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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의 동서남북] 제2의 네이버가 없는 이유

영국신사77 2013. 6. 14. 13:05


[이철민의 동서남북] 제2의 네이버가 없는 이유

  • 조선일보  이철민 뉴미디어실장
  • 입력 : 2013.06.14 03:11

    
	이철민 뉴미디어실장
     이철민 뉴미디어실장
    영국의 고교생 닉 디얼로이지오는 열다섯 살이던 2년 전, 전 세계 벤처 기업 사상 최연소 나이에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그가 만든 것은 긴 분량의 뉴스를 아이폰 한 화면에서 요약해 주는 앱 섬리(Summly)였다. 닉은 열두 살 때 트위터에서 뉴스 본문을 클릭해도 당시 느린 통신 속도 탓에 시간이 오래 걸려 불편하자 개발에 나섰다. 이 소년에게 투자한 사람은 벤처 캐피털 '호라이즌스 벤처스'를 소유한 홍콩 갑부 리카싱(李嘉誠)이었다. 닉은 투자받은 100만달러로, 뉴스 핵심을 담은 어휘를 좀 더 정확히 집어내 요약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섬리는 지난 3월 야후!에 3000만달러에 팔렸다. 디얼로이지오는 "15세 소년에게 꿈을 좇을 수 있게 해 준 리카싱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디얼로이지오 이전에 최연소 투자를 받은 주인공은 '킵(Kiip)'이란 앱을 만든 중국계 캐나다인 브라이언 웡(Wong)이었다. 게임·피트니스 앱 이용자들이 특정 점수나 목표치를 달성했을 때, 기업들이 광고 대신 실제 보상을 제공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예를 들어, 하루 목표 5㎞를 달리고 나면 생수(生水) 구매 쿠폰이 앱으로 배달된다. 그는 열아홉 살 때 154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웨이즈(Waze)는 우리도 많이 쓰는 GPS 기반 실시간 내비게이션 앱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실제 교통 정보를 보내는 것이 특정 차들이 아니라, 일반 운전자들이라는 것이다. 앱 이용자들이 교통사고, 거리 행사, 새 상점, 신축 건물 정보 등을 직접 제공하고, 이 정보가 반영된 이동 경로가 제시된다. 이스라엘 기업인 웨이즈를 이달 11일 사들인 것은 구글이었다. 내비게이션 체계의 업그레이드를 원하던 구글이 지불한 금액은 13억달러로 알려졌다. 구글이 2001년 2월 이래 인수한 127번째 기업이었다.

    전 세계 IT 업계에선 이런 '동화(童話)'같은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종잣돈을 받아 기업을 키우고 이를 거액에 판 뒤에는, 또 다른 스타트업(start-ups)에 투자하는 선(善)순환이 되풀이된다. 결제대행서비스인 페이팔(PayPal)의 창업자들과 초기 직원들은 '페이팔 마피아(Mafia)'로 불린다. 거액에 회사를 매각한 뒤, 그 돈으로 민간 우주선, 전기 자동차 회사를 세우고 유튜브를 만들고, 초기 페이스북 등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게임업계 등에선 적극적인 인수합병과 연쇄 창업·투자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래아한글·NHN·다음·NC소프트 등 1세대 IT 성공 사례 외에는, 기억에 남는 기업이 별로 없다. 카카오톡은 네이버와 함께 NHN을 출범시켰던 김범수 의장이 나와서 만든 것이니까 예외로 치자. 수년 전 인기를 끌던 내비게이션 회사들은 이동통신사들이 저마다 스마트폰에 자사 앱을 깔면서, 이제 블랙박스 시장으로 밀려났다.

    한국의 인수합병(M&A) 시장이 작고,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아니라는 약점도 있다. 또 아이디어뿐 아니라, 투자 대상 기업이 기술과 브랜드 면에서 매력적이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구글과 비슷한 시기인 1999년 검색엔진으로 시작한 네이버의 인수 건수가 지금까지 고작 10여건인 점은 우리 IT 생태계의 본질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먼저 큰돈을 거머쥔 벤처기업이 후발(後發) 기업의 아이디어를 사기보다는 베끼는 생태계다. 게다가 한국인 80%가 찾는 네이버 검색에선 네이버와 광고 계약을 맺지 않는 한, 신생 기업이 검색 상위에 노출될 가능성은 없다. 네이버에 길든 한국 사회에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도 주목받을 길이 구조적으로 막힌 것이다. 이는 창조적이지도, 상생(相生)적이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