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권은 이것이다
2019-10-04 이영환 목사
하늘나라 상속자… 예수님 닮은 구별되는 삶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 상속자인 장자들은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는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천국 상속자라면 천국 시민에게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만약 내가 입술로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상속자인 장자라 외치면서, 정작 삶은 천국 상속자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면 그는 말로만 믿는 자이지 진짜 믿음을 가진 자라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천국 상속자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여러 가지로 접근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한 삶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당신이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을 우리에게도 요구하신다. 거절할 수 없고 불순종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인 장자라면 반드시 거룩한 삶을 살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 백성으로 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거룩이 무엇인가. 거룩이란 구별됨이다. 거룩이란 성결한 삶이다. 거룩이란 깨끗한 삶이다. 누구든지 구별되게 살지 못하면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자라 말할 수 없다. 그 누구라도 성결한 삶을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라 말할 수 없다. 깨끗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
진정으로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면 그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나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요 장자들인 우리가 들어갈 천국은 어떤 곳인가.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천국은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우리 주님이 예비하신 그 천국은 거룩한 성이다. 그 성에 들어가는 자는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깨끗하게 된 자들이다. 거룩한 자들만 가는 곳이 천국이다. 그 천국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천국은 죄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려는 자들은 각종 더러운 죄를 버려야 한다. 죄와의 싸움에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음란함부터 각종 죄를 멀리하고 물리쳐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살전 4:3~5)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누가 천국에 들어갈 자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주여, 주여’ 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우리의 거룩함이다. 거룩한 삶을 위하여 우리의 음란한 삶을 버려야 한다.
이 마지막 세대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음란과의 전쟁일 수 있다. 이 세상은 너무나 음란하고 추악함으로 가득하다. 각종 미디어에 등장하는 음란함은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세대에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음행과의 전쟁을 치러 승리해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7)
하나님의 아들이자 장자인 우리, 하나님의 자녀이자 천국 상속자인 장자들은 오직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오직 예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한다. 주님처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아빠, 아버지이신 하나님처럼 거룩한 삶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것이 자녀이자 상속자인 장자들의 본연의 의무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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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9 이영환 목사
예수와 함께할 하늘나라 영광 바라보며 진군하는 고난 행군
예수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얻는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였다.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서 살던 존재였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들의 하수인이었다. 불순종의 아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의 지배를 받으며 살던 자였다.(엡 2:1~2)
그 영,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 누구인가. 그는 바로 온 인류를 파멸과 혼돈으로 몰고 가는 악하고 더러운 사탄, 마귀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이 마귀에게 끌려다니며 죄의 종노릇 했다. 그렇게 마귀의 종으로 온갖 죄를 짓고 살아가던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나는 하나님의 양자가 됐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5~16)
사람들이 왜 양자를 들이는가.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가계와 소유를 상속시키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양자로 삼으셨는가. 바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의 양자가 돼 제일 먼저 누리는 것은 상속권이다. 여기에는 많은 희생이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상속자는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영광만 뜻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고난이 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예수 이름을 믿고 그분을 영접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공동 상속자라고 선포하신다. 너무나 영광스러운 사실이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왕과 왕자를 예로 들어보자. 왕이 정상이라면 자기 왕권을 물려줄 왕자를 아무렇게나 키우지 않는다. 왕권을 물려받을 왕자 편에서는 어떤가. 세상의 또래 아이들처럼 적당하게 살 수 없다. 다스리고 지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양자, 하나님의 상속자, 하나님의 장자가 된 나는 어떤가. 내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는 사실이 진짜로 믿어진다면 달라져야 한다.
진리이신 성경은 이 부분을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가. 아주 쉽게 접근하는 길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믿음의 거장들을 열거해 믿음의 큰 산맥을 이루는 히브리서 11장에 가면 나온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5~16)
믿음의 사람들이 사모한 것은 하늘의 본향이었다. 하나님이 예비하실 성,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인 천국이었다.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희생을 감수했는가.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성장해 탄탄대로가 보장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자기 백성을 위해 말할 수 없는 희생과 헌신의 길을 선택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진리는 이렇게 선포하신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분명히 믿음의 용장들이 받은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다.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받을 하늘의 상을 바라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장자가 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 장자권은 바로 이러한 고난을 달게 받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영적 신분을 확인하는 것이다. 장자권은 천국 상속자인 내가 예수님과 함께할 하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진군하는 고난 행군이다. 예수님과 함께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큰 산맥을 이어가는 희생과 고난 행렬에서 낙오되지 말라.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 장자권은 이것이다
세상은 음란천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복종시켜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상속자인 장자다. 천국을 상속받을 자인 하나님의 장자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이 땅에서 정복의 권세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복을 주셨다. 그 복의 내용이 무엇인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것과 또 땅을 정복하는 것, 그리고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것이다.(창 1:28)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특권이다.
하지만 이 특권을 첫 사람인 아담이 빼앗기고 말았다. 옛 뱀인 사탄, 마귀에게 정복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우리가 정복할 땅은 보이는 이 육지, 지구촌을 넘어 영적인 것에 있다는 사실을 영의 눈을 뜨고 바라봐야 한다. 사람은 어떻게 창조됐는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두 가지를 사용하셨다. 그것이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하나님은 분명히 땅의 흙과 하나님이 하늘에서 부어주신 생기를 통해 사람을 만드셨다. 땅의 흙, 우리의 육신은 땅의 흙에서 왔다. 그러므로 반드시 누구든지 땅의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영혼은 하나님께로 왔다. 사람은 육신과 영혼을 함께 지닌 특별한 존재다. 모든 동물에게도 혼이 있어서 생명이 있지만,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다. 오직 인간의 영만이 영원한 생명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땅의 흙으로 지어진 육체다. 우리가 지금 영적으로 싸워야 할, 그리고 정복해야 할 존재는 누구인가. 바로 우리 육신의 정욕이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그런데 그 지체가 무엇을 가리키는가. 바로 땅에 있는 지체다. 그러면 우리 몸을 죽여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을 죽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죽여야 할 것은 음란이다.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은 음란천국이다. 인터넷에 음란물이 범람하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음란물에 노출돼 마음 공간이 더럽고 사악함으로 꽉 찬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님은 분명히 지체를 죽이라고, 정복하라고 말씀하셨다. 동시에 정욕과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정의하셨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정복해야 할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이것들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내 육체의 소욕 가운데 속해 있는 것이다. 육체의 소욕이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 성령과 육체의 소욕은 서로 대치돼 있다.
바울은 자타가 공인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그렇게 무시하고 멸시하고 짓밟았던 그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난 후에 달라졌다. 그가 누려야 될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긴 것이다. 왜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예수가 보배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는 평생을 선교하면서 마지막에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를 당했는데, 그가 순교 당할 때까지 주님 앞에서 믿음으로 지킨 것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고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6~27)
바울은 달음질의 목표를 선명하게 알았다.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았다.
그에게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은 대적이 자기 자신의 탐심임을 알았다. 대적이 자기 몸의 정욕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을 복종시키는 이 싸움에 목숨을 걸었고, 그것 때문에 순교자의 영광을 안은 것이다. 자신의 정욕과 싸움에서 그것을 복종시키고, 탐심과 싸움에서 그것을 복종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해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 장자권은 이것이다
예수님 보혈의 권능으로 죄와 싸워 이기는 권세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특별히 사람을 지으실 때 분명히 특권을 부여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이 말씀 가운데 ‘다스리게’라는 말씀을 주목해 보자. 하나님이 다스리라고 말씀하신 대상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땅에 기면서 움직이는 생물 가운데 무엇이 있는가. 바로 옛 뱀이 있다. 옛 뱀인 사탄 마귀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지금 이 사탄 마귀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것이 무엇인가를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죄다.
옛 뱀인 사탄 마귀가 가져다준 죄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고난을 겪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스려야 될 대상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죄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6~7)
하나님이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 아우 아벨의 열납된 제사로 인해 그를 미워하고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가진 가인에게 하신 말씀이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말씀에 의지해 죄의 소욕이 육신의 정욕을 타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려고 할 때 우리가 생명을 걸고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죄는 내 안에서 역사하고 있지만 내가 해야 할 것은 바로 죄를 다스리는 것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생명을 걸고 죄를 다스리는 일에 모든 힘을 집중해야 한다. ‘죄를 다스리라.’ 죄를 다스린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마귀를, 악한 영을 다스리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한다.’ 마귀의 실체를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처음부터 범죄한 존재가 누구인가. 옛 뱀인 사탄, 마귀다. 그 첫 범죄자인 마귀는 죄를 통해 온 인류를 제 것으로 만들었다. 흑암의 권세로 육신의 정욕을 통해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 이 죄를 짓는 마귀를 물리치는 그 길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밖에 없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가.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셨다. 마귀의 일은 무엇인가.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죄를 짓게 하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고 그 예수님을 따라가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인 장자들이다. 마귀에 의해 죄 앞에 무릎 꿇을 시시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이 죄를 이길 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히 12:4) 무슨 의미인가. 생명을 걸고 죄와 싸워야 한다는 말씀이다. 왜 생명을 걸고 죄와 싸워야 하는가.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8) 사랑하는 자녀라면 반드시 징계가 있다. 우리는 사생자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됐다. 이 특권, 이 권세, 이 은총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
장자권은 무엇인가. 천국 상속권이다. 장자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의 능력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님 보혈의 권능으로 죄와 싸워 이기는 권세다. 죄와 싸워 이기는 힘, 이것이 장자권의 특권이다. 장자의 권세를 누리되 죄와 싸워 이기는 권세를 누려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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