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교회론은 땅과 하늘, 지상과 천상의 이원론을 극복한다. 교회는 땅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에도 존재한다. 아직 전투하는 교회로서 지상교회는 이미 승리한 교회인 천상교회와 긴밀한 영적 관계를 갖는다.
성 어거스틴이 자신의 책 ‘신국론’에서 “하나님의 도성으로서의 천상교회는 지상교회의 표상이 될 뿐 아니라 실제적 영광이고 구원의 능력이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신실한 성도는 지상의 영적 가족이면서 동시에 천상의 하늘 가족이다.
요한계시록 2~3장에 계시된 일곱 교회는 지상교회의 가족들을 대표한다. 성령이 선포하는 일곱 교회를 향한 일곱 메시지를 듣고 참회하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지상교회 성도들에게 천상교회의 보좌에 앉게 되는 영광이 약속된다.
주님은 3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약속하셨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천상교회의 하늘 보좌는 미래에 있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성도들이 앉게 될 영광스러운 자리일 뿐 아니라, 이미 승리한 성도들과 주님이 앉아있는 영화로운 자리다.
요한계시록 4~5장은 천상교회의 하늘 보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계시해 주는 놀라운 말씀이다. 요한이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해 천상교회의 하늘 보좌를 바라볼 때 성부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과 사역이 천상교회 성도들의 찬양과 경배를 통해 전개된다.
요한계시록 4장에는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계시고 그 둘레에 있는 24보좌 위에 24장로가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아 있는 모습이 기록돼 있다. 여기서 24장로들은 누구를 상징할까.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교회 공동체와 지상교회의 대표자들을 상징한다. 요한계시록에서 12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숫자다. 교회 공동체를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을 표현할 때 열두 문에 새겨진 열두 지파 이름과 열두 기초석에 새겨진 열두 사도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다.(계 21:12~14)
24장로는 두 백성을 의미한다. 그들은 약속을 의미하는 구약의 백성과 성취를 의미하는 신약의 백성이다. ‘흰옷을 입고 보좌에 앉아 금관을 쓰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자격과 특권을 나타낸다.
요한계시록에서 흰옷은 더럽혀지지 않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이긴 자가 입는 옷을 말한다. 보좌와 금관은 왕과 제사장적 지위를 상징한다. 24보좌 위의 24장로는 역대상 24장 1~19절에 기록된 제사장들의 24반차와 그 궤를 같이한다. 그들 모두 천상교회에서 제사장적 직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신천지 이만희는 요한계시록이 증거하는 천상교회를 이 땅에 세워지는 둘째 장막의 하늘 보좌라고 주장한다. 자신을 새 하늘, 곧 구원자인 새 목자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중심으로 이 땅에 보좌 조직을 구성해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자는 주장을 한다. 허무맹랑하다.
요한계시록 4장이 하늘 보좌에 앉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천상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요한계시록 5장은 교회의 머리 되시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적 권위에 관해 계시한다.
오직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만이 천상교회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있는 봉인된 말씀의 두루마리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우리 죄와 허물을 사하시기 위해 친히 고난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두루마리의 인봉을 뗄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걸 증거한다.
장로 중 한 사람이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리라고 말한다.(계 5:5) 5장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보좌와 모든 피조물의 대표자를 상징하는 네 생물과 24장로를 둘러선 만만 천천의 천사들이 어린 양을 찬양한다.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5:12).
네 생물과 24장로들, 그리고 천사의 어린 양을 향한 찬양을 통해 십자가 영성의 가치와 십자가 공동체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죽임당하는 고난의 자리 없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영광도 없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중세 스콜라 신학에 천착해 영광과 지혜, 명예와 권세만 추구했던 가톨릭 신학자들과 당시 사제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적’이라고 무섭게 비판했다. 십자가 고난 없이 부활의 영광만을 추구할 때 우리는 모두 짝퉁이 되고 만다.
진품 신앙과 짝퉁 신앙이 여기서 갈라진다. 문선명은 통일교 원리강론에서 어린 양 예수의 고난 사역을 철저하게 부정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유대인의 저항과 사탄에 의해 그의 육신이 침범을 당해 살해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초림 예수의 구원 사역은 실패했고, 재림주로 자신이 와 구원을 완성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기억하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김영복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