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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뒤에서 우주를 움직이다/[Close-up] 머스크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2인자… 그윈 숏웰

영국신사77 2019. 6. 12. 00:22

머스크 뒤에서 우주를 움직이다

조선일보
  • 윤형준 기자
  •             

    입력 2019.06.11 03:08

    [Close-up] 머스크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2인자… 그윈 숏웰

    머스크
    머스크 /블룸버그
    팟캐스트(인터넷망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방송에서 대마초를 피우는 모습이 전국에 생방송됐다. 트위터로 회사를 상장 폐지하겠다는 멘트를 날린다. 실적을 부풀려 발표했다가 정부 기관으로부터 고소당하고, 언론 인터뷰에선 울다가 웃기를 반복해 '정신 이상설'까지 나돌았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우주항공기업 스페이스X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48)가 최근 1년 새 보여 준 기행이다. 머스크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추진력 덕분에 세계 최고의 혁신가로 칭송받지만, 동시에 이렇듯 기상천외한 행동도 일삼는다.

    툭 하면 구설에 오르는 머스크 때문에 테슬라의 앞길마저 위태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최근 4년간 고위직 임원만 40여 명이 회사를 떠났고, 연이은 테슬라의 전기차 사망 사고로 교통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머스크의 또 다른 회사 스페이스X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2014년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였던 매출은 지난해 두 배로 커졌고, 올해는 27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스페이스X는 현재 기업가치 305억달러(약 36조원)로 우버·에어비앤비에 이어 전 세계 세 번째로 비싼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 됐다.

    스페이스X가 테슬라와 달리 '머스크 리스크'에도 굳건한 것은 이 회사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사장인 그윈 숏웰(55)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숏웰은 스페이스X의 임직원 6000여 명을 관리하며 회사의 일상을 총감독한다. 평소엔 머스크에게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위기 때마다 그의 저력이 드러난다. 스스로 "머스크의 (때로는 비현실적인) 상상을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 아이템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블룸버그는 그를 두고 "그야말로 스페이스 X의 비밀 병기"라고 칭했다.

    머스크의 소방수, 흔들리지 않는 안정성

    숏웰은 머스크가 수많은 분란을 일으킬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해왔다. 작년 대마초 소동 당시 "머스크는 의식이 또렷하며,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능력이 출중하다"고 머스크를 옹호했다.

    그윈 숏웰
    그윈 숏웰 /블룸버그
    머스크가 사업에 확신을 갖지 못할 때도 숏웰은 대담하게 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머스크는 몇 년 전 스페이스X의 핵심 제품인 대형 로켓 '팰컨 헤비' 사업을 포기하려고 했다. 당시 숏웰은 머스크 사무실로 뛰어들어가 "우리 최대 고객사인 미 공군이 이미 로켓을 주문했다. 사업은 무조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해 사업 중단을 취소시켰다.

    2018년 중순 팰컨 헤비 로켓이 첫선을 보이는 자리에서도 머스크는 자꾸 '로켓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내뱉었다. 이에 불안해진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고객사 한 곳이 구매 계약 철회 움직임을 보이자 숏웰은 즉각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갔다. 그는 "머스크가 한 말은 첫 출시이고 데모 비행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 만약 실제로 터질 가능성이 5대5였다면 출시 자체를 미뤘을 것"이라며 사태를 진화했다.

    고객사들은 숏웰을 '미즈 언플래퍼빌리티(Ms. Unflappability)'라고 부른다. 번역하면 '흔들리지 않는 안정성' 정도가 된다. 숏웰은 지난 1월 스페이스X가 직원 감축을 단행했을 때에도 직원 모두에게 이메일을 보내 "행성을 잇는 우주선 개발에 성공하고 고객에게 우주여행 상품을 지속 제공하기 위해서는 군살 없는 회사가 돼야 한다. 매우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결정이었다"고 설득했다.

    머스크의 비전을 사업 아이디어로

    스페이스X의 폭발적인 성장세
    그는 탁월한 세일즈맨으로서의 면모도 보이고 있다. 스페이스 X는 재작년부터 45차례나 연속 로켓 발사에 성공했는데, 숏웰은 이런 로켓 발사를 성공시키기 이전에 이미 12대의 우주 로켓을 정부와 고객사에 팔았다. 외국 정부와 통신 사업자, 심지어 미 공군마저 보잉-록히드마틴 합작사, 유나이티드 론치 얼라이언스 등 유수의 항공우주업체를 제쳐놓고 스페이스X를 정찰 위성 사업자로 선정했다.

    스페이스X의 핵심 고객사 중 하나인 위성사업체 이리듐의 맷 데시 사장은 "로켓 발사 때 필요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한 까다로운 연락도 그녀가 도맡아 한다"면서 "스페이스X의 성공 핵심은 그윈 숏웰"이라고 칭찬했다.

    "나는 내 상사와 일하는 것을 사랑한다"

    숏웰은 3자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있어서 신경외과 의사인 아버지와 함께 정원 울타리를 만들거나 합판 농구대를 만들었다. 미 중부 명문대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응용수학과 기계공학 석사를 받았고, 이후 크라이슬러 기계공학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그는 "급여는 괜찮았지만 보수적인 문화는 못 견디겠더라"고 회상한다. 크라이슬러의 훈련 교관이 '너무 딱 붙는 옷을 입었다'며 그녀를 질책하기도 했다. 18개월 만에 크라이슬러를 퇴사한 그는 이후 미국 우주 사업체인 에어로스페이스에서 10년 일했고, 2002년 스페이스X 창업 당시 7번째 직원으로 입사했다.

    숏웰은 일론 머스크의 팬을 자처한다. 처음부터 머스크의 담대함과 독창적 아이디어에 홀려 입사를 결정했다고 한다. 숏웰은 "내 생각엔 내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게 머스크의 직업인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나는 내 상사를 사랑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는 "일론이 무언가를 말하면 (즉각 '말도 안 돼!'라고 소리치기보단) 잠시 한숨 쉬고,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며 "솔직히 그의 말이 너무 옳아서 짜증 날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빨간색 테슬라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숏웰은 지난해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9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