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안 진리교회 ◇
2010.03.04 23:59:56
* 신안군 임자면 진리교회는 일찍이 도서지방을 복음화 시키기 위해 순회전도하던 문준경 전도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판일 장로는 1930년 당시 경성성서학원에 재학중이던 문준경 전도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진리교회 교인이 되었다.
* 문준경 전도사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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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문준경 전도사는 명창으로 찬송을 부르면 사람들이 와서 듣고, 은혜를 받아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
* 이판일 장로는 문준경 전도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진리교회 교인이 되었으며, 최초의 장로가 되었다. 당시 전임 교역자가 없던 시절이라 교역자가 자리를 비우는 경우에도 초신자였던 그는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교회를 지키며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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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판일 장로는 신사참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자신이 신앙의 지조를 지킬 수 있다는 점이 너무도 즐거워 웃음을 보였고, 결국 일본 경찰은 실성한 사람으로 단정하여 석방한 일도 있다.
* 성수주일을 열심히 했던 이판일 장로는 주일에는 식수도 긷지 못하게 하며 온가족이 예배와 봉사에만 전념하도록 하였다는데, 심지어 명절에도 가족들이 놀이장소에 가지 못하게 하였다. 놀이를 즐기다가 신앙에 손상을 입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 그 이유였다. 또한 그는 집안일보다는 교회 일을, 자신의 가족생활보다는 교역자의 생활을 돌보는 것을 우선했다. 조상제사문제로 전도에 돈전을 많이 받던 시절, 그는 지극한 효심을 행동으로 보였다. 가령 모친의 생신에 제사상처럼 풍성한 음식을 차려 마을 사람을 초청하여 큰절을 하며 만수무강을 빌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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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판일 장로는 1950년 9월 공산 치하에서 밀실예배를 드리다가 체포된 일도 있으며, 결국 그 해 10월 5일 새벽 2시, 해안 경비 여단의 악도들이 이판일 장로와 아우 이판성 집사의 집을 포위하고 무조건 식구들을 묶고 처형장에 끌고 갔다. 이때 35명의 성도들도 함께 끌려갔다.
* 이판일 장로는 자신과 가족과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자신들을 처형하려는 악도들을 위해 기도했으며, 악도들의 용서를 빌었다. 이 모습에 더욱 분노한 악도의 몽둥이와 칼과 창에 의해 이판일 장로와 가족과 성도 47명은 참혹하게 죽고 말았다. 더욱 슬픈 것은 외출했다가 돌아온 이판성 집사의 딸 이완순이 가족이 끌려간 것을 알고 통곡하자 그녀마저 쳐 죽여 갯벌에 가매장한 것이다. 결국 48명의 성도가 장렬히 순교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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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7월 임자진리교회 앞마당에는 그들의 순교 신앙을 기리기 위하여‘48인 순교자 기념탑’이 봉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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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 수복 후 고향에 돌아온 이판일 장로의 장남 이인재는 13명의 가족을 포함한 48명의 순교자를 낸 바로 그곳 대기리에 아버지가 경작하던 땅 1천여 평을 팔아 교회당을 세웠다. 그는 이후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안수를 받고 주로 고향에서 목회하였다. 순교자 집안의 신앙의 유업은 그렇게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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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전남 신안군 임자면 진리 2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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