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와 임마누엘의 징표 (메시아계보 대장정55)
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2009/12/15 15:57
바탕본문: 예샤야후(이사야) 7:10-14
하나님의 징표를 거절한 아하즈 왕
대언자 예샤야후(이사야)가 아들과 함께 아하즈 왕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계시들도 주셨습니다.
다음은 예샤야후와 아하즈의 대화 내용 일부입니다.
"주/야웨, 너의 하나님께 징표 하나를
요청하여라. 깊은 곳에서든, 또는 위의 높은 곳에서든."
"저는 요청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주/야웨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다빋 왕실은 들으시오.
사람들을 질리게 한 것도 모자라
이젠 나의 하나님까지도 질리시게 하려는
겁니까?
그러므로 주/야웨님이 몸소 님께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
또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로
부르리!"
위에서 보는 대로 아하즈 왕은 위선스럽게 하나님의 징표를
거부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기 위해 징표를 구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실은 아씨리아 왕과 그 군대, 아람의 신들을 의존하는 마음으로
이미 하나님을 멀리 하고 있기에,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이 아닌 경원감 탓입니다.
징표라는
것
여기서의 '징표'란 것은, 곧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입증하는 초자연적 현상이나
미래를 예시하는 예언적 징조 등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 후손에게 보이신 무지개도 징표의
하나이지요.
또 모쉐에게 보이셨던 불에 타지 않는 가시덤불, 손의 나병
발병,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기 등을 통해
당신께서 참 신이심을 입증해 보이셨습니다.
모쉐를 시켜 파라오 앞에서도 하나님의 권능을 입증하는 다양한 징표도 과시했습니다.
또 판관(사사) 기데온은 천사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징표로
타작 마당에다 양털을 깔고 거기 이슬이 내리거나 내리지 않기를 요청하기도 했지요.
또한 다름 아닌 아하즈의 아들인 훗날의 히즈키야(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이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신다는 징표를 요청했고
하나님은 아하즈의 일영표(해시계) 상으로 해 그림자가 10도 역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초자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 왕 아하즈가 하나님이 보여 주시려던 이런 징표를 하나님께 요청하기를 거부한
것은,
말인 즉 "주/야웨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하여
율법(신명기 6:16)을 지키려는 듯한 의지를 보입니다만..
실은 우상숭배자인 데다 다른 신과 인간의 도움을 의지하려던 차였기에
이스라엘의 참 신이신 하나님과 깊은 연계를 맺지 않으려는 발뺌일 뿐입니다.
즉 율법을 이용한 위선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아하즈가 여태껏 백성을 지겹게 하고
그 영/혼/육을 지치고 질리게 만들어 온 현실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께마저도 그렇게 할 거냐고 물으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사람들처럼 지치고 지겨워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유다 왕가에 대한 하나님의 실망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처녀와 아기
'임마누엘'
그래서 하나님은 다빋 왕실을 대표하는 왕이 요구하지 않는 한
징표를 몸소 보여 주시려고 합니다.
매우 중요/중대한
징표이지요.
바로 다빋 왕가를 통해 오실 메시아의
징표입니다!
1. 그 메시아는 처녀의 몸에 태어나신다는
것..
2. 그 이름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다빋 왕가의 시조인 다빋 자신에게,
그리고 그를 통하여 이미, 앞으로 오실 메시아에 관해 다양한 예언을 하신 바 있습니다.
이런저런 다빋의 시편에 나타난 대로 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고대에 야콥의 후손 축복 예언에서도
유다 지족을 통해 오실 메시아에 관해 예언돼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관심이 있는 왕이라면,
특히 다빋의 직계 후손인 유다 왕가라면, 메시아를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사악한 아하즈 왕은
유다 왕가를 대리하면서도 과연 이 예언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우리는 이렇다 할 기대를 걸기가 어렵습니다.
정녕 깨닫지 못했든지, 깨닫기를 거부했을 터입니다.
이 예언 겸 징표는 엄청난
것이지요.
우선 처녀가 (남성 배우자 없이) 혼자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것이며,
그 전에 아기를 밸 수나 있는 것입니까?
자연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아울러 율법에 엄격히 저촉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자연적인 징표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징표로 제시하십니다.
징표를 제시하신
배경
지금
현실적 배경을 보건대 유다는 조만간 망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예샤야후서의 도처에는 이스라엘은 물론
유다가 아씨리아의 칼날 아래 망할 것을 계속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대언자는,
유다의 회복과 오실 메시아에 관해서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부정적인 예언과 긍정적인 예언을 동시에 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것은 '엇박자'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 보실 수 있고 지금 내다 보시는 하나님의 눈길이
대언자를 통해 계속 작동하고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분명히 이스라엘과 유다는
언젠가 조만간 아씨리아나 바빌론에 망할 것이며,
그러나 "남은 무리"에게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은 바로 메시아의 도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다를 향한 멸망의 경고와 동시에
메시아의 거대한 소망을 제시하실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비록 타락하고 사악한 아하즈에겐 이 징표가 "돼지 앞 진주알" 격일 망정,
이 예언을 듣고 기록을 통해 읽는 유대인들에게는
커다란 위로와 소망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장차 오실 메시아-처녀에게 태어나실 아기
예수 크리스토-가
참 메시아가 아니라고 거부하는 유대인들이 훨씬 더 많고 보니,
아하즈의 전철은 여전히 답습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 구절의 '처녀'는 그냥 "젊은 여인"으로 풀이될 수도 있으니,
이단자 예슈아일 필요도 없고 그럴 리도 없다고 떼를 쓰며
아하즈 이상의 부정적인 태도와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표기되는 예도 없진 않지요.
그렇다면-예수님 아니시라면,
과연 이 처녀(내지 젊은 여인)와 그 아기가 누구일지 궁금하게 됩니다.
두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 대언자 예샤야후 자신의 아내와 그
아들..
- 왕 아하즈의 젊은 왕비이지 차기 왕 헤제키아의
어머니인 아비야일 것이라는 설.
그럴 경우 이 임마누엘이란 아기는 헤제키야가 되는 셈인가요.
그러나 예샤야후는 아내와 정식 결혼을 한 사이이고, 그 아내는 처녀가 아니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표징일 순 없지요.
아하즈와 그 아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처녀와 그 아기일 수가 없고,
따라서 임마누엘의 표징일 수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아하즈 왕실에게 예언하신 이 수천 년 전의 징표는
이방인들, 더구나 극동의 한국인들인 우리에게
유일하고 커다란 소망과 구원의 뉴스, 복된 소식이 됐고,
또한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될 것이니,
이 어찌 아이러니가 아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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