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첫번째 사사 옷니엘(Othniel)
성경 독자들 가운데 옷니엘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성서 저자조차도 그에 대해 삼갈,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 등의 ‘소사사’(Minor Judges/삿10:1∼5; 12:8∼15)보다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만, 그를 포함한 7인의 대사사(Major Judges: 에훗, 드보라, 바락, 기드온, 입다, 삼손) 가운데서는 그에게 가장 짧은 지면을 허락한다(삿 1:11∼15; 3:7∼11).
그러나 옷니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마치 두 천을 이어주는 이음새처럼 가나안 정복기와 왕정기를 이어주는 과도기라 할 수 있는 사사(士師)시대의 첫 번째 사사라는 점에서, 특히 유다지파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갈렙의 조카요 사위로서, 그리고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갈렙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은 후계자로서 무심코 지나치기 힘든 인물이다. 옷 입을 때 첫 단추가 중요하듯이, 그리고 맏형의 행동방식을 동생들이 답습하게 되듯이, 옷니엘은 200년 넘게 지속된 사사시대 내내 다른 사사들의 역할모델이 된다. 특히 다른 6인의 대사사가 북쪽 지파 출신인 데 비해 그만이 남부 유다 출신 사사라는 점에서 또 다른 유다지파 출신 지도자요 이스라엘 정치제도의 이상형(삿17:6; 21:25)으로 간주되는 다윗 왕정시대를 기다리게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옷니엘과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단연 그가 갈렙의 후계자로서 임명받는 과정으로서, 용감한자가 미녀를 차지한다는 서양격언까지 연상케 한다. 요즘 말로 갈렙은 현상금을 걸어놓고, 자신이 성주로 있는 헤브론의 서남방 15㎞ 지점에 위치한 드빌을 정복하는 장수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뿐만 아니라 미모의 딸까지 아내로 주겠다고 공포했다. 그러자 조카 옷니엘이 곧장 자원하여 드빌을 정복한 다음 미모의 아내는 물론 눈치 빠른 그녀의 기지로 인근의 수자원까지 보너스로 얻게 된다(삿1:11∼15).
사사기 11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주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2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3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4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5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이와 같은 실력 위주의 후계자 선정 방식은 과거에 자신의 실력을 무시하고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한 모세의 불공정에 대한 무언의 시위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내적 울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그의 조카가 풀어준 것이다. 드빌은 과거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여호수아가 이미 정복한 도시로서(수 10:38∼39) 알 수 없는 사유로 인하여 가나안 거민에게 다시 빼앗긴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갈렙이 기어코 그 성을 재탈환하려는 이유와 동기를 이해할 만하다.
옷니엘을 통해 사사시대의 관행으로 남게 된 사사의 자격과 사명은 사사시대 동안 되풀이된 다음과 같은 역사 사이클(삿 2:6∼23)에서 엿볼 수 있다. ①이스라엘의 야웨 배신행위→②야웨의 심판으로서의 외적의 침입→③백성의 회개와 부르짖음→④구원자(사사) 파송과 구원→⑤사사 통치하의 태평시대→⑥사사의 사후 또 다른 배신행위. 이와 같은 역사 사이클 가운데 옷니엘의 구원사역을 특징짓는 요소는 다름 아닌 ‘야웨의 영’(루아흐 야웨/삿 3:10)으로서, 신약적 맥락에서는 성령을 가리킨다. 이후의 모든 사사들은(삿6:34,11:29) 옷니엘이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사탄과 같은 악의 세력(구산리사다임)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처럼 필수적으로 야웨의 영의 임재를 거치게 되고, 이후 모든 성도들도 반복되는 자신들의 신앙여정에서 성령의 능력을 알고 갈구하게 된다.
장영일 총장<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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