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믿음간증歷史

[역경의 열매] 베트남의 '언더우드' 장요나 선교사, 날 통해 많은 분이 하나님과 만나 영생의 삶 누리길 (21)-(25·끝)

영국신사77 2020. 3. 31. 00:14

[역경의 열매] 장요나 (21) 혼수상태서 “비라카미를 구원하라” 주님 음성 들려

설교 중 실신… 환상과 함께 사명 주셔

입력 : 2020-03-30 00:06
장요나 선교사(회색 양복)가 2006년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에서 선상교회 기공식 예배를 드리고 있다.

1996년 신년 예배에서 설교하다 쓰러졌다. 혼수상태에 빠져 사흘간 깨어나지 못했다. 그때 하나님의 강한 음성을 들었다. ‘비라카미, 비라카미 영혼을 구원하라!’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다. 비라카미(VILACAMY)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 인도차이나반도 4개국 이름의 첫 자를 딴 거였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바로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비라카미선교회를 구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주님의 사명에 확신을 갖기를 간구했다. 사랑의병원선교회 동역자들을 중심으로 대구 동촌교회 신창순 목사님과 뜻있는 동역자들이 주축이 돼 비라카미선교회를 대구에 창립했다.

비라카미선교회 발족 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중심으로 선교를 시작했다. 75년 사회주의화된 라오스도 경제 낙후를 면치 못하다 89년 개방 정책을 시행했다. 비교적 국외 투자가 활발했던 베트남과 달리 라오스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채 고립돼 있었다. 경찰의 감시는 더 엄격했고 사회 분위기도 살벌했다.

2005년 고난주간에 선교사님 13명과 함께 라오스 국경 라오바오로 향했다. 라오스 소수부족 마을에 교회를 짓기 시작해 3개 교회를 신축, 기공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아침 8시 베트남 꽝치성 케산을 출발해 라오스 국경 이민국에 도착했다. 내 순서가 되자 경찰이 갑자기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내 여권의 비자를 유심히 보더니 “75일 불법 체류로 당신을 체포한다”며 그 자리에서 쇠고랑을 채웠다.

왜 불법 체류냐고 했더니 여권에 비자가 없다고 했다. 문득 내가 여권을 새로 바꾸면서 비자를 옮겨 놓지 않은 게 생각났다. 4년 전 베트남정부 종교성에서 ‘장요나 제거 지시’를 내린 게 생각났다. 2001년 부활절 예배에 닥락성 본멧톡 오지의 한 교회에 무장 군인과 경찰들이 난입해 무차별 사격으로 460여명이 순교했다. 그 사실을 베트남뿐 아니라 한국교회에도 알려 중보기도를 부탁한 사실을 알고 베트남정부에서 나를 제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교통사고로 위장해 없애려 했지만, 내가 자동차로 여러 사람과 함께 이동했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여기서 붙잡혀 죽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함께 있던 정유미 선교사가 갑자기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경찰들에게 보여줬다.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경찰들이 깜짝 놀라며 그 종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종이는 구순구개열 환자 6300여명을 무료로 수술해 준 공로로 베트남정부에서 받은 평화수교훈장증 사본이었다.

수차례 거절하다 주변의 성화에 못 이겨 훈장을 받은 날, 나는 훈장을 버리고 총리실을 나왔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누가 훈장을 준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 훈장을 정 선교사가 챙겨 사본을 만들어 차에 싣고 다녔다. 하나님은 베트남에서 라오스까지, 짧지만 위험천만한 국경을 프리패스로 넘게 하셨다. 할렐루야!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역경의 열매] 장요나 (22) 어처구니 없는 죄목 4가지로 재판정에 서다

종교법 위반·공산당 사상 비판·의사 행세… 함께 사는 제자들 15명 모두 첩으로 오인

입력 : 2020-03-31 00:06
2003년 9월 7일 비라카미 신학교 1기 졸업식 예배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이 학교는 베트남이 공산화된 후 세워진 최초의 신학교다. 장요나 선교사(첫째 줄 마이크를 든 사람)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00년 새해가 시작돼 3주간 금식기도를 했는데 도중에 경찰에 붙잡혔다. 죄목은 4가지였다. 종교법을 어기면서 종교활동을 한 것, 베트남 공산주의 사상과 체제를 비판하고 반대한 것, 의사도 아니면서 의사 가운을 입고 의사 행세를 한 것, 내가 한국에서 가정을 망치고 베트남에 와서 여러 명의 여성들과 산다는 것.

20여일간 조사를 받고 법정에 섰다. 재판장은 첫째 죄목을 조사한 결과 내가 종교법을 어긴 일이 없음을 인정했다. 당시 70여개 교회를 세웠는데 전부 허가를 받았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땐 교회라는 말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법에 저촉되지 않았다.

둘째 죄목에 대해 나는 공산당 사상을 비방한 일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말씀과 예수 전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공산주의를 비판할 새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셋째 죄목에는 내가 6개 병원을 세운 병원장인데 의사 가운을 입을 수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현지인 의사들과 동행하고 그들이 고치지 못하는 불치의 병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고치시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넷째 죄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눈물이 났다. 센터에 함께 사는 제자들을 첩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아이들을 첩이라 말할 수 있나. 아이들이 들을까 겁났다.

한국에 두고 온 아내가 간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아 1999년 11월 잠시 귀국했었다. ‘주님, 이 불쌍한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통곡이 터졌다. 아내와 함께 있어야 하나, 하나님 일을 해야 하나 마음이 복잡했다. 고민과 갈등 속에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마음에 강한 응답을 주셨다. “베트남에 가면 고문을 받고 핍박을 당한다. 그러나 가야만 한다. 하루에 560여명의 베트남인이 지옥으로 간다. 죽임을 당하더라도 가야만 한다.” 단호하게 결심하고 뒤돌아섰지만, 베트남에 오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마음 한쪽은 한국에 가 있어 전화가 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때마다 “하나님 제가 베트남 선교를 할 수 있도록 가정을 지켜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데 중상모략까지 당하니 저들이 불쌍하고 답답했다.

재판장은 4가지 죄목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덧붙여 앞으로 교회를 세우려면 종교성을 통해 건축하라고 했다. 내가 당신네에게 돈을 주면 절반 이상 떼먹을 게 아니냐고 하자 그들도 웃었다. 한국에서 보낸 피땀 어린 돈이기 때문에 절대 허투루 쓸 수 없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바짓가랑이 사이로 구슬 같은 물방울들이 뜨겁게 보글보글 올라오면서 다리를 간지럽혔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것처럼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느껴졌다. 재판장의 무죄라는 소리가 내게는 “이제 때가 됐다. 신학교를 세워라”는 음성으로 들렸다. 그 뒤 석방됐고 2000년 9월 기적적으로 비라카미신학교가 설립됐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역경의 열매] 장요나 (23) 미얀마 복음화를 위해 베트남에서 추방하신 주님

날 항상 못마땅하게 여기던 베트남 종교성, 조사받느라 기한 지난 비자 문제 삼아 추방

입력 : 2020-04-01 00:06

장요나 선교사가 2015년 5월 6일 미얀마 양곤다일교회의 착공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2014년 8월 5일 한국에 들어가기 위해 공항에서 탑승권을 끊고 심사대를 지나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를 붙들고 늘어지면서 시간을 끌었다. 짐은 이미 부친 상태라 마음이 급해 빨리 처리해달라고 했지만,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경찰 6명이 나타나 여권과 비행기 탑승표를 압수했고 공항 안에 있는 경찰서로 데려갔다. 내 여권과 항공권으로 뭔가 조회하는 것 같은데 내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 게 이상했다.

한 시간 후 비행기 탑승 구역으로 데려가더니 여권과 소지품을 모두 돌려주면서 가라고 했다. 뭔가 이상했다. 갑자기 왜 태도를 바꾼 건지 의심스러웠다. 현행범도 아닌데 외국인인 나를 왜 공항에서 잡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면 한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때야 경찰이 “당신 5년 추방이야”라고 말했다.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2013년 베트남 달랏트 소수부족교회에서 설교했다가 조사받은 게 문제가 됐다. 그때 내 NGO 비자 기간이 유예됐다가 끝나는 날이 그날이었다. 그 틈을 이용해 종교성에서 추방한 것이다.

기가 막혔다. 검사대를 통과하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센터에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니 다들 울며불며 난리가 났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주님. 베트남의 수많은 영혼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 베트남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그 순간 큰소리로 “요나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또 한 번 뇌성 같은 큰 소리가 내 귀청을 찢었다.

‘너에게 비라카미를 맡겼는데 미얀마는 어떻게 할래.’ 주님의 음성이었다. 비라카미 선교를 시작한 지 24년이 됐지만, 미얀마 선교는 열매가 없었다. 지리적으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붙어 있어 한 묶음으로 다녔지만, 미얀마는 태국을 건너 접경 지역이라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하나님이 미얀마 복음화를 위해 나를 베트남에서 추방하신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당장 미얀마로 가는 표를 구해 선교지로 떠났다. 미얀마 사역은 유난히 어려움이 많았다. 나를 직접 겨냥한 사탄의 공격이 얼마나 심했던지 자주 다치고 사고도 많이 당했다.

미얀마 사역을 하다 6개월 정도 됐을 때 베트남 빠콤의 신임장관인 판안썬 장관으로부터 한국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급히 귀국했다. 서울 인근에 있는 교회에서 설교하고 밤 10시 30분쯤 일산에 있는 선교센터에 도착했다.

잠깐 눈을 붙인다고 누웠다가 잠에 곯아떨어졌다. 자다 보니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 방안은 캄캄했고 매캐한 공기가 눈과 코를 찔러댔다.

분명히 불을 켠 채 잠들었는데 방안에 불빛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이상해 창문으로 가서 커튼을 열고 봤더니 소방차 수십 대가 내가 있는 오피스텔을 향해 물을 뿜고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2014년 11월 30일 주일 밤 자정이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역경의 열매] 장요나 (24) 불길 속 서러움에 “하나님 저를 통닭 만드시렵니까”

화재 현장서 빠져나오며 회개… 

베트남 종교성, 체류허가서 내주며 병원·학교 하나씩 더 세워달라 요청

입력 : 2020-04-02 00:07
장요나 선교사(가운데 오른쪽)가 2015년 5월 베트남 정부 사무실에서 썬판안 빠콤(PACCOM) 장관(왼쪽)과 NGO 사역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다.

불길은 지하에서 시작돼 6층까지 번졌다. 옥상으로 가려고 문을 여는 순간 처음보다 더 짙어진 연기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옥상으로 가는 것도 포기했다. 기도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쳤다.

“하나님 저를 통닭처럼 만드시렵니까. 저를 식물인간에서 살려주실 땐 베트남 땅에서 순교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천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큰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건물이 무너지나 싶었는데 갑자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음성이 방안을 뒤흔들며 들려왔다. 찬란한 빛이 방안에 쏟아져 들어와 빛으로 가득 찼다. 방안의 모든 사물도 자취를 감추고 오직 내 앞에 있는 책꽂이만 앞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책꽂이에 꽂힌 책에서 수많은 가격표가 도드라지며 움직이더니 숫자들이 겹치면서 5와 0이 하나로 돼 50000이란 숫자가 확대돼 눈앞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미얀마 양곤 건너에 있는 빈민가가 떠올랐다. 한국에 오기 3일 전 방문했던 곳이다.

아이들이 울고 있어 물어보니 일하러 나간 엄마를 기다린다고 했다. 아이들의 아빠는 어릴 때 병으로 죽었다. 5만원만 있으면 세 아이와 가족이 한 달을 살 수 있다고 해서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주고는 이 지역에 보육원을 세우기로 하고 왔다.

“하나님, 제가 책 산 돈을 보니 그간 많은 사람을 굶어 죽게 만든 자로서 영혼 구원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 그땐 무지해서 그랬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회개했더니 하늘에서 또 큰 우레 같은 소리로 “요나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음성이 들렸다. 나는 그 말씀에 힘이 솟아나 창문으로 뛰어가 얼굴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고 기뻐서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하나님은 구조대원을 통해 내가 건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셨다.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오느라 뼈가 부러지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베트남의 빠콤 신임 장관과의 약속을 어길 순 없었다. 내 모습을 보고 놀란 빠콤 장관은 사과하면서 비자 문제를 종교성과 협의해 조속히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6개월 뒤 베트남 빠콤에서 보내온 NGO 입국 비자를 받으러 들어가니 보건성과 교육성, 종교성, NGO 담당 장관 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류허가서를 주면서 병원과 학교를 하나씩 더 세워달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보다 베트남을 더 사랑하는 미스터 장, 26년간 우리나라를 위해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당신이 외국인인 이상 종교법은 여전히 당신을 제한할 것입니다. 앞으로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헌신과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공산당 앞에서 떳떳하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추방당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여러분께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이었습니다. 오직 베트남에 다시 올 방법을 기도하며 여러분을 그리워했더니 하나님께서 다시 이곳에 오게 해 주셨습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역경의 열매] 장요나 (25·끝) 날 통해 많은 분이 하나님과 만나 영생의 삶 누리길

31년 전 구하지 못한 아이들에 한 맺혀 고난 감수하며 교회·병원 등 세워 사역

입력 : 2020-04-03 00:00
비라카미사랑의선교회 임원과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7일 서울 서초구 횃불선교회관에서 ‘베트남 선교 30주년 선교심포지엄’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베트남선교를 한 지 31년이 지났으니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건 당연하다. 베트남에 처음 입국했을 땐 우리나라와 수교가 되지 않아 비자를 받기도 힘들었다. 입국하려면 제3국에서 비자를 받아야 했다. 공항엔 컴퓨터 복사기 엑스레이조차 없었다. 1969년 베트남전쟁 때 파병돼 군인으로 봤던, 우리나라보다 앞서있던 사이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40여년 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1989년 말 베트남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68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300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발전했다. 처음 베트남 하노이에 갔을 땐 한국인이 15명 있었는데, 지금은 7만6000명이 넘는다. 호찌민의 한국인은 16만명 이상이다.

교회가 폐쇄되고 기독교인이 대부분 숙청당했던 이 땅에서 놀라운 변화로 교회들이 세워지고 있다. 구원받은 영혼의 수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내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가시가 있다.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갔던 하노이 라탄호텔 앞에서 1달러를 달라고 애걸하는 아이들이다. 내 눈에는 아직도 그 아이들의 모습이 선하다. 음식을 볼 때마다 사료처럼 여기는 것도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빵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전하지 못했다. 내 잘못으로 그들이 지옥에 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나는 매일 나무관 위에서 몸부림치며 회개 속에 살아간다.

그 아이들을 구원하지 못했다는 한이 내 마음에 맺혀 31년간 고난과 핍박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달려왔다. 교회가 없던 곳에 312개 교회를 신축했다. 이곳에선 32만여명이 구원을 받아 예배를 드리고 있다. 사역자 양성을 위해 세운 신학교에선 860여명이 졸업해 교회 개척에 나섰다. 열악한 지역에 병원 16개를 세워 6300여명에게 구순구개열 수술을 무료로 해주는 등 의료사역을 진행했다. 초등학교 2개와 유치원, 보육원도 세웠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NGO 비자를 받아 복지와 미션 사역을 병행할 수 있었던 것은 피 흘림의 대가를 치른 열매라고 본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마 10:9~10)

세상 사람들은 내가 어리석다고 하겠지만, 나는 많은 것을 가져보았던 지난날 식물인간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이 세상을 떠나면 지옥과 천국이 있음을 똑똑히 보았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 인생을 드러내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언하기 위해서다. ‘장요나’라는 시청각 교재를 통해 많은 분이 하나님을 만나길 기도한다. 그분을 만나 영혼의 눈을 뜨고 생명을 사랑하며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길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홀로 모든 영광을 받으소서. 할렐루야!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31165&code=23111513&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