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Bible말씀敎會예배 * 선교사

2.큰자와 어린자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영국신사77 2020. 1. 3. 21:31

 

2.큰자와 어린자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 중에서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자는 어린자를 섬기리라"(창 25:23)


어릴 때 성경을 공부하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거나 

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내게 늘 불만스러운 것은 바로 가인과 아벨에 관한 대목이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 (悅納)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한시라..."(창 4:3-5)
 

여호와의 이 불공평한 '열납'으로 인하여 

마침내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가인은 이러한 여호와의 처사에 분하여 안색이 변하였고 

여호와의 추궁을 받아 시선을 깔더니 

급기야는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우선 내게 불만이었던 점은 

제물의 열납같은 절차적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장남 기피증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렇다 할 이유없이 장남을 못마땅하게 여기신 것은 

비단 가인의 경우만이 아니었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경우에도 

하나님은 사내답고 효성스러운 에서 대신 모친 곁에서 부엌일이나 하는 야곱을 택하셨고,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할 때에도 그 손을 어긋나게 얹음으로써 

장남인 므낫세가 밀려나고 둘째인 에브라임이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선지자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후게자를 이새의 아들 중에서 고를 때도 

하나님은 위로부터의 일곱 아들을 모두 제쳐두고 막내인 다윗을 택하도록 하셨다.


구약성서는 또 구약이니 그렇다고 하자.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들려 주시는데 

이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제 몫의 유산을 미리 받아가지고 나가서 유흥비로 다 날리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다. 

아우가 집을 나가 있는 동안 힘든 집안일을 돌보며 아버지를 섬겨 온 장남에게는 

염소새끼 하나도 잡아주지 않던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를 위하여는 살찐 송아지를 잡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또 그렇다치고 그 아들이신 에수님까지 이러시니 

아마도 이 끈질긴 장남 기피증은 하나님 가문의 유서깊은 고질병인지도 몰랐다.


어째서 가인과 아벨은 '제물'을 드리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담과 그아들들 사이에는 오직 3절 첫머리의 '세월이 지난 후에'만 있을 따름이었다. 

결국 그 '세월이 지나는 동안'제사의 의식이 생겨났다. 

아담과 직접 대화하시던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내어보내신 후 

제사를 통한 대화를 시작하시었다. 

그리스도의 때까지 성전의 휘장이 쳐진 것이었다. 

이 제사의 주관자가 아담의 장남인 가인이었다. 

4장에 보면 하나님은 아벨과 대화하시지 않고 

오직 가인과만 대화하셨던 것을 알 수 있다. 

가인은 하나님의 미움받는 자가 아니라 '택함받은'제사장이었다. 


또 직업을 보면 아담의 직업은 '농사'였고 (창 3:23) 

장남인 가인이 그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았다. 

그런데 아벨은 양치는 자가 되었다. 

어째서 그는 양을 치게 되었을까? 

창세기 9장3절에 의하면 사람들은 노아의 홍수 이전에 육식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벨은 왜 양을 쳤는가? 

그 대답은 아담과 하와가 입었던 '가죽옷'밖에는 없다. 

즉 가인은 먹을 것을 위해 농사짓는 아담의 기업을 물려받았고 

아벨은 입을 것을 위해 양을 기르고 그것을 죽여 가죽을 벗기고 

그것으로 곡식을 바꾸어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즉 아벨은 '백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벨은 양 새끼밖에는 바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양으로 가슴아픈 제물을 드렸던 것이다. 

하나님은 비로소 그와 대화하는 '창구'인 가인에게만 주의하셨던 것에 대해 

보상심리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아벨을 불쌍히 여기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벨의 마음을 돌아보셨고 그의 마음을 받으셨다. 

그런데 가인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아우를 시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추적하고 나서야 나는 

예수님이 흘리신 '아벨'의 피로 

우리가 모두 '가인'이 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택함받은 크리스천들은 모두가 가인인 것이다. 

그 가인들에게 이제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너를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고, 호위하며, 보호하며, 자기 눈동자처럼 지켰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내가 너를 홀로 인도하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다"(신 32:10-12)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 중에서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자는 어린자를 섬기리라"(창 25:23)
 

우리가 불쌍한 아우들을 보살피고 이끌어 주고 섬기게 될 때...

그러하여 다시 세월이 지난 후에...

하나님은 우리의 제물을 비로소 열납하실 것이다.


              자료출처 :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중에서

http://blog.daum.net/matsy/6654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