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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최악의 리더십 아합과 이세벨/[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인물 탐구

영국신사77 2015. 10. 28. 00:29

2011.02.17 17:22

[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인물 탐구


(32) 최악의 리더십 아합과 이세벨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합보다 더 악명 높은 왕도 없을 것이다. 

북왕국 7대 왕(BC 874∼852)으로서, 

미모의 왕비 이세벨과 함께 나란히 왕좌에 앉아 통치했던 그는 

이세벨의 야웨 종교 숙청작업을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왕상 18:4, 13) 

정치 경제적으로 부유층 백성을 억압함으로써, 

엘리야를 비롯한 당대의 많은 선지자들로부터 

이세벨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그리고 최악의 리더십으로 평가된다(16:31∼33; 21:25∼26). 

이세벨은 바알 종교의 본산지 두로와 시돈에서 

바알의 제사장 겸 왕으로 군림하던 엣바알의 딸로서, 

아합의 구혼을 받아(16:31) 이스라엘의 왕비가 된다. 

이 결혼은, 당시 페니키아 문명권의 부강한 나라 시돈을 비롯한 

아람 및 하맛과 군사동맹을 체결함으로써 

북방의 강적 앗수르(살만에셀 3세)의 남진을 방어해야 했던 아합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의 성공적 국방외교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 결혼을 통해 바알 종교의 열성분자였던 이세벨을 통해 

야웨 신앙에 치명타를 가했다는 점에서 

‘트로이 목마’와 같은 암적 존재를 불러들인 불행한 결혼이었다. 

이세벨은 수많은 야웨 선지자들을 죽였고(18:4), 

사마리아 왕궁에 바알 제단과 

아세라 목상(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나무기둥)을 세웠으며(16:32∼33),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궁중경비로 먹여 살렸다(18:19). 

그녀는 페니키아의 경제법을 적용하여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아합에게 선사했는데, 

이 과정에서 야웨의 토지법을 고수한 나봇이 돌에 맞아 순교당한다. 

자기 아들들, 

곧 아하시야(‘나의 힘이 되신 야웨’)와 요람(‘높으신 야웨’)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정도로, 

그리고 나봇 살해사건 직후 

엘리야의 책망 앞에 금식하며 회개할 정도로(21:27∼29) 

야웨 신앙을 과시했던 아합이 

어떻게 이방 여인 이세벨의 영향 아래 

그토록 쉽사리 바알 종교에 귀속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학자들은 당시 대부분 평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합도 순수한 신앙인이었다기보다는 종교다원주의자였다는 사실에 무게를 둔다. 

특히 존귀하신 야웨의 이름을 발음하지 않고 

‘바알’(주님) 또는 ‘아도나이’(나의 주님)로 대치하여 부른 이스라엘 사람들은, 

똑같은 의미를 소지한 바알 종교를 사촌처럼 가까운 것으로 혼동하였다. 

아합 같은 명목상의 신앙인에게 있어서 

금욕적 금지조항이 많은 야웨 종교보다는 

성창제도를 통하여 삶의 풍요는 물론 

성(Sex)의 개방까지 허락하는 바알 종교가 더 좋아 보였고, 

무엇보다 모국의 부친(엣바알=바알의 증인)에 의하여 

철저하게 의식화된 이세벨의 전도와 충동(21:25)에 

적당주의자 아합이 설득당했다고 볼 수 있다. 

철저한 야웨주의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역할의 주인공인 그녀야말로 

본명 ‘이세불’(높으신 분/바알이 어디 계신가)보다는 

‘이세벨’(염소똥이 어디 있는가)로 불려 마땅했을 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최악의 종교다원주의 가운데서 

엘리야, 엘리사, 미가야 같은 빛나는 예언자가 생산된다는 교훈도 귀하지만, 

종교다원주의를 신봉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왕상 22; 왕하 9)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이로 인해 결국 멸망당한 이스라엘의 운명(왕하 17)은 

물질주의와 쾌락만능의 현대판 바알 종교에 감염된 다수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소중한 교훈이다. 

                                                               장영일 총장 (장로회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