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2.03 23:26
고종 특사였던 호머 헐버트 미국서 을사늑약 고발 회견
이승만의 독립운동도 도와
선교사였던 헐버트는 1886년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당시 고종을 보필했고, 1905년 고종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해 당시 미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면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이준 열사 등 밀사를 파견하는 데 관여했던 헐버트는 고종 퇴위 후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에도 1945년까지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도우며 미국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대한 독립을 역설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한글 보급을 위해서도 힘썼다. 1891년 직접 한글로 쓴 최초의 한글지리사회교과서 '사민필지(士民必知)'를 펴냈다. 1896년엔 서양 음계로 아리랑 악보와 영문 번역 가사를 남겼다. 1906년엔 '한국평론'이란 잡지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했다.
헐버트는 광복 이후인 1949년 7월 29일 우리 정부 초청으로 8·15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땅을 다시 찾았으나, 쇠약한 몸으로 한 달 넘게 배를 타고 오느라 귀국 1주일 만에 숨졌다. 그의 유해(遺骸)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