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이 BC 6세기 유다왕국의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됐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신(新) 바빌로니아 제국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 2세는 BC 586년 예루살렘을 함락, 솔로몬 왕이 세운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바빌로니아로 데려갔다.
미국 CNN에 따르면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시온산을 발굴해온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고고학팀은 잿더미 퇴적층에서 화살촉과 깨진 항아리, 램프 조각 등을 발견했다. 이중 윗부분이 장식으로 사용되는 태슬(혹은 귀걸이로 보이는 윗부분)이라는 종 모양 귀금속이 주목을 받고 있다.
고고학팀의 공동 책임자인 시몬 깁슨은 “잿더미 퇴적층은 고고학적으로 여러 의미가 있다. 화살촉과 특별한 장식품들이 발견된 경우 황폐화, 파괴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CNN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화살촉은 스키타이 화살촉으로 알려졌다. BC 6~7세기 전투 지역에서 흔히 발견된 것이다. 당시 바빌로니아 제국도 이 화살촉을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깁슨은 “발견된 유물들은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정복했음을 시사한다”며 “이 기간 동안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전쟁은 BC 587~586년에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공격한 것 외에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고고학 발견으로 성경 내용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바빌로니아의 유다왕국 침입과 멸망 사건은 열왕기하 24~25장, 역대하 36장 9~21절, 예레미야 52장 등에서 기록하고 있다. 앞서 BC 722년엔 북이스라엘 왕국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했다.
느부갓네살은 BC 605년 헷족속(힛타이트) 고대 성읍인 갈그미스에서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604년 남유다를 침공했다. 이로 인해 남유다는 바빌로니아에 조공을 바치며 항복한다. 이때 다니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인질로 끌려갔다.
당시 남유다는 18대 왕 여호야김(본명 엘리야김)이 통치했다. 그는 이집트왕 느고와 바빌로니아왕 느부갓네살 사이에 줄타기를 하다가 3년 만에 바빌로니아에 반역을 일으켜 쇠사슬에 묶인 채 바빌로니아에 끌려갔다. 뒤를 이어 여호야긴이 8세 때 왕위에 올랐으나 3개월만에 포로가 됐다.
바빌로니아 군대는 예루살렘의 모든 기술자와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는 등 주민을 포로로 끌고 갔고 가난한 사람들 말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에스겔 선지자도 이때 끌려갔다. 느부갓네살은 성전에 있던 보물, 왕궁 보물을 모두 탈취해갔고 솔로몬 시절 제작한 성전 금그릇들을 모두 산산조각 내어 깨뜨렸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삼촌인 맛다니야를 시드기야로 개명시켜 왕으로 세웠지만 시드기야 역시 반기를 들었고 느부갓네살은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침공,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 예루살렘의 모든 건물을 불태웠다. 당시 바빌로니아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의 사면을 헐어버렸다(왕하 25:10). 시드기야왕과 가족들은 나중에 체포됐고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아들들을 처형했다. 또 시드기야의 두 눈을 뺀 다음 쇠사슬로 묶어 바빌로니아로 끌고 갔다. BC 586년 이렇게 남유다는 완전히 멸망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 멸망을 직접 목도한 유일한 예언자이다.
이번에 고고학 유물이 발견된 시온산(Mount Zion)은 예루살렘 서쪽 해발 765m의 산등성이로 4세기부터 시온산이란 이름으로 불려왔다. 지금의 시온산에는 다윗의 무덤과 마가의 다락방, 마리아가 잠들었다는 곳에 세워진 마리아 영면교회가 있는 도미시안 수녀원과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과 베드로 통곡교회가 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