와 그의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부인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일의 가장 중심 사상은 

바로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을 입으시고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믿는 일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역사는 

바로 육체로 오신 예수를 부인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요일4:2-3). 

우리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신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굳게 지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확고히 붙잡아야할 것입니다.


(7) 예수의 이름이 가리키는 것

(마태복음 1:21-23)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ㄱ)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성경에는 주님의 이름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마다 주님의 하시는 사역에 대하여 특별하신 의미를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님에게 명백하게 붙여져 있는 이름 몇 가지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말씀

주님에게는 '말씀'이란 이름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1:1절에서 사용한주님의 이름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이 여기서 말씀이란 말을 사용할 때 그의 의도는 말씀과 하나님을 동등하게 나타내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이름을 말씀으로 사용하게 된 어원은 이러합니다.


헬라의 철학자들은 하나님과 우주와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 사이에 어떤 알 수 없는 매개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그 매개체를 '로고스'( )라고 불렀습니다. 요한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이 매기체가 바로 예수님이시란 사실을 증거하였고 '로고스'란 말을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생각을 완전히 나타내고 계시는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 곧 '로고스'인 것입니다. 말이란 언제나 자기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란 말씀이나(요14:9) '하나님이 보내신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요3:25). 히1:2절에서는 '이 모든 날 마지막날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란 말씀은 아들의 이름이 말씀과 일치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있는 것입니다. 이 '로고스'란 이름은 요한이 붙였지만 이 이름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뚜렷한 증거로서 영원히주님에게 합당한 이름입니다.


2. 예수

다음에 주님께는 '예수'란 이름이 있습니다. 요1: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하셨는데이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란 이름은 천사의명령에 의해 주어졌지만 하나님이 주신 이름입니다. 이 예수란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란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해 줍니다.

여기서 자기 백성이란 피로 값주고 사신 그의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예수의 이름부터가 속죄의 십자가를 지시는 하나님의어린 양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작정해 놓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 제물로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예수님께는 그리스도란 이름이 있는데 이 이름은 그의 사명적인 이름입니다. 히브리어로 '메시야'란 말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구약에서는 왕, 제사장, 선지자들을 세울 때 기름 부음을주고 그 사역에 임하게 했습니다. 그에게 그리스도란 이름이 주어진 것은 그에게 돌아갈 영적 직분으로 그에게 왕, 제사장, 선지자적인 사명이 있고 그 사역을 감당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그는 그의 백성들의 엄연한 왕이신 것입니다. 지금도말씀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는 앞으로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계11:15).


(2) 예수님은 제사장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히7:23-26).


(3) 예수님은 선지자이십니다. 히1:2절에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그 아들로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말씀으로 그의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선지자적 사역을 이루고 계십니다.


4. 임마누엘

임마누엘이란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란 뜻입니다. 그는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성자이시지만 그러나 그의 본체는 성부와 동일하십니다. 그는 분명히 역사 속에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임마누엘이십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지금도 임마누엘이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성령으로 임마누엘 하시는 분입니다.


결론 :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살펴보면 한가지 결론에이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찾아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방 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막혀 있기 때문에 찾아 갈 수 없습니다. 십자가로 죄의 담이 헐려야 합니다.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서만이 가능합니다.


(8) 마리아와 요셉의 믿음

(마태복음 1:18-25)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ㄱ)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과 마리아는 이 땅 위에서 가장 축복 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같은 축복의 이면에는 그들만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축복에는 이들과 같은 시련과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일은 중요합니다. 이런 십자가를 이기고 승리함에는 

마리아나 요셉 같은 아름다운 인간성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인격과 믿음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1. 마리아의 아름다운 믿음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신적인 어머니로서 지상에서 가장 복된 여인입니다. 그는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이같은 여자로서의 선택받은 여인이었습니다. 눅1장을 보면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너와 함께 하시도다'고 말했습니다. 마라아는 이 땅 위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인 가운데서 예수님의 어머니로 하나님의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큰 축복이요 영광이지만 그러나 큰 고난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한 평범한 여성으로 나사렛에서 요셉과 결혼하여 지냈더라면 어려운 인생길을 걷지 않아도 좋았으련만 이 하나님의축복과 선택으로 인하여 한 평생 십자가를 지는 어려운 인생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우리의 선택에도 이같은 고난이 따른다는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마10:28).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받아야 할 일에 대하여 성경에서 여러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롬8:17; 빌1:29; 딤후1:8)'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벧전3:14).

우리는 장차 나타날 영광의 소망을 위해 우리에게 짊어진 십자가를 잘 참고 견디고이겨야 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이런 말을 듣자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온 몸이 마비되는 듯 싶었을 것입니다. 인간의생각으로는 이같은 일이 절대로 자신에게 미치지 말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면 마리아는 율법에의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셉으로부터도 배척을 당할 것이며 결혼은 완전히 파경에 이를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자신에게 올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마리아는 무엇이라고 대답했으며 어떤 태도를 가진 것입니까? '주의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고 말했습니다(눅1:38). 마리아는 이제 자신이 살고 죽는 일에 대한 모든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어떤 일을 수행하려면 이같은 마리아와 같은믿음과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하나님께 대한 의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2. 요셉의 인간성과 그의 의로움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의로움이 세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1) 요셉은 마리아와의 관계를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요셉은 정혼한 마리아가어린아이를 잉태했다는 소문을 듣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음란한 행실과 배신감에놀라다 못해 크게 상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그의 허물을 덮어 주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어떤 상황 아래에서도 남의 허물을 덮어 주고 용서해 주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2) 요셉은 주의 사자의 말을 순종했습니다. 처녀가 잉태되었다는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고 이해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한 꿈에서 하나님의 사자의지시를 받은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잉태된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한 것입니다. 요셉은 이 사자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따라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데려 왔습니다.

이것은 그의 놀라운 믿음인것입니다. 한 꿈에서 받은 지시에 따르기에는 너무나도 엄청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자기의 인간적인 생각이나지혜는 버리기로 한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 육신의 소욕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예수를 위하여 하나님의 의지대로살아온 것입니다.

그는 꿈에서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니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데리고 애굽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아 애굽을 떠났습니다(마2:13). 그는 또 꿈의 지시로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 왔습니다(마2:19). 그는 꿈에 지시함을 받아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 살았습니다. 그리고그 이후의 요셉의 생애는 뚝 끊어져 버리고 맙니다.


(3) 다음에 요셉은 아기를 낳기까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훌륭한 절제 생활을 말해 주며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의 순결을 지켜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한 믿음의 태도였습니다.


결론 : 마리아와 요셉이 이같은 순종과 믿음과 사랑과 절제와 

하나님 의뢰의 사람이었기에 

이처럼 크나큰 메시야의 부모로서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 강해

9) 헤롯왕(마태복음 2:1-3)

10) 동방박사 (1절∼6절)

11) 동방박사들의 모범적인 경배 (9절∼11절)

12) 라마에 관한 예언 성취 (12절∼18절)


(9) 헤롯왕

(마태복음 2:1-3)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예수님은 헤롯왕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신약에 나오는 헤롯이란 이름은 무려 7명에 달합니다. 그러므로헤롯이란 이름을 잘 구분치 않으면 헤롯이란 이름 때문에 성경 해석에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이 자에의하여 어려서부터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왕 중의 왕으로 오신 신분이시지만 세상에서 환영을 받지못하셨으며 오히려 세상 왕의 핍박을 받으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름 없는 가난한 목수 집안에서 외롭게 태어나셨고 짐승을기르는 마구간에서 출생하신 것입니다. 그가 태어나셨을 때 왕으로서의 환영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배척을 받으셨으며 헤롯 왕에 의해 고난의 생애를 걷게 되십니다.


1. 헤롯은 누구인가?

신약에 나오는 헤롯이란 인물은 모두 한 혈통에서 뻗은 한 가족으로 이들은 주전 55년부터 주후 93년에 이르기까지 148년간 팔레스타인과 그 근방을 다스려 온 왕가입니다. 마2장에 나오는 헤롯은신약에 처음 등장하는 헤롯으로 이 헤롯을 가리켜 대 헤롯이라고 부릅니다. 헤롯은 원래 블레셋 지방의 아스켈론 지방에서태어난 이방 사람으로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유대교에 입교하여 하나님은 믿으며 율법을 따라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 대 헤롯은 유능하고 과감한 인물로 주변에 있는 애굽이나 수리아는 무력해지고 로마도 아직 큰 세력을 펴지 못하고있었을 당시에 로마 황제인 아구스도에게 뇌물을 바치고 유다 지역의 왕으로 임명을 받은 자입니다. 이 헤롯은 유대인의반대를 받으며 유다 지방을 다스려 온 왕이었지만 옛날 스룹바벨에 의해 재건했던 하나님의 성전을 주전 20년경에 시작하여 64년경에 이르러 새롭게 완성시켰습니다. 예수님이 출입하셨던 성전은 바로 이 대 헤롯이 건설 중에 있었던 성전이었으며예수님은 이 성전의 완공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헤롯은 모세의 율법을 존중하는 사람 것처럼 자부했지만 실인즉 자신은 율법을지키는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전 안에 신상을 세우거나 동전에 자기 화상을 그려넣지는 않았지만 그의 생활은방탕하고 권력에 집착하여 많은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열 명의 아내를 거느렸으며 그는 자기 아내 마이암메를 죽이고그 여인의 조부인 힐카너스와 아내의 동생과 심지어 자기 아들 중에 몇 명을 죽인 포악 무도한 살인마였습니다. 헤롯은예언서에만 기록된 메시야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베들레헴에 태어났다는 소식에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디려 온 그 메시야가 장차 자기의 왕위를 빼앗을 것이라고 겁을 먹었습니다. 그는 위선의 가면을 쓰고 동방박사들을속이고 그들을 통하여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은 후,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로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아래 사내아이들을모두 죽였습니다. 이것이 메시야를 죽이려는 사탄의 첫 번째 시도였습니다. 사탄은 여인의 후손이 메시야로 오실 것이란하나님의 약속을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더불어 들었습니다. 아담을 넘어뜨린 사탄은 그의 목표를 이제 그리스도에게 돌리게된 것입니다. 마귀는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서 여인의 후손이 와서 죄인들의 구주가 되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계략을썼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2. 대 헤롯의 후예들

예수님은 헤롯왕과 그의 후예들을 미워하셨습니다. 눅13:31절에서 예수님이 '여우'라고 별명을 부친 헤롯은 이 대 헤롯의 아들인 '헤롯 안디바'입니다. 이 헤롯 안디바가 세례 요한의 목을 벤자입니다. 이 안디바 역시 도덕적으로 타기 받을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복 형제인 빌립의 아내이자 자기의 친조카이기도한 헤로디아를 사랑하여 세력이 없는 동생으로부터 그녀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은 위인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자가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요 또 율법을 준수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자였으므로 이같은 불의한 일을 책망한 일로 그의 손에목을 베어 죽임까지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 안디바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난 것으로 알고 놀라면서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말했습니다. 안디바는 빌라도에 의해 예수를 죄수로 재판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묻는 질문에대답치 않는다고 분격하여 주님을 조롱한 후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냈습니다. 이 자외에 헤롯 아켈라오, 헤롯 빌립 1세, 헤롯 아그립바 1세, 2세 등이 있지만 이들은 주님이 생존할 당시엔 나타나지 않은 인물들입니다. 예수님은 태평 시대에태어나 평탄한 중에 사명을 이루신 분이 아닙니다. 주님의 고난은 십자가에까지 계속되어 부활과 승천의 영광을 안기시게된 것입니다


결론 : 우리도 세상에서 고난과 시련을 당하는 일에 대하여 당연하게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당하는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이 장차 우리에게나타날 영광에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10) 동방박사

(마태복음 2:1-6)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경배하러 오다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ㄱ)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 동방박사의 등장은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그들이 이방인들이었음에도 구세주를 찾고 그를 왕으로서섬긴 일은 '찾으라 그리하면 만날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진실성을 보여 주신 것이며 이들의 신앙적인 태도야말로모든 사람들의 마땅히 본 받아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1. 동방박사들은 누구인가?

동방박사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디서 왔으며 그들의 신분은 무엇이며 이들이 어떻게구세주의 태어나심을 알고 예루살렘까지 찾아 왔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구약에서 동방이란 지역은예루살렘을 기점으로 바벨론 지방을 말해 왔습니다. 이 바벨론 지역은 바벨론이 망한 후에도 메데바사가 계속 다스려 왔으며그들이 다스리는 장구한 기일 동안 포로로 잡혀간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니엘, 예레미아, 에스겔,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에스라, 느헤미야 등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이 혹은 왕의 측근에서왕의 신임과 총애를 받으며 나라를 치리하기도 하고 혹은 도를 다스리기도 했습니다. 바벨론이나 메데바사는 임금의 직속으로박사라고 하는 직책이 주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박사란 지위는 지금처럼 어떤 학문의 전문적인 연구에서 얻어진 학위인것이 아니라 왕 앞에 존귀한 직분으로 대개 점쟁이, 박수, 점성가들 중 그들의 어른 격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명예로룬 칭호였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다니엘에게 박수장이라고 하는 직분을 주었었는데 이직분은 박사들의 어른 격으로 왕 앞에서 존귀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찾아온 박사들은 별을 보고 그를 경배하러 왔노라고한 말대로 이들은 별을 연구하면서 하늘의 징조를 보고 점술을 치는 일종의 이방 예언자들임을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


2. 동방박사들의 신앙

우리는 이 사람들이 평소에 하나님을 섬겨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찾아온 인물은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이 왕은물론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만난 헤롯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약하신 메시야임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서그들은 이스라엘이 섬겨온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 지역에는 많은 이방인들이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자기가 다스리는 바벨론의 전국 각처에 보낸 조서의 내용을 한가지만찾아보면 이러합니다. '느브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미를 삼을찌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다른 신이 없음이니라'(단3:28-29)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바벨론이나 메데바사에는 많은 이방인들 중에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보여 주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를 찾아 나선 이들 동방박사들도 이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섬겨온 사람들이며 그들은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유하고 있는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메시야에 관한 올바른 지식과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것입니다. 이들은 메시야에 관한 성경적인 연구를 하면서 메시야로 인한 구원에 대한 뜨거운 열망으로 그의 태어나심을간절히 바라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늘의 별의 이상을 보여 주셨을 것입니다.

이같은 징조를 바라본 이들은 기뻐하며 예루살렘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연구한 바에 따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는 유대 땅에 아기의 몸으로 태어나실 것이라고 하는 예언을 알았기때문에 멀리서 이 왕께 경배하려고 예루살렘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그의 인도하심을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까이 하시고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메시야를 찾은 일은 우리에게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들 신앙 생활에 거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찾는 일에 많은 시간을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 주님을 섬기고 그에게 경배드리는 일에얼마만한 시간과 정성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들은 오랜 기간의 여행길을 떠나 왔습니다. 그들은 구세주를 찾고 섬기는일에 많은 경비를 드렸습니다. 우리들은 과연 이들 동방 박사들과 같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찾는 일에 힘을쏟고 있는 것입니까?


결론 : 동방박사들은 구세주를 찾는 일에 역경과 고생의 길을 감내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를 찾는 일에 생명의 위험까지도 마다하지않았습니다. 우리들도 이들 동방박사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본 받아 주님을 진심으로 섬기고 간절함으로 찾아그들처럼 주님을 만나 그들과 같은 진실한 경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1) 동방박사들의 모범적인 경배

(마태복음 2:7-12)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동방박사들은 먼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까지는 왔지만 왕의 출생지에 대해서는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랍비들을 만나 왕의 출생지에 대해 묻게 된 것입니다. 박사들은 베들레헴이 메시야의출생지란 사실을 알게 되어 헤롯왕의 안내를 받아 베들레헴으로 발길을 옮겨 메시야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박사들이 왕의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갈 때 그들 앞에 문득 별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별은 그들이 동방에서 메시야 탄생의 징조로 보았던 그 별이었습니다. 그리고그 별은 정확하게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에까지 인도하여 그 위에 머물러 섰다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이 때 이 별을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별은 광명한 새벽별이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박사들의 경배

태도 우리는 메시야를 찾아 경배한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께 겸손한 자세로경배를 드렸습니다. 엎드려 아기께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이같은 경배는 내 마음과 정성과 전 인격을 바쳐 드리는 참경배를 말합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자기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4:23). 다음에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을 찾아오는 일에빈손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께 드리려고 미리 예물을 정성껏 준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자들은 그 손에 예물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절기를지키러 내게로 올 때 너는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출23:15). 신16:16절에서는 '너희는 공수로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심으로 힘을 다하여 헌금할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막12:41-44).


2. 동방박사들이 드린 세 가지

예물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은 황금, 유향, 몰략 등 세 가지였습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모두 귀하고 값진 것이란사실입니다.


(1) 황금 : 황금은 인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화를 의미합니다. 황금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 드리는 예물에 인색해서는안 됩니다. 사람에게 선물하기조차 부끄러운 예물을 하나님께 바친다면 이런 예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예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겅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말1:7-8).


(2) 유향 : 유향은분향하는 곳에 쓰이는 가장 귀한 기름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바로 기름 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유향은 외국에서 생산되는 기름이요 엄청나게값이 비쌌기 때문에 마리아나 요셉에게는 이런 기름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유향을드린 것은 기름 부으심을 받을 왕으로서의 예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그의 이름에 합당하게 영접하며 합당하게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3) 몰약 : 몰약이란 향초에서 흐른 것을 말린 것입니다. 그모양은 마치 꿀처럼 된 것도 있으며 기름처럼 유하게 된 것도 있습니다. 몰약은 그 향이 매우 향기로운데 이에 대하여 아가서에는신부를 찬양한 왕이 그에게 몰약과 유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든 동산이요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 흐르는 시내로구나'(아4:12-15). 이같은 황금이나 유향이나 몰약의가치는 그 당시 화폐보다도 귀했으므로 박사들은 외국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미리 준비하여 먼길을 가지고 와서 아기 예수께정성껏 드린 것입니다.


결론 : 이들 동방박사들이 말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왕과 메시야로 인정하고 그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이같은 준비된 예물을 정중히 드린 사실은 

그들의 놀라운 신앙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의 모친 마리아나 요셉에게는 경배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예물도 주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의 방문 목적은 왕께 대한 경배였던 것입니다. 

리는 동방박사들이 그리스도를 찾아온 태도와 그에게 드린 예물,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과 그들의 경배를 살펴보면서 

우리들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새로운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12) 라마에 관한 예언 성취

(마태복음 2:13-18)

애굽으로 피하다

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ㄴ)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ㄴ)호 11:1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ㄷ)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ㄷ)렘 31:15

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라마에 관한 예언이 

두 살 아래 아기를 죽인 베들레헴의 어머니들이 당한 슬픔과 통곡에 적용되어 

마태는 예레미아 선지의 예언을 인용하여 

그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베들레헴 인구가 2천이 넘지 못했으므로 

죽임을 당한 아기의 수효는 20여 가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갑작스레 그들이 당한 슬픔은 

가히 베들레헴 근처에 잠자고 있는 라헬이 

그 무덤에서 일어나 슬퍼하며 크게 통곡한다는 시적인 예언이 

실감나는 것입니다.


1. 헤롯의 불안

헤롯은 동방박사들의 예방으로 큰 번민이 생겼습니다. 성경에 예언된 유대인의왕이 하필이면 자신이 왕권을 가지고 다스리는 유대 땅에 태어났다고 하는 뉴스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되면 결국 자신의 왕권이 그에게 도전을 받게 될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는 생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 당시 헤롯 뿐아니라 모든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기다리는 메시야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위해 베들레헴 땅에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메시야라면 크나큰 권세를 가지고 자기들 앞에 유대인의 왕으로나타날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이 기적을 바라본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기다리는 영광의 메시야가 이분이신줄로 알고 그를 억지로 잡아 그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한 일도 있었습니다. 헤롯은 성경에 밝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불러 그리스도가 태어날 곳에 대하여 물은 것입니다. 그들은 헤롯왕에게 메시야가 탄생할 탄생지가 베들레헴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헤롯왕은 이보다 더 자세한 상황과 태어난 그리스도의 거처를 확인하기 위해 동방박사들을속여 간교한 계책을 썼습니다. 자신도 그에게 가서 경배할 터이니 돌아오는 길에 자신에게 보고해 줄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꿈에 왕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피해 갔다고 했습니다.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줄을 알고 분이 가득하여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에 있는 사내아이들을 두 살부터 계산하여 그 아래로 다 죽인 것입니다.


2. 예레미아의 예언

마태는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같은 무참한 사건에 대하여 

예레미아의 예언을 들어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가 예레미아 37장에서 인용한 이 예언은 

실상인즉 라헬의 자손들이 바벨론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가는 

슬픔과 통곡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라헬이란 여인은 야곱의 아내로 그에게는 요셉과 베냐민이란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라마란 곳은 베냐민 성으로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베들레헴 지경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라헬의 후손들이 예례미아 당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보고 

라헬이 무덤에서 일어나 서러워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울음소리는 라헬의 무덤이 있는 라마로부터 들렸다고 했습니다. 

자손을 위한 조상의 슬픔이요 

또한 패역한 백성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슬픔이기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는 예레미아의 예언이시적으로 나와 있으므로 

벌써 오래 전에 죽어 무덤에 잠자고 있는 라헬이 

마치 살아서 슬퍼하는 것 같은 표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베들레헴 땅에서 

또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헤롯에 의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슬퍼하며 통곡하는 어머니들의 울음소리는 

마치 예례미아가 라헬의 설음에 대하여 표현한 경우와 유사함으로

신약 시대에 와서 다시 한번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자식들을 잃어 버린 어머니들의 울음이

라헬의 통곡처럼 들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바로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마태가 예레미아의 예언을 인용한 것은 

베들레헴의 어머니들이 겪은 슬픔을 실감 있게 나타낸 것으로 

이중적 예언의 성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헤롯이란 자는 이방인으로 유대교로 개종한 자로 

옛날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었으면서도 

자신의 왕위의 보존을 위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하였고 

그 일이 실패하게 되자 베들레헴 지경에 태어난 어린아이들을 모두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그 자에게도 찾아온 것입니다. 

그의 권세나 왕위나 영광이 그의 수한을 연장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헤롯은 메시야를 죽이려는 사탄의 하수인 구실을 했지만 

그러나 주님은 헤롯에 의해 죽으실 분이신 것이 아니라 

죄인의 구속자로 십자가에서 속죄양으로 죽으실 분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사탄은 아무리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괴롭혀도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합력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선을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섭리는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일로부터 

주님의 전생애에 걸쳐 평범하게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헤롯을 당장에 죽이실 수도 있으셨지만 

그런 방법을 사용치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 아들을 애굽으로 피난시키셨습니다. 

그는 나사렛에서 요셉을 도와 

집안 일을 꾸려 나가는 생애를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길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돌보심의 손길이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가운데서 

우리의 생애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그의 도우심을 힘입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 강해

13) 세례요한이란 사람 (1절∼4절)

14)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1절∼2절)

15) 세례에 관한 성경적 증거 (5절∼6절)

16) 세례요한의 설교 (7절∼8절)

17)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심 (10절∼12절)

18) 성령과 불 세례 (11절)

19)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 (7절∼9절)

20) 세례를 받으신 예수 (10절∼15절)

21) 하늘의 음성 (16절∼17절)


(13) 세례 요한이란 사람

(마태복음 3:1-4)

우리는 마태복음 3장에 들어서자마자 세례 요한이란 사람의 갑작스런 등장을 대하게 됩니다. 요한이란 이름은 '여호와은혜 주시다'란 뜻으로 이 이름은 천사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한 것입니다(눅1:13).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가 자기 차례를 따라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시간에 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요한의 태어남을 예고해 준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 준 천사는 태어날 아들에 대한 사명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가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고 한것입니다.


1. 마지막 선지자의 사명

세례 요한은 구약과 신약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선지자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예로부터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증거한 사람으로 메시야를 바라보면서 직접 그를 증거한 선지자였습니다. 그의태어남에 대하여 이사야는 이처럼 예언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고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되며 험한 것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고했습니다(사 40:3-5).


마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바로 이 선지자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 예언에서 세례 요한의 사명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사명은 오실 메시야되신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이요 주의 가시는 길을 평탄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같은 사명을훌륭하게 이루었습니다. 예수님도 그에 대하여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7-11).


2. 세례 요한의 인간상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명자로서의 요건을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1)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그에 대하여 그는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위한 사명자가 되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너희는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2) 요한은 자신은 낮추고 주님만을 높이는 사명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시러 오실 때에도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겠거늘'이라 하면서 그의 겸손을 보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과는 가까운 친척으로 그의 의로운 생활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에게세례를 줄 수 없다고 사양한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이 대망해 온 메시야인줄 안 후에는 더욱 자신을 낮추고 '그는 흥하여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증인이 자신을 높이면누님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증인들의 할 일은 세례요한처럼 자기는 낮추고 주님만을 높이는데 있습니다.


(3) 요한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불의와 타협치 아니하였고 오히려불의를 힐책했습니다. 그는 어떤 권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자기 동생의아내를 데리고 사는 헤롯왕을 찾아가 그의 패륜적인 행동을 질책했습니다. 그는 실로 파수군적인 사명을 이룬선지자였습니다(겔 3:18-19).


(4) 요한은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빈들에서 자라났습니다. 기도와 명상과 극기적인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그의 옷은 화려한 옷이 아니라 약대 털옷을 입었습니다. 그가 취한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의 자라남에 따라 이 사명자로성장하기 위한 생활을 이루었고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된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이룬 후 가장 아름다운 최후의운명을 마친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우리가 세례 요한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우리의 생애는얼마나 보람이 있을 것입니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뚜렷한 해답을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감을 이루는 일에 요한처럼 철두철미하게 우리의 전 생애를 바쳐야 하겠습니다.


결론 : 세례 요한은 아주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가장 알차고 보람있는인생을 지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온전히이룬 후에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간 것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는 생애'를 산 것입니다(빌 3:14). 우리는 길게 오래 사는 일을 복이라 여기지 말고 짧지만 보람있게 요한처럼 주님을 위해 내 생명을 드릴 수 있는 생애를 살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4)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태복음 3:1-4)

세례 요한이 유다 광야에서 전파한 그의 메시는 간단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도공생애에 들어가셔서 처음 외치신 복음의 내용이 이 세례 요한의 경우와 같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하신 것입니다(마 4:7).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전할 복음 역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란 메시지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복음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그 핵심적 내용은 만민에게 동일한 것으로 그 중심 내용이 '회개와 천국'인것입니다.


1. 회개와 천국

회개란 신앙 생활의 기초요 밑거름입니다. 회개가 없이는 예수를 믿을 수가 없으며그를 영접할 수도 없습니다. 죄인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첫걸음이 바로 회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들은 한 사람의 예외자도 없이모두 죄인들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의 갈 곳은 궁극적으로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시어 누구든지그를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시고 그들을 위해 천국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회개와 성경에서 가리키는 회개와는 그 양상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회개란 양심의가책에서 나온 자신의 잘못에 대한 뉘우침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허물을 뉘우치며 그 뉘우침을 통해서 그 행실을버릴 수도 있고 변화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 것도 바랄 수 없습니다. 생명을 얻거나 하나님의자녀의 권세를 가지거나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회개에는 다음 몇 가지 조건이 따라야 합니다.


(1) 첫째로 그리스도인의 회개란 우리의 죄를 양심적으로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 앞에 그 죄를 자복하는 일입니다. 양심적으로 뉘우치는 사람은 양심적으로 새롭게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므로 하나님의 용서를받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가 맨 처음 하나님 앞에 자복할 죄란 하나님이 사랑으로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한 죄인 것입니다.

이 죄가 먼저 해결 받지 못하면 우리의 죄는 영원히 사라지지않으며 죄악 가운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죄에 대하여 예수님은 요 16:9절에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죄에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우리가 처음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할 죄가 바로 이 죄인 것입니다. 이같은죄의 자복은 성령께서 이루도록 해 주십니다. 이 죄의 자복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근본적인 회개인 것입니다.


(2) 다음에 회개란 회개한 그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과 화목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아들을 통해서만이 우리와화평을 누리십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했습니다(골 1:20). 우리는 세상 사람으로부터는 이같은 회개를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회개란 자기 인생의 방향 전환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자기 인생을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회개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자기 뜻대로 살아간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이같은 전환이 없이는 회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형식적 회개(외식)와 실질적 회개(진실)가 구분되며 이 구분에 의해 회개의 확실한 증거를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우리로 옛 사람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하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하나님께 열매를 맺히게 하시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여 그의 아들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했던 죄악을 회개하여 그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그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주시므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아들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하나님을 향하여 그의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 천국이란 무엇인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한 천국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장차 들어갈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곳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그리스도인의기업입니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의 천국은 우리들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천국입니다. 예수님도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있다 눈에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마음속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심령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결론 : 천국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이 매우 가까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천국의 주인이 되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마음의 천국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지금도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들이고 계십니다.


(15) 세례에 관한 성경적 증거

(마태복음 3:5-6)

요한은 오실 메시야의 길을 예배하는 사명으로 온 선지자로 그는 세례로서 이 사명을 감당했기 때문에 세례 요한으로 불려졌습니다. 요한은 세례로, 오실 메시야의 길을 (회개) 예비한 사람입니다. 그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메시지로 복음을전한 곳도 요단강을 중심한 광야였으며 예루살렘과 온 유다로부터 많은 사람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세례에 관하여 교파간 상반된 교리를 내세우고 있으며 신학적 학설도 여러 가지로 갈라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세례는 물에 몸을 잠그는 것으로 이같은 침례가 아니면 세례의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교파도 있는 것입니다.


1. 세례냐 침례냐 의 명칭 상의 문제점

세례에 관해 말할 때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세례라고 불러야 하느냐 침례라고불러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글 번역에는 세례라고 나와 있지만 침례교에서는 그것을 침례라고 읽거나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경우도 침례 요한이라고 부릅니다. 침례교에서 세례를 침례라고 부르는 이유는 헬라어 원어 성경의 편견적인해석에서 나왔습니다. 세례란 말은 팝디죠( )인데 구약에서 이 팝디죠란 말은 율법에 따른 종교 의식적인 용어로 사용되어왔습니다.

팝디죠란 두 가지 경우에 똑같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레6장에서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 . .'란말이 나옵니다. 이 찍는다는 말이 팝디죠란 단어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출30:20절에서 '그들이 회막에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란 말 중에서 씻어란 말이 팝디죠입니다. 그러므로 팝디죠란 말은 찍어란말이나 씻어란 말 중에 어느 곳에나 적용되는 말입니다.

성경에 잠긴다는 말에 이 팝디죠를 사용한 경우가 없으며 율법에는 잠기는 의식도없습니다. 핍디죠란 이처럼 씻는 일에 대한 의식에 사용된 단어이기 때문에 씻는 의식을 의미하는 세례란 말은 결코 침례란단어보다 부자연스런 말이 아니며 오히려 성경적으로 원어의 내용을 잘 나타내고 있는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어떤 세례가 성경적 세례냐?

우리는 세례가 신약 시대에 와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근원이 구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 있었던 정결케 하는 의식에 행한 팝디죠나 세례란 말이 그 뜻이 동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적인 의식에 비롯된 것이지만 오늘날 교회 시대에도 행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이 의식을 버리지 말고 계속 하라고 명하셨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8:19).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성령 세례와 물세례를 혼돈하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영적 세례입니다.

이런 사실은 롬 6장에서 말씀해줍니다(롬6:4-5). 침례파에서는 세례를 받을 때 몸이 물에 잠겨야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는 것을 상징하고 물에서올라오는 것을 부활로 상징하기 때문에 몸을 물 속에 담그는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장사지내고 그와 함께 부활하는 일은 회개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연적 영합으로 성령 세례는 바로 이같은 목적으로주시는 것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상징하는 표로 받는 것입니다.

회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살아나심과 함께 부활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써얻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가 마치 유월절에서 흘린 어린양의 피에서 그 기원을 찾는 것처럼 세례도 이런기원이 있는 것입니다. 물로 사람을 정결케 하는 의식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으로 일할 아론과 그 아들들을 깨끗하게하는 일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레8:6). 이처럼 세례가 죄인들의 죄 사함에 목표를 두고 있는 이상, 물이란 곧 그리스도의보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에 잠기던가 물로 씻던가 성삼위 이름으로 물로 죄 사함의 세례를주면 그것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팝디죠가 되는 것입니다. 세례는 구원의 필수적 요건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입니다. 이 의식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물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생명적인 연합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를 받지 못한 자라도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연합이 가능한 것입니다. 죄 사함이나 구원이나 그리스도인이되는 조건이 물세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 : 우리가 세례를 받는 이유는 주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우리는 죄 사함의 외형적 표로써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오순절날 베드로는 군중들을 향하여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람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리'고 말했습니다(행2:38). 

이처럼 우리는 세례를 회개와 죄 사람의 표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사함이나 회개의 확신이 없이 

세례를 받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16) 세례 요한의 설교

(마태복음 3:7-9)

이사야의 예언대로 세례 요한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자기에게 가까이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를 외쳤습니다. 세례 요한이 외치는 회개야말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이요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회개를 그의 사명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가 외친 죄에 대한 책망은 신날한 것이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메시야를바라고 죄를 자복하는 사람들에게는 세례를 베풀어 그들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지만 외식하는자들이나 회개를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 인들에 대해서는 무섭게 책망했습니다.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우리는 마태복음 3장에서 처음으로 바리새인이나 사두개 인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유대교 안에는 몇몇의 분파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이 바리새파와 사두개 파가 유대교의 큰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새파는 성경대로 믿는다고 하는 보수적인 사람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들 중에는 서기관이나 율법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두개 파는 성경에 나오는 사실조차 부인하는 자들로 부활도 부인하고 천사의 존재까지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행 23:6-8).


2. 독사의 자식들아

세례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오는 많은 무리 가운데 끼어 요단강으로 나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 인들을 향하여 '독사의자시들'이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회개를 거부하고 외식하는 무리들로실상인즉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독사의 자식들인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지 않으면이들은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세례 요한은 왜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한 것인가? 그것은그들에게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기도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음도 아닙니다. 그들은 길거리와 회당에서 길게 기도하며 죄도 자복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열매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 생활뿐 아니라 그들이 하는 기도나 회개에 이르기까지 외식으로 장식되어있습니다. 회개에는 하나님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의 확인을 기도에서 찾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생활의열매에서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가 없을 때 그 신앙 상태를 외식한다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회개에는 두 가지 모양이 있습니다. 하나는율법적인 회개요 다른 하나는 복음적인 회개입니다. 율법적인 회개는 죄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이 두려워 인간적인 노력으로억지로 죄를 떨어버리려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의 회개가 외식으로 흐르게 됩니다. 복음적인 회개란 죄의결과가 사망임을 알고 그의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개인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적인 회개입니다.


이와 같이 회개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십자가에서 영원히 해결하신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생의 새로운 기쁨과 보람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적인 회개에는 그리스도의 의가따르지 않기 때문에 힘쓰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적인 회개에는 그리스도의 의가 따름으로 속죄를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속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생각하지 말라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은 인간의 구원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필연적으로 오는 것인 줄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주신 언약을 잘못 해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영적인 자녀임을 알지 못하고 다만 육신의 자녀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롬9:8).

아브라함이 의를 얻은 것은 믿음이지 그의 조상이나 혈통에서 온 것이 아닌 것처럼그는 오직 믿음의 조상으로 그 자손들에게 유업을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구원은 오직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되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이름만의 그리스도인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만이그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결론 : 우리는 결코 바리새인들이나 사도개 인들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외식하는 자가 되며 독사의 자식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아브라함의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준엄하게 내려진 하나님의 책망은 

오늘날 이름만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내리시는 하나님의 책망인 줄 알고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 

참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그에게 언약한 기업의 후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7)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심

(마태복음 3:10-12)

논이나 밭에는 언제나 알곡과 쭉정이가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도 알곡과 쭉정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밭으로 비유하시고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출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 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이라고 하신것입니다(마 13:24-26). 교회에는 반드시 좋은 씨앗인 하나님의 자녀들만 심겨져 있는 곳이 아닙니다.

가라지도 좋은 씨와 함께 덧뿌려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가라지란 누구를 말하는것입니까? 알곡이 어쩌다 변신된 것이 가라지가 아닙니다. 가라지란 씨앗을 원래부터가 마귀가 와서 알곡 속에 덧뿌리고간 것입니다. 가라지는 이 마귀가 덧뿌린 씨앗입니다. 이 가라지는 교회 안에서 마귀를 대신하여 사탄의 사역을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가라지는 알곡이 되는 법이 없고 될 수도 없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뽑히게 되고 심판날에 불 속에 던짐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1. 가라지는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가라지는 무엇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까? 그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가라지는 언제나 가라지일 뿐 열매를맺지 못하기 때문에 신령한 눈으로 관찰할 때 우리는 알곡과 가라지를 식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라지의 특색은열매가 없는 대신 그 잎사귀는 무성한 것입니다. 그들은 신앙고백도 그럴듯하게 하고 그들의 신앙적인 외적 모습도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같은 모습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가짜 믿음이며이것을 성경에서는 외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라지를 뽑는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함부로 뽑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주인이 추수할 때까지 가만 놔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사람들은 가라지와 알곡의 정체를잘 분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가라지에는 그 뿌리를 통하여 다른 곡식들과 많은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라지를 잘못 뽑다가 알곡까지 상하게 할 염려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를 뽑을 분은 예수님이심을 밝혀 주십니다.

그러면 가라지와 알곡을 가르시는 주님의 방법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신다'고했습니다. 타작마당이란 주님의 몸된 교회를 말합니다. 주님은 이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시려고 그의 손에 키를 들고 계십니다. 이 키작은 주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주님은 늘 이 키를 가지고 당신의 교회를 정결케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를 정결케 하시는 키작으로 쓰시는 도구로 하나는 시험의 키작이 있습니다.

'돌밭에 뿌리었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들입니다(마13:20-21). 다른 하나는유혹의 키작입니다. 돈, 명예, 이적, 교만, 이단 등의 유혹을 키작으로 쓰시는 것입니다. 이 키작에 걸리면 많은가라지들이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의 넘어짐은 곧 타작마당을 정결케 하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2. 가라지를 뽑으시는 유혹의 키작

마지막 때에는 사탄의 세력이 하나님의 교회를 온통 자신들의 온상으로 만듭니다. 계 17장에 보면 큰 음녀의 세력을이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에 속한 자기의 자녀들과 비 진리에 속한 사탄의 자녀들을 구별하시는 키작으로 이적을사용하심으로 진리에서 떠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탄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이적과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로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살후 2:9-12).

예수님은 유혹을 교회에 보내사 이같은 가라지들에게 거짓 것을 믿게 하신다고하셨습니다. 이 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거짓 것에 미혹되어 이로 인하여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하나님의 자녀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 음성을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 그 말씀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인 것입니다. 진리보다이적을 따라가는 신앙은 주님의 키작에 넘어지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결론 : 주님은 지금도 이 키작을 드시고 

온 교회를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십니다. 

이 채찍은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임합니다. 

이 키작이 역사할 때 물론 알곡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알곡은 이 키작으로 연단함을 받아 더욱 아름다운 결실을 맺지만 

가라지는 이 키작에 견디지 못하여 떨어져 나가게 될 것 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는 생활을 통하여 

알곡의 모습을 역역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18) 성령과 불 세례

(마태복음 3:11)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대하여 증거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한이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말로 그치지 않고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한 말에서

이 말씀의 해석에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개 이 경우에 대하여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과 불을 한가지로 보는 견해입니다. 

그래서 이 견해는 성령 세례의 표현을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불이 함께 들어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한가지는 성령과 불은 전혀 상반되는 별개의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로 

성령 세례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고 

불 세례는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인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1. 성령 세례

성령 세례란 말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성령 세례이냐는 문제에 가서는 이론이 많은 것입니다. 

오순절 계통의 교회에서는 성령을 받는 일과 성령 세례와를 구분하여 

성령을 받는 일은 구원에 있어서의 성령의 내주이고

성령 세례는 우리가 성령을 충만히 받을 때 

성령의 외적인 역사로 우리 몸에 강력하게 임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받을 뿐 아니라 

성령의 세례까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세례를 받은 증거로 주로 '방언의 은사'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성령을 받는 일과 성령 세례를 구분하지 않고 한가지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이것은 회개를 위한 세례일 뿐 

이 세례에 구원이나 속죄의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이 베푸는 물세례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자신의 물세례를 과소평가하고 

예수님의 성령 세례를 지극히 높였던 것입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회개의 표에 불과했지만 

성령 세례는 구원의 보증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죄인들에게 구원을 주실 분이 아니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야말로 성령으로 세례를주실 분이라고 증거함으로써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메시야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오순절 날에 이루어진 것입니다(행 2:1-4).

우리는 오순절에 임한 성령 세례에서 

특수한 세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이 모두 성령을 받으므로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이 성령을 받았을 그 때에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성령 세례와 성령의 충만은 다른 것이지만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령 세례와 함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례가 많은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들이 이런 것들과 함께 

즉 성령 세례와 성령의 충만함과 함께 방언까지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같은 일은 그 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받기 위해 기도한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임했습니다. 

지금은 이런 일이 대단히 드문 일인데 

그 당시에는 왜 있었느냐는 질문이 나올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이같은 성령의 삼중적인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모인 각종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효과 있게 전하려면 이런 표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성령에 대한 지식이 없으며 성령 세례에 관한 계시가 없었던 시대였으므로 

성령 세례의 확실한 증거를 외적으로 나타내 보일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성경이 형성되고 성령에 관한 계시와 많은 지식이 

말씀을 통해서 전달된 시대에는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은사 등 다양한 성령의 역사를 

구분해서 성령의 필요에 따라 주신 것입니다. 

이 중에 가장 중요한 성령의 역사는 성령의 세례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사람이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는 일은 성령의 신비적인 체험이 아니라 

성령의 내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성령 세례와 성령의 내주는 같은 뜻입니다.


2. 불 세례

다음에 불로 세례를 준다는 말은 성경에 이곳에만 나옵니다. 

지금 요한은 물로 주는 회개의 세례와 

성령으로 주시는 중생의 세례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로 세례를 준다는 말이 

그 다음에 나오는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하신 

심판의 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불로 주는 세례라고 표현된 곳은 어느곳에도 없습니다. 

성경에서 성령을 불로 상징하는 경우가 여러 곳에 있습니다.

이사야 4:4절에서 성령이 소멸하는 영으로 나오는데 

이 영은 성도들의 죄악을 정결케 하는 성령의 역사를 나타낸 말입니다. 

오순절에 내리신 성령도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곳에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는 말씀에서 

성령과 불을 동일한 성령으로 말한 것이 분명하며 

다만 불이란 다른 표현을 한가지 덧붙인 것은 

우리의 죄를 태우시고 우리의 심령을 뜨겁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결론 :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죄악은 

이 성령의 불같은 역사로 태우심을 받은것입니다.


(19)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

(마태복음 3:7-9)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유대교는 오랜 전통을 통하여 그 안에 여러 갈래의 파당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이스라엘의 참 지도자 인양 내세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율법의 짐만 잔득 짊어지웠습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이들 종교계 지도자들은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바리새파가 있었고 사두개인이라고 하는 사도개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헤롯왕을좇는 소위 헤롯 당원이 있었고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1. 바리새인들

예수님께 가장 도전적으로 나온 무리가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라는 말은히브리서 '근파르쉬'에서 나왔는데 이 말의 의미는 갈린 사람, 분리 주의자란 뜻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매우 성경적이었고율법에 대하여 지나칠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그들의 이같은 열심이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일에 대하여 흠을잡아 공격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되면 안식일, 십일조, 율법에 다른 의식적 정결의 율례를 반드시 지켜야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세속에서 자신들을 분리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바리새란 말을 쓰기를 즐겨한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왜 주님의 책망을 받게 된 것입니까? 이들은 율법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열매로서가 아니라 의를얻으려는 하나의 방편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중히 여겨 순종한 것이 아니라 외식으로그것을 지켜 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를 얻는 방법을 오직 율법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 외에도 장로의유전이라는 교훈을 첨가하여 율법과 함께 지키게 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더욱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바리새인들의 이같은 일을 미워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라고 신랄히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2. 사두개인들

다음에 유대교에 큰 주류를 이루고 있는 파가 바로 사두개파입니다. 이들을 사두개인이라고 부릅니다. 사두개 파에는 정치에 관여하는 무리들이 많으며 이들 중에는 종교적 귀족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바리새인들과는 신앙적인 면에서 대조적인 면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신앙적인 단면이 막 12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느 날 예수님을 찾아와 부활이 없다는 그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어려운 질문을 던졌습니다.'일곱 명의 남편과 한 여인과의 동거 관계에서 이들이 불활 할 때 그 여인이 이들 일곱 명의 남편 중 어느 남자의아내가 될 것이냐'는 질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날 때에는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하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하신 것입니다(막 12:24-25). 그리고 이들은천국이나 영생이나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깨달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천사의 존재나 귀신의 존재도 부인하여 이를미신이라고 매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서기관들과 제사장들

서기관이란 성경을 기록하고 그 뜻을 해석하는 일종의 성경학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문자적으로 치중한 나머지 하나님의 참 뜻을 거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율법에대한 올바른 가르침은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뜻에 있음을 주님은 여러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간음하지말라 하였다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하셨습니다(마 5:27-28). 그리고 율법도 정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바울은 롬 13:8절에서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은 율법을 폐하는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려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려 온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은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 말씀을 자신들이믿거나 생활에 적용시키는 일에는 태만했을 뿐 아니라 관심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어른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른 구실을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의식적인 행사와 종교 의식에만 사로잡혀 있었고 의와 인과 신을 버린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제사장으로오신 그리스도를 그들 자신의 손으로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결론 : 종교가 타락하면 주님이 서실 자리가 없어집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진리를 거역하는 종교로 

교회가 음녀의 세력을 이룰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잘 배우고 순종하는 생활을 하여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야할 것입니다.


(20) 세례를 받으신 예수

(마태복음 3:13-15)

세례를 받으시다(막 1:9-11; 눅 3:21-22)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세례 요한이 증거 한대로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입니다. 그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로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 분은 스스로 요한을 찾아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으셨습니다.


1.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교훈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려고 요단강으로 세례요한을 찾아 가셨을 때 세례요한은예수님께 세례 주기를 주저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때까지자신을 메시야로 나타내신 일이 없으시며 아무도 그를 가리켜 메시야로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예수님의 성결된 생활을 가까이서 친히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는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으셔야 할 필요가 없다고그는 생각한 것입니다.

세례 주기를 주저하는 세례요한을 향하여 주님은 '이제 허락하라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분이시지만 하나님의뜻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모든 뜻을 따르기로 하신 것입니다.

다음에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런 태도는 누구나 본받아야 할 것임을 교회에보여 주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세례는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받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의해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연합을 이루는 모든 그리스도인 들은 모두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셔야 했던 결정적인 이유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찾아가 물로 세례를 받으셔야 했던 결정적 이유가 있습니다. 요 1:32-34절에서 그 이유가 설명되어있습니다.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 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 인줄 알라고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기 전까지는 자신이 증거해야 할 메시야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지시하심을 받기를 네가 물로 세례를 줄 때 그 세례를받는 사람 가운데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머리 위에 머무는 사람이 있을 것인데 그 사람을 보거든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라고 일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바리새인들을 책망할때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물세례를 줄 때비둘기 같은 성령이 그의 위에 머무는 것을 본 세례요한은 예수님께 대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세례의 모양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으셨는가, 아니면 요한이 물을 머리 위에 붓는 세례를 받으셨는가에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16절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가지고 침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으신 후, 물에서 올라온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물에서 올라오셨다는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물 속에 잠겨진 상태에서 올라오셨다는해석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올라오셨다는 표현은 어딘지 석연치 않습니다. 아마 이 경우예수님이 침례된 상태였다면 '물 속에서 몸을 일으키실 때에'라고 표현했음이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요한에게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은 요단강 물 안에 들어서셨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요단강 물에 들어서신 예수님에게 그 요단강물을 머리 위에 붓는 것으로 세례를 베풀었고 이 경우, 물에서 올라오실 새란 말은 물 속에 잠긴 몸을 물에서 일으키시는것이 아니라 요단강에 들어서신 예수님이 세례를 마치고 다시 요단강에서 뭍으로 올라오시는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보는것입니다. 어떤 견해가 옳건 세례란 의식이 율법의 정결케 하는 의식에서 나온 이상, 그 뜻에 어긋나지 않는 성경적방법으로 시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의미는 

여러 가지로 큰 뜻을 나타내고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은 그가 공생애로 들어가시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 자신도 하늘에서 들려 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자신이 하셔야 할 인류의 구속사업을 시작하실 때가 이른 줄 아셨습니다. 

우리도 세례요한처럼 이같은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세례 받으심에서

그의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증거를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21) 하늘의 음성

(마태복음 3:16-17)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2)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일어난 일연의 놀라운 현상은 인류의 구원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심을 보여 주시는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는 애초부터 성령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의 잉태하심 자체가 성령의 권능으로 되셨고 그가 태어나심에서부터공생애를 마치시기까지 성령은 항상 주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께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한없이부어 주셨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의 머리 위에 비둘기 같은 형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 때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께 인류의 구원 사역을 주관하시며 이루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 온 것입니다.


1. 하늘이 열렸다.

성경에는 하늘이 열렸다는 말이 몇 번나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들려 오는음성에 대해서도 여러 번 나옵니다. 그러면 하늘이 열렸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육안으로보이는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영의 세계를 바라보게 하실 때 일어나는 영적 세계의 전개를말합니다. 하늘이 열리지 않으면 영의 세계가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열리는 현상은 누구에게나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영적 경험을 허락하신 사람들에 한해서 열려지는 것입니다.

행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경우를 보면 그는 하늘이 열려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지만 이같은일은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하늘이 열리고 그 머리 위에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지만 이같은 일은 다만 예수님과세례요한에게만 들려 지고 보인 영적 현상으로 그 곳에 있었던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없었던 일입니다.


2. 예수님이 음성을 들으신 일

예수님은 공생애 중 세 번 하늘에서 들려 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첫 번째가 세례를 받으실 때로 그의 공생애의 초기의 일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자라'고 하는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알려주신음성이요 예수님에게 하나의 소명으로 주신 음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들려주신 음성은 예수님이 변화산에올라가셔서 그의 형상이 변화되었을 때 들려 온 음성으로 이 때 하나님은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음성은 그 곳에 있었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등 세 제자들을 위한 것으로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메시야관을 확실히갖게 하고 순종해야 할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데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들려 온 음성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할시기에 그의 기도 소리에 응답하시는 말씀으로 들려 왔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끝에 있은 일입니다. '내가이미 영화롭게 하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과 같이 영원히 영광을 누리셔야 할 분이시면또 영화롭게 되셔야 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예수님께 몇 번의 말씀을 들려주셨지만 예수님은 그 같은 음성을듣기를 바라신 일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어떤 지시를 받은 일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성경에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분하셨으며 그 말씀에 충실하셨고 그 말씀으로 족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진실하신 음성,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시는 그 음성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 들려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말씀뿐임을 알고 그 말씀을 늘 묵상하고 그 말씀을 따라가며 순종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히 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들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이라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선지자와 그 아들로 들려주신 당신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속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직접적인 대화나 계시로서가 아니라 기왕에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듣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과 그 말씀이 전달되는 형태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말씀을 성경에서 찾고 성경에서 발견하며 성경에서 들을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결론 :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그 말씀을 사모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만이 

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려면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그 말씀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연구한 바를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순종의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강해

22) 시험하는자 (1절)

23) 주님은 왜 시험을 받으셔야했나 (1절)

24) 예수님의 시험이 주는 교훈 (1절∼2절)

25) 예수님이 받으신 첫 번째 시험 (1절∼4절)

26) 예수님의 두 번째 시험 (5절∼7절)

27) 예수님의 세 번째 시험 (8절∼11절)

28) 사탄의 세 가지 유혹의 전술 (10절∼11절)

29) 마귀를 이기는 세 가지 무기 (10절∼11절)


(22) 시험하는 자

(마태복음 4 : 1)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성경에서 마귀는 시험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서론적으로 마귀와 귀신에 대하여 

약간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마귀는 사탄과 동일한 존재로 헬라어로 디아볼르스( )로 

이 단어는 적이란 뜻으로 풀이되는데 

이 말은 구멍을 낸다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비난하여 구멍을 낸다'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귀신은 다이모니온()으로 마귀의 부하들인 악령을 가리킵니다.

이 말의 어원은 헬라의 신보다는 좀 낮은 신을 가리키는데서 나왔는데 

마귀의 지배를 받는 그 부하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귀신이란 말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보다 지위가 훨씬 낮으며 마귀의 지배를 받고 활동하는 악령들의 존재를 말합니다. 따라서 마귀의 시험은 어떤 경우엔 마귀가 직접하고 

어떤 경우엔 그 휘하의 부하들인 귀신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두 경우를 

모두 마귀의 시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 사탄의 세 가지 역사

사탄은 성경에서 다음 세 가지로 역사하는 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1) 사탄은 시험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사탄의 가장 큰 역사는 사람을 시험하는 일입니다. 약 1:14절 말씀에서 '오직 각 사람이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시험이 이처럼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고 말씀해주지만 욕심이니 죄니 사망이니 하는 것들을 주장하는 자는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2) 다음에 사탄은 참소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참소란 우리의 잘못을 하나님앞에 고자질하는 일을 말합니다. 사탄이 성도를 참소하는 모습이 욥기에 자세히 나오고 있습니다(욥 2:1-6).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 이같은 사탄의 참소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죄와 사망을이기신 예수님이 우리의 보혜사로 하나님의 보좌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대제사장의 직분을 그의 영원한속죄 제물인 자신의 피를 가지고 담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 다음에 사탄은 인간의 생명을 노략질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0:10). 도적이란 존재는 사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탄이란 자는 이 땅위에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탄을 이용하시어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심판 사역을 아울러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

의 역사를 통해서 죄인의 구원에 선히 사용하시고 악인의 심판에 유용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2. 사탄이 시험에 이용하는 무기

사탄은 사람들을 시험하는 일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욕과 명예와 탐심을 이용하는것입니다. 

사탄이 인간을 시험하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에덴 동산입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시험의 대상은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사탄은 하와를 시험할 때 그의 정욕을 이용했습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바라보게 하고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하와는 사탄의 꼬임에 빠져 사탄에게 미혹되어 

선악과를 먹으므로 죄인이 된 것입니다. 

이같은 사탄의 방법은 성공하여 

결국 인간 사회에 죄와 사망을 가져오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탄의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를 무효화시키고 승리한 것이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더 좋은 구원과 축복의 길을 인간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부하려는 심리를 시험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인간은 물질에 약하고 물질을 추구하는 마음에는 

하나님을 섬길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가난할 때, 배가 고플 때, 돈의 이해 문제가 얽혔을 때 

이런 점을 이용하여 시험하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나 발람의 시험이 이런데서 온 것입니다. 

사탄은 정치적인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시험의 미끼를 던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들에게 허망한 망상을 갖게 합니다. 

세상의 영화 영달을 보여 줍니다. 

그 뿐 아니라 사탄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간교한 방법을 도입하여 세상적인 방법을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로 진리와 성결에서 떠나게 하고 세속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해방 신학이나 민중 신학이니 

토착화 신학이니 하는 종류의 새로운 종교 운동은 

기독교를 세속화시키려는 사탄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같은 사탄의 역사는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어 

큰 음녀 세력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견고히 잡아야 합니다. 

사탄은 아무리 간교하다 할지라도 

진리를 넘어뜨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는 신본주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사탄의 운동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요 

그리스도를 격하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높이는 신앙생활을 할 때 

사탄은 우리를 공격할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유일한 무기로 삼고 

사탄의 간교를 말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23) 예수님은 왜 시험을 받으셔야 했나?

(마태복음 4: 1)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예수님은 공생애에 들어가실 때 

먼저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가 왜 사탄의 시험을 받으셔야 하신 것입니까? 

그가 시험을 받으셔야 할 필연적인 이유라도 있는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둘째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 땅위에 둘째 사람으로 오신 분입니다. 

첫 사람은 아담입니다. 

러나 이 사람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모든 인류 앞에 죄인의 조상이 되어 

그 후손들에게 명예롭지 못한 유산을 남겨 주게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롬 5:12). 

이처럼 첫 사람은 우리 인류에게 아무 것도 준 것이 없으며 

모든 인류는 아담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어 버리는 죄와 사망의 종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아담 안에서 죽게 된 인류를 다시 살리려면 

죄 없는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나타나 

인간을 아담의 죄에서 회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존재는 

이미 죄로 죽게 된 아담의 후손들이므로 

인간을 죄에서 회복시키는 일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죄 없는 다른 인간, 즉 첫 사람 아담에게 속하지 아니한 인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 없는 사람으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아담 다음으로 세상에 다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십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그를 가리켜 

둘째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고전 15:47). 

예수님은 둘째 사람으로 아담의 혈통이 아닌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셨으며 

그의 생명은 땅의 생명이 아닌 

하늘의 생명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루는 새로운 조상이 되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요 1: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후손들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새로운 자신의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면, 

아담이 실패한 사탄의 시험을 

승리함으로 회복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뜻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고 

이 시험을 승리하셨습니다.


2.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두 가지 이유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이유에 대하여 

히 2:18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사탄은 세상의 임금으로 자기멋대로 모든 사람을 시험합니다. 

이 세상에는 이 사탄의 시험을 당해낼 사람이 없으며 

이길 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은 인류는 다 죄인으로 사탄의 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려면 

시험을 승리한 어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의 시험을 당해야 하는 우리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게 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이 스스로 시험을 당하시고 이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주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체험하신 분이시며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므로 

우리가 당하는 시험을 이해하고 또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탄의 시험을 당할 때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주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하는 것입니다(히 4:15-16).


다음에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우리로 사탄의 시험을 대적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모든 시험을 온전히 이기셔야 했습니다. 

죄를 이기시고 시험을 이기시고 사망 권세를 이기셔야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를 사탄의 모든 죄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생명으로 승리를 얻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태어나시는 그 순간부터 

사탄과의 피나는 투쟁의 연속이었으며 

그는 평생을 사탄과의 투쟁과 눈물과 십자가의 고난으로 

구세주로서의 맡은 사명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의 시험을 도우실 위대한 분이 우리들 옆에 계십니다.

그의 도우심은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받을 즈음에 피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고전 10:13). 

이제 우리는 우리를 시험하는 자인 마귀를 대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귀를 이기신 자가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로 이기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하셨습니다(약 4:7). 

우리는 이제 그 어떤 사탄의 시험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주님의 말씀만 따르면 

이기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 

우리로 이기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 주님의 승리는 

곧 우리의 승리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심으로 

나를 도와주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고 

사탄의 시험에 넘어지는 자가 아니라 

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4) 예수님의 시험이 주는 교훈

(마태복음 4 : 1 - 2)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일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 시험을 성령이 인도하셨고 

그가 시험받으신 장소가 광야였으며 

예수님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1.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음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실 때에 그를 시험하는 장소로 인도하신 분은 

사탄이 아니라 성령이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는 시험은 

하나님의 허락뿐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66:10절 이하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끌어 시험의 그물에 들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시험도 이처럼 성령께서 이끄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시험을 만났을 때, 

그 시험이 우리의 신앙적인 연단과 영적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그 시험은 성령께서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시험도 우리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1) 그 첫째 유익은 

성령은 시험 중에 언제나 나와 동행하여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령께서는 내가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에라도 

결코 나를 외면치 아니하시고 나와 함께 계시며 끝까지 나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성령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임재하심은 곧 그의 도우심을 받는 일입니다. 

성령은 그의 또 다른 이름이 보헤사이십니다. 

보혜사란 말은 헬라 법정에서 피고를 돕는 변호사를 가리키는 

법률적 용어로 씌어진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이 말이 가리키는 뜻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부름을 받은 자'란 의미가 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는 이유는 

나를 도와주시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면 

자기가 보혜사를 보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3) 성령의 인도하심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은 능력과 권능이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들로 시험을 이기도록 속사람을 강건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그 어떤 시험이 와도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뢰한다면 승리할수 있는 것입니다.


2. 시험을 받으신 장소는 광야였다.

다음에 주님이 시험을 받으신 장소가 광야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광야란 교회를 상징하는 말이며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특별한 장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40년간 광야 생활은 오늘날 우리들 교회 생활의 모형입니다. 

세상 것에 부요한 애굽을 등지고 가나안으로 찾아가는 생활이 광야 생활입니다. 

애굽에서 곧장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반드시 광야를 거쳐가야 하는 것입니다.


광야란 문자 그대로 메마른 곳입니다. 

그래서 광야 생활을 육신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실패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육신적으로 살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고기를 찾고 만난 음식을 찾았으며 자신들의 정욕적인 생활을 채워주지 못하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자, 하나님을 의뢰할 줄 모르는 자의 광야 생활은 

물이 없는 사막이요 양식이 없는 모래밭이요 불뱀이 나오는 무서운 곳이요, 

그들의 인생길이 항상 피곤하고 지치는 곳이 광야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풍성한 곳이 광야인 것입니다. 

계시록 12장에 보면 뱀의 낯을 피한 교회가 

광야 자기 곳으로 가서 후 3년 반의 재앙에서 보호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광야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 지대로 

세상에 내리는 후 3년 반의 심판이 이곳에 미치지 못하며 

기근과 기갈의 해로움도 이곳에 미칠 수 없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계 7:15-17).


3. 광야를 거치게 하시는 이유

왜 하나님께서 우리로 광야를 거치게 하시는 것입니까? 

육신의 뜻대로 살아간 옛 생활을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케 하시는 새로운 생활을 이루게 하시려고 

우리로 광야 길을 걷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신 8:2-3절에서 이스라엘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세상을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케 하시려고 

우리들로 광야 생활을 거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광야생활은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고 믿음과 순종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생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론 : 사탄은 광야에서 

우리가 가장 어려움을 당할 때 시험의 공격을 퍼붓지만 

알고 보면 우리에게는 

이미 승리의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순종의 생활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임하는 것입니다.



(25) 예수님의 받으신 첫 번째 시험

(마태복음 4 : 1 - 4)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ㄱ)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마귀로부터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 가지 시험을 모두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은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 교훈이 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이 세가지 시험의 미끼를 슬며시 던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비결을 배워 

우리의 생활 가운데 나타나는 이같은 사탄의 시험을 이겨야 하겠습니다.


1.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사탄이 예수님께 던진 시험의 첫마디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 든'이란 말이었습니다. 

사탄은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대속의 피가 되고 

그가 죽으신 후,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실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육신을 입으셨으므로 

육신을 가진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시험을 시도한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이 아들이어든'이란 말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기를 나타내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는 

명예심을 자극한 말입니다.


가장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한번 자신의 권능을 나타내 볼만하지 않느냐는 유혹인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귀신 들려 점치는 한 여자가 바울을 따라 다니며 

'이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선전하고 다녔습니다. 

마귀는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들의 공명심을 일으켜 

자기말에 놀아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만일'이란 말은 네가 진짜라면 왜 시도해 보지 않느냐는 간교한 유혹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럴 듯하게 유혹합니다. 

우리의 공명심을 일으켜 하나님의 능력을 사탄이 원하는 일에 사용하게 하므로 

자기 손에 놀아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2.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탄은 주님에게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40일간의 금식기도는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주님은 매우 주리셨습니다. 

주님께는 양식이 필요하셨습니다. 

이 때 사탄은 그의 권능을 통해서 그 필요를 채우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을 명하여 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까지라도 만드실 수 있으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입의 말씀은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사탄은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해서 

예수님으로 자기 말에 따르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말을 쫓아 돌덩어리를 떡으로 만들어 먹는 일은 

예수님이 하실 일이 아니신 것입니다. 

아무리 옳게 보여도, 그것이 성경적인 것처럼 보여도 

그 지시나 명령이 사탄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그것은 상대방을 넘어뜨리려는 미혹이요 간교인 것입니다. 

그 말을 추종하는 일은 그의 종이 되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같은 사탄의 일차 공격에 날카로운 반격을 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떡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내세의 소망도 없고 영적인 생명도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목적이 분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제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뜻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말은 

육신의 일을 위해 살지 않고 영을 위해 산다는 뜻입니다. 

육을 위해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두고 

영을 위해 심는 자는 그 영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는자는 내 말을 지키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그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존귀하게 여기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로 

그 생활에서 순종으로보여 주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주님의 날카로운 공격에서 

두 가지 사실을 배울수 있습니다. 

하나는 마귀에게 대적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이라고 했습니다. 

이 검은 영적인 검인 것입니다. 

이 검은 마귀를 대적하는데 사용하는 무기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첫 번째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우리가 사탄의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기려면 

이 예리한 검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하며 

또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우리는 떡으로만 사는 인생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참된 인생을 

살아가야할 것이라는 교훈을 

이 말씀에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26) 예수님의 받으신 두 번째 시험

(마태복음 4 : 5 - 7)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ㄴ)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ㄷ)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시험하는 자로 주님 앞에 나타난 사탄은 첫 번째 시험에서 여지없이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실패한 일에 뒤로 물러설 사탄이 아닙니다. 

사탄은 제 2차 제 3차의 공략까지 세워 놓고 차례로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한가지 시험을 물리쳤다고 마음을 놓거나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대개 우리가 사탄의 시험에 맥없이 넘어지는 까닭은 

이런 사탄의 간계를 모르고 자만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제 2차의 공격을 가해 올 때는 

더 교활하고 그럴듯한 너울을 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1. 사탄의 제 2 공격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유혹을 물리친 사실을 분통히 여긴 사탄은

제 2차 공격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다가온 것입니다. 

마귀가 시험에 인용한 성경 구절은 시91:11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탄이 인용한 시편의 말씀은 마4:6절에서 사탄이 말한 내용과 비슷했습니다.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마귀는 이처럼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도구로 하여 

미혹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너울을 쓰고 우리 앞에 다가오는 모든 이단 종파들은 

바로 이같은 수단을 쓰고 찾아오는 사탄의 미혹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경우를 예로 들면 

성경을 가장 잘 풀이하고 인용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속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성경 인용이나 성경 풀이를 보면 

언제나 성경 전체에 흐르는 진리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되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높이고 있습니다. 

창조주로 높이고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피조물의 자리로 내리며 

천사의 자리에까지 낮추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경 진리에 어둡고 성경을 잘 깨닫지 못하면 

성경이 사탄의 무기가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진리 가운데서 자라 가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마귀는 예수님을 순식간에 성전 꼭대기 위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다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격을 못하도록 

사탄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렇게 하는 일은 성경에 따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에덴에서 하와를 이같은 방법으로 미혹했습니다. 

이 때 마귀는 승리했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인용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탄은 성경에 기록된 정확한 말씀을 인용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고의적으로 빠뜨린 것입니다. 

이런 일은 사탄의 상투 수단입니다.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리라'고 하는 말씀이 누락된 것입니다. 

사탄이 고의로 누락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지키시겠다고 하신 말씀은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장소를 가리킨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애를 살아가는 모든 인생길에서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인용할 때 

우리로 그 말씀을 믿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뜻을 이루려고 의도적으로 악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적용시키려는 의도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혹하는 사탄의 간계를 물리칠 수 있는 비결은 

먼저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근본적인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해답을 바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한 성경 구절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여러 말씀을 종합해서 이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성경 구절 하나만을 가지고 쉽게 결론을 내리지 말고 

그 전후좌우의 문맥과 사건 전개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같은 마귀의 유혹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반격을 가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셨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가지고 마귀와 논쟁하지 않으셨습니다. 

마귀는 진리를 알려고 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진리를 가지고 마귀와 다투는 일은 무익할 뿐 아니라 

오히려 손상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또 다른 말씀으로 사탄의 허를 찔러 대적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주님의 이 말씀에 

자신의 공격이 허사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혼비백산했습니다.


결론 :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안다는 일은 큰 축복입니다. 

우리의 참 생명이 여기서 나옵니다. 

우리가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도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바른 생활을 하므로 

축복 받는 길도 여기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대로 잘 배우고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27) 예수님의 받으신 세 번째 시험

(마태복음 4 : 8 - 11)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ㄹ)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사탄은 두 가지 방법의 시험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마지막 시험으로 세상의 영광으로 유혹했습니다. 

마귀가 세상 영광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는 최후의 무기로 선택한 일로 미루어 보아, 

세상의 영광은 돌이 떡덩이가 되게 하는 시험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혹하는 시험보다도 

더욱 위험스러운 사탄의 결정적인 시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 이 세상 영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귀가 결정적인 시험의 미끼로 던지는 이 세상 영광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세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세입니다. 

돈은 사람들에게 놀라울 정도로 매력이 있습니다. 

주님께 영생의 길을 물은 한 부자 청년은 

하나님도 섬겼고 율법도 잘 지켜 왔지만 

돈이냐, 영생이냐는 선택에서 돈을 택하므로 

생명의 길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지금은 죽었지만 북한에 김양욱이란 목사가 있었습니다. 

이 자는 세상 영광에 어두워 생명의 길을 버린 사람입니다. 

김일성의 처삼촌으로 이북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자 

그 밑에서 제 2인자의 권세를 잡고 한 때 영광을 누려온 인물입니다.

바로 이 자가 북한에 있는 많은 하나님의 종들을 유혹하여 

복조선기독교연맹에 가입시킴으로 타락케 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과연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를 버리고 

주님만을 따르겠노라고 선듯 나설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입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세상 영광과 명예를 버리기가 아쉬워서 

두 주인을 섬기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 사람이 두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2. 천하 만국을 주리라

사탄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올려 갔습니다. 

이같은 일이 실제적이었는지 환상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사탄은 우리를 시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 높은 산에서 예수님께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하여 하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처럼

사탄은 예수님께 세상의 영광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사탄이 하는 말이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한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엉뚱한 약속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약속을 믿고 사탄의 말을 따르면 

사탄의 약속이 거짓이며 허황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가 되는 자임으로 약속의 이행 따위는 아랑곳 없습니다. 

사탄은 약속을 이행할만치 진실하고 성실한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약속을 이루어 줄만한 능력도 없는 자입니다. 

마귀가 천하만국을 보여주고 그 영광을 주겠다고 말한 것은 

어려운 하나님의 방법을 거치지 않고 

아주 쉬운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하게 하려는 유혹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이같은 유혹은 주님의 공생애 가운데 자주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간하여 십자가를 지지 마시기를 구했을 때 

주님은 이같은 유혹이 사탄의 역사임을 아시고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사탄의 약속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하나님처럼 경배해 달라는 것입니다. 

원래가 사탄은 천사들로부터 

하나님처럼 경배를 받으려고 반역했다가 쫓겨난 자이기때문에 

그 교만하고 교활한 본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경배를 받는다면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 사업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종말에는 이 사탄이 자신을 하나님으로 가장하기 위해 

인류들 앞에 큰 우상을 만들게 한다고 했습니다(계13:14). 

그리고 모든 인류들을 이 우상 앞에 경배시켜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종말에 세상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는

사탄을 하나님처럼 경배하는 자로 등장하여 세상 영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지극히 짧은 42달간이며 

그결과 그 자는 사탄과 함께 영원한 불못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같은 사탄의 결정적인 공격에 주님은 두 가지로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는 기록된 말씀입니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고 하신 신6:3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 것에 유혹을 받는다 해도 

이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결코 사탄의 미혹에 넘어갈 수 없는것입니다. 

다음에 주님은 사탄을 향하여 '사단아 물러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사탄은 이 하나님의 아들의 명령에 도저히 견뎌 낼 수 없었습니다. 

그 말씀이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 우리는 이같은 사탄의 시험에 부딪혔을때 

예수님이 보여주신 훌륭한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진리의 말씀앞에는 손을 더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마귀를 대적하는 길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물리치는 일입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마음속에 

마귀의 시험의 요소가 되는 정욕과 탐심을 물리쳐야 하며 

말씀으로 인한 새로운 심령의 변화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28) 사탄의 세 가지 유혹의 전술

(마태복음 4 : 10 - 11)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ㄹ)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사탄에게는 그 시험할 대상자에 따라 

또는 그 사람에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그 유혹의 방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탄의 유혹의 전술을 보면 

대략 다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뱀 같은 전술이요 

다음은 사자 같은 전술이요 

세 번째는 거룩한 천사와 같은 전술입니다. 

우리는 이같은 사탄의 유혹의 전술을 잘 터득하여 

그 공격에 대처하는 무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1. 뱀 같은 사탄의 전술

마귀는 간교하게 우리를 시험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가장 간교하더라'고 했습니다(창3:1). 

뱀이 간교한 것은 무엇인가? 

전도의 사명을 띠고 여러 고을로 보내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마10:16). 

뱀의 간교는 바로 그지혜에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는데 출중합니다. 

누구건 한번 죄를 범하면 마귀의 시험의 그물에 걸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간첩들이 얼마 안되는 공작금을 미끼로 삼아 

교묘한 방법으로 포섭하여 간첩의 조직망 안에끌어 드립니다.

마귀는 바로 이같은 지혜에 뛰어난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환경 조건을 이용하여 시험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오는 것을 보자 

'자 우리가 저 꿈꾸는 자를 죽임으로 그의 꿈이 어찌되는지 두고 보자'고 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까지는 생각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안 계시는 들판에서 밉살스러운 동생을 만나게 되자 

그를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고 실행에 옮기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하와가 집안에 남편과 함께 있을 때는 유혹하는 일을 서둘지 아니했습니다. 

하와를 선악과가 있는 곳으로 유인한 후, 

그 주어진 환경에서 교묘하게 시험한 것입니다.

다윗이 시험을 받을 때에도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여인의 벗은 몸을 보게 함으로 

시험에 들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에 들 만한 환경 속에 들어가거나 

그 같은 환경을 만들면 안됩니다. 

다음에 마귀는 거짓으로 유혹하고 시험합니다. 

거짓말하는 자에게 주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거짓의 아비가 곧 사탄이라고 하셨습니다.(요8:44). 

우리가 거짓말하면 우리는 사탄의 시험의 대상으로 

이미 시험의 도마 위에 올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요일2:21). 

사탄은 우리의 거짓말을 미끼로 시험할 뿐 아니라 

또 거짓을 가지고 시험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이나 해석에 

진리를 거스리는 거짓이 없는가 

살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는 사자 같은 전술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은 두려움으로 시험을 주기고 합니다. 

벧전5:8절에서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우리들로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하여 회개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그리고는 죄에 대한 두려움만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탄의 시험에 걸린 사람은 가룟 유다처럼 되어 버리고 맙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빼앗고 그 대신 두려움을 줍니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하고죄를 범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은 사탄의 시험을 이기려면 죄에 대하여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 철저하게 회개함으로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여 용서를 받으면 즉시 마음에평안이 오게 되고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올 수 있게 됩니다. 회개한 죄는 어떤 죄라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죄의 처리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며 죄의처리를 받게 되면 곧 두려움을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3. 거룩한 천사와 같은 전술

다음에 사탄은 거룩한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우리의 믿음이 영적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이 전술에는 번번이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탄의 정체에 대하여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습니다(고후11:14). 사탄은 그의 영적 능력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것입니다. 신접한 여인을 통하여 사울 왕에게 나타났던 영적 존재도 사무엘을가장한 사탄의 위장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이 어떤 모습으로 그 앞에 나타났었느냐?는 문제는 알 수없는 일이지만 아마도 처음에는 광명한 천사의 너울을 쓰고 나타났을 것으로 추측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거짓 선지자를통해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기도 하며 우상에게 생기를 넣어 말을 하게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거짓 은사로서은혜를 주는 척하고는 영적 교만을 심어 줌으로 교회에 가라지를 덧뿌리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사탄을 대적하는 영적 분별력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진리에 굳게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한 이 말씀은 

언제나 명심해야 할 말씀인 것입니다(약 4:7).



(29) 마귀를 이기는 세 가지 무기

(마태복음 4 : 10 - 11)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ㄹ)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사탄은 우리들보다 능력이 많은 자입니다. 그 이유는 사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사탄을 대적함에는 육신적인방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보다 더 강력한 영적인 능력으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탄보다 더 강력한 능력이란 사탄을심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뿐입니다. 이 능력으로 사탄을 이기는 일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말씀이요 다음은 기도요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세 가지 영적 능력은 마귀를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이며이 능력으로 우리는 마귀를 대적할 수 있으며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1. 마귀가 하는 일

먼저 우리는 마귀가 하는 일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귀는 참소하는 자요 시기하는자요 믿음에서 넘어지게 하는 자입니다. 처음에 에덴에서 하와를 유혹한 마귀는 세월이 갈수록 더욱 악랄하고 더욱 교활하며더욱 간교해졌기 때문에 시험하는 방법도 차원이 높아졌습니다. 사탄이 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근본적 목적은 하나님의 구원사업을 방해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방해하려면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스도로부터떠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구원함에 이를 줄을 알면서도 그들을 미혹의 길로 이끌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대적하게 하려고 온갖 방법과 수단을 쓰는 것입니다. 이같은 사탄의 존재는 우리에게 참으로 악하고 해독을 끼치는 존재가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 마귀를 가리켜 원수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평생 우리 가까이서 우리에게이같은 유혹의 손길을 뻗치며 인생의 함정을 파는 이 마귀를 우리는 어떻게 이길 수 있는 것입니까?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긴다.

마귀가 사용하는 무기는 오직 거짓입니다. 그에게는 진실이라곤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궤휼로 미혹합니다. 그는 성품상 올바른 방법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간교로 미혹합니다. 마귀는본질상 간교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같은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무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실입니다. 진실앞에는 거짓도 궤휼도 간교도 설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진실의 소유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진실의 바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어둠을 물리치는 무기는 빛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어둠을 물리치는빛입니다. 예수님은 사탄과의 대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종횡무진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마귀는 그 말씀의 검 앞에 꼼짝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귀를 이기려면 말씀의 고지에서 이탈하면 안됩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요지부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3. 기도로 이긴다.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무기로서 우리는 기도를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가끔 제자들에게 너희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가라지의 비유에서 사람들이 잠 잘 때에마귀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렸다고 하셨습니다. 잠이란 영적 잠으로 기도 없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말합니다. 사탄은 될수 있는 대로 우리들로 기도 생활을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세상일에 분주하게 만듭니다. 육신적으로 피곤하게 하여기도할 의욕을 빼앗아 갑니다. 기도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같은 사탄의 함정에 빠져서 기도 생활을 못하는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은 그의 기도에 있으셨습니다. 주님은 40 여일간의 금식 기도가 끝나신 다음에 시험에서 이기신 것입니다.


4.믿음으로 이긴다.

믿음은 사탄과의 투쟁에서 방패의 구실을 합니다. 아무리 마귀가 시험의 화살을 쏘아 때도, 그리고 시험의 함정에 빠지도록수단을 써도 믿음 앞에는 꼼짝하지 못합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줌으로 우리의 마음이 결코흩으러지지 않습니다. 시험에는 마음의 의심과 혼란이 뒤따라야 하는데 믿음은 이같은 일을 능히 물리치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사탄의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말씀을 잘 배워야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안다는 것만으로는 역이용 당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사죄의 은혜와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무장만 되었다면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30) 금식 기도의 성경적 고찰

(마태복음 4 : 1 - 2)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금식 기도에는 분명한 목적이 따라야 합니다. 금식 기도에도 외식이 있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금식이 있다고 말씀하고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에 대하여 한 비유로 말씀하실 때, 바리새인은 이것저것 자기자랑의 기도를 드리다가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했다'는 것을 자랑했으나 그의 금식 기도는 열납되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자랑을 목적으로 하는 금식,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금식은 외식하는 금식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금식은 다른 사람이한다고 나도 할 일이 아니며 아무런 목적도 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금식도 참 금식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금식을 어떤시기에 하느냐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죄 사함을 받는 기도를 드릴 때에 금식했다.

사람이 죄의 용서함을 받는 일이 금식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면 미쁘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해주십니다(요일1:9). 그런데 회개하는 사람이 자신의 죄를 돌이켜 볼 때 그 죄에 대한 애통하는 마음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불쌍히 여기심을받기 위해 금식으로 기도하는 사례가 성경 여러 곳에 나옵니다. 다윗은 시51편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하여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통회 자복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최전방에 보내어 죽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를 왕에게보내어 그를 쳐서 경종 하셨습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왕이 불의한 관계로 낳은 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다윗은금식하고 밤이 새도록 땅에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게 긍휼히 여기심을 받기 위해 금식했던것입니다.


큰 성 니느웨 백성들은 범죄로 인하여 하늘의 불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요나의 경종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 심판의 경종을 들은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했다고 했습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 이 소문이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베를 입고 재 에 앉았다'고 했습니다. 왕은 짐승에 이르기까지 베옷을 입히고 금식을 명하고는 부르짖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회개를 기뻐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역대의왕 가운데 가장 악한 왕으로 이름 높았던 자입니다. 그런데 그 자가 금식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받은일이 있습니다. 그가 엘리야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를 듣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걸음도천천히 걸으며 금식했습니다(왕상21:21-29).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같은 겸손한 금식에 마음을 움직이시어 그에게내리시기로 했던 무서운 재앙을 그의 아들의 시대로 미루신 것입니다.


2. 소원 성취를 위한 기도를 드릴 때 금식했다.

금식은 또한 사명 받은 사람들이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기도할 때 응답 받는 방법으로 금식한 사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다니엘의 경우 - 다니엘은예레미아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징계의 연수를 안 후, 그는 자기 민족의 죄를 자복하여 베옷을 입고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가브리엘천사를 보내시어 이상 가운데 하나님의 계시를 다니엘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2) 안나의 경우 - 안나는 과부 된지 84년 된 여인인데 하나님의성전을 밤낮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하더니 이 여인이 자기 평생에 구세주의 얼굴을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3) 120문도의 경우 - 예루살렘을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분부의 말씀대로 성령 받기 위하여 기도한 120 문도들은 열흘간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이들은 금식 기도한 것으로짐작이 됩니다. 그들은 이 기도로 성령을 충만히 받아 맡은 사명을 위해 큰 일을 했습니다.


(4) 안디옥 교회의 경우 - 안디옥 교회에서 두 사람의 선교사를파견하려고 할 때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능력 있게 이루려면 금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금식 기도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선지자나 혹 하나님의종들이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비록 한 사람의 기도나 금식일지라도 진심으로 하나님께그 민족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간구할 때 하나

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 느헤마아의 기도와 에스더의 기도가 그러했습니다. 

이같은 금식이나 기도엔 하나님의 응답이 따르는 것입니다.

금식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불쌍히 여기심을 받습니다. 

우리의 중심과 마음의 진실을 바치는 금식 기도는

응답 받는 기도의 비결입니다.


(31) 세 영의 역사

(마태복음 4 : 1, 11)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성경에는 세 종류의 영적 존재의 역사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영은 우리의 평생 동안 우리들 안에서혹은 우리 주변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 영의 역사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며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하여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 영이란 영적 존재로 우리의 구원과 많은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성령, 마귀, 그리고천사를 말합니다.


1. 성령의 역사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성령, 그리스도의 영, 보혜사, 진리의 영, 아들의 영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성령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삼위가 되시는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성취하시고 성령 하나님은계획하시고 성취하신 구원의 열매를 온전히 맺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1)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시는 결정적인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그 대상자를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들을 위해 세상에 보내신바 되셨고 또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화목제물과 속죄제물의사명을 이루셨습니다. 성령은 이제 이들을 예수께로 부르심으로 구원의 실제적인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내게 주신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요6:37). 성령께서는복음을 통해서 죄인들을 아들에게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누구라도 구원에 이를 수 없는것입니다.


(2) 성령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십니다. 누구든지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3) 성령은 예수 믿는 사람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성령으롤 거듭나지 이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이 땅에속한 사람이 하늘의 새로운 생명,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아 새사람이 되는 일을 말합니다. 성령은 그 자신이하나님의 생명의 소유자이시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이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할 수 있으며그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4)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의 생활 중에 일어나는모든 하나님의 능력은 성령이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신 것입니다. 은사도 성령께서 주십니다. 복음을 전할수 있는 능력도 성령이 주십니다.


(5) 성령은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했습니다(빌1:6). 성령이 내주 하시는 목적은 중생하시는 역사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시는 일도 하시는 것입니다.


2. 마귀의 역사

다음에 악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악령은 사탄을 가리키며 성경에는 이 자를 지칭하는여러 가지 명칭이 있습니다. 사탄, 마귀, 악한 영, 뱀, 미혹의 영, 다른 영, 귀신의 영, 거짓말하는 영, 유혹의영들입니다. 이 악령은 그에게 주어신 이름대로 역사합니다. 뱀의 간교를 가지고 미혹하고 사람의 마음속에 교만과 탐심과정욕을 발동시켜 범죄의 길로 유혹합니다. 이 같은 악령의 역사는 우리의 온 생애를 통하여 계속되기 때문에 우리는 늘악령과 영적인 싸움을 준비하는 가운데 성령의 능력으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일, 말씀을 듣는 일, 순종하는일 등은 이 악령과 싸우는 하나님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3. 천사의 역사

다음에 천사의 존재가 있습니다. 천사는 어떤 존재인가? 성경에 나오는 천사의 권위나 영광은 놀랍지만 그들의 창조 목적이나활동 목적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이라고 했습니다(히1:14). 그들은 하나님의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기도 합니다. 마리아에게도 요셉에게도 베들레헴 들 밖에서 양을 치든 목동들에게도 이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성도들이 행할 바에 대하여 가르쳐 줄 때도 있습니다. 마리아에게도 요셉에게도 그렇게했습니다. 신자들이 약할 때 시종을 들어 줄 때도 있고 신자들에게 새 힘을 공급해 주기도 합니다.


결론 : 우리들의 안팎으로는 

이처럼 세 영의 역사가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 영 가운데 

성령의 역사와 천사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생활을 해야 

믿음에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영의 역사를 물리치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것입니다.



(32) 회개와 천국

(마태복음 4 : 17)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공생애에 처음 들어서시면서 제일 먼저 외친 복음의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전할 메시지의 첫 외침은 주님과 같은 내용의 메시지여야 할 것입니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습니다.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국이 가까워도 아무나 그 곳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회개하는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1. 누가 천국의 소유자인가?

성경에는 천국에 들어갈 자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자의 자격을 분명히 명시해주고 있습니다. 천국은 의인이 들어가는 곳인 줄로 알았는데 이 세상에서 의인이란 이름 붙은 사람은 한 사람도 들어가지못하고 오직 회개한 죄인들만 들어가는 곳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는 의인을 구하려 온 것이 아니요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의인이라는 사람들은 율법적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양심적으로 자기 생애를살아간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율법이나 양심은 실인즉 자신의 죄를 정죄 할뿐 그것이 자신을 의인으로인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의인이 존재치 않기 때문에 천국의 소유자는존재치 않는 것입니다.


2. 참 의인은 누구를 말하는가?

의인이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이며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그러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했는데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냐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의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두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표준의 의인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 것입니까? 그러므로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인은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이 예수님의 의를 주셨습니다. 이 의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자기 의는 이 의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양심의 의도 율법의 의도 그리스도의 의에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의는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에 대한하나님의 선언은 놀라운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의인의 법적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예수와 연합 관계를 이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갖고 계시는 모든 것의 공유자가 되는 것입니다(롬5:17-19).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오직 회개로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회개하는 자가 천국 백성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것입니다. 회개한 죄인만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회개란 말의 의미

회개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회개란 무엇을 의미하는말입니까? 회개란 말은 메타노에오( )란 말을 번역한 것인데 '생각이나 목표를 바꾼다'는 뜻입니다. 명사로는 메타노이아로 '숙고하여 생각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바꿀 뿐 아니라 죄악된 자기 행위까지 포기하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목표를 바꾸는 일이나 생각을 바꾸는 일은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슬퍼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그리고 때로는 그 죄를 버리고 새로운 생애를 살아가는사람들도 있지만 하나님께로 목표와 그 생애를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회개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죄의 근원적인회개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어떤 죄를 어떻게 회개해야 그 죄의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 천국 백성이 될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회개할 죄로 가르쳐 주시는 것은 요16:8절에서 이렇게 말씀해주십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할 죄란 세상 사람들처럼율법적인 죄나 양심적인 죄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것이 우리가하나님 앞에 회개할 죄인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천국의 과정을 셋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들 마음에 이루어지는 천국입니다. 이 천국은 하나님이내 마음에 임재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다음에 교회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소망인 천국입니다. 이세 가지 중 어느 곳이건 회개치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오직 회개임을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33) 사람을 낚는 어부

(마태복음 4 : 18 - 22)

어부들을 부르시다

(막 1:16-20; 눅 5:1-11)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전도인을 어부란 말로 표현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대부분의 제자들이 직업적으로 갈리리바다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내가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그들을 주님의 제자로 부르시는 일에 가장 적적한 표현이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고 그들은 어부로서의 사명을 훌륭하게 이루었습니다.


1. 두 종류의 어부

이 세상에는 사람을 낚는 일에 열심을 내는 두 종류의 어부가 있습니다. 하나는사탄의 어부들입니다. 이들은 사람을 낚기는 하지만 죄인들을 낚아서 넘어뜨립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미끼는 죄인 것입니다. 정욕과 탐심으로 분장하고 슬그머니 그 미끼를 내미는 것입니다. 이 미끼에 걸린 사람이 죄에 넘어가 버리게 되고 결국죄의 종이 되어 죄와 함께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죄의 미끼로 사람을 낚으려는 사탄의 모습에 대하여 우는사자 같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낚시밥에 한번 걸리기만 하면 도망 갈 길이 없습니다.

하와는 선악과 앞에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그 열매를 보고 따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탄은 뱀을 통하여 선악과라고 하는 미끼를 가지고 하와를 쉽게 넘어뜨렸습니다. 다음에 다른 한 종류의 어부는 예수님이말씀해 주시는 어부들입니다. 이 어부들은 사람을 낚되 죄인이란 대상을 의의 미끼로 낚아 영생의 그물 속에 뫃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부는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신 것처럼 사람을 낚는어부가 되는 길은 오직 주님의 부르심에 있습니다. 주님이 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시면 누구도 이 주님의명령을 거역할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오순절 날 한번전하는 그의 설교에 무려 3천 여명이나 되는 죄인의 무리들을 복음의 그물 속에 걸려들게 한 것입니다.


2. 어부가 되는 자의 태도

베드로는 그의 형제 안드레와 함께 주님의 이같은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랐는데 그들이 주님을 따른 태도가 여러 형태로나와 있습니다.


(1) 처음에 주님은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사람이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면 주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받울은 사도로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롬1:1). 소명을 받은 사람은마음이 성령으로 뜨거워집니다. 예레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하여 잠잠하려고 하면 마음이불같이 뜨거워 견디지 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것이라고 하는 심정으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들은 이 명령에 따라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았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지 않고서는 어부가 될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따르던 세상을 등지고 주님을 따라야하는 것입니다. 쟁기를 메고 뒤를 돌아보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없습니다.


(3) 그들은 그물과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았다고 했습니다. 죄악된 직업, 주님의 일에 방해가 되는 직업을 가지고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없습니다. 배란 이 세상에소망을 둔 마음을 가리킵니다. 부친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끊기 어려운 혈연 관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만약 부모나 형제나처자나 친척의 인정이나 사정에 얽메인다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부는 바다를 떠나지말아야 합니다. 바다를 떠나면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바다란 자기의 목양지를 말합니다. 전도할 활동 무대를 말합니다. 어부는 인내심을 가지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밤이 맞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못잡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물을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는 말씀에 소망을 가지고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열매를 맺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에게 가장 필수적인 일은 주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순종은 많은 열매를 얻는 일에 반드시오는 것입니다.


결론 : 어느 의미에서 우리 모든 성도들은 

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전할 사명은 특별한 사명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한 모든 사람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사명이 주어졌음을 알고 

이 복음의 그물을 내 가정에서 내 직장에서 내 이웃에서 

부지런히 열심히 던지는 어부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4) 연약함을 고치신 예수

(마태복음 4 : 23 - 25)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시다

(눅 6:17-19)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1)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은 그의 복음 사역을 펼치심에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시는 일을 병행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무리들의병을 고쳐 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바는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신 일이 복음을 전하는 방편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병에 눌려 있는 병자들의 고통을 불쌍히 보시고 고쳐 주신 것을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창조주의 사랑에서 나온 치료였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자신에게가까이 오는 자에게 차별 없이 어떤 병이든 고쳐 주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의 가르치심

주님은 복음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는 갈릴리에 두루 다니셨다고 했습니다. 환영하는 곳이건 환영치 않는 곳이건 모두 찾아다니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처럼곳곳을 누비며 다니시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무대는 주로 유대인들의 회당이었습니다.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이란 곳이 어떤 곳인가에 대하여 잠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회당은 이스라엘의 유대교 회중들이 안식일에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헬라어로는 수나고게( )로 이 말의 뜻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람들이 모인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유대인의 성전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오직 예루살렘 한곳에만 있었고 회당은 유대인들이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존재했던 집회소입니다. 회당은 제사를 드리는 곳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함께 예배를드리는 곳입니다. 주님의 생존시 예루살렘 성안에만도 회당의 수효가 400 여 군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회당에는 회당을 주장하는 장로가 있고 그 아래 예배 순서 준비와 회당 수호를위해 세운 회당장이 있었습니다. 이 회당은 그 구성이나 운영면으로 보아 오늘날 교회의 모체의 모형을 가지고 있었다고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순서는 처음에는 특정 성구 세 마디를 공동으로 송독하고 다음에는 기도하고 율법을낭독하고 마지막으로 축도가 있었는데 어떤 경우에는 예언자의 글을 읽는 순서를 가지 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회당에서는 유대인의 새로운 손님이 올 경우, 그 손님에게 무슨 권면할 말이 있으면 해 달라고 회당장이 부탁하는관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로 이 순서에 일어나셔서 복음을 전하시는 기회로 활용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도이 회당을 이용하여 유대인이 사는 여러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2. 연약함을 고치신 예수님

이처럼 예수님은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면서 백성 중에 모든 병든 자와 약한것을 고치셨습니다.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소문은 온 수리아에 퍼졌습니다. 그리하여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좇는 무리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며 이들 중에는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의 병을 친히 고쳐주신 것입니다.


(1) 주님은 질병에 눌려 고통받는 자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아니하셨습니다. 치료받기를 원하여 주님 앞에 나온 사람가운데 한 사람도 고침 받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문둥병 자들의 문둥병도 고쳐 주셨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아니하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중풍 병자를찾아가시어 친히 일으키셨습니다. 


(2) 다음에 사탄에 눌린 연약한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사람이 만나기조차두려워하는 거라사 땅의 무덤에 기거하고 있었던 청년으로부터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일곱 귀신 들렸던막달라 마리아를 고쳐 주셨습니다. 귀신은 오늘날에도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게 다가와 병을 일으키기도하며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키려는 각 가지 계교를 쓰지만 예수의 이름 앞에는 꼼짝도 못하는 것입니다.


(3) 육신적인 질병뿐 아니라 영적으로 눌려 있는 사람들에게도 치료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율법의 정죄를 받아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될 죄인들을 그 율법의 정죄에서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결론 : 주님은 이처럼 우리의 온갖 연약함을 고치시기 위해 

온 갈리리를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으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진리를 가르치시며 모든 병을 고쳐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 주님의 일꾼으로 

병든 자들에게, 마귀의 종된 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이 모든 눌림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