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만난 정한영(62) 한영E&C 회장은 세 딸 얘기가 나오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콧수염을 기른 정 회장은 중국 상하이를 기반으로 베트남, 말레이시아, 헝가리 등 7개국에 법인 사업체를 둔 한상(韓商)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반도체 공장의 핵심시설인 클린룸(청정시설)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그가 자신의 첫 번째 책인 『상하이 콧수염의 지구 백바퀴』(더클 출판사) 출간 기념 행사차 한국을 찾았다.
그는 상하이 교민들 사이에서 사업가보단 미스코리아 출신의 두 딸을 둔 아빠로 더 유명하다. 둘째 딸 정소라(25)씨는 2010년 미스서울 선을 거쳐 본선에서 미스코리아 진에 올랐고 셋째 정유리(24)씨도 2012년 미스서울 미에 선발됐다. 큰딸인 정한아름(27)씨는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고 현재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다.
두 딸을 미스코리아로 키운 비결을 묻자 그는 자신만의 ‘긍정 교육법’을 설명했다.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예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행복하다’는 주문을 매일 잠들기 전에 함께 외쳤어요. 이를 통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가졌던 자신감과 긍정적인 태도가 도움이 된 거 같아요.”
정 회장은 MBC 공채 9기 탤런트 출신이다. 그는 “무대에만 서면 떨지 않는 내 끼를 딸들이 물려받은 것 같다”며 웃었다. “77년에 탤런트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스타가 된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단역을 전전하다 1년 만에 연기자의 꿈을 포기하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어요.”
DA 300
그는 건물 청소부터 구두 수선까지 미국에서 지낸 25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인 2001년부터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사업 기반을 넓혀나갔다. 그는 “지금까지 비행거리를 합치면 총 420만㎞로 지구를 백 바퀴 이상 돌았다”며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손실도 많이 봤지만 수업료를 낸다고 생각하며 버텼더니 보상이 돌아왔다”고 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상하이 한국상회장을 맡으면서 한·중 경제인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는 “60대인 지금도 한 달에 일주일을 제외하곤 전 세계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고 했다.
정 회장은 책 판매 수익에 사재를 보태 1000여만원을 자신이 이사장을 지낸 상하이 한국학교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는 “앞으로 10년간 6만 위안(약 1000만원)을 매년 기부하기로 학교 측에 약속했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시장에 가장 먼저 도전하는 기업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