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新約]강해/메시아 계보 대장정
우상 제거 개혁 (메시아계보대장정58)
바탕본문: 왕들B(왕하) 18'3,4 연대기B(역대하) 31'1
유월절 경배가 끝나자, 이스라엘/유다 백성은 밖으로 나가 유다 각 도시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온 이스라엘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제사와 경배를 드린 뒤 위로부터 내리신 은혜를 받자 마음에 감격하여 의로운 맘과 국내의 불의에 대한 의분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들은 왕이나 지도층의 특별한 지시가 없어도 자진해서 우상 제거에 나섰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 합니다.
하나님께 참되고 단합된 경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함께 이런 정의 의식도 생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지요.
백성들은 기둥 모양 우상인 주상을 깨뜨려 버리고 아쉐라 목상을 아낌없이 부수고, 유다/벤야민/에프라임/메나쎄 온 땅에서 산당과 제단을 제거한 뒤, 지족 별로 모든 자손이 각각 그 본향 자기 기업이 있는 곳과 일상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물론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고 난 이들의 마음은 마치 깨끗이 청소하고 난 집안처럼, 가뿐하고 홀가분했을 터입니다.
우상 제거 작업은 과거의 개혁 때도 있곤 했던 일이지요. 아사 왕 때(연대B 14'3-5)와 예호샤팥 왕 때도 그랬습니다(17'6).
산당을 허물다
히즈키야 개혁의 또 다른 위업 한 가지는 바로 산당 제거였습니다.
역대 유다왕들 가운데 산당들을 부분적으로 철거한 사람들은 또 있었습니다. 아사, 예호샤팥 등이었지요.
그러나 그들도 백성들이 철저히 위하는 기베온 산당 등은 미처 제거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이 산당은 과거 슐로모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제사를 드린 곳이기 때문이지요(연대A 14'16 왕들A 3'3-15 연대B 1'2-13). 슐로모가 꿈 속에서 하나님의 복 선언을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밖에도 곳곳에 산당들이 있었으나 역대 왕들은 부분적으로만 철폐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산당은 몇 백 년을 두고두고 이스라엘 백성의 올무가 됩니다.
산당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바마'(복수: 바뫁)는 다음 여러가지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높은 곳(고원/산/언덕)
숲이 있거나 상록수가 있는 높은 곳
높은 곳에서 경배할 목적으로 지어진 제단. 그 제단이 있는 건물(벹 하바마)
기타: 산성/요새. 또는 산 위의 분묘(봉분. 복수: 바모테)
이런 산당에서는 우상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제사와 경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산들을 거룩하다고 여기고, 높은 산 위는 하늘에 더 가까워 자연히 신이나 하나님께도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가 쉬웠지요. 사실 이 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소 애매한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카나안에는 고대로부터 산들이 많은 데다 모리아/시나이/호렙/피스가/게리찜/호르/헤르몬/찌온(시온) 산 등이 거룩한 산 또는 영감이 넘치는 산들로 여겨졌기 때문이지요. 또 시 48'1, 87, 121'1, 133'3 등의 분위기는 사뭇 그런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옛날 광야시대 때 이미, 카나안의 모든 산당과 부속 시설들을 철거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신명기 12'2,3 참고: 레 26:30).
산당 경배를 하나님이 혐오하신다는 것은 이사야 65:3,7 등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산당이란 낱말 '바마'를 빌려 "바(to go) + 마(what?)" 곧 "도대체 너희가 찾아 다니는 산당이라는 데가 뭐냐?"고 몸소 풍자하여 묻기도 하셨지요(에제키엘 20'28,29).
또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망상이어라: 언덕들은! 그리고 산들 위의 소란!
참으로 예호바 우리 하나님 안에 있다네,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생각 없이 '민족의 성산'이라는 말 따위를 조심해야 할 터입니다.
물론 성전이 없던 과거에 하나님께 일부 산당에서 거룩한 경배를 드릴 때도 있었습니다(슈무엘A=삼상 9'12,14, 10:5, 연대B 1'3). 그러나 주님께서는, 분명히 성전이 생기고 나서는 유사 시가 아니고서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백성들이 어겨도 왕들이 적당히 간과해 오던 폐단을 히즈키야는 과감히 개혁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완전 철폐되지 못하고 그 뒤로도 계속되다 요쉬야 왕 대에 다시 한 번 산당 제거 개혁을 하게 됩니다.
주상 격파
여기서 '주상'(柱像, 히브리어 '마쩨바' 곧 기둥)이라는 것은 '마쩨바트 하 바알' 즉 주로 바알('주인'이란 뜻)신의 우상으로서 고대 아씨리아나 미쯔라임(에짚트) 같은 나라에 있었던 오벨리스크를 본 딴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바알 주상으로 추정되는 소형 석조물. 태양상이 보인다
이 바알 주상은 흔히 곁의 제단과 태양신인 바알을 상징하는 '태양상'과 결부되기도 했습니다(레비서=레위기 26'30) (태양상은 다음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주상은 태양신 숭배와 직결돼 있었지요. 이 바알상은 주로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라'(=레)/오시리스 등 태양신 숭배에 심취하고 전력을 기울인 미쯔라임은 주요 신전들 앞에 2개씩의 오벨리스크를 세웠고, 나중엔 전국의 모든 신전 앞에 그렇게 했지요. 그중 일부는 현재 에짚트를 비롯한 전세계 곳곳에 세워져 있으니 놀라운 일입니다. 서구 공동묘지에도 고인을 '추모'한다며 고대 오벨리스크를 본 딴 오벨리스크들을 세워 두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은..오늘날 천주교 본부 격인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바실리카 앞 광장 한 가운데 고대 로마제국 당시 미쯔라임에서 가져온 우상 숭배물이 '교황'(식스투스 6세?)의 명으로 서 있다는 것이지요. 이 오벨리스크는 고대 카나안의 바알 태양상과 거의 다름없는 '선 다이얼' 모양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이런 우상 기둥탑이 카톨맄 본부 한 가운데 여태도 당당히(?) 서 있다는 것은 천주교가 곧 우상종교이고 따라서 거짓 종교임을 극명히 입증해 주는 단적인 본보기입니다! 역대 로마 '교황'들에게 영적인 깨달음이나 개혁 마인드가 있다면, 이미 아사/예호샤팥/히즈키야 왕처럼 옛날에 우상들을 철거/박살 냈겠지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천주교도들은 위엣분들 명령이라면 무조건 다 진리인 줄 알고 성경상으로 확인해 보지도 않고 굽신거리고 조아리는 상황이지요. 그러니 거기 어떻게 진리가 제대로 들어 설 자리나 있기나 하겠나요..? 더군다나 천주교회를 언제까지나 '모교회'로, 교황을 '아버님' 정도로 받들어 모시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신교 인사들이 적지 않습니다. 바티칸의 오벨리스크와 태양 바퀴(sun dial)
아시다시피 오벨리스크는 미국 수도 워싱턴 DC 한가운데도 세계 최대의 현대판이 있고, 프리메이슨이었던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묘지에도 서 있지요. 모두 메이슨들이 세운 것이지요.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흔히 오벨리스크 형 탑이나 주상 등은 '정력/번식/다산'의 상징으로서 남성기를 암시했습니다.
남성기 숭배 관습은 고대 미쯔라임/아씨리아/바벨론/그리스/카나안 등에 흔했던 것입니다. 오벨리스크나 첨추형(尖錐型) 기둥/탑들이 남성을 의미했다는 것은 추정에 의한 '헛소리'가 아니라, 오늘날 신지학회/메이슨/영지주의 등에서 쉽게 확인되는 사안입니다. 심지어 오늘날 지상에서 가장 문화국의 하나라는 일본에서도 남성기 떠받들기 전통이 발견됩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광야시대 당시 카나안에도 이런 주상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카나안 정복 훨씬 이전 이에 관해 여러 차례 귀가 닳도록 경고하신 바 있지요(미쯔라임출국기=출애굽기 23'24끝, 34'13, 레빝서(레위기) 26'1, 신명기 7'5, 12'3).
모쉐는 카나안 진입 전 백성들에게 "쌓은 단과 그 곁에 어떤 나무로든 아쉐라상을 만들어 세우지 말고 자신들을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마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주/예호봐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라고 경고했습니다(신명기 16'22).
그러므로 현대의 오벨리스크들도 하나님이 매우 불쾌히, 혐오하실 것임은 자명합니다. 그럼에도 천주교는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것을 바티칸 한 가운데 두고 있으니, 그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결코 아니지요! Nope..simply not. 이건 저 김삼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성경에서 자동으로 얻어지는 결론입니다.
아무튼 히즈키야 치하의 유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주상을 모조리 박살냈습니다. 그러나 대언자들의 예언에 따르면, 그 후에도 이들은 이 주상을 다시 모시곤 합니다.
아쉐라 목상을 찍다
아쉐라(Asherah 복수: 아쉐림 Asherim)는 카나안 땅 민족들의 주신의 하나로 남신인 바알과 쌍벽을 이루는 여신/모신입니다. '아쉐라'는 행운/행복을 뜻했습니다.
고대 우가맅 문서에 따르면, 아쉐라는 '엘'의 배우자요 바알을 포함한 70 신들의 '어머니'였답니다.
그러나 카나안에서는 주로 바알의 배우자 역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하브와 아내 이제벨은 바알/아쉐라를 나란히 섬기곤 했습니다(왕들A 16'32).
또 아슈테롵(아스다롯)과 동일시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미쯔라임의 이시스, 바빌론-/페르시아의 이쉬타르와 이름과 성격이 비슷합니다.
아쉐라는 바알과 달리 주로 나무로 만들어졌고 주상처럼 새겨진 큰 기둥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카나안에 들어가면 아쉐라상을 모두 찍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출 34'13). 그러나 카나안 정복 시대 때 그들은 이내 바알/아쉐라를 섬기기 시작했기에 판관(사사)으로부터 책망을 듣기도 합니다(판=삿 3:7). 심지어 명 판관 기데온의 고향인 오프라에도 아쉐라가 있었습니다(판 6:25-30).
초기에 선정을 베푼 아사 왕이 조모 마아카가 아쉐라 우상을 세운 것을 알고 대비직을 폐위하고 아쉐라를 불살라 버린 사건은 우리 기억에 남아 있지요.
놋뱀상 '네후슈탄'을 제거하다
히즈키야 왕의 개혁 가운데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모쉐 시대의 청동뱀 상(像)을 부숴 버린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것은 파격적인 조치요,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과거 미쯔라임(에집트) 출국 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며 범죄하고 나서 독뱀에 물려 죽어가다 모쉐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특별히 제작한 이 뱀의 상을 바라보고 치유를 얻게 했기 때문입니다(민수기 21'4-9. 참고: 코린토A=고전 10'9). 당시 독뱀에 물린 후 이 놋뱀 상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치유됐지요.
그런데 수 백년간 오랜 세월 이 뱀 상을 애지중지 보관해 오다 보니 급기야 우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그 옛날의 이 뱀 상 자체가 치유력을 지닌 것으로 믿고, 신격화 하여 믿고 성황당 모시듯 이 앞에서 빌기도 했을 터입니다.
또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팡이 하나로 온갖 혁혁한 이적을 행했던 고대의 지도자 모쉐를 열렬히 추앙하던 나머지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의 유대교인들처럼 모쉐를 존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으레 이 놋뱀을 함께 존중했을 터입니다.
그런데도 히즈키야가 과감하게 이 놋뱀을 파쇄해 버린 것은 아무리 중요한 유품으로 보여도 사람들이 음란하게 위하고 하나님보다 중시하면, 우상일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천주교에서 고대의 조각상들과 '순례지', 성당 주변의 소위 '성상'들이 마치 인격체라도 되는 양, 또는 치유의 힘을 가진 양 그 앞에서 묵념 또는 명상을 하는 모습은 이와 대동소이합니다. 설령 치유된다 해도 그것은 성령의 권능을 통한 것은 아닙니다.
왜 히즈키야는 하나님이 모쉐에게 시켜 만들게 하신 놋뱀을 없애 버렸을까요? 사람들은, 광야시대 당시 놋뱀을 통하여, 훗날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실 메시아 예수님의 구원과 치유의 권능을 멀리서 바라보도록 한 프로토타잎 즉 하나의 '선형'(先型)으로서 필요했던 것을, 그 상 자체에 신적 권능이 있는 것으로 믿어 버리는 우상숭배 마인드 탓이었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주님께서는 그 놋뱀처럼 인자도 땅 위로 즉 십자가 위에 들려 매달려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서 3'14 참고: 8'28, 12:32,34). 죄의 대속과 치병을 위한 예수 크리스토님의 수난을 말씀과 성령으로 믿는 사람은 죄도 고침 받고 병도 낫게 돼 있습니다(시 103'3, 예샤야후=이사야 53'5끝, 마태 8'17, 야코보 5'14-16, 페트로A=벧전 2'24).
그러나 안수자나 그 손에 무슨 권능이 있는 줄 믿을 경우 네후슈탄 숭배와 같은 경우가 되기 쉽지요.
아무튼 이 수 백 년 묵은 놋뱀 상을 히즈키야 때에 와서야 비로소 부수어 조각 내게 하고 왕이 그 이름을 '네후슈탄'이라고 했습니다.
애지중지하던 것이 우상화되는 예는 그밖에 또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대 판관(사사) 기데온이 황금 에폳(사제복)을 만들어 자기 고향 오프라에 보관해 두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음란스럽게 받들어 섬기면서 기데온 가문에 큰 올무가 된 경우지요(판관들=삿 8'24-27).
역사적으로, 천주교/정교회 등이 고대 성인들의 무덤이나 유골, 유품 등을 대대로 모시며 받들고, 심지어 결코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수의가 분명히 아닌데도 주님의 '수의'라고 주장하면서 애지중지하는 소위 '토리노(=튜린)의 수의'도 이같은 사례일 수 있지요.
비록 말로는 "숭배하지 않는다"고는 하나 엄청난 예산을 들여가며 보관에 전전긍긍하는 것은 다 영적인 간음입니다.
또 그런 것들을 많이 보관할수록 참 교회임을 입증해 주는 양 믿는 것은 스스로 속는 자기기만 행위요, 인본적인 궤계입니다. 참 교회의 표준은 그런 게 아니지요.
이처럼 히즈키야 당대의 유다/이스라엘 백성은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정을 기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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