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속 천지창조와 진화론은 양립할 수 있을까. 교계와 학계의 오랜 논쟁에 김익환 고려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그를 지난달 22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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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지난 4월 진화론과 창세기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책 ‘진화론과 창세기의 하모니’를 펴냈다. 책에는 모태신앙인으로서 10여년 동안 대학 강단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며 연구해온 그의 고민과 궁금증, 깨달음을 담았다.
성서와 진화론의 간극을 마주하며 혼란스러워하던 그에게 요한복음 속 예수의 포도주 이적 사건은 엉킨 실타래를 풀어줄 실마리가 됐다. 포도주 이적은 갈릴리 가나 지방의 한 혼례식에 참석한 예수가 행사에 쓰일 포도주가 떨어지자 물을 바꿔 포도주로 만든 사건이다. 예수는 하인들이 항아리에 채워 넣은 물을 순식간에 포도주로 바꿨고 이를 맛본 이들 모두 좋은 포도주라고 칭찬했다는 일화다.
김 교수는 이 사건을 통해 창조주의 시간 개념을 이해하게 됐다. 그는 “만약 그 자리에 과학자들이 있어 포도주를 첨단 기술로 분석해 봤다면 100년은 숙성시킨 것이란 결과를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이 하인들이 마주한 창조주의 1초와 과학자들의 100년이란 시간이 만나는 지점이죠. 두 시간이 왜 다를까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4차원을 초월하는 최소 6차원이기 때문 아닐까요.”
시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천지창조 6일과 과학자들의 우주 기원 138억년이 같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어 설명했다.
“이 책은 3차원입니다. 이를 시간 개념으로 보면 과학자들이 발견한 시간은 책의 모서리처럼 직선으로 끊임없이 흘러가죠. 하지만 이를 옆에서 바라보면 점으로도 보입니다. 이처럼 창조주인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뛰어넘어 오갈 수 있지 않을까요.”
김 교수는 생물학 이론을 바탕으로 아담을 단순히 ‘최초의 인간’이 아닌 ‘최초로 하나님이 영을 불어넣은 인간’으로 보는 등 책을 통해 그동안 이어져 온 과학계와 신앙계의 논쟁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창세기에 담긴 창조주의 섭리와 비밀을 풀어냄으로써 창조과학자들뿐 아니라 무신론 과학자들에게도 지적인 도전을 던진다.
김 교수는 진화론 등 과학적 사실을 무조건 배척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창세기를 역사적 순서로만 해석하려는 신학자들의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이 과학의 시대를 사는 요즘 과학자들과 일반인들에게 ‘성서는 만화책 같은 것’이란 오해를 제공했다. 이것이 결국 그들이 교회를 떠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면서 “우주의 역사를 모두 부정하면 창세기 자체가 틀린 책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에 우주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를 기반으로 창세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서로의 시각을 열고 함께 토론하며 창조주의 섭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순 없지만, 21세기 첨단 과학자들이 우주의 역사를 발견해 나가는 중”이라며 “이들이 발견해 낸 우주 역사의 사실들이 창세기 안에 서사시 형태로 요약돼 있다고 보면 창세기가 놀라운 책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만 옳다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신학자, 과학자들이 창세기와 첨단 과학을 연구하며 더 많은 하모니, 조화를 이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