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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여호수와를 찾아서-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양계)

영국신사77 2020. 1. 3. 21:42

4.여호수와를 찾아서

여호수아의 이름이 

예수의 이름처럼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는 뜻인 것을 알게 된 나는

다른 성경의 이름들을 또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가 찾아낸 이름이 

바로 엘리사였다. 


[1] 이스라엘의 하나님

모세가 이끄는 히브리 백성들은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바란 광야에 이르렀으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 보냈던 정탐자 열두명의 보고를 듣고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발길을 돌리게 되었고 

이로부터 광야 40년의 긴 하나님의 훈련 기간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에돔왕이 길을 막자 

발길을 돌이켜야 했던 겁쟁이 히브리인들이 

아랏 왕과의 싸움에 이기면서 자신을 갖기 시작했고 

마침내 시혼 왕, 바산 왕과 전투할 때에는 

그들을 전멸시킬 정도로 담대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히브리 사람들은 

점점 난폭해지기 시작하였고,

여호와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붙이시매 

우리가 그와 그 아들들과 그 모든 백성을 쳤고 

그때에 우리가 그 모든 성읍을 취하고 

그 성읍을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고…"(신 2:33,34)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붙이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신 3:3)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하라"(신 20:16,17)

그리하여 여호수아 10장과 11장은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가나안 백성들을 참살하는 피비린내로 얼룩져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볼 때에는 

신명나는 승전의 행진곡일는지 모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볼 때에는 

눈살이 찌푸러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요, 

심지어 이 대목을 읽고서 분개한 어떤 교수는 

'여호와 하나님'은 

깡패 하나님이라고까지 극언을 서슴치 않을 정도였다.
그 어떤 설명도 내게 이것을 해명해 주지 못하였고 

내 결론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창세기를 끝낸 후 

출애굽기로 넘어 들어갔다. 

하나님의 산(山)호렙…, 떨기나무 속의 음성…, 모세의 출동…

그리고 드디어 히브리 백성들은 

바로의 손을 벗어나 광야로 들어섰다. 


바로의 추격…, 홍해의 기적…, 

다시 히브리 백성들은 마라의 물이 정결해지고 

만나가 내리는 기적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17장에 들어서면서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난 므리비가 있는 르비딤에서 

아말렉 군대와의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여호수아는 칼을 잡고 나가 대적과 싸우고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로 올라간다. 

모세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하면 

여호수아 군대가 이기고 

팔이 아파서 손을 내리면 

아말렉 군대가 기세를 올린다. 

곁에 시립했던 아론과 홀이 모세의 팔을 들어올렸고 

그손이 해가 지도록 들러져 있었으므로 

여호수아는 마침내 아말렉을 제압하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거기까지는 전에도 읽은 적이 있어서 이미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그 다음에 걸리는 곳이 있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출 17:14).

이 아말렉과의 르비딤 전투가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모세는 이 장소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붙였는데 

그것은 히브리 말로 '여호와는 나의 기(旗)'라는 뜻이었다. 

모세는 지팡이만 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旗)는 또 무엇인가. 


그러자 내게는 얼핏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사야서 11장 10절이었다.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旗號)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싹이란 

말할 것도 없이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모세의 깃대에 달려야 하는 깃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이었다. 

또 예수란 이름은 헬라어로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는 뜻인데 

그것을 히브리어로 하면 바로 여호수아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바로 1천5백년 후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로 등장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모세의 지팡이는 바로 율법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여호수아의 칼은 바로 말씀의 검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또 여호수아는 히브리백성을 모세로부터 인계받아 

가나안 입성을 완수한 사람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자'(마 5:17)로서 

오신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여호수아의 가나안 입성도 

모든 성도들을 이끌고 천국에 입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예표하는 사건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에게 등 돌리고 살던 

가나안 사람들에게 내려진 역사적 종말이었고 

그것은 다시 온세계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구원 

그리고 심판으로 연결되어 이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2]르비딤에서 변화산까지


여호수아뿐만이 아니고 

이삭, 요셉, 삼손, 다윗, 솔로몬, 엘리사등

많은 사람들이 그 생애의 일부분을 

예수의 모형으로 살다간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메시야를 기다리는 

히브리 사람들의 줄기찬 갈망의 행진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마치 원자의 구조와 태양계의 구조가 닮은 것처럼

천국도 역시 '너희 안에 있으며'(눅 17:21)

동시에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요 14:2) 천국도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이름이 예수의 이름처럼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는 뜻인 것을 알게 된 나는

다른 성경의 이름들을 또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가 찾아낸 이름이 

바로 갈멜산 사건의 불같은 선지자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였다는 것이다. 


엘리사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 유사한 이름의 뜻만 가지고 

엘리사도 혹시 예수의 예표적 인물이 아닐까 기대하며 

그의 행적들을 뒤져보았다. 


그리고 나는 

너무도 예수와 닮은 그의 삶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지휘했다면 

엘리사는 열두 겨리의 소로 밭을 갈다가 

엘리야를 만났다(왕상 19:19), 


예수도 열두 제자를 거느리셨다.

뿐만 아니라 엘리사는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렸고(왕하 4:36), 

보리떡 20개로 1백명을 먹이고 

오히려 떡이 남았으며(왕하 4:42∼44), 

문둥병자를 고쳤고(왕하 5:14), 

그가 죽은 다음에도 

그의 뼈는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능력이 있었다(왕하 13:21).


또 엘리야가 아합왕 시대를 질책한 선지자였다면 

엘리사는 그의 후계자로서 

아합 왕과 마녀 이세벨의 시대를 마감하고 

이스라엘의 종말과 구원을 예언하며 그 생애를 마친 사람이었다.


모세와 엘리야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었다. 

모세와 엘리야는 둘 다 그성격이 불과 같았고 

괴로울 때에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떼를 썼으며, 

모세가 홍해를 갈랐듯이 

엘리야도 요단 강 물을 갈랐다. 


그들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도 요단강 물을 갈랐으며(수 3:16), 

엘리사도 역시 요단강물을 갈랐다(왕하 2:14).


예수는 모세와 엘리야를 만난다.

그것은 참으로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예수의 모습은 변화되어 해같이 빛나고 

그 옷도 희어져서 광채가 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분은 모세, 엘리야와 함께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일에 대하여 

의논하고 계셨다(눈 9:30,31).


이 길고 긴 추적이 

바로 모세와 엘리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까지 

연결되었던 것이다. 


그 대장정(大長柾)속에서 

어느새 내 앞에 다가서신 그분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오늘도 나는 베드로처럼 초막을 세우며 

그분이 나팔소리와 함께 다시 오시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자료출처 :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양계) 중에서>

http://blog.daum.net/matsy/6654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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